조선시대에는 ‘홍주(洪州)’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4월 1일 홍주군과 결성군을 통합해 개편된 곳, 바로 충남 홍성군이다. 이곳은 예부터 ‘홍주의병’으로 불리는 의병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서해안 시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홍성은 새로운 도약을 다지고 있다. 이용록 동문은 민선 8기 홍성군수로 ‘행복한 홍성’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이동 군수실’을 내걸고 주민 속으로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11일 오전 9시 이 동문을 만나, 방송대와의 인연과 홍성 혁신에 관한 구상을 들었다.

 

‘늦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걸 두려워하라’라는 격언처럼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학업에 노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지식은 물론 무엇보다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1961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홍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혜전대학을 거쳐 2004년 방송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부터 홍성군청에서 일하다 2020년 홍성군 부군수로 공직을 마쳤다. 충청경제사회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2022년 7월 1일 제42대 홍성군수에 취임해, 군정을 펼치고 있다.

 

방송대는 2002년 인연 맺어
10월 27일, 홍성군수인 이용록 동문은 홍성군 갈산면에서 ‘행복을 싣고 찾아가는 이동복지관’ 행사를 열었다. 주민들의 다양한 민원과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이동 군수실’이었다.  이동 군수실은 읍면에서 개최되는 주요 행사 시에 별도의 상담 부스를 마련해 주민과 자유로운 대화와 생활 불편, 주민 간 갈등 민원 등을 중점 상담해 민원 해결과 주민과의 격의 없는 소통을 꾀하는 창구다. 매년 추진되는 주기적인 읍·면 방문과 별개로 수시로 이동 군수실을 운용해 군민과 동행하며, 현장·소통 중심의 행정을 실현해 가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행복한 홍성’을 만들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1961년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 동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고향 홍동면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 두고 다시 대학을 준비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다. 공직생활 중 1987년 혜전대를 졸업하고 2002년 방송대 행정학과에 입학해 2004년에 졸업했다.
1991년에는 충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겨 안면도국제꽃박람회 기획총괄담당과 감사위원회 감사관, 충남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경제정책과장을 거치며 충남도청 근무를 마감했다. 이후 2018년 홍성부군수로 부임해 2020년 6월 30일까지 2년 6개월 동안 일했다. 40년의 공직생활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2년 6개월 동안 부군수로 보내면서 더 많은 성장의 기회 앞에서 멈춰선 홍성의 모습에 아쉬움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미래 홍성의 청사진을 그리며 나름대로 희망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이제 제가 꿈꿔온 홍성의 미래를 군민들과 함께 이루고자 정치에 입문해 민선 8기 홍성군정을 이끌게 됐으니, 어깨가 무겁기만 합니다.”
‘주어진 업무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업무 능력’이 장점인 이 동문에게 민선 8기 홍성군수 직은 새로운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그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방송대를 널리 빛내고 있는 동문의 도움과 응원을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도 홍성군수로서 안으로 성실과 청렴, 밖으로는 신뢰와 친절을 강조하며 변치 않는 마음으로 5개 분야 100개 공약 완성을 위해 발로 뛰며, 군민과 따뜻한 동행으로 변화하는 군정을 이끌고 군민이 행복한 홍성을 만들고자 앞장서겠습니다. 방송대 동문 여러분들께서도 민선 8기 홍성군정에 많은 관심과 고견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절호의 성장 기회 살리겠다”
사실 홍성군은 지금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충남도청의 이전, 혁신도시 지정이라는 절호의 성장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민선 8기 홍성군정은 홍성의 10년 뒤 20년 뒤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 군수는 △활력 있는 지역경제 △살기 좋은 농어촌 육성 △찾아오는 문화관광 도시 △건강하고 행복한 복지 △공감하는 참여 군정이라는 5개 목표를 중심으로 실천 계획을 다져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충남혁신도시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10만 자족도시 완성은 물론,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원도심 활성화로 체계적인 지역 균형발전을 꾀하고 있다. 젊은 층의 유입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산업단지와 민간 산업단지 유치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또한, 친환경 유기농업 경쟁력 확대로 전국 최초 유기농업 특구 위상에 걸맞은 특화 정책을 발굴하고, 친환경 유기농 시장의 성장과 발전을 선도해 가겠다는 계획도 뚜렷하다.
특히 홍성군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활동 참여 강화다. 장애인 사회생활 지원 증대,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여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홍성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상만 있는 게 아니다. 취임 후 그는 매일매일 발로 뛰어다니며 대통령실, 국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를 직접 방문한 결과, 남당리 주민의 8년 숙원사업이었던 ▲남당항 내항 준설사업을 위한 60억 원 ▲홍주읍성 복원·정비 32억 원 ▲군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한 재해예방사업 235억 원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축산악취개선사업 30억 원 등의 국비를 확보하기도 했다.  
현재 홍성군청 바로 옆에는 과거 홍주목의 동헌이었던 ‘안회당(安懷堂)’이 자리잡고 있다. 뒤편에는 홍주목사가 휴식을 취했던 ‘여하정’이 있다. 전통 문화재를 현 위치에 두고 홍성군청은 새 군청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군청 이전과 함께 홍주읍성을 복원하고 홍주의병을 기리는 의병기념관 건립도 구상하고 있지만, 민간시설인 KT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학업 포기 생각 들었지만 완주”
시험을 통해 사무관 승진을 했지만 그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직장 생활과 방송대 공부를 병행했기에 시험 때는 중압감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낮에는 공직생활에 집중하고, 주로 밤 시간을 활용해 공부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내용을 숙지했다. 정독 3회는 기본이었다. 일에 쫓길 때는 ‘상사들 눈치 보면서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만 둘까? 꼭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완주해야 할 필요성과 의지가 있었기에, 장애물을 훌쩍 건너뛸 수 있었다.
그렇다면 40대 초반에 방송대를 만난 이 동문에게 방송대는 어떤 의미일까? 그에게 방송대는 한마디로 ‘현실에 부딪쳐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충족시켜준 평생교육기관’이다.
그는 “원격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고등교육을 구현하고 각자 다른 학생들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방송대는 교육의 기회를 확대·제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방송대가 “지능형 학습(AI) 플랫폼, 메타버스 등 변화하는 에듀테크의 시대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남다른 도전정신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생 2막을 위해 방송대를 찾는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40대 초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방송대를 선택했던 그의 경험이 묻어나는 조언이었다.
“바쁜 생업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방송대에 진학한 후배님들이 많으시리라 봅니다. 방송대는 일반대와 마찬가지로 교육커리큘럼을 운영하고 학점 취득도 동일하게 어렵지만, ‘늦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걸 두려워하라’라는 격언처럼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학업에 노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지식은 물론 무엇보다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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