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존버’ 시대, 별난 직업병

방송대 구성원인 교수, 행정직원, 학생, 조교 등은 ‘학문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울타리 안에 모여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도 직업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업무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직업적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타나는 방식은 다르기에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직업병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이들이 겪고 있는 직업병과 관련된 속사정은 무엇일까. <KNOU위클리>는 구성원들을 직접 만나 들어 봤다.

 

▲‘노심초사’형

교무와 학사를 책임지는 부서장이긴 하지만 세세한 업무까지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긴다. 이런 점 때문에 문제가 발생 될 가능성도 있어 항상 노심초사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교무행정이나 학사제도 관리에 변화를 줄 필요가 많아 걱정거리가 더 늘었다. 이렇게 전전긍긍 하다보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나름의 방법이 절실하다. 다행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편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음악을 열심히 듣는 편인데 클래식을 선호한다. 마지막으로 예전에는 검도(공인 3단)를 했었는데 지금은 나이를 고려해 일상 생활에서 꾸준히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문병기 교무처장)

 

▲‘시간·완벽 강박증’형

방송대 교수라면 온라인 강의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게 마련이다. 3시간 분량의 강의를 1시간 내에 축약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특히 방송대 강의는 기록으로 남겨지기 때문에 교안을 몇 번씩 봐야 하고 촬영하는 과정 등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스크립트를 쓰고 수정하고, ppt를 만들었다 빼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한다. 나 역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강의 내용을 몇 번씩 읽고 스크립트를 정확히 외운다. 방송대 교수가 겪는 어려움을 하나 더 꼽으라면 ‘불규칙한 삶’을 들 수 있다. 일반대 교수와 비교했을 때 사이클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1년 365일 방학은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 구분도 없다. 방송대 교수는 방학이 시작되면 강의를 찍어야 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강의 자료 업로드를 시작으로 중간과제물 채점, 기말시험 문제제출, 학생회 행사 참여 등을 해야 한다.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 확보가 녹록하지 않다는 얘기다. (손미영 학생처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형

비정규직으로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자의 삶을 산 지도 십여 년이 넘었다. 무릇 연구자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 비교적 높은 자율성을 가지고 독자적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연구와 교수의 내용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직업병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객관적·논리적 흠결이 없는지, 왜곡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은 없는지를 늘 검증하게 된다.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써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매우 크다. 심지어 쪼가리 휴식시간에도 ‘이래도 되나?’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몇 가지 더 있다. 매 학기 시험평가를 한 후 이번 학기엔 몇 명이나 성적 이의를 제기할까, 이의 신청을 한 학생들에게 평가 기준에 대해 어떻게 설득하고 이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일종의 ‘사서 하는’ 자족적 고생이기에 ‘병’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회과학대학 K교수)    

 

▲‘질서와 규칙성 부여, 정리정돈’형

정리정돈하는 것으로 치면 (방송대 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카페에 들어가면 커피보다 인테리어로 되어 있는 책들에 시선이 고정되곤 한다. 나름 가지런히 잘 꽂혀 있는 책들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규칙 없이 아무데나 막 꽂아 놓은 듯이 어질러 놓은 것처럼 느껴져서다. ‘저건 저쪽으로 모이고, 이건 이쪽으로 모아 두는 게 맞을 텐데.’ 이런 상념에 계속 빠져 있다가 커피 가져가라는 진동벨이 울리고서야 시선을 뗄 수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내가 사서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에 얕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배어 나오듯, 사서가 하는 여러 일 중에 자료를 분류하는 일들은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일에 속한다. 하나의 자료가 입수되면 주제와 성격에 맞게 구분하고, 거기에 맞는 분류 번호를 부여한다. 도서 청구기호는 의미 없는 숫자 같지만 세세하게 분류돼 있는 하나의 잘 정리된 규칙 부호인 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보이지 않는 어떤 규칙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색에 잠겨보기도 한다. (서동원 중앙도서관 정보운영팀 사서)  

 

▲‘자기주도적 수다’형

“… NG! 다시 촬영하겠습니다.” 1~2초 침묵이 이어지면 NG를 힘겹게 외친다. PD로 일하는 나는 침묵과 적막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시청자는 어정쩡한 침묵이 있는 영상을 용서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콘텐츠를 시청자가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이러한 침묵을 만드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여긴다. 영상 콘텐츠에 침묵이 발생하는 일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누군가와의 만남에서도 단 1초의 침묵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낯선 이와의 만남을 많이 갖는 직업군 가운데 하나가 PD다. 기자와 영업 분야의 직업인도 사람들과 많이 만나지만 PD도 이에 못지 않다.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의 자리이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말을 나눈다. 오늘도 역시 누군가를 만나 쉼 없이 탐색하고 자기주도적 수다 노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DMC PD) 

 

▲‘나도 모르게 찰칵’형

방송대에 입학한 후 사고가 전환되고 행동이 바뀌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전 강사매칭 플랫폼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마을활동가로 나서면서 예상치 못한 직업병이 생겼다. 마을활동가의 역할은 시민의 일상생활에 불편한 사항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사진과 동영상을 관할 행정기관에 전송하는 것이다. 직업병에 걸린 기간은 그래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내 핸드폰 갤러리에는 셀카나 가족 사진이 아닌 다른 사진으로 가득 찼다. 쓰레기 더미를 비롯해 불법 주정차 차량, 유기동물, 불 꺼진 가로등, 방치된 폐가, 깨진 유리창, 무단횡단자 등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하지만 마을활동가 일을 수행하면서, 마을 변화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이러한 직업병은 좀 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 핸드폰에 아름다운 마을 사진을 차곡차곡 담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황수정 교육학과 4학년)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형

조교들 상당수가 화병에 걸려 있을 것 같다.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학생과의 상담을 겪으면서 분노, 적대감, 감정적 소진과 같은 스트레스 반응을 겪는 동료 조교들을 자주 본다. 알다시피 조교 업무 가운데 학생들과 관련된 업무 수요가 꽤 높다. 그러다 보니 학생 상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 그런 만큼 학생 상담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는 조교들이 많다. 방송대 조교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이다. 특히 성적이 공개돼 성적 문의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시점에선 학생과의 상담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더욱이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심리적 어려움에 시달린 조교들이 매우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객관식 기말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서술형 과제물 시험 형태로 치러진 이번 1학기 기말시험에서 학생들의 문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성적 산출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물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의 제기에 앞서 감정을 배제하고 조교에 대한 상호 존중과 배려를 동반한 문의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수 ‘리쌍’의 노래 중에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가사가 있다. 조교들의 심리적 상황이 딱 이렇다. (4년차 조교 L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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