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DMZ를 녹여온 예술가들]

평화의 섬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DMZ 사진작가 최병관의 ‘비무장대(DMZ) 특별기획전’ 포스터.

오랫동안 DMZ는 우리에게 적대와 냉전의 공간이었다.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비무장지대’라는 뜻과 달리 남북 군사력이 화력(火力)을 가장 많이 집중시켜온 곳이었다. 분단의 아픔이 서려 있는 이곳을 어찌 문인, 예술가들이 상상력의 원질로 활용하지 않았겠는가.
DMZ가 지닌 상징성에 우리 사회가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다. 건축종합잡지 <공간>이 비무장지대가 지닌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학 쪽으로 가면, 좀더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휴전선」 중에서)라고 일찍이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박봉우(1934~1990)다. 그는 시집 『휴전선』(1957)을 통해, 한국사회에 통일 지향의 의미를 이렇게 따져 물었다.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비무장지대를 보는 소설가들의 시선

분단 문제를 형상화했던 월남 작가 이호철(1932~2016) 역시 「판문점」을 통해 남북 화해의 문제를 일찌감치 모색했다. 가짜 기자증을 들고 판문점을 찾아간 주인공 진수가 북쪽 여 기자와 만나 서로 다른 체제를 넘어 ‘통일’을 입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소설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 진수는 이호철 자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60년 9월 한 공보실 보도과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가짜 통신사 기자증을 만들어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회담을 취재했다. 이때 현장에서 북한 여기자와 나눴던 대화를 중심으로, 남북관계의 단면을 담은 작품을 썼는데, 바로 「판문점」(<사상계>, 1961년 3월)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로부터 50년이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의 장례식 장면을 TV로 지켜보던 작가가 사뭇 달라진 남북관계를 소재로 새로운 ‘판문점’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 원고지 400장의 중편으로 완성해 2012년 반세기의 간격을 두고 발표한 동명의 작품을 한데 묶어냈다. ‘판문점 2’에 오면 북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강경보수파를 대변하는 언론인 출신 영호와 원로 소설가 진수가 북한문제에 관한 남남갈등을 보여주는 대화를 이어간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어느덧 80대에 접어들었다.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이며, 일본 유수의 출판사인 문예춘추에서 재일교포 소설가 김중명의 번역으로 출간되기도 했던 박상연의 장편소설 『DMZ』(1997)는 비무장지대로서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을 파헤쳐가는 ‘추리물’ 형식이어서 더욱 긴장감 있게 읽힌다. 이 작품을 깊게 읽어낸 평론가들은 남과 북 모두를 부정하고 있는 작가의 도저한 중도적 시선에 주목했다. 이 중도적 시선이 가 닿은 자리가 바로 이데올로기 이전의 휴머니즘이기 때문. 분단 문학에서는 이 ‘제3의 길’의 발견은 최인훈의 『광장』이나 윤흥길의 『장마』에서도 모색된 바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박청호의 장편소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2000)는 그 상상력이 기발하기만 하다. 무인은행을 털고 살생부를 만들어 권력형 인간들을 제거해 나가고, 한국은행을 털 계획까지 세운 제대 병사 정수에게 윤리적인 도덕성이나 타당성, 현실 가능성들은 무의미하다. 그에게 삶의 목표란 오직 DMZ를 통째로 사들이는 것뿐이다. 역사와 현실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고립돼 그 신성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DMZ를 세계 유일의 평화구역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다. 이 황당한 욕망이 어쩌면 2000년 이후 ‘DMZ’의 평화적 공유를 거침없이 상상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중국동포 작가 김철(1932~)의 시집 『휴전선은 말이 없다』(2006)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시인인 김철이 1995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거쳐 평양을 다녀온 후 쓴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 이 시집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시인이 분단된 고국을 돌아보면서 느낀 분단의 아픔과 한겨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의 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양화가 이반과 사진작가 최병관의 의미

미술과 사진 쪽에서도 얼어붙은 DMZ를 녹이는 작업은 일찍부터 가동됐다. 특히 서양화가 이반의 작업은 꼭 기억해야 한다. 일찍이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협의회’ 대표를 지내기도 한 그는 1987년부터 비무장지대를 소재로 한 퍼포먼스 설치작업과 영상작업 등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1990년 제주도와 한라산 백록담에서 벌어진 그의 퍼포먼스 ‘한라백두수토통합제(水土統合祭)’는 통일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2001년 7월 서울 관훈동 아트사이드에서 ‘DMZ 리포트’를 주제로 연 개인전에서는 비무장지대에서 한반도 전쟁으로 생명을 불사른 이들을 위한 진혼 퍼포먼스 등을 담은 영상물을 상영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와 만해 한용운의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 남과 북이 하나가 됨을 염원하며 다양한 이미지 작업을 시도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런 연장선에는 설치미술가 이불의 작업도 중요하다. 그는 지난달 11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막한 ‘현대미술의 올림픽’ 베니스비엔날레에 남북한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철조망으로 제작한 4미터 크기의 대형 설치물을 출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예술에 담아냄으로써 국제 미술계의 관심을 끈 것이다.
사진계에서는 이시우, 최병관의 기여가 크다. 사진작가 이시우는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이시우 사진시집』(1999, 2007)에서 비무장지대를 지역, 분단, 세계라는 주제로 응시했다. 지뢰 표지판, 철조망, 총탄이 뚫고 지나간 벽 등을 정밀 묘사한 그의 사진에서 사람들은 슬픈 조국의 대지를 응시하는 ‘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사진 작업과 함께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감시운동과 대인지뢰 반대운동’에도 깊이 참여했다.
최병관은 지금 ‘핫’하다. 세간의 이목이 그에게 쏠리고 있는 이유가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전쟁 정전 66주년을 맞아, 최초로 휴전선 155마일의 모습을 촬영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 평화생명의 땅, 최병관 사진전’을 오는 25일부터 7월 20일까지 개최한다. 비슷한 전시가 제주도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지난 14일부터 43일간 진행되는 특별기획사진전의 제목은 ‘비무장지대(DMZ) 평화 생명의 땅’이다. 그는 1997~1998년까지 민간인 최초로 ‘휴전선 155마일’을 GOP 군부대에서 숙식하면서, 왕복 3회 횡단해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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