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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진리’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들에는 함정이 있다.
이따금씩 반성할 때에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되지만,
일상을 실제로 끌어가는 면에서는 역기능을 가진다.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과 겨냥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 행복의 역설은 무척 잘 알려져 있다. 행복은 가치 있지만, 행복을 겨냥하다 보면 불행해진다. 끊임없이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떠올리기 쉬운 이상적인 행복상에 비추어 보면 항상 모자란 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이상적인 행복상은 일생의 어느 시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러운 제3자의 삶일 수도 있다. 행복을 겨냥했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끊임없이 현재를 이런 이상적인 행복상에 비추어 맥락화하고 그래서 현재 자체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음미하지 않은 현재의 연속이 행복할 리는 없다. 


진리도 마찬가지다. 진리는 가치 있지만 진리를 의식적으로 겨냥하는 것도 탐구생활을 운영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진리를 겨냥하는 사람은,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또한 자신이 계속해 이 진리 탐구 작업을 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자신이 깨친 것이 진리가 아니면 어쩌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진리로 납득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게 된다.


빨리 읽어 진리를 많이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마음에 마치 해치우듯이 책을 읽으니 글의 풍미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데우지도 않은 식은 밥을 입 안에 우겨넣듯 ‘다 읽은 목록’에 책을 올려놓고자 허겁지겁 글자를 넘긴다. 게다가 저자가 명시적으로 내린 결론과 요지만 기억하려고 하니 그 논증과정에서 제공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계속 갖고 놀 수 있는 기회를 버리게 된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진리와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나면 이미 확고해진 자신의 믿음에 아첨하는 글만 읽으려고 한다. 빨리빨리 결론만 알려고 하고 결론이 자기 생각과 일치하면 좋은 수사적 문구를 따려고 하고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상비평하고 치워버린다. 


‘행복’, ‘진리’와 같은 원대하고 멋진 추상적인 가치들에는 함정이 있다. 그것들은 이따금씩 반성을 할 때에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되지만, 일상을 실제로 끌어가는 힘이 되는, 의식적으로 염두에 두고 조준할 과녁으로서는 역기능을 가진다. 방향을 잡는 것과 겨냥하는 것은 다르다. 방향을 잡는 것은 추상적인 가치일 수 있지만 일상에서 겨냥하는 것은 그 가치에 기여하는 구체적이고 실행할 수 있는 수행의 문법이어야 한다.


수행의 문법이란, 어떤 가치를 지향하거나 구현하기에 적합한 수행의 양태와 절차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려운 논증적인 책을 읽는다면 그에 적합한 몸의 자세, 책을 놓을 독서대, 읽을 장소와 시간을 고르는 방식, 집중적으로 읽거나 빠르게 훑을 부분을 선별하는 방법, 두 번째 읽으며 중요한 논지와 근거를 정리하는 절차가 그런 것이다. 활동 전체를 일련의 절차들로 분해해, 절차의 각 단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고 시행착오를 통해 잘 작동하는 것을 가려내는 일이 효과가 있다. 그러고는 가치 자체는 의식하지 말고 그저 문법에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싣는 것이 좋다. 이는 억지로 속도를 내거나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가치 있는 결과는 문법에 따른 수행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것으로 여긴다면, 가치를 직접 겨냥하다가 오히려 가치를 놓치는 일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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