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詩를 잊은 그대에게

시집이 많이 팔리지 않는 요즘에도 시를 쓰고 싶다는 분들은 꽤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짧은 글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몇 글자 적기도 어려워하거나, 거침없이 썼지만 정작 읽는 이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창작에 있어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내 글이 남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또 어떤 의미로 전달되는지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보여주면 ‘좋다’. ‘모르겠다’는 답을 듣기 일쑤죠. 이는 글쓰기 경험이 없어 작품을 분석하거나 보완할 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방송대 재학생과 동문들이 활동하고 있는 풀밭동인회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풀밭동인회는 1985년 결성된 시·소설 창작동아리입니다. 풀밭동인회의 탄생은 1984년 개설된 방송대 국어과(현 국어국문학과)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당시 신입생들은 교수님들과 종종 만나 습작한 시, 소설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누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어과 특성상 커리큘럼에서 문학창작의 비중은 크지 않았죠. 이에 갈증을 느낀 학생들이 본격적인 창작을 모색하고자 모임을 만들었고 풀밭동인회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풀밭동인회는 많은 등단자와 당선자를 배출해 왔습니다. 시인으로는 이대의, 이미경, 송달호, 김진희, 서정연, 이희수, 유회숙, 고군일, 김자흔, 강경보, 조경연, 강애란, 故 정세기, 故 정영우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모임 결성부터 작고할 때까지 풀밭동인회에서 활동했던 故 이연주 시인은 우리 문학계에서 여성 시인을 논할 때 빼놓지 않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초보자들이 시를 쓸 때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시적 대상을 찾아 풀어내는 겁니다. 풀밭동인회 4기인 황인산 시인은 “나와 밀접한 대상을 찾아 끊임없이 ‘말 걸기(탐구)’를 해보세요. 초보자들이 흔히 택하는 대상이 ‘엄마’인데, 시에 내 감정만 채우다보니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십 번 ‘엄마’를 쓰면서 대상과 거리를 두고 말을 거는 연습을 해보세요. 같은 대상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시를 쓸 수 있을 겁니다”라고 조언합니다. 24기 이태정 시인은 “처음부터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건 어려워요. 일상의 소소한 것에 집중하면서 시어를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초보자가 ‘하루’를 시적 대상으로 삼으면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쓰려고 하는데 ‘아침’ 하나만 택해 파고들다 보면 시야가 넓어질 거예요”라고 권합니다.

 

기본적으로 풀밭동인회는 이론보다 일단 쓰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법을 다룬 강좌나 책은 넘칩니다. 그러나 이론 공부가 반드시 좋은 글로 귀결되진 않습니다. 어색해도 많이 써보고 합평을 통해 감각을 익히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는 게 풀밭동인회의 생각입니다.

 

합평은 나이나 직업, 지위를 배제하고 오직 글만으로 공감하며 때로는 논쟁도 벌이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글에서 허물을 발견하거나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다른 이를 통해 깨닫기도 하면서 안목을 높이다 보면 자연스레 실력을 가다듬게 됩니다. 힘든 길을 같이 걷는 동료들에게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요. 그래서 풀밭동인회를 비롯한 창작단체들은 합평을 중시했지만 최근 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이런 모임도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서울지역대학 국어국문학과 소속인 풀밭동인회는 시나 소설을 써보고 싶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마땅한 모임을 찾지 못한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국어국문학과는 물론 창작을 원하는 방송대인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어요. 저 역시 글쓰기 모임을 찾다가 풀밭동인회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동인들과 함께하고 있답니다.

 

시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소설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반에 서울 종로구에 있는 사무실에 모입니다. 합평이 끝나면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하죠. 합평 외에도 습작을 모아 동인지를 발간하고, 문학기행 등 다양한 행사도 치릅니다. 다만 합평 특성상 오프라인 활동에 치중하고 있으며 지금은 코로나19로 방역수칙 준수를 위해 모임을 멈춘 상황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방송대 홈페이지나 네이버 풀밭동인회 카페를 참고해주세요. 풀밭동인회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시를 읽고, 쓰고,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여러분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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