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놀랍게도 그들은 무려 53년 동안 우람한 연리목으로 함께 자라났다. 나무가 연리목이 되는 과정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는다. 두 그루의 나무가 맞닿아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닿으면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가지나 줄기, 혹은 뿌리를 하나로 만든다.   우리는 한 몸이 아니었으나 서로 보완하면서 가까이 있는 평행선 상태로 여행했다. 우리 관계는 어려움 없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넓혀져 친구로서뿐 아니라 연인 사이가 됐지만 우리 관계에서 결코 성은 중심 요소가 아니었다. 우리의 주된 정서는 생각과 행동에서 조화롭고, 서로 믿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데 있었다. 서로를 극진하게 생각하는 애정은 우리에게 성이 위주가 된 생활 이상의 것을 뜻했다. 나는 스코트를 남성으로서 사랑했고 그이는 여성으로서 나를 사랑했으나 성이 지배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중에서)사회사업가였던 부모님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반세기의 시간을 함께 했다. 나이와 분야와 성향에서 큰 격차가 있기에 사람들은 언뜻 둘의 동반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했을까?’ 하는 의문을 무색하게 하듯 둘은 온전한 하나였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삶이 그랬다.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1904~1995)은 1904년 미국의 유복한 상류층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계 아름다운 처녀 마리아 오브린이 여러 명의 구혼자를 피해 미국으로 잠깐 건너왔을 때, 뉴욕의 성공한 사업가 프랭크 노드를 만났고 그들은 단숨에 서로에게 빠져들어 결혼했다. 헬렌의 부모 이야기다. 그들은 이상과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신비주의 종교철학자 모임인 신지학회(神智學會) 회원이었다. 둘 다 지역사회 사회봉사 단체의 리더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헬렌은 위로 오빠, 아래로 동생을 두고 있었는데, 헬렌의 형제들은 장성하면서 부모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았다. 헬렌만이 부모의 노선을 걸어갔는데 대표적인 것은 채식주의였고 그 외에 문학과 음악, 신비주의 성향이었다. 헬렌은 다섯 살 때부터 문학에 심취했는데 독서와 사색으로 다져진 그녀의 재능은 후에 남편인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과 함께 쓴 책들에서 빛이 난다. 신비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만남고등학교 때 헬렌은 독서광이면서 음악소녀이고 좋은 체력으로 운동도 잘하는 ‘만능’이었다. 학생회 간부로 리더십이 있었지만 살짝 맛이 간 아이라는 뜻의 ‘넛티(Knutty)’라는 별명도 붙었다. 채식주의와 신비주의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헬렌은 1921년(17세)에 음악을 공부하러 유럽으로 건너가 세기의 스승으로 불리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1895~1986)와 만나게 된다. 헬렌은 파리의 국제신지학협회에서 처음으로 그의 연설을 듣게 되고 이후 6년 동안 열정과 헌신으로 가득한 관계를 이어간다. 네덜란드와 인도, 이탈리아와 뉴욕과 호주에서 두 사람은 함께 했는데 그녀는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으나, 결국엔 높은 곳에서 빛나는 별일 뿐인 크리슈나와 멀어지게 된다. ‘세계 교사’의 숙명을 진 크리슈나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열정과 혼란의 시간을 거쳐 뉴저지의 집으로 돌아온 헬렌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단체의 강연을 요청하면서, 운명의 사람 스코트 니어링과 마주하게 된다. 1928년, 24세인 그녀가 스코트를 만났을 때 그는 45세였다. 둘 다 비슷한 부르주아 가정 배경을 지녔지만 헬렌은 신비주의로, 스코트는 사회주의로 다른 길을 가던 중이었다. 당시 스코트 니어링은 사회개혁가와 반전운동가로서 위험인물로 찍혀서 두 번이나 대학교수에서 해직됐으며, 간첩으로 몰려 재판을 받았고 아내와 아이들과도 떨어진 상태였다. 그는 사회의 모든 활동에서 추방돼 인생의 바닥을 찍고 있었다. 헬렌은 외면적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그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다.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공통점이라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과 둘 다 채식주의자(!)였다는 점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무려 53년 동안 우람한 연리목으로 함께 자라났다. 둘은 영혼의 동반자였을 뿐 아니라 감정과 결정과 생각, 시간과 공간을 완벽하게 공유했다. 나무가 연리목이 되는 과정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는다. 두 그루의 나무가 맞닿아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닿으면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가지나 줄기, 혹은 뿌리를 하나로 만든다. 그래서 연리지, 연리목, 연리근으로 불린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수종이 같거나 비슷해야 가능하고 오랜 세월 서로 부딪치고 부대끼는 인내의 시간이 요구된다. 두 사람은 단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지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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