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7일 27명의 KNOU 동문 통신원단이 꾸려졌다. 동문 찾기 프로젝트 전개의 일환으로, 전국 및 지역동문회 소식을 전달하고, 다양한 이슈를 발굴하는 게 주 역할이다. 동문 통신원의 강점은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현장을 누비는 동문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KNOU 동문 통신원단 부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천성실 동문 통신원이 지리산에서 췌장암과 싸우고 있는 이정복 동문을 만났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 보고서를 써 내려가고 있는 이정복 동문(65세). ‘산신령’으로도 불리는 그는 수많은 췌장암 환우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하루하루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희망보고서를 듣기 위해 그가 있는 지리산을 찾은 것은 지난 5월 12일이었다.
그는 2010년 5월 세상을 등진 채 텐트 하나만 달랑 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지리산이라고 했지만, 실은 지리산 자락 삼봉산 기슭이 그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들어선 곳이다. 1km 조금 더 가면 실상사가 있다.
하도 가난해서 가까스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 동문은 검정고시를 거쳐 1976년에 방송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초급과정을 마치고 군 입대를 했으며, 학사과정 편입 후 졸업장을 받았다. “어렵게 공부하긴 했지만, 방송대는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형성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라고 말하는 그는 글로벌 미국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영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1992년에는 사업 기회를 잡았다. 다행히도 회사는 잘 운영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몸에 어느날 갑작스레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옆구리에 칼로 베는 듯 사각사각 하는 시큰함이 느껴졌고, 트림도 자주 나왔다. 몸무게는 10㎏이나 빠졌으며, 허리 통증도 찾아왔다. 2008년, 그의 나이 52세 때였다.

자연이 보여준
그 끈질긴 생명력에서
크나큰 위안 발견
하늘, 별, 햇볕, 비, 눈, 바람,
자연이 모두 나의 선생
삶이 바뀌니
몸도 달라졌다
잘 나가던 사업가, 멈춰서다
2010년 2월, 이 동문은
종합검진을 받으러 서울의 한 대형병원으로 찾았다. CT 판독서에는 췌장에 1.5cm의 암이 발견됐고, 신장과 간에 종양이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하얘졌다. 가까스로 정신 차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전국 각지의 암 환우를 만나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투병 생활을 하는지 직접 확인했다. 70kg이었던 몸무게가 48kg까지 줄어든 그에게는 모든 것이 치열한 사투였다. 다리의 감각은 무뎌졌으며, 입안은 시리고 통증으로 말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산속에서 신선한 음식을 먹으며 계속 몸을 움직이는 것이 소화력과 면역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 그는 공부와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투병 생활의 밑그림을 실천했다.
우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치유의 근본이라 여겼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더불어 효소, 면역, 종양, 미생물학, 임상 병리 관련 공부를 했다. 식사 시간은 책을 읽는 시간이 되기 일쑤였다. 특히 해부학 지식은 통증이 나타나는 이유와 그 대책을 세우는 길잡이가 됐다.
이것저것 먹어보다가 황달 같은 증세를 겪기도 하면서 먹거리 종류를 늘여갔다. 직접 먹어본 뒤 속이 편하고 대변이 잘 나오면 식단에 올렸다. 씀바귀, 쑥, 질경이, 개망초, 망초, 민들레, 쇠비름, 뽕잎을 비롯한 산야초와 감자, 고구마, 당근, 토마토 등의 채소를 섭취했다. 특히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익힌 토마토와 콩나물국은 지금까지 애용하는 음식이다.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울 때는 누워서 엄지발가락 부딪히기를 하고, 다리를 움직여보고 손가락과 손을 움직였다. “마당의 아로니아 밭 둘레가 150m인데요. 한 바퀴를 돌면 고무줄 하나를 걸어놓죠. 매일 아침에 5개에서 20개를 걸었는데, 지금까지 12년을 계속했어요.” 몸이 안 좋아 걸을 수 없었을 때 염원이었던 ‘걸어서 문지방을 넘었으면 원이 없겠다’라는 그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몸의 상황에 맞게 하루도 빼지 않고 걸었다.
히말라야 3패스에 백두대간 완주도
2012년에 들어서면서 이 동문은 ‘내 몸이 좋아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30개월 만에 찍어본 CT를 보고 담당 의사가 ‘암세포가 정체되어 있네요’라며 깜짝 놀라더군요.” 확신을 얻은 그는 2013년부터 한국췌장암환우협회를 이끌며 경험담을 세미나 형식으로 암 환우와 가족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2015년 처음으로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는 그는 먼저 자전거 끄는 힘부터 길렀다. 그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정상인도 실행하기 어려운 과제에 도전했다. 히말라야 3패스와 마라톤 풀코스 5회 완주, 백두대간 완주, 대한민국 자전거길 국토완주 등 세계 곳곳과 전 국토를 누볐다. 최근까지 지리산의 천왕봉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를 수십 회 등반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자연이 보여준 그 끈질긴 생명력에서 크나큰 위안을 얻었다는 것이다. “하늘, 별, 햇볕, 비, 눈, 바람, 일출, 일몰이 모두 약이었어요. 자연이 나의 선생님이었어요.” 그런 그가 이런 당부를 했다.
“우리는 진단만 안 받았지, 모두 예비 환자입니다. 면역계가 방어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는 거죠. 몸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면역력 증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요.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늦을 수가 있어요. 자신의 몸은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데, 건강할 때 시작해야 해요.”
그는 내일도 일어나면 몸무게를 재고 혈압과 혈당과 심박수 체크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아로니아 코스’를 시작으로 종일 움직일 것이다. 성탄절 이브에는 혼자 자전거 타기를 할 것이고, 동짓날 달빛 아래서 캠핑도 할 것이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그는 움직일 것이다. 이정복 동문은 오늘도 ‘움직여야 살아 있는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천성실 동문 통신원(경영 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