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전환의 시대, 교육의 길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지나가기도 전에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사회 각 분야에서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뉴노멀을 찾는 작업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KNOU위클리>는 교육 분야에서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를 ‘대전환의 시대, 교육의 길’이라는 제하에 각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첫 번째 순서로 대학의 메타버시티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이재영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에게 고등교육의 패러다임 대전환에 대해 물었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으로의 전환인가요
여러 층위에서 대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일단 문명적으로 봤을 때는 아날로그 문명에서 디지털 문명으로 바뀌는 대전환이 있죠. 국가적 층위에서는 지금까지는 한국이 추격국가였다면, 이제는 선도국가로 전환하는 것도 있습니다. 국가적인 대전환에서 하나 더 말한다면, 경제 순위가 세계 10위권이라고 하는데, 질적인 측면에서 선진성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선진성이라고 하는 건 개인 차원에서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실현돼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또 거시적으로 봤을 때 지구촌에서 지구계로 바뀌는 전환도 있죠. 지구촌은 인간 중심적인 관점의 단어인데요, 지구계는 생태계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는 겁니다. 이전에는 개발의 대상으로 봤던 자연이지만, 이제는 그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시대, 대전환이 일어나는 시대가 됐다는 거죠. 코로나19로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고통 받고 있는데, 지구계로의 전환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마지막으로 관계적인 측면에서 개인과 사회가 분열되고 갈등을 겪으며 대결하던 국면에서 서로 소통하고 평화롭게 협력하는 국면으로 관계의 전환을 이루는 중층적인 대전환의 시대라고 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등교육이 충격을 받았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대학의 위상변화가 가장 큰 충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대학은 제도권의 마지막 교육기관으로 인식된 고등교육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중심이 해체되는 흐름이 감지됩니다. 가령 학교라는 ‘정해진 공간’에 ‘모여서’ ‘다함께’ 교육을 받는 기존 형식의 해체 조짐이 대표적 예인 듯합니다. 학교에 학생들을 모아두고 집합교육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거죠. 온라인 기반 교육이 가능하고 대면 교육보다 효율적일 수 있음이 확인된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이는 대학이 평생학습 시대의 거점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한편 인격의 소거라고 할까요, 학생들이 온라인화면 상에 분할된 면 속의 한 점으로 인식된다는 점, 대학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는 점 등도 적잖은 충격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고등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방안이 있다면요
‘학습의 근육’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코로나19로 인해 교육의 위기가 왔다고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육의 위기라고 하면, 이는 교수자, 지식 전달자의 관점에서 본 거죠. 심층을 들여다보면, 학습과 학습자의 위기입니다. 여러 극복 방법이 있겠지만, 학습자의 학습 근육을 키우는 차원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의무로서의 교육을 복지로서의 교육으로 바꾸는 국가적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이겠죠. 20대 초·중반에 모든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고등학습이 이뤄지는 평생고등학습 개념까지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재까지의 교육은 1810년 독일의 교육개혁가이자 언어학자인 훔볼트가 설립한 베를린대학교가 주창한 근대교육 이념이 유지되고 있는데요, 지금은 새로운 문명 조건에 부합하는 신미래 교육이라는 지향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근대교육의 분절된 학문 단위가 융합된다는 측면에서 신미래 교육을 논해야죠. 그런 방향으로 지향점이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부 역시 단순한 학사학위 과정이 아니라 5년제 학·석사 통합과정으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기초전공 1.5년, 융·복합 전공 1.5년을 한 후 나머지 2년은 자율설계 전공이나 전공심화로 설계하는 학·석사 통합 트랙을 도입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전공에 대한 튼실한 역량이 없이는 융·복합의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초적인 전공을 익힌 다음에 융·복합 역량을 연마하고, 자율성이 보장된 상황에서 자율설계전공이든 전공심화든 2년을 더 공부하는 것이 새로운 문명조건에 맞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고 봅니다. 전공 역량과 융·복합 역량을 함께 지니고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졸업생을 키워내는 게 바로 새로운 대학체제 학부의 재구성입니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 가는 위계적이고 구조화된 교육을 넘어 학·석사 통합과정에서 교육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거죠.
단순한 지식 전수 기능으로 만족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5~6년 동안 학사 학위도 못 받고 머뭇대는 학생들이 충만하고 지적인 능력을 갖도록 학습의 근육을 키워줘야 합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입니다. 지금까지는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걸 학문이라고 했다면, 이제는 문제를 발굴해내는 역량을 키우는 곳으로 대학을 재편해야 합니다. 또한 대학이 이미 제도권 고등교육의 정점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평생고등학습의 플랫폼이 돼야 합니다. 국·공립대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서 지향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교육에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는 시도도 있는데요. 즉, 미래 교육의 모습은 교육+뉴테크놀로지의 결합이 관건이라는 주장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적극 동의하며 공감합니다. 4차 산업혁명, 지식기반 사회 차원에서 교육이 새로운 기술과 융합해야 한다는 것은 이전부터 있었던 논의죠. 이것이 팬데믹을 통해 급격히 변했어요. 예전에 교수님들에게 새로운 기술, 매체를 이용한 교육을 하라고 했다면, 아마 어려웠을 겁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통해 제한된 시대가 오면서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거죠. 단순히 집합?대면교육을 하지 못하니 비대면 강의를 한다는 차원이 아니에요. 교육 방식이 대면에서 하이브리드로 바뀌었는데, 스마트 강의실로 예를 들어볼게요. 기존에 스마트 강의실이라고 하면 첨단 강의실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기본 강의실이 된다는 거예요. 수업에 갑자기 뭔가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첨단 기술을 통해 눈앞에서 구현하는 것이 일상화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스마트강의실이 기본값이란 거죠. 향후에는 아마도 강의가 소형화되고, 소형화된 강의에 수업 조교가 배정되는 대면/비대면의 하이브리드 교육이 이뤄질 걸로 예상합니다. 단순한 지식 전수 차원이 아니라 학생 역량을 키우는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 거기서 심도 깊은 논의들이 이뤄지고,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고, 어떻게 질문하는지를 배우는, 그런 변화한 학습, 교육의 대전환이 개별 학습자에게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역량을 키워내는 장으로 바뀔 거라는 겁니다.

 

코로나19는 우리 교육에서 해묵은 논제들을 끄집어냈습니다. 대전환의 시대에 새로운 교육은 무엇입니까? 핵심 키워드로 설명해주시죠
기초지력, 즉 앎의 힘이 중요해졌고, 이것을 키우는 곳으로 대학이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운동할 때 기초체력이 있어야 하듯, 공부에도 기초지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인문교양교육도 있겠고요, 배려하고 조화를 중시하는 사회적 역량을 키우는 사회교양교육도 기초지력 연마에 속하겠죠. 또 디지털 문명을 이해하는 문해력을 함양하는 과학기술교양교육도 포함될 겁니다. 저는 여기에 ‘용기교육’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하고 싶어요. 역사학자 토인비가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했죠.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문명이 선도하는 이 시기에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이런 걸 키워주는 교육을 용기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런 걸 하려면 도전 정신, 창의성, 융·복합 능력이 있어야겠죠. 이 모든 것이 용기를 가진 이후에만 가능해요. 불안한 미래를 이겨내려는 정신을 용기라고 한다면, 대학에 그런 걸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고 그것이야말로 핵심교육이 아닐까요? 여기에 저는 ‘휴먼 그리드’(grid, 연결망)라는 개념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어요. 인간이 결국 중심이 돼야 하고, 서로 연결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개념인데요. 대학은 휴먼 그리드를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에서 확산하는, 이른바 휴먼 그리드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하는 거고요.

 

고등교육, 특히 대학 구조개혁 논의에서 서울대를 빼고 이야기하긴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는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까요
음악에 빗대어 말하면, 그동안의 독주(獨奏)에서 협주(協奏)의 시대를 이끄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서울대는 학문, 교육, 연구, 사회봉사 등의 영역에서 독주를 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대학들과 협력하고 연대하며 배려해 협주를 이끄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기존의 교육체제를 벗어난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고 시험하는 모험적인 대학으로 변해야겠죠.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연구가 되려면 선도적이고 모험적인 연구를 해야 합니다. 탁월한 연구와 양질의 교육이 선순환을 이루려면 서울대 혼자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대학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해요. 하드웨어 중심의 근대교육 체제로는 어렵죠. 신미래교육 패러다임 안에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들어가는데요. 저는 이걸 메타버스(metaverse)와 대학(university)를 합성한 ‘메타버시티(metaversity)’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가상 대학의 공간이죠. 서울대가 이뤄낸 양질의 연구와 우수한 교육이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대와 이를 넘어 아시아, 유럽의 대학과 연계되는 학문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거죠. 서울대는 지금까지처럼 우수한 학생이 와서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 명성을 얻는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와 연결되고 세계 속에서 모든 대학들과 연결되는 플랫폼 대학으로 기능해야겠죠. 향후 서울대는 다른 대학들과 메타버시티로 연결돼 새롭고 창의적인 지식과 기술의 생산, 유통, 확산 그리고 소비의 중추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대가 ‘스마트 그리드 플랫폼’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서울대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플랫폼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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