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방송대 개교 50주년 기념 동문 에세이집

방송대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동문 50인이 참여한 ‘평생학습人 에세이’ 『평생공부로 일궈낸 행복』『배움으로 다잡은 행복』(방송대출판문화원 책속에지혜)이 나왔다. 방송대 졸업생들이 풀어놓는 ‘선물 같은 이야기’와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담백하게 담긴 이 에세이집은 한편 한편이 절절한 드라마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에세이집 출간을 위해 지난 8개월 동안 교정과 편집 작업을 맡았던 김이수 시인의 ‘편집 후기’를 듣는다.

 

방송대 동문 50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어떤 한 사람도 그렇지만
어떤 한 조직도 진정한 가치는
외양이나 지위보다는
그 살아온 낱낱의 삶이,
그 구성원이 품은 스토리가
결정하겠구나, 하는 사실을.

 


방송대 사람들은 가히 배움의 화신이다. 이처럼 배움에 목말라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이처럼 평생을 간절하고 줄기차게 배움을 추구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과연 ‘학이불염(學而不厭)’의 경지다. 또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송대 교수들은 ‘회인불권(誨人不倦)’의 경지다.  
나는 방송대 동문 에세이집 편집을 진행하면서 새삼 ‘배움’이란 뭘까, 또 ‘배우는 사람’은 어떻게 달라질까, 깊이 생각하게 됐다. 50인의 필자들은 방송대 입학 동기도, 전공, 직업, 연령도 다양하고,아마 성품도 각양각색일 테지만, 배움의 열정만은 동색이었다. 원고 청탁부터 계약서 작성, 원고 입수 및 수정에 이르기까지 단계마다 50번을 반복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랐지만, 배움의 열정에 감화된 나는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힘이 나고 즐거웠다.

방송대 역할 보여주는 ‘배움’ 이야기들
이번 에세이집에는 50개의 꼭지 제목만으로도 방송대의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위상을 설명하고 남을 만큼 다양한 ‘배움’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정희 동문은 회갑이 넘어 농학과에 입학한 만학도였지만, 학과 공부는 물론이고 학생회장까지 맡아 봉사하는 등 학교생활에도 열정적이었고, 전통공예가(나전칠기)라는 새로운 인생길까지 활짝 열었다. 여상을 졸업하고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이금형 동문은 방송대를 나온 힘으로 여성 최초로 치안감에 올랐다.
공윤현 동문은 국가보훈처 공무원으로 살다 정년퇴직한 뒤에야 방송대를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맛보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동양철학으로 철학박사가 됐다. 그러니 젊게 사는 비결을 배움이라고 할 만하다. 공 동문과 비슷한 연배의 김상문 동문은 한 술 더 뜬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대학을 안 나온 것 때문에 학부모로부터 멸시를 당한다. 그게 한이 되어 방송대 9개 학과를 졸업하고도 현재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니, “방송대를 놀이터 삼은 배움의 소풍”을 30년간이나 즐겨온 셈이다. 그러니 그에게 “방송대는 노년 생활 중 젊음의 묘약이요, 꿈의 동산”이다.
대학 교수 전은경 동문은 방송대 덕분에 “학습하는 인간이 된 보람”을 말하며, 방송대는 ‘학습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요람이라고 했다. 보다시피 방송대 동문은 다 학습하는 인간이다. 
전한(前漢) 시대 편찬된 백과사전격 고전인 『회남자(淮南子)』에는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뼈아픈 성찰을 남겼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해야 하는 공무를 수행하면서도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 공부해 기어이 법학과를 졸업한, 국무조정실장 구윤철 동문은 『회남자』의 성찰을 온몸으로 보여준 산증인이다.
가난해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도시로 나와 떠돌다가 중국집 배달 일을 하던 김동영 동문은 친구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만다. “왜 하필 중학교밖에 안 나온 얘하고 어울리는 거야?”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는 그길로 중국집 배달 일을 그만두고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해 주경야독한 끝에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해 날개를 단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전업주부로 살다가 배움에 목말라 방송대 전산학과에 편입해 다니던 김순희 동문은 뜻하지 않게 어린이집 원장이 됐는데,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원장님은 비전공이라 교육과정을 잘 몰라서 그런다”라는 멸시를 당했다. 이에 김 동문은 졸업을 앞둔 전산학과를 미련 없이 그만두고 유아교육과 전문 과정에 신입생으로 입학해 비전공의 설움을 씻었다.
김영주 동문은 현역 국회의원이지만 의원 수첩에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을 자랑스럽게 적어 넣고 다닌다. 그는 농구선수 출신으로 은행에서 노조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그런 열정은 방송대 공부에서도 발휘됐다. 이후 나이 쉰이 넘어 대학원에서 경제학도 공부했으니, 방송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다고 했다.    

‘운명적 만남’과 ‘가장 빛나는 시절’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근무하던 시인 나태주 동문은 방송대 초등교육과에 다니던 때를 두고 “내 생애 가운데 가장 빛나는 한 시절”이라고 했다. 그때 그는 “세워 놓은 자루”마냥 많은 것을 퍼 담아 넣었다고 했다. 아동문학가 이창건은 방송대 재학 시절을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아름다운 시간표”라고 했고, 기업가 박인주 동문은 “나의 가장 좋은 때”라고 했다.
소설가 지망생이던 방현희 동문은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접지 않았다. 그에게 “매혹된 삶”이던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끈으로 마침내 소설가가 된 그는 25년간 주옥같은 작품들을 쓰고, 다시 간호사로 돌아와 인간의 구경적 삶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는 온몸의 삶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 의대 의생명과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던 신동훈 동문은 새로운 분야와 기술에 포위된 40대 시절의 직업적 위기를 방송대에서 정보통계학을 공부함으로써 극복했다. 학자로서 급격히 떨어지던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서 나아가 더욱 향상시킴으로써 직업인의 재교육에 대한 방송대의 위력을 증명해 보였다.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에서 “검은 땅에 초록생명을 뿌리는” 농사로 수행을 삼아온 등인 스님(속명 박인숙)은 전문 농사꾼이 되기 위해 방송대 농학과를 나오더니, 과연 영월군 임업후계자가 되고 말았다. 방송대 농학과의 힘으로 망경대산은 날로 풍성해지고 있다.       
시인 박라연 동문, 성우 최수민 동문, 작사가 하지영 동문, 교육행정가 이진석·황홍규 동문, 사진작가 이흥우 동문, 전직 관료 김용현·라승용·조연환·이정주 동문, 셰프 최수근 동문, 변호사 최영준 동문, 농업경영인 김동학·김영기·방영길 동문, 기업경영인 김영은·김윤환·빈원영·위계점·이상연·주재구·채규희 동문, 사회사업가 유희태 동문, 예비역 육군 중장 이창효 동문, 정치인 김선교·김춘진·박병석·박수현·박완수·유기상·유동균·유용·채인묵·최대호 동문, 체육인 임기남 동문에게 방송대는 어버이요, 꿈을 실현하는 디딤돌이요, 희망의 날개요, 고귀한 꿈의 터전이요, 봄을 불러내는 민들레요, 삶을 물들인 생명이요, 최고의 도전이다.    
이런 방송대 동문 50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나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어떤 한 사람도 그렇지만 어떤 한 조직도 진정한 가치는 외양이나 지위보다는 그 살아온 낱낱의 삶이, 그 구성원이 품은 스토리가 결정하겠구나, 하는 사실을. 
이렇게 보면 방송대와 같은 대학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대학이다. 나는 (아직) 방송대 동문은 아니지만, 학부모로서나마 전에 없던 자부심을 갖는다. 머잖은 날에 딸아이의 방송대 후배가 되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가슴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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