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장애인 이동권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장애인의 날’(4월 20일)이 지났다. 장애인 존재 자체가 비장애인의 이동권을 침해한다는 혐오의 갈라치기부터, 출퇴근길을 방해하는 장애인의 시위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비교적 온건한 주장까지, 한국 사회가 또 한 번 둘로 나뉘었다. 1면에서는 가상의 방송대 학우가 김영애 교수(사회복지학과)에게 국내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역사, 혐오를 넘어서는 장애인 바라보기 등에 관해 질문한다. 2면에서는 영화「복지시장」을 연출한 후천적 장애인 정재익 감독을 만나 장애인 등급제의 허점을 들여다본다. 3면에서는 방송대가 장애인 학생에게 제공하는 학습 도구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장애인 친화적인 학교로 거듭나기 위한 제안을 들어본다.

 

 

방송대(이하 방):  교수님, 아침에 지하철 타고 학교에 오는데, 장애인분들이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더라고요. 왜 저렇게 시위를 하는 건가요?
김영애(이하 김):  장애인분들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게 된 건 오랜 역사가 있는데요, 본격적인 계기는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건이었어요. 그 이전에도 방송대 대학본부가 있는 혜화역에서 노들장애인야학에 오던 장애인이 추락해서 부상당한 일이 있었죠. 지하철 리프트 관리가 안 되고 위험하단 걸 알게 되면서 장애인들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게 됐고, 그것이 이번 시위까지 장장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물론 그동안 정부가 응답을 안 한 건 아니에요. 2005년도에는 「교통약자편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도 제정했거든요. 그리고 ‘언제까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 등의 약속을 했는데, 이런 약속들이 기한 내에 지켜지지 않았죠. 저상버스 도입도 목표치를 밑돌고 있고, 고속버스는 아예 장애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약속의 80, 90%를 이행했으니 된 거 아니냐는 이야기는 사실 맞지 않아요. 그리고 이번 시위에는 보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요, 지난해 말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처리하면서 기획재정부 예산 반영을 ‘의무’가 아닌 ‘임의’ 조항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법은 만들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예산 집행을 어렵게 했다는 게 문제였죠. 이를 알게 된 장애인들이 실질적인 권리보장을 요구하는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타기 시위’에 나선 거죠.

 

방:  그런 역사가 있었군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국회에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하필 출퇴근 시간에….
김: 지금까지 장애인들이 국회, 기재부 등을 안 찾았을까요? 안 가본 곳이 없어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얼마 전 TV토론에서도 이야기했던 내용이 있어요. “많은 공무원을 만났는데, 공통점은 ‘검토해보겠다’라는 대답이었고, 차이점은 ‘사투리’였을 뿐이었다”라고요. 이번 TV토론도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았다”라고 비판하면서 이슈가 됐고, 그렇게 해서 이뤄진 토론인데요. 사실 이 발언도 잘 생각해보면, 장애인을 시민에 포함하지 않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어요. 만약 이런 시위 형태가 아니고 바쁜 출퇴근 시간대에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근한다고 하면 어땠을까요? 지금까지 장애인에게는 출근 자체가 투쟁이었을 겁니다. 20년이 넘게 개선되지 않으니, 결국 이런 방식을 찾은 거라고 봐요. 시민의 불편함을 억지로 초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해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연대해달라고 비장애인에게 요청하기 위한 방식이겠죠.

 

방:  ‘장애인 이동권’이라고 하니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로 한정돼서 들려요.
김: 비장애인들에게는 굳이 이동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죠. 이동할 수 있어야 학교에 가서 교육도 받고, 취업해서 일을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장애인 이동권은 교육권, 노동권, 사회생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이동권에 국한된 투쟁이라기보다는 장애인 인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죠. 최근 또 많이 이야기되는 ‘탈시설’ 논의와 관련해서도 이동권은 필수고요.

 

방:  ‘장애인 탈시설’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요. 성인이 되면 장애인 시설을 나와 사회에서 자립하도록 한다는 거죠?
김: 맞아요. 기본적으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은 누구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맞죠. 그런데 현실에서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아요. 그리고 그런 시설들은 대부분 지역사회에 있지 않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 아래처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있죠. 장애인 탈시설 운동은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정부에서도 2017년 탈시설 방향을 정하고 2021년에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고요. 그런데 로드맵을 보고 좀 아쉬웠던 부분이 있어요. 장애인도 탈시설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확실한 대전제하에서, 어떤 인프라를 갖춰야 이들이 탈시설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정책에 담았어야 했어요.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들 모두가 당장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장애인은 당연히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는 통념을 깨는 운동’이라는 시각에서 모든 정책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위:  탈시설, 장애인과 함께 살기 등과 관련해서 최근에 책이 출간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은데요.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김:  최근에 나온 책으론 『우리도 아파트에 삽니다』(김도요 외 지음, 동행, 2021.)를 추천해요. 사회복지사들이 장애인의 아파트 입주를 몇 년간 도우며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세세하게 다룬 책인데요. 장애인들이 처음에는 아파트 주민들과 부딪치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과정을 잘 기록했더라고요. 『집으로 가는 길』(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인권기록센터 사이 기획, 홍은전 외 5인 지음, 정택용 사진, 오월의 봄, 2022.)도 일독을 권합니다. 지난해 4월 설립 36년 만에 문을 닫은 김포 ‘향유의 집’ 시설 폐지 과정의 기록들이 담겨 있습니다.

 

위:  이동권을 이야기하다 보니, 장애인이 교육받는 학교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고민돼요.
김:  현재 장애인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돼요. 통합교육 형태인 일반 학교에 특수 학급을 두는 방식, 일반 학교의 일반 학급에서 함께 공부하는 방식, 그리고 장애인들만 공부하는 특수학교가 있어요. 몇 년 전 논란이 되었던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주민 반대 등의 사건(당시 논란이 됐던 특수학교는 현재 설립돼 있음) 등으로 관심이 높아졌고, 이후 특수학교 설립보다 통합교육이 가능한 일반 학교에서의 통합교육이 더 확대되고,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많이 제시됐어요. 궁극적으로는 통합교육의 방향성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고요, 좋은 모델로 스웨덴에서 시각장애 아동이 수업 받는 영상을 봤던 기억이 나요. 스웨덴은 장애 학생 통계를 별도로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학급에 시각장애 학생이 있다고 하면 이 학생이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조 교사가 필요하다면 보조 교사를 배치하고,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 프린터 등 수업 도구와 자료를 별도로 준비하고요, 이런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부럽기도 하고, 우리도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통상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스웨덴 사례에서 장애인을 시혜의 마음으로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당연히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어떤 사항들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애인 관련 정책을 펼 때는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시각이 아니라 권리 실현을 위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지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방:  장애인 차별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요?
김:「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7년에 제정됐어요. 법이 제정되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법이 실효성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해요. 최근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를 주장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는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 성소수자 등 많은 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어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차별이라는 문제는 장애인, 여성 등 대상별로 접근하는 것을 넘어서서 모든 국민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할 권리가 있다는 큰 전제하에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이 쉽진 않지만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목표로 시민들이 힘을 모으고 있으니 이 부분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방: 장애인 이동권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탈시설, 교육, 차별 이야기 등을 들으니 장애인 정책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방송대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거 같아요.
김: 몇 년 전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한 여론조사에서  ‘나는 장애인을 차별하는가?’라는 질문에 90% 이상이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차별하는가?’라는 질문에는 70~80%가 ‘그렇다’라고 답을 했거든요. 이 결과를 보면 나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구조적 관점의 차별이에요. 만약 2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만 있으면 장애인은 2층으로 올라가기가 어렵죠. 이런 경우는 한 개인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어쩌면 이런 구조적 차별 속에서 우리 개인들도 나도 모르는 사이 차별주의자가 돼가고 있을 수도 있고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이러한 구조적 차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데 힘을 모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한 가지만 덧붙이면요, 장애인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면 좋겠어요. 시혜와 배려의 관점이 아니라 모든 시민은 권리가 있고,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시민이니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 장애인분들의 시위나 목소리를 이해하면 좋겠어요. ‘장애인이니까 잘 해줘야지’ 하는 것 또한 따뜻한 마음이지만 시혜의 관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정치하는 엄마들’, ‘노년 알바노조’ 등의 단체가 함께 참여하면서 지지를 보냈어요.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가 정부에서 알아서 해준 것으로 생각했는데, 장애인들의 오랜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서는 함께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가기 위해서 잠깐 같이 멈춰주는 마음, 장애인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는 그런 생각의 변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시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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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o***
    저 사람들은 이제 갈 곳이 없어요. 그들이 귀가 없고 눈이 없어 날아드는 비난과 혐오와 질시를 모를까요?아마 알거에요. 배수의 진을 치고 저 지리한 시위를 지속하는 것은 아닐까..생각 해 보셨을까요? 저 역시 시위로 인해 지각도 했고 가끔은 짜증도나요. 하지만 저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은 것은 전장연이 아니라 약자를 외면하는 시장과 오만방자한 입법부겠죠.. 우리는 전장연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하며, 질타의 방향은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2022-11-11 20:56:47
  • yeon***
    네가 나를 때려 아프니 너도 맞아봐라 이건 함무라비 법전시절 정의지요. 게다가 본 시위의 피해자들은 장애인시설과 일말의 관련도 없는 일반시민이 대부분이지요. 걱정되는 점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다면 같은 시민인 장애인의 발도 볼모로 잡힐 각오는 해야 할 것이란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다들 장애인에게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없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댈 것입니다. 장애인 시설에 대한 존중이 줄어들겠지요. 역지사지를 함께 느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입니다.
    2022-08-07 22:36:29
  • mysh***
    교수님 강의를 듣게 되서 영광입니다~ 배려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시민으로서 교수님 강의를 듣고 다른관점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2022-05-21 08:26:26
  • rudo***
    조두순은 시민 아닙니까
    2022-05-16 14:30:31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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