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중2병 처방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아이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빌런(영화 등에서 악당을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최근 무엇에 집착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로 의미가 확장됨)’이 된 것일까? 중학생이 되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 SNS에 온갖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소환까지 당하고 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중2병, 누구냐 넌!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중2병 사례를 소개하며, 부모 교육과 연계한 해법을 모색한다. 2면에서는 중2병 자녀 처방전으로 ‘가족회의’를 알아보고, 3면에서는 리더십 전문가에게 자녀를 중2병에서 벗어나 리더로 키우는 방법에 대해 들어본다.

 

‘내 안의 흑염룡이 날뛰고 있어’
‘중2병’이란 중학교 2학년 전후 시기의 행동을 지칭하는 단어다. 빨라진 성장만큼 중2병은 옛말이고 ‘초4병’이라 불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중학교 2학년생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행동’ 사연을 모집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중2병 용어가 한국에 들어오며 사춘기 청소년들이 보일 법한 허세, 무개념 등에서 ‘아는 척하거나 센 척하는 행동’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허세성 자아도취’로 이해되며 흔히 ‘혹시 아직도 중2병이니?’ 식으로 쓰인다.

 

누구나 겪는 청소년기의 한 시절쯤으로 생각하면 좋겠지만, 이 시기에 자녀와 부모의 대립이 극한 상황에 치닫기도 한다. 해결의 실마리를 방송대에서 찾은 청소년교육과 학우들의 사연에서 ‘중2병 처방전’의 힌트를 알아보자.

 

#1 “엄마만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큰딸이 중2가 되면서 증상이 나타났죠. 아침밥 먹으라고 말하려 방문을 열면 이미 침대에 앉아서 절 노려보고 있어요. 잠깐 눈을 피했다가 다시 봐도 여전히 눈을 치켜뜨고 있어요. 엄마만 보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고요. 작년 1월 1일에는 집을 나갔어요. 놀랐지만, 휴대폰이랑 지갑도 안 들고 나갔으니 곧 들어오겠지 하면서 여전히 단호하게 대응했죠. 남편은 난리가 났고요. 오후에 들어왔길래 한 번만 더 이러면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낼 거라고 으름장을 놨어요. 그때 남편이 아이에게 ‘어디 갔었니? 산인데 다녀올 만 했어? 어떻게 돌아올 생각했어?’ 하며 다정하게 묻더군요. 아이가 발이 너무 아파서라고 대답하자, ‘평발이어서 오래 못 걸으니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해줬어요. 그러고나서 남편이 사흘간 끙끙 앓았어요. 아이가 그걸 보고 마음이 풀렸어요.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대요. 그제야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어릴 때 엄마랑 자고 싶은데 동생들만 양 옆에 끼고 있고, 자신은 아빠 팔베개 하고 자다가 쿵 떨어져 울며 깼던 기억부터,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하던 엄마가 자길 미워한다고 느꼈던 것들까지요. 다 들어줬어요. 같이 울기도 했고요. 방송대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해 공부하느라 바빠 아이 성적에 집착하지 않게 되니까, 요즘은 아이가 같이 독서실 가자고 합니다. 그 시간만큼 엄마랑 온전히 보내고 싶은가 봐요. 내친김에 대학원 진학도 생각 중이에요.”(웃음)

이세미 학우(청교 4)

 

#2 “게임에서 형, 누나들은 내 말 잘 들어줘”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눈을 초점 없이 뜨고 절 보더라고요. 말을 하면 신경질을 내고, 방문을 절대 열지 않고요. 문제는 중2가 되면서 게임중독에 빠진 겁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학을 갔는데, 친구가 없는 거예요. 코로나19가 터져서 2년 간 학교를 못 가니 새 친구도 못 사귀고, 예전 친구들이랑 새벽까지 게임만 하더군요. 속이 터졌죠. ‘도대체 왜 게임에 빠지냐, 프로게이머가 될 거면 말해라. 지원해 주마. 하지만 그게 아니면 병원 치료 받자’라고 말했죠.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엄마는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이라고요. 또 엄마랑 말하는 것보다 게임에서 만난 형, 누나들이 자기 이야기 잘 들어준다고요. 고등학교 가려면 어떤 거 공부해야 한다는 것까지요. 학원 등으로 게임 접속 시간이 다르니 모두 함께 모이려면 결국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요. 아차, 싶었어요. 내가 그 시간을 못 기다려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여자라, 사춘기 때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방송대 청소년교육과에 들어왔죠. 엄마도 1학년, 아들도 중학교 1학년. 같이 공부하는 심정으로요. 3년 공부하면서 아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졌어요. 아들을 존중해주기보다는 억누르려고만 했던 걸 알게 됐어요. 먼저 인격체로 존중해주고 귀 기울여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버스 타고 어디 놀러 간다고 하면, 가라고 하고 불안해하거나 몰래 따라갔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가급적 허용해줍니다. 언제든 아이가 어려움에 닥쳤을 때, 편하게 상의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요.”

홍예원 학우(청교 3)

 

#3 “왕따 당할 때 엄마는 내 얘기 안 들어줬잖아”
“큰딸의 가장 큰 문제는 휴대폰 집착이었어요. 너무 심해서 귀가하면 저희 부부 휴대폰까지 전부 바구니에 넣는 규칙을 정했는데, 정말 안 되더라고요. 밀치고 욕하면서 다시 휴대폰을 갖고 방에 들어가는 거예요. ‘너 도대체 왜 그래? 엄마도 사람이야. 너를 길러준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소리도 쳤는데 도무지 소통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채팅앱에서 성인 남자와 연결이 돼 만날 뻔도 했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죠. 저희 부부로서는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전문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자살충동위험도가 너무 높게 나왔어요. 재검사를 해도 마찬가지였고요. 작년에 심리치료를 10회 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됐죠.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사 주도로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을요. 다행히 그때 왕따를 했던 친구 무리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고 해요. 그래서 조금씩 치유가 되고 있는 중이고요. 상담센터에서 제가 가장 먼저 받은 교육이 ‘경청’이었어요. 아이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려주는 것이었죠. 치료를 받고 아이가 편지를 썼더라고요. ‘엄마, 기다려줘서 고마워. 다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요. 2021년 방송대 청소년교육과에 편입해 전영욱 교수님의 리더십 강의를 들으면서 아,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힘을 얻고, 이걸 모아가면 힘이 되는구나 하는 걸 배웠죠. 배운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줬더니 눈을 반짝이더라고요. 자기도 친구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지금은 학교 ‘또래상담사’에 선발돼 활발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계현정 학우(청교 4)

 

새로운 보상 탐구하는 청소년기의 뇌
일명 중2병에 걸렸다는 10대 청소년들이 부모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흘려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지난 4월 <신경저널>에 발표된 다니엘 에이브람스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연구진의 논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연구진은 7~16세 아이들이 엄마와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때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을 촬영했다. 결과는 연령대에서 갈렸다. 7~12세 아이들의 특정 뇌 영역은 엄마의 목소리에 더 강하게 반응했지만, 13~14세 아이들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에 더 크게 반응했다. 활성화된 영역은 보상, 주의력과 관련된 곳이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받는 보상이 중요했다면, 청소년기에는 친구에게 받는 기쁨, 사회 활동에서 주어지는 보상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분석이다.

 

에이브람스 교수는 “청소년기에는 엄마의 목소리에 대한 뇌의 반응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낯선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더 보람되고 주목받을 만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라면서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탐구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특징이며, 부모가 10대 자녀와 종종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좌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용기를 내라”라고 조언한다.

초기 청소년의 관심 영역이 곧 위기 영역
상담 이론을 바탕으로 한 부모교육을 강조하는 하혜숙 방송대 교수(청소년교육과)는 최근 발표 예정인 논문(「초기 청소년기 위기와 극복 역량에 관한 연구」, <교육논총>)에서 교사, 부모 집단과 초점 인터뷰 후 ‘초기 청소년들의 관심사가 곧 위기 영역’이 될 수 있는 맥락적 연결성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청소년들이 관심 갖는 영역으로는 △대인관계 △학업 및 진로 △스마트폰 및 온라인 문화 등이 있는데, 이 영역에서 또한 위기를 겪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점은 청소년의 발달적 특성의 맥락에서, 청소년의 높은 자극 추구 성향이 위험 요인에 보다 쉽게 노출되도록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하 교수는 “초기 청소년기 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한 극복 역량으로 △심리적 역량 △관계적 역량 △개인적 취미 등이 꼽혔다”라면서 특히, “부모와 교사는 청소년들에게 위기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극복 역량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청소년을 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아이의 문제는 결국 부모의 문제”

하지만 하 교수는 “중2병으로 힘들어하는 자녀의 문제만 도려내면 해결되는 것이 ‘절대’ 아니며, 모든 아이의 문제는 결국 부모의 문제에서 기인한다”라고 조언한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보듯이 아이의 문제는 결국 부모의 문제가 투사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람마다 신체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죠.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로, 위장병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가족의 문제가 가장 취약한 고리인 자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일 뿐이죠. 아이가 친구에, 게임에, 알코올 등에 집착한다면, 중독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야죠. 어디서 결핍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결핍이 부모의 어떤 해결되지 않은 부분에서 전수됐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칼 융이 말한 것처럼, 부모는 사회적 가면(persona, 페르소나)을 벗고, 자신의 진짜 모습, 내면의 깊은 동기를 직면해야 해요. 그래야 이것이 청소년 자녀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자녀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지금 ‘자신의 깊은 내적 세계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세요.”


9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1
댓글쓰기
0/300
  • *** 수정 | 삭제
    "중2병 처방전" 기사 잘 읽었습니다~ 인터뷰 해주신 내용들이 모두 제 이야기인듯 해서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기다려주기, 잘들어주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시기에 왜 그렇게 못해줬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자녀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지금 '자신의 깊은 내적 세계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라는 하혜숙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2022-06-14 14:04:35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