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시험 치른 수험생을 대하는 일이었음을 딸을 통해 알았다. 수년 전 딸의 수능 날, 여느 학부모처럼 나도 종일 긴장했고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이날은 온전히 딸을 격려할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수능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딸에게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을 때, 아이에게 이 시험이 순탄치 않았음을 직감했다.  시험 끝나는 날 아빠와 치맥 하고 싶다는 말을 떠올리며 치킨과 맥주를 사 들고 서둘러 귀가했다. 딸은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치킨이 다 식을 무렵, 풀이 잔뜩 죽어 내 앞에 앉았다. 맥주를 따라주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침묵. 그 어색함이 싫어서 던진 질문이 화근이었다. 이번 시험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딸은 국어가 어려웠다고 했다. 나는 퇴근할 때 들은 수능 평가 뉴스를 떠올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 그건 네가 강했던 과목이었는데 의외네. 뉴스에서 들으니 이번 국어는 무난했다고 하던데”. 아차, 하는 순간, 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항의했다. “아빠, 꼭 그 이야기를 지금 해야 해?” 딸은 이후 일주일 넘게 아빠와 대화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일주일간, 수험생에게는 해서는 안 될 말이 많다는 것을 생생하게 학습했다. 내가 50이 넘어 수험생이 되고 나니 그때 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더 실감한다. 나도 몇 번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무심코 던지는 사람들의 말에 휘청거렸다. “당연히 시험 잘 봤지?” “ 이번에는 붙겠지” “아직도 그 공부를 계속하고 있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공부가 길어지는 수험생들이 왜 주변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칠 바에야 안 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반대로 위로가 되는 말과 행동이 또한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게 섬세하고 세련됐는가를 느닷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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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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