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실패투성이지만

그 동안 즐겁게 도전하면서
일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네. 

 

그대와 함께 한 나날들을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구절을 빌려 표현하자면,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네. 그러나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했다네.

 

그동안 고마웠네. 1991년 5월 1일, 서울 대학로에서 그대와의 인연은 시작됐지. 서른셋의 혈기 방장한 6년차 도서편집자였던 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네.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지. 새삼 돌이켜보니 30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과 인연들이 있었네.

 

먼저 책 이야기부터 해볼까? 저자는 1천 명쯤 만났고, 내 손을 거쳐서 출판된 책은 500종 정도 되네. 그 중에서 1997년에 편집한『광고론』(김원수, 이유재)이 생각나네. 방송대 교재 역사상 최초의 전면 컬러판이었지. 편집디자인 디지털화가 정착되면서 교재 표지도 컬러화한 무렵이었네. 컬러의 표현이나 용지 선택 등에서 이후 교재 개발 시 견본으로 활용됐지.

 

기획, 편집한 책 중에서는 『성공을 바인딩하라』(강규형, 2008)가 생각나네. 자기계발 붐이 일어났을 때 어렵사리 기획을 했는데, 판매가 3만 부를 넘겨서 다행이었지. 징글징글하게 편집한 책은 『농업생명과학용어대사전』(2015)이네. 1천184쪽짜리 목침인데, 표제어가 2만5천여 개여서 눈알 빠질까 봐 걱정하면서 교정 보는 데만 3년 걸렸네. 류수노 교수님이 고생 많이 하셨지. 『이매진 빌리지에서 생긴 일』(유범상, 2019)도 빼놓을 수 없네. 이 정치우화집을 기획하고 편집하면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네.

 

이번에는 우리 교수님들 뒷담화 좀 해볼까? 박순직 교수님은 교재 개발이 끝나면 편집에 도움을 준 직원들을 불러서 꼭 ‘책거리’를 여셨네. 낮술이 유행할 때였는데 주로 유명 '탕'집을 찾아다녔지. 백삼균 교수님은 2002년 출판부장으로 부임해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수립하고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하셨지. 그 덕분에 나와 자네는 크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네. 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정말 신나게 일을 했는데, 기획도서사업도 그때 시작됐지.

 

고약한 분들도 있었지. 그 중에 K교수가 어땠는지는 자네도 잘 기억할 걸세. 출판부장 완장을 차고 와서 칼춤을 추었지. 재임 3년 동안 10여 명의 직원이 사표를 낼 정도였으니.... 조직을 이끌어가는 부서장을 임명할 때에 인권 감수성, 차별 감수성 테스트가 꼭 필요한 이유이지.

 

마지막으로 사업 이야기를 해볼까?  2014년 디지털융합팀을 신설하고 초대 팀장을 맡아 디지털 교재를 개발하고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했네. 책에다 강의 동영상을 붙였는데, 오판이었어. 너무 무거워져서 실사용자인 학생들에게 외면을 당했지. 다행히 웹뷰어, PDF 기반으로 바꾸면서 최근에 매출이 좀 나오고 있다네.

 

2019년, 내 인생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절벽을 만났지. 다름 아닌 <KNOU위클리> 창간! 출판문화원 주도로 창간한다는 정책이 결정된 후 주어진 창간 준비 기간은 고작 1개월이었네. 정기간행물팀이 신설됐고 초대 팀장 겸 편집인을 맡게 되었지. 평생 책만 만들던 사람이 주간 신문을 총괄하게 됐으니 얼마나 막막했겠나. 다행히 최익현 교수신문 전 편집국장이 합류해 줘서 가까스로 3월 4일자로 창간호를 발송할 수 있었다네. 피 말리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주가 달게 느껴져.

 

<KNOU위클리>는 내게는 축복이었네. 평생교육의 수혜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방송대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겠더라고. 이런 과정에서 나도 더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올해 방송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지. 눈앞에 닥친 나의 미래이기도 한, 노인 복지와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네.

 

실패투성이지만 그 동안 즐겁게 도전하면서 일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네. 혹여 내 잘못으로 인해 서운했거나 상처가 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게나. 그리고 창립 40주년을 축하하면서, 지금까지도 잘 해왔지만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그대가 분발하기를 바라네. 나의 30년 지기, 방송대 출판문화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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