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인터뷰_ 「텔레비전 이벤트」 연출한 제프 다니엘스 감독

가상의 핵전쟁을 마치 실제인 듯 생생하게 그린 탓에 시청자들을 패닉에 빠트렸던 「텔레비전 이벤트」는 사상 최대의 시청률(미국 63%)를 기록하고 엄청난 논란을 낳은 1983년작 TV영화 「그날 이후」의 파란만장한 제작 과정과 방영 이후의 영향을 다룬 영화다. 1980년대 미소냉전 시대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감은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에 대한 공포감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진다. 제프 다니엘스 감독은 이슬람교도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역경을 다룬 「사랑의 열 가지 조건」(2009년)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상영 금지를 당한 이후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과거의 사건들을 되짚어 현재의 시각으로 읽어내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의 장점을 「텔레비전 이벤트」에서 십분 발휘한 제프 다니엘스 감독을 평창에서 만났다.


감독님의 영화 「텔레비전 이벤트」는 1983년 TV영화 「그날 이후」의 제작 과정을 다루고 있죠. 40여 년이 지난 지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다섯 살 때 「그날 이후」를 봤어요. 온 가족이 할아버지 댁에 모여서요. 그 시간에 저 말고도 1억 명의 미국인이 함께 본 거죠. 다행히 잔인한 폭발 장면 전에 부모님이 저를 재우셨는데요, 어렸지만 알겠더라고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걸요. 어린 마음이었지만, 어른들이 아이를 위한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 깨졌고, 그 잔상이 오래 갔어요. 이 영화를 다시 본 게 열 살 때였는데,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어요. 어른이 되고 궁금해지더라고요. 행복하고 말랑말랑한 콘텐츠를 만들던 ABC방송국에서 도대체 왜 무거운 핵전쟁 영화를 찍었을까 하는 점이요. 수 년 간 자료를 모아서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이후 닉마이어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 출연진을 만나기 시작했죠.

 

영화 제목을 왜 「텔레비전 이벤트」로 지었나요?
제목 짓기가 사실 굉장히 어려워요. 짧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의미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 제목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1983년도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TV를 시청하던 시기였어요. 그 이전도 이후도 그런 적이 없었죠. 똑같은 콘텐츠를 어마어마한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본다는 걸 지금은 상상할 수 없잖아요? 당시의 독특한 지점을 드러내는 제목이기도 했어요. 이 영화는 1억 명이 동시에 시청했고, 경험을 공유했으며, 이후 굉장한 논쟁으로 이어졌어요.

 

요즘은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서 전 세계 시청자가 콘텐츠를 공유합니다. 흥미롭게 본 작품이 있나요?
가장 많은 시청 시간을 기록한 영화 중 하나인 「돈 룩 업」(감독 아담 맥케이)이 떠오르네요.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 영화였죠. 소행성이 지구에 접근하면서 이에 대한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줬어요. 걱정하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사람…. 동일한 콘텐츠를 같은 시각에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요. 이건 대화를 의미 있게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죠. 또 코로나19로 사람들은 물리적 거리를 둬야 했어요. 같이 일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으려 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됐죠. 그런 의미에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통해 상영관에서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경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수억 명이 시청하지만, 같이 보지 않고 따로 보거든요. 극장이야말로 함께 보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경험이고, 이렇게 함께 경험하면서 우린 혼자가 아니란 걸 각인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공동체는 힘을 더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킨 「그날 이후」 방영 이후 칼 세이건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ABC방송국 특별편성 토론에 출연해 논쟁을 벌여요. 그런데 ‘미국의 국력을 약화하려는 문화정책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등으로 논쟁은 겉돌죠. 대화가 대등하게 이어지지도 않았고요. 공유가 중요하다고 지적하셨는데, 현실에서는 당시 상황도 그렇고 쉽지 않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서 같은 걸 느꼈어요. 그래서 마지막 토론자를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메시지로 잡은 거죠. 그 사람은 “상상할 수 있는 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죠. 바로 그 부분이 제가 이 영화를 만든 답이 되는 코멘트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는 여러 역할을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불가능한 걸 상상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받아들이는 관객들은 간접적으로 몰입하면서 평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제를 사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죠. 핵전쟁도 마찬가지고요. 이 영화를 한국, 평창에서 상영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봐요. 윤석열 정부가 핵 위협을 이어가는 북한에 강경한 대응을 표명하는 걸로 아는데요, 이게 어디까지 필요로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질 수 있거든요. 핵무기까지 보유함으로써 한국을 보호하려고 할까?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만약 핵전쟁이 나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하는 질문들이죠.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것이 예술가의 몫입니다. 핵, 난민, 기후 문제 등 너무나 거대해서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문제를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이런 모든 문제가 다른 사람, 다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란 걸 깨닫게 하는 거고요.

 

TV는 40년 전 가장 강력한 미디어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힘을 가진 매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요즘은 미디어 업계 자체가 워낙 분열됐고, 세분화된 상황이죠. 한 미디어가 엄청나게 큰 힘을 발휘하거나, 시청자가 집단적으로 어떤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가 줄어든 시대라고 봐요. 그럼에도 음악가, 극작가 등 예술가들이 영향을 끼치는 걸 보면 우리가 인정해줘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뮤지컬 「해밀턴」은 미국인 관객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뮤지컬에서 배우 각자의 연기와 음악, 무대가 모두 합쳐지고 연결됐을 때 뭔가 공통지대가 생겨나고 유의미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거든요.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글로벌 이슈를 아주 개인화하고, 감정적으로 그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TV시대의 「그날 이후」는 그랬죠. 그런데 보세요. 지금도 열 살이 갓 넘은 소녀가 유엔에서 기후 문제를 지적하는 연설을 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현재진행 중이고요. 모두가 지적하는 문제들을 알고 있지만 변화가 없는 시대입니다.
정말 좋은 지적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한 미국 기자와 논의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이런 이야길 했죠. 1983년에 「그날 이후」라는 이야기가 가능했지만, 2022년에 그런 텔레비전 이벤트가 현실에 있다면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였죠. 미디어가 분열된 지금 같은 시대에 「그날 이후」처럼 누군가 목소리를 결집시키는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기자가 말하더라고요. 요즘은 뉴스 사이클이 24시간이라 콘텐츠를 채워 넣어야 한다고요. 그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예전에는 들리지 않았을 작은 목소리가 방송에, 신문에 나갑니다. 만약 「그날 이후」가 지금 나왔다면 어땠을까 가정해 볼까요? 아마 ‘지금은 기술이 좋아서 핵전쟁이 나도 전 세계가 공멸하지 않고, 전략적 타깃팅이 가능해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라는 뉴스가 더 전파를 많이 탈 수 있을 거예요. 대량 살상무기는 사람을 한 번에 많이 죽이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이걸 소규모로, 전술적으로 쓰면 된다는 말이 안 되는 주장으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거죠. 이것은 우리가 뉴스를 소비하는 행태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공통지대를 찾아가고, 글로벌 이슈에 대한 아주 미묘한 뉘앙스까지 이해하게 됐는데, 오히려 우리의 뉴스 소비 행태가 더 제약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마도 「그날 이후」를 오늘날 1억 명이 똑같이 시청했다고 봐도 결집은커녕 더 분열시킬 것 같습니다. 당시 레이건 미 대통령이 「그날 이후」를 보고 공격적인 군비 경쟁에서 핵무기 축소에 서명했던 것 같은 영향력은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슬픈 이야기입니다.
지금 전 세계가 기후 위기 속에 살아요. 미국은 총기 문제로 재앙적 상황이고요. 그런데도 우린 이 모든 문제를 일상다반사처럼 받아들이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큰 문제인데, 그냥 이런 거야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너무나 시급한 문제라는 건 다 알아요. 그런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죠. 이런 걸 보면 정말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정도로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현장에서 길거리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들을 목도하면서, 인간은 서로 소통하고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에 가치를 두는 존재라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그걸 보면서 다시 희망을 갖고요.

 

「텔레비전 이벤트」가 평창을 넘어 더 많은 한국 관객과 만나면 좋겠습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7월 5일 개봉하는데요, 한국은 지금 개봉 타진 중입니다. 방은진 평창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이 영화에 대해 한국적 맥락에서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현재 한국은 정치적으로 양극화돼 있어요. 미국도 마찬가지고요. 제 가족만 해도 정치적 문제로 담쌓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함께 영화를 관람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통점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봐요. 당연히 입장, 견해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부분에서 우리가 만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겠죠. 우리가 서로에게 몹쓸 짓도 많이 하지만 이를 넘어 상호 이해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영화제가 우리에게 준 기회라고 봅니다.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또 이 시점에 제 영화가 상영됐다는 점이 기뻐요. 대선 이후 지금이야말로 이 영화를 많은 한국 관객이 보면 좋겠습니다. 핵전쟁 위험을 알릴 좋은 기회니, 한국 관객분들이 제 영화를 보고 한국이 이제부터 미래에 어떤 식으로 핵무기 문제를 다뤄야 할지 고심할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평생교육에 매진하는 방송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저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득이 필요해요. 이전 직업이 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15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보니, 교육자분들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평생교육에는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있는데요. 나이를 불문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 도전한다는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방송대 학우님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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