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상민 기자의 ‘올 여름, 여기로!’

연극배우로 화려하게 커리어를 시작했다. 스크린으로 지평을 넓히더니, 연기 전공 번역서를 출간했고,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영화 축제의 장인 여러 영화제에서 모습을 보이더니 평화의 도시 평창에서 열리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1회부터 올해 4회까지 집행위원장으로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우이자 감독, 번역자, 교수에서 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방은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와는 어떻게 연을 맺으셨나요?
2017년에 강원문화재단 산하 강원영상위원회가 생기면서 위원장직을 제안 받았어요. 강원도와는 연고도 없는 영화인 중 하나일 뿐인데, 당시 양수리 종합세트장이 폐쇄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강원도 춘천 같은 접근성 좋은 곳에 세트장이 생기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수락했죠. 마침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결성되면서 평창이 ‘평화 올림픽’으로 세계에 각인됐어요. 이 레거시를 잇는 사업을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하고 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의기투합해 남북평화영화제를 기획했어요. ‘개막식은 평창에서 폐막식은 금강산에서!’ 생각만 해도 멋지잖아요. 하지만 싱가포르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이란 단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문화도 교육이랑 마찬가지예요. 지금부터 시작!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달린 거죠. 평화는 전 세계가 열광하는 가치이기도 하니까요.

 

1990년대 말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필두로 다양한 지역 영화제들이 생겨났습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요?
멀티플렉스가 아닌 상영관에서 열리는 영화제라는 점을 먼저 들 수 있어요. 평창에는 산도 있고, 마을도 있고, 올림픽 기념관도 있죠. 사실 코로나 시국에도 사람들이 제주도가 아니라 강원도로 피신했을 정도로 ‘힐링 스팟’ 선호도 1위가 강원도잖아요. 강원도만의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영화제가 바로 평창국제평화영화제입니다. 알펜시아 콘서트홀부터해서 감자를 보관하는 창고에서 감자 냄새를 맡으며 영화를 볼 수도 있고요. 또 그간 강원도가 영상 산업에서 로케이션 장소 정도로 소비됐는데 강원도의 젊은 영화인들도 정말 많아요. 지역 영화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유소년을 대상으로 한 평화아카데미의 경우 영화제 기간에만 운영하다가,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의 요청으로 상시 사업으로 전환했어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평화가 뭔지 아세요?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라고 하더라고요. 중요한 생각 아닌가요?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인가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해요. 평화롭지 않으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없거든요. 평화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들을 주로 상영합니다. 평화의 의미를 확장하면 더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고요. 영화 한 편 추천해 주신다면요?
어느 상영관이든 들어가서 아무 영화를 봐도 재밌을 거예요. 한 편을 추천하자면 올해 개막작인 「올가」를 꼽고 싶네요.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단초가 된 유로마이단 반정부 시위를 배경으로 한 영화예요. 어린 우크라이나 체조선수 올가가 유럽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국적을 옮겨 스위스 대표팀이 되면서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주축으로 하고 있죠. 고국에서는 거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데, 영화 속 소녀를 보면서 전쟁이 얼마나 불필요한 소모전인지 느껴볼 수 있고요,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는 강대국이 있다는 걸 뉴스에서만 보다가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이런 영화를 찍은 엘리 그라페 감독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상황인지라 감독이 평창에 오진 못했지만 영상 메시지를 보냈어요. 우크라이나에 좀더 관심을 가져달라고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이 많은 작품입니다.

 

연극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해 스크린으로 무대를 넓혔고, 감독 데뷔, 후학 양성에 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단순하게 선택한 길들이죠.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셔서 제 이름 석 자만 갖고 사는 인생이 너무 울적했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일찍 생긴 거예요. 중학생 때부터 연극을 봤고, 연극 무대에 서다 보니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허무함도 일찍 깨달았어요. 중앙대에서 석사를 하면서 연출을 잘할 것 같다는 주변의 말에 카메라 뒤로 넘어가 봤는데 훨씬 재밌더라고요. 연기는 자기 것만 신경 쓰면 되잖아요. 대문 역할도 하고 문간방, 부엌문 역할도 하죠. 그런데 감독은 이 집을 온전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사람이더라고요. 여자 배우 출신 감독으로는 세 번째라는 타이틀도 얻었죠. 제가 쓰임새가 있어 보였는지 지금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제가 가는 길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넓어졌다가 가시밭길도 됐다가 하지만요. 태생적으로 저는 배우를 하고 싶던 사람으로 태어나서 여러 역할 플레이를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안에서 보면 저는 열정이 많은 거 같다는 생각도 해요. 안 가본 길에 대한 무모한 용기도 있고, 호기심, 궁금함,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 절 여기까지 끌고 온 거죠. 물론 여러 일을 하다 보면 두려움도 생겨요. 대인기피, 공황장애 같은 벽도 만나고요. 인생은 어떤 것도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요. 항상 변칙적으로 운용되죠.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일상 속에서 지금 우릴 비추는 햇빛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부침이 있지만 그 와중에 오늘을 살지 못하면 내일은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요. 그것이 지나면 궤적이 되는 거지만, 그날을 살 때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잖아요. 

 

요즘 관객들에게는 최근작 「사랑의 불시착」이나 「자산어보」로 익숙한데요. 차기작을 좀 귀띔 해주신다면요?
코로나19가 오면서 준비하던 영화가 많이 중단됐어요. 연출이 재미있긴 한데 투자도 받아야 하고, 그 와중에 팬데믹이 오니 시간이 너무 지나가더라고요. 3년을 그렇게 보내면서 설경구 배우와 이준익 감독 권유로 다시 배우로 돌아오게 됐어요. 무려 11년 만에 다시 화면에 나온 거예요! 사람들은 연기 잘한다고 하는데, 저는 막상 울렁증도 생기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제가 가진 청동검이 녹슬어 바스러진 거죠.(웃음) 그래서 차기작은 다시 연출로 돌아갑니다. 씨제스에서 제작하는 「신이 떠나도」를 맡았어요. ‘샤머니즘 운명 조작극’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갑자기 신이 떠나 돈도 명예도 잃은 전설의 무당이 신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하다가 인간에게서 신을 찾는다는 이야기에요. 지금 캐스팅 작업 중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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