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상민 기자의 ‘올 여름, 여기로!’

류영하 백석대 교수(중국어학)가 『대만 산책』(이숲, 2022. 06)으로 돌아왔다. 『홍콩 산책』(산지니, 2019)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산책 시리즈인 『대만 산책』을 낸 것. 대만의 역사와 문화의 근원을 추적한 책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 대만 국립칭화대에서 방문 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만난 대학원생, 대만인과 그가 눈에 담았던 대만의 풍경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는 대만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대만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만 현지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책에 담으며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한국의 현재와 연결돼 있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날, 명동에서 그를 만났다.

 

“서점에 가보면 눈에 띄는 책들은 주로 대만 관련 여행서더라고요. 맛집이나 가 봐야 할 곳을 소개한 책들이죠. 그런데 대만의 역사와 문화의 근원을 추적한 책은 많지 않아요. 이렇게 자료가 없다는 건 우리 중국학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봐요. 그런 생각으로 되도록 대만을 깊숙이 들여다보되 쉽게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썼습니다.”

 

류 교수는 대만에 대한 부채 의식이 이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공부하던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질 때, 그는 대만인들이 한국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직접 목도했다. 그 이후 막연하게 대만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싹텄다. 시간이 흘러 EBS 「세계테마기행-대만 편」에 스토리텔러로 참여하면서 3주 정도 대만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본 시간’이었지만, 그는 대만에서 ‘유토피아’를 발견했다. 대만인들의 친절함, 긍정성 그리고 적대감 없이 외부인을 대하는 모습에서 대만을 새로 알게 된 것.

다양한 대만 음식에서 발견한 ‘합리성’
『대만산책』은 △먹기 △걷기 △보기 △알기 등 4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읽다가 어렵거나 관심이 없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넘어가고 흥미로운 부분부터 읽어도 된다는 것이 오랜 기간 대만을 연구해온 그의 조언이다.

 

책의 첫 챕터 주제인 먹거리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라 금방 책에 빠져들게 만든다. 류 교수는 “음식 문화는 그 지역과 문화의 총체이자 그 나라 역사와 문화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테마”라며 “대만인들이 뭘 먹고 사는지 보는 게 중요해서 책의 첫 챕터를 먹거리로 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대만에 체류하며 찍었던 3천500장의 사진 중 400장이 책에 삽입돼 가독성을 높인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스페인, 네덜란드의 식민을 경험했다. 서양의 음식문화는 물론 중국 대륙이나 원주민의 음식문화도 혼재한다. 국민당 정부가 1945년 대만에 들어서면서 강소성, 절강성 요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며 고급 요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대만을 대표하는 요리는 무엇일까? 류 교수는 “중국 5대 요리처럼 딱 지칭할 수는 없지만, 다양하다는 점이 바로 대만 요리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여기서 류 교수는 대만 음식 문화를 통해 한국 음식 문화에서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대만을 통해 사유한 한국의 문제점 중 하나다. “혼자 국내 여행을 하면 식당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많아요. 1인분은 안 판다고 해서요. 혼자서는 먹을 수 없다는 건 작은 사실일 수 있지만, 한국 문화의 비합리성, 전근대성을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식당 입장에서 1인분이 힘들고 남는 게 없다면, 돈을 더 받고 양을 줄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2인분이 2만 원이면 1인분을 1만5천 원으로 정해서 손님 입장에서 먹을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요.”

하늘이 보이는 도시, ‘멍 때리는’ 캠퍼스 공간
주린 배를 채우고 나면 움직일 힘이 생긴다. 걷기 챕터에서 류 교수는 대만의 길을 걸으며 공간에 대한 생각을 깊게 했다. 도시문화,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만 건축물에서 실용성을 찾아냈다. 허세를 부리거나 공간을 낭비한다는 느낌 없이 단조롭게 늘어서 있는 건물들. 보기 흉한 상징이나 간판, 디자인도 거의 없고, 특히 도시 전체가 10층 이하의 낮은 건물로 돼 있어서 대만의 길을 걷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어디를 걷든 하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는 그의 홍콩 시절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열 살 무렵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오지에 살던 그가 대만의 길을 걷다가 발견한 건물 중 하나인 ‘다다오청’은 대만의 또 다른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다가왔다. 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다다오청은 현재도 상가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샀던 물건과 똑같은 물건을 손주가 살 수 있다. 류 교수는 “이보다 더 좋은 역사 교육이 있을까요? 그런 거리의 분위기를 느낄 때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고층 건물에서는 얻을 수 없는 안정감을 줍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류 교수는 최근 대만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고층 건물로 즐비한 홍콩이 사람들의 긴장도를 높인다는 것을 경험한 그는 대만이 낮은 건물을 유지해주길 바라고 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지적한 ‘아파트 공화국’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걷다 보니 보이는 풍경. 보기 챕터에서 그가 주목한 곳 중 하나는 강의하면서 자주 찾던 국립칭화대(National Tsing Hua University) 도서관이다(여기서 잠깐, 대만 신주시(新竹市)에 있는 국립칭화대는 중국 본토에 있는 칭화대와 뿌리가 같다. 재대복교(在臺復校)로 인해 대만에서 재개교한 대학이다). 로비에 들어서면 개 한두 마리가 놀고 있는 장면을 볼 때가 많다. 강의실에도 자유롭게 드나든다. 교수들은 “저 개는 학점 이수가 거의 끝나서 이제 졸업할 때가 됐지”라며 학생들에게 농담을 한다. 알고 보니 학생 동아리 활동의 결과였다. 류 교수는 이보다 더 큰 동물 사랑 교육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도서관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공간은 4층에서 발견한 ‘멍 때리는’ 공간이었다. 류 교수는 이 공간을 발견하고는 주저앉을 정도로 놀랐다. 1인용 소파에서 그냥 편하게 쉬면서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며 ‘쉼’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인간의 뇌는 멍 때릴 때 쉴 수 있어요. TV 보면서, 스마트폰을 하면서 쉰다고 생각하는데, 두뇌는 그런 시간에도 활동하고 있죠. 대만인들은 그걸 알고 있는 거죠. 이 푹신한 소파에서, 넓은 공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지만, 이 순간 창의력이 길러지는 거죠. 이것이 파격 아닐까요?”

“우리는 대만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대만 산책』의 마지막 챕터는 ‘알기’다. 먹고, 걷고, 보다 보면 대상에 대한 ‘앎’의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류 교수가 대만을 통해 한국 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챕터다. 류 교수가 말했다.

 

“우리가 외국 문화를 공부하는 이유는 자국 문화를 위한 것이죠. 우리가 좀 더 잘 살고 행복해지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비교 능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해 볼 수 있는 능력이죠.”

 

그가 방문했던 대만역사박물관은 대만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일본 통치 시기는 물론, 원주민 이야기까지 복잡한 대만의 역사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정하고 공평한 서술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역사를 제대로 재현한 것. 무엇보다도 소수와 약자를 무시하지 않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의 갈등과 충돌을 숨기지도 않았다는 것이 류 교수가 강조하는 지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다시 쓰자는 구호가 등장합니다. 역사는 어떻게 서술해야 할까요?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고 후대가 평가할 수 있도록 해줘야죠. 원주민, 한족, 객가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일본인과 또는 상호 간 치열한 갈등과 전쟁 속에서 결국 다름의 중요성을 발견한 대만처럼, ‘‘따로 같이’ 살 수 있는 마음, 즉 타자의 정체성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성숙한 사회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류 교수는 독자들이 『대만 산책』을 읽고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다른 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역사를 감정적으로 보지 않고 이성적으로 볼 수 있을 때 한국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교육하고 해석하고 전달해야만 전두엽을 확장할 수 있고 더불어 이성적 판단력을 확보할 수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나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역사를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 사유 방식으로 접근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대만 사회의 특징으로 보입니다.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동시에 배우고 싶은 장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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