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우리 시대를 일구는 문화예술인

대하소설 하면 멀게는 홍명희의『임꺽정』(1928~1939), 가깝게는 조정래의『태백산맥』(1983~1989)을 떠올릴 수 있다. 한국 대하소설 계보에 이제『소설 동학』(전 6권, 모시는사람들, 2022)이 당당히 놓이게 됐다. 작가는 2003년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2008년 졸업한 김동련 동문(67세)이다.『소설 동학』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녹두장군 전봉준으로 이어지는 동학의 역사와 사상적 흐름을 근대사의 시간표에 맞춰 재구성한 작품이다. 3부 6권, 200자 원고지 8천 장에 육박하는 방대한 이 작품이 서점가에 존재를 알린 건 지난 5월이다. 지난 12일 경남 사천 곤명면 자택에서 김 동문을 만났다.
사천=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방파제 축조회사에서 일하던 소년 가장
최시형 전기 읽고 소설 쓰겠다고 결심
50년 고민하고, 20년 공부해서 집필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 공유하길 바라

 

 

함흥에서 건재상을 하다 소련군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부친은 고향 쪽으로 다시 올라가다가 삼팔선이 막히자 강원도 묵호에 정착했다. 리어카를 끌면서 항구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었다. 지친 하루 끝에는 소주를 한 되씩 마셨다.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진 아버지를 아들들이 찾아 나서서 업고 돌아와야 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김동련 동문은 중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한 소년 가장이 됐다.
1972년 열일곱 나이로 방파제 축조회사에 급사로 들어갔다. 김 동문은 그 뒤의 거친 삶은 떠올리기 싫다고 말했지만, 이 방파제 축조회사에서 장차 그의 인생을 전환시킬 결정적인 계기를 맞았다. 회사에서 30톤 중기선 화장(배에서 밥 짓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 있던 동갑나기 친구가 당시 태극출판사의 ‘위대한 한국인’ 시리즈를 구입했는데, 도저히 읽어내지 못하겠으니 인수해가라는 말에 덜컥 그렇게 한 것이다. 김옥균, 안중근, 김좌진 등 근대사의 위인들을 다룬 시리즈였지만, 그의 눈길을 끈 것은 해월 최시형이었다.

17세에 만난 ‘해월 최시형’ 전기가 계기
책 읽기를 좋아하던 그는 해월 최시형의 일대기를 읽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스승이 순도한 후 30년 동안 포졸들에게 쫓기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홀로 전국을 돌며 동학 조직을 재건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옳고 강한 의지가 불의로 점철된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면서 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언젠가는 해월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의식과 무의식에 스며들었다. 그렇지만 이 생각이 구체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 연단이 필요했다. 고향의 방파제 축조회사를 떠나 열아홉 살에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신산한 삶이 이어졌다. 마흔넷에 하던 일들이 다 망하고 사업을 접었다. 다시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불현듯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는 다르게 살아 보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그때 해월 최시형이, 동학이 떠올랐다.
“가정을 돌보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은 방송대밖에 없더군요.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 글 쓰는 것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게 이 무렵이죠. 한 겨울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대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김 동문은 방송대에 입학원서를 내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서접수 첫날, 새벽길을 나서서 부산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방송대 부산지역대학으로 달려갔다. 이왕이면 전국에서 첫 번째로 원서를 접수하고 싶어서였는데, 접수하고 보니 다섯 번째였다.
“저보다 더 독한 분들이 계신 걸 알았죠. 차를 몰고 덕천동 로터리쯤 왔을 때,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고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통곡을 했던 거 같아요. 운전을 할 수가 없었죠. 한참을 그렇게 있었어요.”
그는 그렇게 방송대와 만났다. 그의 나이 47세 때다. 공부가 절실했던 그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교재를 펼쳤다. 24시간 영업을 선택해 택시를 몰았는데, 젊은 사람들도 3개월 하면 쓰러지는 걸 6개월이나 했다. 공부할 시간이 따로 없어서, 차가 빨간불에 정차할 때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 교재를 들여다봤다. 원래 계획은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었지만,  어느 날 밤, 택시에 탄 취객이  ‘같이 죽자’고 소란을 피우는 걸 제지하다 사고를 당해 기말고사를 놓치게 됐다. 덕분에 1년 늦게 졸업했다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학원을 차려 일하면서 밤늦게 글을 쓰곤 했죠. 그런데 아침에 보면 이게 쓰레기처럼 보이더군요. 정말 속상했죠. 대책도 없고. 그러다가 학과 동기인 김명섭 시인이 찾아와 저의 글을 살펴보더니 ‘철학이 없다’라고 지적했어요. 그때 뭔가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 길로 김 동문은 경상대 철학과 오이환 교수를 찾아 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남명학으로 석사학위논문을 썼고, 명말청초 사상가인 안원을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공부 길에 『천자문으로 세상 보기』(인간사랑, 2017)를 썼는데, 771쪽이나 되는 이 책이 그에게 삶의 숨통을 틔워줬다. 경남 사천의 곤명면에 새로운 거처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책 덕이다. 철학 공부가 깊어지면서 그는 미뤄뒀던 동학 소설 집필을 끄집어냈다.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20년 공부”
“저는 이전 동학 도인들이 들었던 횃불이 광화문의 밤을 밝혔던 촛불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이제 다시 푸른 눈을 뜬 백성들이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 세상이 진정 어떤 사태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진정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봐요. 저는 그런 시대적 과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의 빛나는 자산인 동학의 정신을 다시 반추해 현실의 사태를 밝게 인식했으면 해요. 그렇게 해서 자신의 올곧고 자유로운 삶을 풍족하게 누리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썼습니다.”
『소설 동학』은 3부 6권으로 구성됐다. 제1부는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의 득도와 포덕, 순도에 이르는 일생을 다뤘고, 제2부는 최시형의 동학 입도와 동학 수련 등 간난신고의 30여 년 역사와 교조신원운동까지를 형상화했다. 제3부는 교조신원운동 이후 동학혁명이 전개되는 국면까지 추적했다.
작품 집필에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가 된 이는 국문학과 후배인 선영숙 씨였다. 천도교 도인이었던 그가 김 동문에게 천도교 경상도 총책 정덕재 포덕사를 소개해주면서, 동학과 관련된 쟁쟁한 학자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덕분에 논문과 자료 더미에 파묻힐 수 있었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집필에 매달렸지만, 어떤 날은 원고지 한 장도 쓰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절반쯤 원고를 집필했을 때, 출판사에 보냈더니 당시 송범두 천도교 교령이 보고 “전율을 느꼈다”라고 회신해 줘 더 자신감을 얻었다.
소설의 첫 문장은 “나는 조선 정조대왕 시대를 산 정약용이라는 사람이다. 내가 삶을 이해하는 명제는 세 문장으로 압축된다”라는 정약용의 말로 시작하는데, 이는 정약용의 사상과 철학, 정책이 동학(전봉준)으로 흘러갔다고 보는 주장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동학의 배경이 되는 유·불·선을 새롭게 해석해 이를 소설 속에 녹였으니, 작품을 읽은 이들이 그에게 어렵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록이 전혀 없는 수운의 20~30세 부분을 동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소설 동학』에서 가장 환상적인 대목으로 꼽는 장흥의 동학교도 ‘이소사’ 부분도 그의 작가적 역량이 발휘된 곳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여성 지도자로 신이한 행적을 통해 장흥 일대 동학농민군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데, 기록이 너무 적어,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풍부한 서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소설의 미덕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짧고 강건한 문장과 문체는 가독성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나와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 필요
김 동문은 인터뷰 말미에 거듭 ‘방송대가 내 인생을 바꿨다’라고 강조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학교를 선택했던 그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방송대 후배 학우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기 밖의 사물과 사태를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을 때, 작가가 된다고 봐요. 깊이 있고 의미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와 세계를 천착하는 공부를 글공부와 함께 해야 해요. 끝없는 공부 속에서 글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그는 지금도 글을 쓸 때 서재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다고 말했다. 창문을 열어둔다는 것은 바깥 세계, 사물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다. 
“내가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져요. 지식과 경험, 자신의 세계관(김 동문은 이것을 ‘자터’라고 말했다)은 어떤 성찰에 의해 순식간에 바뀔 수 있죠. 그렇기에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세상은 내가 목숨을 걸고 한 분야를 추구할 때, 비로소 속살을 살짝 보여주는 곳이죠. 내 감각기관과 체험은 한정되기 때문에, 나의 한계 속에서 진리를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동문은 9월쯤에 경기도 이천 장호원으로 이주한다. 거기서 문예아카데미 강의와 출판사 활동도 하고, 무엇보다 『소설 동학』의 4부를 추가 집필하겠다는 계획이다. 3·1만세운동의 손병희와 동학 문제를 소설화하는 숙제다. 천년 고찰 다솔사를 등 뒤에 뒤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기자에게 그가 던진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엄밀하게 보면 동학혁명이 한국 현대사에서 미완으로 남았기에 나의 작품도 미완일 수밖에 없어요. 이 미완의 의미를 탐색하면서 계속 글을 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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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su***
    소설 동학 제목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데 20년을 집필한 소설이라니 저도 꼭 한번 읽고 싶습니다
    2022-08-05 23:08:17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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