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시노 도모유키의 인간탐색

2010년대 중엽, 나는 친구들과 함께 4회에 걸쳐 ‘노상 문학상’이라는 것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노상생활을 하는 사람, 혹은 살 곳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소설이든 수필이든 시든 좋으니 짧은 작품을 써달라고 해서 내가 심사위원이 되어 대상을 정한다는 기획이었습니다.
수상자의 한 사람인 K씨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으로,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와 일하다가 결국 직장을 잃고 홈리스 상태가 돼 강가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노상 문학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천변에서 고양이와 생활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썼습니다. 그 소설로 대상을 받자 K씨는 마음의 변화가 생겼고 맨션 관리인 일을 찾아 노상생활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노상 문학상’, 그 파격적인 실험
놀라운 것은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K씨는 만날 때마다 “소설을 쓰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말했고, “노상 문학상 뒤에도 계속 쓰고 있나요?”라고 묻자, “매일 밤 쓰고 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침인 적도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설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어떻게도 안 해요. 그저 쓰는 게 재미있어서요”라고 응답했습니다.
자신의 인생과 생각을 오로지 원고지에 옮겨놓지만, 누구에게도 읽게 하는 일도 없이 K씨의 글은 방에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전에 맛보지 못했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 소설가로서의 자세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는 일에 이렇게까지 기쁨을 느끼고 있는가, 하고.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K씨의 심경은 나도 잘 아는 것입니다. 정말 물아의 경지로,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매일 밤 빠짐없이 계속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이미지 출처 = Getty Images Bank

무언가 싫은 일이 있었을 때,
잊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했을 때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원해질 때까지

그 마이너스 기분을 털어놓으세요.

나는 그렇게 해서 SNS에 비판할 시간을

크게 줄이고 소설을 쓰는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나는 그 무렵, 여러 사람에게 ‘소설을 좀 써 보면 어때?’라고 권하고 있었습니다. ‘소설가가 되면 어때?’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발표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소설을 쓰게 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체현해준 것이 K씨입니다.
동인지나 인터넷상에서는 프로가 아닌 많은 필자가 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발표하는 것은 읽히고 싶기 때문이죠. 읽히고 싶은 기분은 자신의 존재를 봐주기를,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승인욕구와 이어집니다. 문학에 한하지 않고 모든 표현은 그런 욕구와 무연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히 여겨야할 동기입니다. 다만, 승인받고 싶은 기분이 너무 강해지면, ‘좋네’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쓰는 것만이 목표가 됩니다. 그 욕망을 이용해서 의존성을 높임으로써 비즈니스를 부추긴 것이 SNS의 세계이겠죠. 그 세계에서는 ‘자기다움을 표현한다’라는 명분하에 지속적으로 비교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표현의 근간에는 타인이 보든 안 보든, 그 행위 자체가 해방을 가져오는 성질이 있습니다. 연주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피아노를 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든가,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든가, 돌을 쌓고 있으면 만족스럽다든가.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시선으로부터 자유가 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 기쁨의 시간을 늘리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욕을 하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하는 네거티브한 행위로부터 차츰 거리를 두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쁨을 어떻게 하면 널리 알릴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는데, 최근에 발견한 방법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비밀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매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무언가 싫은 일이 있었을 때, 잊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했을 때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원해질 때까지 그 마이너스 기분을 털어놓으세요.

글 쓰는 행복 되찾은 비결
기분이 가라앉으면 일기를 덮습니다. 그리고 그 페이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두 번 다시 열지 않도록 합니다. 다시 읽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일체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버리거나 삭제하지 않고 거기에 자신이 나쁜 감정을 썼다는 사실만은 남겨둡니다.
무엇을 썼는지는 잊어도 괜찮습니다. 일기를 비밀로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미래의 자신에게도 비밀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규칙을 지키면서 우울함을 털어버리기 위해 일기를 쓰면 SNS 등에서 남에게 네거티브함을 발산하지 않는 것이 점점 익숙해질 것입니다. 읽히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말로 표현하는 것을 몸에 익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3인칭으로 객관화해서 씁니다. ‘그런 말을 들어서 열받았어’라는 문장 뒤에 ‘라고 호시노 도모유키는 생각했다’라고 덧붙이는 것이죠. 그리고 ‘나도 열받았어, 라고 호시노의 친구도 생각했다’라고, 상대의 반응도 씁니다. 이것은 상상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부정적인 기분의 원인이 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씁니다. 그 사람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싫은 짓을 해 왔는지, 그 사람을 시점인물로 해서 써 보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도 좋고, 자신을 배신한 친구도 좋고, 어색해진 파트너나 연인이라도 좋고, 이유는 모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도 좋습니다. 가능하면 그 사람을 1인칭으로 써 봅니다. 이것은 조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 사람의 태생이나 일상을 모르면 쓰기 어렵고, 원래 싫다고 생각하는 상대의 입장에 생각해 보는 것이니 마음이 내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우면 됩니다. 상상이 점점 커지면, 내키는 대로 씁니다. 왜 나에게 싫은 기분을 가졌는지 쓸 작정이었지만, 어느 사이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마음대로 공상해서 쓰는 데 열중하게 된다거나 하면, 그것은 이미 소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비밀 일기에 털어 놓은 인물은 이미 실재하지 않고 가공이라 해도 좋겠죠. 분명히 그 순간에는 어떤 사람보다도 리얼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 들죠. 쓰고 있는 동안 당신은 그 인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설을 쓸 때의 충족감입니다. 이 경지에 이를 때까지는 나름의 시간이 쌓여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해졌을 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해서 SNS에 비판할 시간을 크게 줄이고 소설을 쓰는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세요. 정말 속을지도 모르지만요.
□ 번역 김석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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