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간 안내

2017년 개봉돼 장안의 화제가 됐던 「신과 함께: 죄와 벌」(감독 김용화)은 1천4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국내 상영 영화 역대 3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개봉한 「신과 함께: 인과 연」도 1천22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는 기록을 세웠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죽음’ 이후의 문제를 괴기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소환함으로써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 죽음은 생명과 함께 영원한 화두다.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죽음을 소재로 한 신화와 서사가 부지기수인 이유도 이와 관련된다. 오죽하면 초기 불교 경전인 「법화경」도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기록했을까. 물론 불교는 허무주의가 기저가 아니므로 뒤에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육체는 ‘죽음’이란 여정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영생을 얻지 못했고, 삶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은 여전히 과학으로도 모든 것을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왜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하며, 죽은 뒤에는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누구와 함께 가는지, 저승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궁금한 것 투성이다.

 

저자는 한국 신화는 물론,
동양 소수민족과 서양 그리스·로마 신화까지 넘나들며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저승신을 그린 상상도와

죽음과 관련한 온갖 상징물과 장소들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곳곳의 컬러 사진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다양한 죽음기원신화를 만나다
방송대출판문화원 지식의날개가 선보이는 『최초의 죽음』(권태효 지음, 2022)은 ‘신화로 읽는 죽음의 기원’을 부제로 하고 있다. 제목과 부제를 본다면 이 책이 앞서 말한 궁금증을 한 꺼풀 벗겨내려는 시도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고민해 온 죽음과 저승에 관한 온갖 신이한 이야기들을 통해 삶에 관한 지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음의 기원에 대한 신화들은 오늘의 삶을 좀 더 소중히 여기도록 할, 하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없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저자는 이 소박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이자 한국무속학회 회장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려 책을 썼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전승되는 죽음과 관련된 여러 신화를 바탕으로 죽음의 세계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가는 형식을 취했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과 관련된 신화는 종류가 다양하고, 담고 있는 사고 또한 복잡다단하다. 태초에는 신이 인간에게 죽음을 주지 않으려고 해서 죽음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죽음이 없는 세상의 혼란을 가정하면서 신에게 죽음을 내려달라고 인간이 애원하기도 한다.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의 주인공 길가메시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영생이 인간의 몫이 아님을 깨닫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불로초나 불사약을 애타게 구하기도 하고, 이미 정해진 죽음을 피하고자 저승차사에게 뇌물을 주어 수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또 죽음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묘사하고, 죽음의 세계는 어떤 노정을 거쳐 도달할 수 있는지도 죽음 관련 신화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제목의 ‘최초의’와 부제의 ‘기원’이다. 저자의 전공 영역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확실히 비유적인 명명으로 봐야 한다. 혹 책에서 어떤 죽음이 최초의 죽음인지, 혹은 죽음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눈 빠지게 찾아 페이지를 넘긴다면 곤란하다.
저자가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전승되는 다양한 죽음 관련 신화를 찾아 인간의 어떤 사고가 이와 같은 신화를 탄생시켰는지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신화를 통해 인간의 영원한 화두인 ‘죽음’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라고 말한 대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 죽음에는 순서가 없을까?
제1장 ‘신이시여, 죽게사진 출처=metmuseum.org 하소서’에서 세상에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지 고민하면서 제7장 ‘생사를 넘나드는 유쾌한 상상’에서 환생과 저승까지 인간 죽음의 신화를 짚어가는 저자는 맨 먼저 중국 이족(彛族)의 신화를 호명한다. 이들은 ‘인간이 만약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다. 이족의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였는데, 죽음이 없으니 젊은이들이 노인을 돌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해 세상이 돌아가지 않자 인간이 먼저 신에게 죽음을 요청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머리가 흰 사람만 저승에 오게 하라’는 신의 전령을 전하던 중개자가 소똥을 밟아 미끄러지면서 전달할 말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곧 ‘머리가 흰 사람은 저승에 오게 하고, 머리가 검은 사람, 젊은이, 어린아이, 아기들도 모두 저승에 오게 하라’로 둔갑했다. 이때부터 세상에 인간의 죽음이 생겨났을 뿐 아니라 지금처럼 순서 없이 죽게 됐다.
그런데 이런 ‘죽음의 순서 없음’을 보여주는 죽음기원신화는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주도에도 죽음에 순서가 없어진 까닭을 설명하는 신화가 있다. 「차사본풀이」라는 제주 무속 신화다. 본래 신은 인간에게 일정한 시기, 곧 사람의 머리가 희어지면 차례로 죽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까마귀가 이 사실을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죽음에 순서가 없어졌다고 한다.
저자의 논의는 죽음의 기원에서 출발했지만, 죽음 이후에 관해서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예컨대 제6장 ‘죽음의 세계를 먼저 경험해 본다면’, 제7장 부분 등이 그렇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장차 영겁의 시간을 보내야 할 저승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영화 「신과 함께」에서 그려 낸 것처럼 저승차사가 와서 우리를 안내할까, 강림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 그렇기에 저자는 누가 우리를 저승으로 안내하는지도 살핀다.
“사람이 죽으면 가는 죽음의 세계는 누구에게나 초행길이다. 그러니 얼마나 낯설고 두렵겠는가? 더구나 산 자의 세계를 떠나 죽은 자의 세계로 편입되는 마당이니 공포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죽음 신화나 의례에서는 망자를 저승길로 혼자 보내지 않는다. 망자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인도하는 신이 나타나 직접 데려다 준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무속에 등장하는 ‘바리공주’가 그런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다. 바리공주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에 가서 약수를 구해 오고, 그 공로로 망자를 인도하는 신이 된 존재다. 그런 그녀를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도 없고, 험난한 길도 그녀의 도움을 받으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신화에 관심을 가지고 민속문화를 연구한 저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한국 신화는 물론, 동양 소수민족과 서양 그리스·로마 신화까지 넘나들며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저승신을 그린 상상도와 죽음과 관련한 온갖 상징물과 장소들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곳곳의 컬러 사진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옛 사람들은 결코 죽음을 우울한 주제라 여겨 피하지 않았다. 300여 쪽 분량의 이 책과 함께 죽음을 향한 유쾌한 상상의 여행을 떠나 본다면 어떨까? 좀 더 여유가 있다면, 지난 해에 ‘지식의날개’가 출간한 민속학자 황루시의 『뒷전의 주인공』도 다시 펼쳐봐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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