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퇴임 교수 인터뷰

 

"은퇴는 영어로 ‘retire’,
타이어를 교체한다는 뜻입니다
새 타이어를 장착하고
나를 보건환경의 길로 이끌었던
농촌으로 달려가보려 합니다."

“살아오면서 보니까 순간순간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어느 길로 갈 것인지 매 순간 생각하다 보니 지금 여기 와있었어요. 그동안의 내 생각과 판단에 후회하지 않아요. ‘그래 내가 잘 왔다.’ 최선을 다하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8월 정년퇴임을 맞은 윤병준 교수(보건환경학과)의 소회다. 그는 보건환경학이 이제 막 국내에 자리잡기 시작하던 1970년대에 보건환경학 1세대 지도교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이 좀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가장 자신 있었던 ‘보건통계’ 분야를 전공했다. 2005년에 방송대 부교수로 임용됐다.

 
윤 교수는 보건환경이란 학문적 선택, 그리고 방송대를 택한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농촌인 평택에서 자라 농업에 거부감이 없었다. 서울대 농교육과에 진학했고, 그러면서 학문적 고민이 점차 두터워졌다. 유년 시절 봐왔던 농약 살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농작물의 안전성에 좀더 관심을 두게 됐다. 자연스레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진학했다. 한 학기 동안의 전공탐색 기간에 만난 대학 선배가 “공부를 계속하려면 통계학을 잘해야 한다”라며 윤 교수를 보건생태 및 통계교실에 들어오도록 설득했다. 농업에 대한 애정으로 보건환경 공부를 시작한 그가 학자로서 어떤 ‘필살기’를 갈고 닦을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 ‘그 선배’와 ‘지도교수’는 여느 대학원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트리거가 돼줬다.

보건통계 ‘건강수명’ 지표 개발한 장본인
그가 발 디딘 보건생태 및 통계교실은 인구문제와 보건통계 분야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1970년 합계출산율이 4.53명, 1983년에 2.06명으로 인구문제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는 한국보건통계학회장을 맡고 있었다. 자연스레 지도교수의 문하생으로 보건통계학회에서 활동했고, 연구도 보건인구통계 분야를 주로 다뤘다.


“제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건강수명 개념을 도입한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수준 평가였습니다. 이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건강수명이라는 지표가 처음 개발돼 사용하게 됐으며, 지금도 우리나라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의 정책 목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학문적 자부심을 느낍니다.”


윤 교수는 2012~2015년에 방송대 학생처장을 맡았다. 그가 학생처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대 기성회비 반환소송이 일어났다. 방송대도 일부 학우들이 소송단을 모집하고 서명을 받는 등 혼란한 시기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들을 설득해 소송을 자제하도록 하는 것이 방송대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었다. 2000년 이후 대학본부는 교육환경이 낙후된 지역대학을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학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대부분의 학우들이 애교심을 발휘해줘 서울지역대학 서부학습센터를 완공할 수 있었으며, 목동의 남부학습센터도 확충할 수 있었다.


그는 사제지간의 작은 정에도 깊이 감사할 줄 아는 ‘따뜻한 스승’이었다. 윤 교수는 교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로 방송대에 교수로 부임한 이듬해에 울산지역대학 출석수업 때를 떠올렸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오는데 한 학생이 따라와 검은 봉지를 내밀더군요. 올라가면서 드시라고 하길래 괜찮다고 했지만 손에 꼭 쥐어 주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열어보니 계란, 인절미, 바나나 우유 등이 들어 있었어요. 지금은 이런 일이 청탁금지법의 대상이 되죠.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또 하나는 제가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전령(무전병)으로 있던 병사가 우리 학과에 입학해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서 만나 ‘소대장님’이라고 부르던 추억도 있습니다. 이 학생은 환경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좀더 전문지식을 배우러 입학해서 다시 학생과 선생 사이가 됐지 뭡니까.(웃음)”


윤 교수는 보건환경 분야 각종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며, 방송대 학우들에게 이른바 ‘출제위원 직강’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특히 학습자의 눈높이에서, 학습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쉬운 용어 풀이’ 강의로 인기
“우리 방송대는 학습자의 편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전에 서울대 교수와 같이 교과목을 공동으로 운영한 적이 있어요. 강의를 쉽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쉽게 강의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더군요. 저도 방송대에 부임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나름 터득하게 됐습니다. 학습 내용의 핵심어를 한자나 영어 단어의 어원을 가지고 뜻을 풀이하면 학습자들이 쉽게 이해합니다. 코로나19가 비말로 감염된다고 하는데, 이때 비말이란 한자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날 비’에 ‘물방울 말’자입니다. 날아가는 물방울이라고 하면 오래 기억할 수 있어요.”


실제로 윤 교수의 홈페이지 방명록에는 “교수님이 한자어를 풀이해줘 쉽게 설명해준 덕에 기억에 잘 남는다”라는 학우들의 반응이 많다.


윤 교수는 ‘퇴임’ 또한 영어로 풀이해 의미를 되살렸다. “퇴임하는 것을 영어로 ‘retire’라고 합니다. 이제는 타이어를 교체해 제2의 인생을 달릴 때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미술 공부도 하고, 사진도 배워볼 생각이다. 그리고 자신을 보건환경 전문가의 길로 이끌었던 농촌으로 되돌아갈 계획이다. 시간 나는 대로 고향 평택에 내려가 작게나마 농사에 도전해 볼 작정이다.


“요즘 화두가 지속가능한 발전이죠. 방송대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주인의식을 가지고 노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방송대는 조직규모에 비해 교수 수가 많지 않아 재직하는 동안 보직을 2∼3번은 해야 합니다. 보직을 수행할 때 학교를 좀 더 알 수 있고 애착심을 지니게 되죠. 보직 기회가 있으면 기꺼이 응해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학우 여러분, 방송대는 참 좋은 대학입니다. 방송대에서 각자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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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a***
    방송대 졸업을 축하한다는 학교 문자를 받고, 왠지 아쉽고 허전한 마음에... 학교 홈페이지 이곳저곳 둘러 보다가 위클리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가을학기 대학원 신입생 OT 때 접한 소식이었지만 막상 또 이렇게 퇴임 인터뷰를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좋은 강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늘 건강하세요!
    2022-08-24 21:08:42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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