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시노 도모유키의 인간탐색

젊은 시절의 나는 ‘뒤처진 청년’이었습니다. 문학청년이었기 때문에 1960년대나 1970년대 소설을 읽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인생과 사회문제를 열정적으로 토론했으며, 필요하다면 학생운동에 투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84년에 대학에 들어가 보니, 그런 시대는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한국은 민주화 투쟁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일본은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 되어가는 중이었고 젊은이는 들떠 있어 소비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고, 사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둡다’고 멸시했습니다. 학생운동 이후의 세상을 냉담하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나는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나처럼 설 자리가 없는 자를 노리고 “이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말을 걸며 조직에 가입하기를 권유하는 학생운동 시대의 잔류자들도 있었습니다. 또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하고 접근하는 컬트 종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원리연’이라 불리는 단체였습니다. 지금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명칭을 가진 통일교 조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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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는 것과 세뇌 당하는 것은
거의 같은 것입니다.
뭔가에 의지하고 싶지만
의지할 수 없는 일본인은
대단히 세뇌당하기 쉬운
상태에 있습니다.
안심할 수 있도록 세뇌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충격 안긴 종교-정치 밀착
이 구 통일교(일본의 보도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 하지 않고 ‘구 통일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문제로 7월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수상이 사살된 사건은, 일본 사회에 굉장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 수상이 총을 맞았다는 것도 그렇지만, 구 통일교라는 문제 많은 종교단체가 보수계의 여당인 자민당과 거의 일체화됐다 할 만큼 깊은 관계를 구축해 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사회적 충격이 컸습니다.
아베 전 수상을 사살했던 범인, 야마가미 테쓰야(山上徹也)는 모친이 구 통일교 신자여서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친 결과, 어릴 때부터 먹을 것이 부족한 생활을 강요당했고 대학에도 가지 못해 제대로 된 직장도 얻지 못했으며, 형은 자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구 통일교에 파괴당했다고 원한을 품어 이 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아베 전 수상을 노렸다고 진술했습니다.
야마가미처럼 교단에 자신의 삶을 빼앗긴 신자의 자녀나 가족들이 많다는 사실, 그런 단체가 일본의 집권 여당에 깊이 침투돼 있다는 사실은 단숨에 자민당에 대한 불신으로 분출됐습니다. 한국의 친일우파와 일본 보수정치가의 더러운 결탁이라는 오랜 문제가 최근에야 의식되기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컬트 종교가 정치를 좌우할 만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일본 사회 대부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의 다수는 자신들이 종교색이 흐리고 신앙과 무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멕시코에 유학했던 시절에도 각국의 유학생 사이에서 신앙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일본의 유학생은 대부분이 ‘나는 무교’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믿고 있는 종교가 특별히 없다는 의미지만, 서구권에서는 무신론자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여 일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종교를 부정한다는 과격한 이미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보통 종교와의 관계가 희박한 일본인들은 그런 이미지의 격차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일본 사회는 대체로 종교에 대해 경계심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흥종교에 대해서는 신자를 이물질처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1995년에 지하철에 맹독성 사린을 뿌려 테러 사건을 일으킨 컬트 종교, ‘옴진리교’의 탓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일본은 신앙과 무연한, 종교로부터 먼 사회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 전체가 사이비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특수사기’가 벌써 20년 이상 성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나야 나 사기’라 불리는 경우로 중장년층 여성을 노리고 전화를 걸어, “어, 엄마? 나야, 나”하고 이름을 대지 않고 아들 행세를 하면서 “사고가 나서 갑자기 현금이 필요하니까 돈을 좀 보내 줘”하고 돈을 빼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의를 환기시켜도 사기꾼들은 방법을 바꾸고 상품을 바꾸어 새로운 패턴으로 사기를 치고, 피해 건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쓰는 사기는 일본 외에도 있겠지만, 이렇게나 간단하게 걸려들고 피해 총액이 큰 것은 일본뿐일 것 같습니다.
또, 미용과 건강 분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수상쩍은 붐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여행을 갔을 때 일본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증표 중 하나는 마스크를 하고 있는 사람(이것은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아무리 더운 나라에 가더라도 얼굴을 덮는 모자를 쓰는 여성이 많다든가 한 경우입니다. 물론 자외선 대책은 세워두는 것이 좋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험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본인은 곧바로 그 말에 휩싸여 버립니다.
종교에는 경계심이 있지만, 오컬트적인 것에 대한 경고에는 취약한 것입니다. 이런 일본인들의 속기 쉬움을 이용한 것이 구 통일교의 ‘영감상법(感商法)’이었습니다. 고통을 당해 마음이 약해져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 보통의 항아리나 물을 내밀며 영험한 것이라 속여 몇 백만 엔에 파는 사기입니다.

속는 것과 세뇌 당하는 것
나는 일본인들이 의심 없이 이런 행동을 곧잘 하는 것은 일본 사회 내에 의지할 것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복지가 취약한 탓일 수도 있을 것이고 곤란할 때 의지할 사람이 적은 탓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 사회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곤란한 일을 상담하는 것은 민폐가 된다고 생각해 자제합니다. 행정에 호소하는 일조차, 높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또 기존의 종교에 매달려 봐도 진지하게 응해주는 곳이 적습니다.
그래서 매달릴 곳이 있으면 금방 매달려 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손을 내밀면 의심 없이 잡아버리는 것입니다.
속는 것과 세뇌 당하는 것은 거의 같은 것입니다. 뭔가에 의지하고 싶지만 의지할 수 없는 일본인은 대단히 세뇌당하기 쉬운 상태에 있습니다. 안심할 수 있도록 세뇌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 통일교와 같은 색채가 농후한 컬트 종교에 세뇌당하는 사람 중에는 정말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교묘하게 세뇌해 줄 사람이 나타나면 금방 믿어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전국이 살짝 컬트화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컬트화 되기 쉬운 성격이 과거에 이 사회를 전쟁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번역  김석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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