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중국으로 가는 길

황제 대관식?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결과에 외신들은 이렇게 평했다. 이날 시진핑 주석은 2회 연임이라는 불문율을 깨트리며 3연임은 물론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14억 인구의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시진핑 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명문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1인 천하 장기 집권 리스크는 곧장 나타났다. 세계 금융은 ‘차이나런’으로 중국 엑소더스를 본격화했다. 시장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미·중갈등도 격화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시황제’ 시대의 세계는 어떻게 바뀔까?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 사회문화,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물론 중국과 비즈니스에서 교류하고 있는 이들에게 유용할 내용을 장호준 교수(중어중문학과)에게 들어봤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10월 22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예상된 결과인가요
그렇죠. 당대회는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1976년 이후 5년마다 열립니다. 2, 7로 끝나는 해에 개최하죠.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 수반은 주석인데,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라는 직함이 있어요. 국가 주석보다는 공산당 총서기가 더 중요하죠. 중국은 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독특한 체제로 운영되니까요. 헌법과 공산당 당장(黨章)에 명문화되어 있어요. 이번 제20차 당대회는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열렸는데요, 준비는 올해 초 지방에서부터 의사수렴을 거치며 지행해왔죠. 당대회는 그간의 권력 투쟁 결과가 공식화하는 자리인 셈이죠. 올해 초 코로나19 정책에서 인민 통제가 강화되고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과정에서 시진핑의 총서기 3연임이 기정사실화될 것이란 건 많은 중국 전문가가 어느 정도 예측했던 부분입니다.

 

후계자가 없었나요? 어떻게 3연임 체제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거죠
중국에 중요한 3개의 자리가 있죠.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이렇게 당·정·군의 리더 자리에요. 시진핑은 2012년에 가장 중요한 자리인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됐고 2013년에는 국가 주석이 됐어요. 2연임해서 10년을 유지하죠. 관례대로라면 집권 후반기가 시작된 2017년 제19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를 선보였어야 해요. 후진타오 전 주석이 시진핑에게 길을 열어줄 때처럼, 보통 7명으로 구성되는 당 상무위원회에 진입시키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2017년에 후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고, 2018년에는 헌법을 수정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까지 없애버렸죠. 그때부터 총서기 3연임의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이후 내부의 권력 투쟁을 거쳐 결국 이렇게 3연임 체제가 확정된 겁니다.

 

그러면 이제 확고한 1인 장기 집권 체제가 구축된 건가요
저는 ‘1인 장기 집권 체제’라는 말은 피하고 싶어요. 이번 결과가 개인의 권력욕에서 비롯됐다는 착각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국내 및 국제 정세의 구조적인 변화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2000년대를 ‘차이메리카 시대’(Chimerica, 중국과 미국의 합성어)라고 부릅니다. 경제적으로 미·중이 한 몸으로 얽힌 시대죠. 그 밀월이 2010년대 초반에 바뀌어요. 미국 국무부가 중동을 우선시하던 전략에서 아태지역으로의 회귀를 결정하죠. 중동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너무 빨리 강해져서 전략적 견제가 필요해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2012년 말 시진핑 체제가 시작된 거죠. 시진핑은 집권 초기부터 두 개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하나는 중국 내부 문제죠. 1990년대에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부패, 지역불균형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했죠. 여기에 장쩌민은 미온적으로, 후진타오는 나름 민주적으로 대처했어요. 사회 각계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공산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죠. 이때 권력을 승계 받은 시진핑이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부패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권력 구조를 개혁하려는 의도도 있었죠. 흔히 알고 있는 중국 내 3개 정치 계파죠. 혁명과 건국에 일조한 원로의  자녀로 구성된 태자당, 1990년대 중국을 이끈 장쩌민 주석계의 상하이방, 마지막으로 개혁적이고 전문성을 지닌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출신 계파가 그것입니다. 시진핑 집권 초기의 반부패운동은 상대적으로 부패가 심했던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권력을 약화했습니다. 피의 숙청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면서 대내적인 부패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얻고, 시진핑은 2017년 2기에 측근들을 전면 배치하기 시작한 거죠.

 

대내적으로는 반부패운동을 통해 정적을 제거했다면, 대외적으로 미국에는 어떻게 대처했나요
네. 그게 대외적인 문제였죠. 오바마 정부에서부터 압력은 있었죠.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세 보복 등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제재가 시작됐어요. 2018년 미·중 갈등이 그렇게 표면화되면서 시진핑 2기를 맞은 건데요. 내부 정적은 제거됐지만, 국제 정세, 특히 대미 관계가 격변하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통해서는 대응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거죠. 보다 강경하고 단호한, 집중적인 영도체제가 필요하다는 게 공산당원, 지도부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G2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건 매번 지난 5년의 업적을 평가하는 당 대회 보고서에서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 주석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5년을 어떻게 평가했나요
‘100년에 있을까 말까 한 이례적인 시기’라고 평했어요. 아주 재밌는데요. 세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로는 2021년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의 해라는 것, 둘째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시대가 열렸다고 했어요. 중국식 사회주의가 신시대에 진입했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소강사회(小康社會)를 이뤘다는 거예요. 덩샤오핑 시대부터 말했던,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 사회에 진입했다고 평가했죠.

 

‘두 개의 100년’이라는 구호를 들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마오쩌둥 시대부터 중국인들은 ‘두 개의 100년’이란 말을 했죠. 하나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입니다. 이 100년 안에 기본적인 물질적 풍요를 달성하는 것, 즉, 소강사회 건설이 목표였죠. 시진핑은 2022년 1월 신년사에서 중국이 소강사회를 건설했다고 선언했어요. 첫 번째 100년은 달성한 거죠? 두 번째 100년은 뭐냐면, 그걸 이번 제20차 당대회에서 구체화했는데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됐으니 2049년까지 100년 동안 무엇인가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목표가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등 거친 아이디어가 나온 적은 있었는데, 이번 당대회에서 보다 명료하게 제시됐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100년은 정확히 어떤 목표를 겨냥할까요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사회주의 강국 건설입니다. 사회주의 강국은 예전부터 나왔던 말이지만, ‘중국식 현대화’라는 말이 눈에 띄죠. 사회주의의 원조는 구소련이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에 구소련이나 러시와와 다른 길을 걸으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말로 그들의 방식을 정당화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으니 이제는 ‘중국식’을 대외적 표준으로 제시하자는 거죠. ‘중국몽’으로부터 시작한 중국적 가치와 표준의 세계화, 보편화를 이뤄내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겁니다. 이번 당대회 보고서는 향후 5년을 새로운 100년의 과업 달성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시기로 규정하고 있는데, 첫발을 내딛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이 나오면 불안하고 동력이 떨어지잖아요. 이번 당대회는 그런 의미에서 시진핑 중심의 권력체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근거를 부여한 거라고 볼 수 있죠.

충성파로만 지도부를 채우고 반대파 숙청에 속도가 붙을 거란 분석도 있어요. 제20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끌려 나가는 듯한 모습이 보였고요. 상하이에서는 시진핑 장기집권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세요
중국 내에서도 공청단 등 다른 계파나 지식인층에서 반발이 있을 가능성은 높아요. 하지만 개인적이거나 지역 차원의 산발적인 반발은 있겠지만, 집단적으로 표출될 기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시진핑 3기에서는 내부 단결, 결속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당대회 보고서의 키워드를 분석해보면, 예전 제18, 19차 당대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개혁’, ‘개방’이었는데, 제20차 당대회에는 매우 줄었어요. 오히려 ‘발전’과 ‘안전’이라는 단어가 많아요. 중국식 현대화와 관련한 중요한 키워드죠. 그리고 ‘단결’과 ‘분투’라는 단어도 있죠. 새로운 100년을 여는 출발선에 선 체제라 분파주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차단된 상황입니다. 대중적인 공감을 얻으려면 공고한 체제 안정은 필수죠. 반대파들이 새로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여건도, 내더라도 호응을 받을 여지도 적은 상황입니다. 물론, 경제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거나 하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죠.

 

리커창 총리, 류허 부총리, 이강 인민은행 총재 등 기존 경제팀이 물러났습니다. 시장주의자 지도부가 퇴진하고 경제통 없는 시진핑 3기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불거지는 상황입니다
그렇습니다. ‘칠상팔하’(七上八下)라는 불문율이 있었죠. 67세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수 있지만 68세는 그럴 수 없다는 규칙인데, 시 주석이 연임하면서 이미 깨졌죠. 그동안 내각을 이끌었던 리커창 총리나 광동성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왕양은 65세인데도 낙마했고요.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규칙으로 떠오르는 게 ‘능상능하’(能上能下), 즉 능력이 있다면 유임하고 능력이 없다면 사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은 이번에 새로 임명된 중앙정치국(24명)과 중앙위원회(205명)의 구성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여요. 전문기술직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거의 반을 차지하는데, 이는 테크노크라트 전성시대였던 2000년대의 후진타오 시기보다 더 높은 비율이지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7명의 상임위원 중에 경제통이 없는 게 사실이에요. 실질적인 경제통인 부총리 인선은 내년 3월 양회에서 국가 주석을 선출하고 국무원 총리를 결정하면서 드러날 겁니다.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하는 상황이죠.

 

미국과 정치적 갈등도 큰 문제입니다. 시진핑은 공공연히 미국과의 갈등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3연임 체제에서 미중 갈등은 더 격화할까요
대만을 예로 들어 설명해볼게요. 이번 당대회에서 ‘당장’도 개정했는데, “대만 독립을 절대로 반대하고 억지한다”는 내용이 새로 삽입됐어요. 중국은 공산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체제이고 그런 의미에서 공산당 ‘당장’이 헌법보다 상위인 셈인데, 이 내용을 새롭게 당장에 넣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변수로 부각됐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대만과의 평화통일을 추구하겠지만 무력 사용을 포기하는 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어요. 미·중 패권 경쟁 구도가 격화할 것이고, 그 경쟁의 주요한 무대가 대만일 거란 사실을 중국 공산당도 주지하고 대비할 거란 말입니다.

 

그러면 시진핑의 중국이 대만과 전쟁도 불사한다고 보세요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봐요. 크게 세 가지 이유인데요. 첫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죠. 핵무기를 쓰지 않고 재래식 무기로 전쟁을 일으킬 경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미국이 지원한다면 속전속결로 끝낼 수 없다는 게 드러났거든요.

 

둘째 이유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입니다. 두 나라 모두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강국인 러시아 입장에서 이익은커녕 국제 사회에서 경제 제재 대상국가가 돼버렸고요. 천연가스라는 막강한 무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제 경제에서 고립된 겁니다. 중국도 이 사실을 알아요. 만약 대만을 침공하면 국제 경제로부터 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립이 되는 건 확실하다는 거죠. 게다가 중국은 러시아와 달리 여전히 많은 부분을 수출에 의존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경제로부터 고립된다는 건 심각한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내년 대만 총통 선거를 주목해볼 만 합니다. 출마자 중에서 대만 독립이나 바이든 미 대통령 초청 등 중국에게 자극적인 말들이 쏟아질 수 있거든요. 그때 중국이 무력도발을 한다면? 그건 미국에게 중국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킬 명분을 주는 행위라, 그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한·중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방역체계부터 경제, 정치, 사회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최근 상하이를 봉쇄한 것도 사실 사회 안정, 내부 안보 확보와 관련된 ‘길들이기’ 차원으로 볼 수 있죠. 겨울에 코로나19 재유행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당대회를 앞두고 혹시 모를 내부 분란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봐요. 당대회가 끝났으니 코로나19와 관련한 비상식적인 통제는 완화될 거라 봅니다. 한국과의 교류 역시 사드 사태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회복할 거라 봐요. 앞서 최악의 경우,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고품질 전략, 내수 경제발전, 과학기술 인재 육성 방안을 세워둔 상황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역시 협력할 건 고품질·첨단산업 분야에서 협력해야죠. 특히 인재 양성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공동 플랫폼을 조성하면서 공통분모를 넓혀가야겠죠. 다만 현 정부가 외교 분야에서 미국 중심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중국과의 빠른 교류나 회복 재개의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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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에 대만여행 뱅기표를 끊어놓고 양안 소식에 걱정하고 있던 참입니다. 괜찮을 거라 하시니 다행이고 맘이 놓여요. ㅜㅜ 제발 별일 없기를. 내 나라나 남의 나라나 평화가 제일 중요하지요.
    2022-11-07 15:40:16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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