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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고 곧바로 방송대에 지원했다. 수능 준비를 할 정신적·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았고, 가장 좋아하는 영어를 꾸준히 배우고 싶었으며, 학습에 쉬는 기간을 두었다간 그 나태함이 나에게 복수하러 돌아올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어는 미련이고 자존심이었다. 내 일생의 목표는 한글 소설을 쓰고 그것을 서양 문화에 맞게 재창작해서 영어 소설을 내는 것이었다.

 
처음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동급생들을 보면 정서적으로 불안해졌다.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드라마와 영어 듣기」 과목에 수록된 「Our Town」이란 작품이었다. 망자 에밀리가 되돌아보는 자기 삶은 잠자듯이 살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나 과거에 묶여있지 말라는 명상적인 메시지로 내 정신을 강타했다.


건강이 다시 악화돼 2학년이 끝나 휴학했는데, 한 권도 버리지 않은 교과서들을 복습하면서 기초 실력을 닦았다. 내 목표는 대학 수준 렉사일 레벨의 원서를 읽는 것이었다. 1학년에 드문드문 이해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Justice)’가 3학년쯤 되니 2회 완독에 성공하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강의를 미리 들으면서 최대한 빨리 끝마쳤다. 교과서를 다섯 번씩 반복해서 읽고 워크북을 풀며 강의 자료실에 있는 9년 치의 기출문제를 풀어 오답 노트를 만들었다. 내가 있는 곳은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이었기에 예전 방식처럼 필기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고, 보충 자료를 활용했다.


공부에 들인 시간은 점수를 배신하지 않았다. 다섯 개의 과목에서 A를 받자 나는 ‘이런 점수도 받을 수 있구나’라는 효능감을 처음으로 느끼게 됐다. 내친김에 첫 토익 시험을 쳤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복학 전에는 졸업 논문 대체 시험이 있었고 토익 점수 800점이 합격선이었다. 925점을 받고 나서, 방송대의 학점은 실제 실력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첫 대외활동으로 방송대 문학상에 도전했다.


완결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인생의 목표로 다가가는 첫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소설을 쓰는 동시에 집 근처 수봉 도서관의 단편 소설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기 때문에 11월에는 다른 사람들과 참여한 첫 단편집을 출간하게 된다. 20대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며 방송대에 입학하고 처음 도전하는 것이 유독 많았다.

 

다음에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30대를 함께 할 예정이다. 청춘의 모든 순간을 대학과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내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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