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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강의를 나갔다.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는데, 이들을 시민기자로, 나아가 저널리스트로 양성한다는 취지로 시민단체가 지자체 예산으로 마련한 학습과정이었다. 십여 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해오며 익힌 취재 방법 따위를 정리해 강의를 준비했다. 나름 준비를 많이 했음에도 강의를 들으러 온 이가 한 명뿐이어서 맥이 풀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주최 측이 강의 일정을 한번 미뤘지만, 수강생은 여전히 한 명밖에 없었다. 필자의 강의가 이렇게 인기가 없나 싶어 민망하기도 했고, ‘흥행’에 실패한 탓에 주최 측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강의 후 수강생이 쓴 글을 고치면서 필자는 기사란 무엇이고 기사 쓰기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이제 막 글쓰기에 재미가 생긴, 초롱초롱한 수강생의 눈빛에 적잖이 놀라고 한편으론 감동을 받았다. 수강생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있었지만, 자신과 같은 정신장애인을 위해 권익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관성적으로 일하듯 글을 쓰고 있던 나와는 달랐다. 열정 넘치는 수강생의 모습에서 한줌 기자 경력을 가진 것에 불과한 필자는 큰 감명을 받았다. 지식을 전해주어야 함에도 도리어 더 많은 것을 받아버렸다.


‘한 번 바다에 나간 배는 계속 항해하거나 가라앉는다’라는 말이 있다. 혹자는 자기 계발이라든지 이상 실현과 결부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반면, 필자는 노력의 방향을 설명할 때 이 말을 예로 들곤 한다.


강의 이후 생계의 수단이 된 기자라는 직업과 대중 글쓰기로서의 기사 쓰기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고 있다. 필자가 다루고 있는 보건의료 및 복지 분야는 우리 삶과 직결된 영역임에도 전문성이란 이유로 대중과 괴리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의학기자인 필자는 지난 3년 간 시간이 날 때마다 분쟁지역의 보건의료 실상을 전하는 기사를 써왔다. 지난달에도 팔레스타인에 다녀왔다. 처음 그곳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필자는 완전히 압도됐다. 중동 분쟁의 화약고로 불리는 팔레스타인에서 기삿거리로 무엇 하나라도 더 건져내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를 했다. 설익은 공명심에 그들의 실상을 더 널리 전하는 것이야말로 필자의 사명이라고 멋대로 생각했고, 출장 이후에는 이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이런 소동의 배경에는 필자가 쓴 기사 몇 개가 그들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싸한 이유로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굳이 그 먼 곳까지 간 것도 어떤 자극을 쫓으려는 욕망 추구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지. 다시 방문한 그곳에서 필자는 욕망은 없앨 수 없고, 그렇기에 욕망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공익과 욕망이 부합할 때라야 욕망을 실현할 노력 자체에도 가치가 생긴다는 개똥팔레스타인 보건의료 실태 연속보도로 2019년 과학언론상, 2020 인터넷신문 언론대상을 잇달아 수상했다.철학이다. 


끊임없는 배움과 노력을 강조하는 조언은 많지만, 결과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이를 위한 노력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혹여 나중에라도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을 전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이야기하고 싶다. 왜 노력하는가, 노력의 화살촉은 어딜 향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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