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다시, 생명을 묻다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생명현상의 이해인 동시에 생명활동에 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생명현상과 생명활동은 불가분 ‘환경’과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신비로운 생명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들은 무엇이 있을까? 에세이, 본격적인 분자생물학적 시선, 철학적 탐색까지 다양한 접근을 펼친 책들을 통해 생명현상과 활동을 이해해볼 수 있다.
생명 문제를 바라보는 열린 사유는 에세이집에 잘 담겨져 있다. 조금 오래 됐지만, 물리학자인 장회익 서울대 교수가 2001년 출간한 『삶과 온생명』(솔, 2001)을 놓칠 수 없다. 물리학자의 섬세한 성찰이란 점도 시선을 끌게 한다. 이 책은 2014년 현암사에서 신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생명과 인간 그리고 문명을 현대 과학의 눈을 통해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보다 근원적 생명체로서의 ‘온생명’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책의 2부에서 저자는 현대 과학의 주요 성과들을 바탕으로 생명과 인간 그리고 문명이 어떠한 성격을 지니는가를 살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온생명’이라는 하나의 큰 틀 속에서 이뤄지는 부분적인 현상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보다 근원적 생명체로서 온생명을 이해하지 않고 낱생명들 간의 상대적 이해만을 살필 때 현대 문명은 파멸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온생명’을 진정한 생명의 ‘단위’로 보는 대목도 경청할 만하다.

 


세계를 판단할 단 하나의 절대적인 관점은 없다.
설령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한 것일지라도,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다르지 않다.
생명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살필 줄 아는 것만큼
멋진 일도 없을 것이다. (『생명을 묻다』 중에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소설가로 등단한 방현희 동문이 병원 생활에서 마주한 생명과 죽음의 다양한 모습에서 길어낸 에세이집 『함부로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파람북, 2019)도 일독할 만하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희망과 절망이 가장 높게 치솟았다 곤두박질치는 곳인 병원, 그리고 그 아슬아슬한 롤러코스터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그저 먼 기억 속의 누군가로 남겨두기엔 너무나 통렬했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낀 저자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성찰은 진지하며, 통렬하기까지 하다. 그가 맞닥뜨린 죽음은 곧 생명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죽음으로 자기 삶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려는 자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나는 나의 신념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했다’라고 말하려는 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한 인간이 가장 나약할 때 맞이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미처 준비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죽음 앞에서 가장 나약해지며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게 대부분의 인간이며, 그런 인간을 사람들은 더욱 사랑한다는 것, 더욱 애틋이 여기게 된다는 것은 내 죽음도 그다지 위대하지는 못할 것이며, 바로 그와 같은 과정이 내 죽음에 대한 퇴로를 열어두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원의 신비를 추적하는 과학적 작업
아무래도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게 생명에 관한 과학적 탐색을 담은 책들일 것이다. 먼저, 생명체의 탄생에서 DNA와 유전자 가위, 신약과 바이러스까지 생명의 비밀을 찾는 흥미로운 생명현상 탐구서 『물질에서 생명으로』(노정혜·김빛내리 외 지음, 반니, 2018)를 꼽을 수 있다.
카오스재단이 기획하고 11명의 과학자가 참여해 대중 강연의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가장 큰 생명의 수수께끼를 가장 작은 생명인 물질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생명의 기원을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알아보려는 시도라는 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DNA, 단백질, 게놈, 유전자 가위 등 다양한 과학 키워드를 통해 생명 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들어가면, ‘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이란 부제를 단 『생명을 묻다』(정우현 지음, 이른비, 2022)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은 생명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생명이 무생물로부터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생명의 본질은 결국 유전자와 뇌로 환원될 수 있으므로, 이것을 분석하면 생명 전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뇌 신경계의 적절한 연결과 조합이 인식과 정신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따라서 유전자를 조작하고 마인드 업로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면 전대미문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생명을 바라보는 현재의 이런 관점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은 과연 과학적일까? 그렇게 생각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라고 묻는다.
“생명을 올바로 설명하는 일은 과연 생물학 한 분야의 전유물이 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며 (이 책을) 쓰려 했다”라고 말하는 그는 생명은 우연인가? 생명은 물질인가? 생명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생명에 법칙이 있는가? 생명을 결정하는 것은 본성인가? 생명은 결국 죽는가? 생명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관련 학설을 검토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과학이 알려주는 진리는 그 자체로 삶의 지침을 삼을 만한 것들이 아니다. 거기에는 해석이 필요하고, 가치가 부여돼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갱의 작품 속 마지막 질문은 어떤 장소나 운명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은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세계를 판단할 단 하나의 절대적인 관점은 없다. 설령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한 것일지라도,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다르지 않다. 생명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살필 줄 아는 것만큼 멋진 일도 없을 것이다.”

생명을 관리/통치하는 사회를 넘어서
우생학의 탄생지인 영국의 우생학 역사를 통해 생명에 질적 위계를 두는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의 질을 선별하는 오늘의 현실을 성찰하게 하는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염운옥 지음, 책세상, 2009., 2022 개정판)도 살펴볼 만하다.
저자는 이제 국가 권력이 강제로 인구의 양과 질을 관리하는 폭력은 사라졌지만, 무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는 인간의 자질과 능력은 태생적으로 동등할 수 없다는 근대 우생학의 전제를 여전히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우생학은 ‘종의 형질을 인위적으로 육종하여 우수한 종을 만들려는 학문’으로 특히 나치와 일본이 골몰했던 분야다. 생명 정치가 좀더 세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근대 우생학의 전제를 따르고 있다는 지적은 곱씹어볼 만하다. 이제 이 책을 일별했다면 다음은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심세광 옮김, 난장, 2012) 차례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이보다 앞서 17~18세기 초에 등장한 새로운 통치합리성(특히 국가이성)을 분석한『안전, 영토, 인구』(심세광 옮김, 난장, 2011)에서 한 단계 더 심화한 논의를 담고 있다.
옮긴이에 따르면, 푸코는 근대 생명관리권력의 통치기술을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두기’라 요약한 바 있다. 따라서 시장화된 자기통치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자,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만을 사회 안에서 ‘살게 하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사회 바깥에서 ‘죽게 내버려’두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는 근대 생명관리권력의 괴물적 변종이라 할 수 있다. 심세광은 “결국 푸코가 통치성에 대한 계보학적 성찰을 통해 시도한 것은 통치성 자체보다는 주체의 문제였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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