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정년퇴임 교수에게 듣다

정진성 교수는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7년 7월 방송대로 옮겨왔다. 일본학과 원년 멤버인 셈이다. 일본경제사를 전공한 정 교수와 함께 이영(역사)·이애숙 교수(문학)가 학과의 윤곽과 내용을 채우기 시작했는데, 정 교수가 먼저 정년을 맞았다. 지난 18일 오후 3시,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공부는 남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결국은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이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헤쳐 나가는

강한 ‘인격’을 기르시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보석 같은 분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양지만 걸은 사람들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방송대 사람들을 만난 게 보람입니다.”
25년 재직한 방송대를 떠나게 된 정 교수에게 ‘방송대 교수로서의 보람’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경기고-서울대라는 엘리트 코스, 평탄한 길을 걸었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과 인생을 살아온 방송대 학우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경제학에서 사학으로
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 경제학과를 마치고 당시 안병직 교수의 추천으로 일본 쓰쿠바대학(筑波大) 역사·인류학연구과에 들어가 일본 경제사를 공부했다. 한국 대학의 분류 체계로는 ‘사학과’에 해당하는 학과다.
“경제학과가 아닌 사학과로 가는 걸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죠. 망설임도 있었지만, 한국경제사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일본경제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도 있고, 또 일본의 사학과에서도 경제사 부문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결국 진로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의 말대로 한국 학계는 ‘순혈주의’를 중시하는지라, 강단에 서기까지 곡절도 많았다. 정 교수는 학부와 석사학위는 경제학을, 박사학위는 문학(사학)이다 보니 ‘취직’에서는 감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순 부총리가 세운 ‘국민경제제도연구원’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는데, 이 기관은 1992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통합됐다. 그가 “대학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KDI에서 연구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1994년 정 교수는 배재대 일본학과로 전직했다. 정 교수가 대학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당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역학연구’ 수요가 대학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던 상황이 작용한다. 1999년 7월 방송대로 옮기면서 정 교수에겐 새로운 기회의 시간이 주어졌다. 국립대학에 최초로 개설된 일본학과의 청사진을 짜야했던 것이다.
일본어문학과가 아니고 ‘일본학과’이기에, 어문학 계열과 함께 반드시 지역연구 계열을 둬야 했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일본지역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학제적인 연구’를 강조했다. 함께 부임한 이영·이애숙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현재의 커리큘럼을 짤 수 있었다. 2008년 일본 정치사상을 전공한 강상규 교수가 부임하면서 마침내 방송대 일본학과의 체계가 완성됐다.
지난해 12월 3일 혜화동 대학본부 열린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정년퇴임 기념강연회’(고별 강연)에서 정 교수는 개인적 소회 대신 방송대 일본학과 탄생과 이후 국내 일본학 연구에 기여한 의미 등을 중심으로 방송대 교수로 살았던 시간을 정리했다(관련기사  https://weekly.knou.ac.kr/articles/view.do?artcUn=3470 ).

방송대 일본학과와 함께한 25년
그렇다면 지역학으로서의 일본연구자인 그의 연구적 태도는 무엇에 방점이 놓였을까? 정 교수는 고별 강연에서도 밝혔듯, 거듭 ‘일본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아시아 전문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가 조명한 이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만주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정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사람들을 한 마디로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 착취자로 단정 짓고 단죄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런 사고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떤 논리와 어떤 명분으로 만주에서 활동했을까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거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본질적 문제점과 대화의 접점을 찾을 수 있고, 그런 과정에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그에게 왜 일본을 공부해야 하는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는 “그냥 남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일본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수백 가지 실용적인 이유가 있을 법한데, 그는 ‘남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어떤 뜻일까?
“‘남을 잘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일본을 공부할 필요는 없겠지만, 일본은 우리의 삶에 관계가 많은 ‘남’이기 때문에, 좋은 공부의 대상이 아닐까요? 좀 넓게 말하면, 저는 ‘교양’으로서 일본을 잘 알았으면 합니다. ‘교양’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는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 존중, 이해를 교양의 핵심으로 생각해요. 그런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역사든, 철학이든, 문학이든 공부해야 하는 것이고요.”
아직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1년은 더 담당 과목 강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정 교수의 연구실 한쪽에는 국산 스피커가 놓여 있었다. 동료 교수들은 그를 가리켜 엄격하면서도, 문화와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라고 말했다. 일본학과의 학제적 연구를 이어가면서 일본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라도 깊게 파고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방송대를 선택한 학우들에게 이런 당부를 남겼다.

“공부는 결국 혼자 해내야 하는 것”
“생업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공부가 생업인 저 같은 사람이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굳이 얘기 한다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순간 한 번 더 힘 내주시기를 부탁드릴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방송대에서 공부하려면 친구를 만들고, 스터디에 들어가 학우들과 함께 공부하라고 조언합니다. 지당한 얘기이고 저도 학생들에게 같은 권고를 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부는 남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결국은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이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헤쳐 나가는 강한 ‘인격’을 기르시기를 희망합니다.”
그는 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 것, 풍부한 상상력을 가질 것, 많이 대화할 것’을 학교와 구성원에게 주문했다. 최근의 IT나 AI 등의 발전이 교육, 특히 원격교육 중심인 방송대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으로 본 정 교수는 이런 기술적 변화에 유연하고 담대한 발상으로 대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하면서, “함께 토론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 포용하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년 후 5년 동안은 특별히 별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조용히 산책에 나서고, 봄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때로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그가 매달렸던 논문들 사이로, 새롭게 다가올 시간도 그에게는 ‘오래된 미래’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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