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질병과 세계사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이 완성된 이듬해(기원전 431), 아테네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발발했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년경)는 동맹의 함대로 해상을 장악하는 한편, 육상에서는 방어 전략을 고수하며 아테네 성벽 내에 인력과 물자를 집중시켰다.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계획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아테네에 돌연 역병이 창궐해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페리클레스 자신도 이 역병에 걸려 숨을 거둔다. ‘아테네 역병’(또는 ‘투키디데스 역병’)이라 불리는 이 질병의 참상을, 당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기원전 465∼400년경)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 시체가 겹겹이 쌓였고, 반생반사의 인간들이 거리에서 비틀거렸으며, 샘터마다 물을 찾아온 자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거처하는 신전에도 거기서 죽어 나간 시체가 즐비했다. 재앙이 만연해 자신이 어찌 될지 알지 못하자 신성이든 모독이든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투키디데스는 의사들이 제대로 치료하기는커녕 환자와의 접촉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죽었다고 덧붙였고, 로마 시대의 그리스 학자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19년경)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더운 여름에 수많은 교외 거주자가 시내로 몰려들어 좁은 공간에서 가축처럼 지낸 것이 아테네 역병의 확산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피레우스 항구를 통해 유입된 미지의 역병은 이러한 환경에서 거침없이 퍼질 수 있었고, 면역력과 의학적 대응의 측면에서 무방비였던 감염자는 쉬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역병을 직접 겪고 살아남은 투키디데스는 상세한 증상 기록을 남겼지만, 두창(천연두), 페스트,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맥각중독 등 다양한 후보가 난무할 뿐 그 정체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하지만 그리스 세계의 종주국이었던 아테네가 이로 인해 사회적·군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기에 이후 사반세기 동안 이어진 펠로폰네소스전쟁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대에는 도시가 형성돼 인구가 밀집되고 교류, 교역, 전쟁이 활발해지면서 한 지역에 이미 풍토병으로 자리 잡은 감염병뿐만 아니라 겪어본 적 없는 다른 지역의 감염병까지 주기적으로 유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안토니누스 역병과 로마의 쇠퇴역병의 대규모 유행은 천하의 로마제국도 피할 수 없었다. 로마는 공화정 시대부터 역병의 습격을 드물지 않게 받았지만, 팍스로마나(Pax Romana) 시기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년)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Lucius Aurelius Verus, 130∼169년)와 공동으로 통치하던 165년경에 특히 치명적인 역병이 발생했다. ‘안토니누스 역병’(또는 ‘갈레노스 역병’)이라 불리는 이 질병은 메소포타미아 원정군을 통해 지중해 지역에 유입된 후 몇 년 사이에 제국 전체로 퍼져 15∼20년 이상 맹위를 떨쳤다. 지역에 따라 주민의 25∼33%가 희생되기도 했고, 전체 사망자가 1천∼1천80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의(侍醫)이자 이후 1천 년 넘게 ‘의학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는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129∼199년)는 이 역병의 증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에 따르면 그 정체가 두창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홍역이나 발진티푸스라는 설도 있다).당장 로마 군대가 큰 타격을 입었다. 168년,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 아퀼레이아에서 군인 대부분이 역병으로 죽었고, 마르코만니(Marcomanni) 전쟁(166∼180년) 기간에 수많은 군인이 병사했다고 전해진다. 군대는 밀집한 환경을 유지하며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기에 역병의 전파자이자 희생양이 되기 쉽다. 증대되는 외부 세력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군인의 보충이 절실했고, 검투사, 노예, 강도, 심지어 적인 게르만족까지 징집 대상이 됐다. 로마는 마르코만니족을 격파했지만,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180년에 세상을 뜬 이후(역병 때문이라 여겨진다) 예전과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없었다. 역병의 습격도 계속돼 제국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했는데, 안토니누스 역병에 견줄만한 전염병이 241∼266년에도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서양 고대 문명은 막을 내리게 된다. 안토니누스 역병을 로마 몰락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일련의 쇠퇴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불교의 전래와 역병의 유행이야기의 무대를 고대 동아시아 세계로 옮겨보자. 중국 대륙과 한반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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