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음식과 권력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 말은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했던 이탈리아 아키노 태생 로마 풍자시인 데키무스 유니우스 유베날리스(Decimus Iunius Iuvenalis, 55~140년)가 남긴 명언이다. 사실 이 말은 당시 검투사들이 몸에 기름칠을 하고 힘자랑을 하며 목숨을 걸고 피 흘리며 싸우는 모습을 비꼰 것이다. 정신 수련은 소홀히 한 채 육체적 단련에만 집착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인 셈이다. 부패한 로마 사회에 대한 통렬하고 유쾌한 풍자시로 유명한 그는 『풍자(Satires)』라는 제목의 풍자시 선집을 남겼다. 그 가운데 과거나 현재나 대중의 실상을 정확하게 짚어낸 명문이 있다.“옛날에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표를 팔지 않았지만, 태만해졌다. 통솔권, 직위(fasces), 군단과 그 모든 것을 위임했던 그(시민)는 이제 단 두 가지를 초조히 기대한다. 빵, 그리고 전차 경주(circus)를.”흔히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es)’로 번역되는 ‘Panem et Circenses(판엠 에트 키르켄세스)’는 고대 로마제국에서 시행됐던 로마 시민에 대한 무상 복지정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로마가 시민들에게 제공한 식량과 오락 및 휴식거리를 지칭한다. 결국 위의 말은 시민의 의무는 국가의 정치 동향에 관심을 가지고 여론을 형성해 권력의 탈선을 감시해야 함에도, 의식주와 유희, 향락의 공급에 길들어져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다는 풍자라고 할 수 있다.  ‘빵과 서커스’ 활용한 우중정치가로마 시민뿐만 아니라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도 정치적 장님이 됐다. 이러한 유베날리스의 대유(代喩: 개념의 한 부분이나 한 속성으로 전체를 대신해서 나타내는 비유의 일종)로 ‘빵과 서커스’는 우민화 정책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그리고 천부적 데마고그 (demagogue, 대중선동가) 아돌프 히틀러가 이 표현을 우중정치에 빗대어 사용했다.“대중을 다루는 데는 빵과 서커스면 충분하다.” 아돌프 히틀러(1889.4.20 ~ 1945.4.30)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지도자이자 나치 독일의 초대 퓌러다. 퓌러는 우리말로 총통이라고 번역하는데 나치당 치하의 국가원수이자 정부 수반, 당의 최고지도자를 지칭한다. 정식 명칭은 퓌러 운트 라이히스칸츨러이다.그를 세상에 알린 건 ‘맥주홀 반란’으로 불리는 1923년 11월에 일어난 뮌헨 폭동이다. 이때 까지만 해도 히틀러와 나치당은 투쟁 동맹에 참여한 여러 극우단체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이 끝나고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1919년)으로 경제 파탄과 물가 상승, 사회 불안 등 혼란에 휩싸였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히틀러는 독일 전체를 지배하는 독재자가 되겠다는 계획 아래 1922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일어난 베니토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을 본따 뮌헨의 맥주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1923년 11월 8일 밤 바이에른 주지사 구스타브 리터 폰 카르는 뷰르가브로이케라의 맥주홀에서 바이에른의 실력자들을 모아 대집회를 열었고, 오후 8시 15분에 카르의 연설이 시작됐다. 이때 기관총으로 무장한 나치의 돌격대 단원 603명이 맥주홀을 포위한 가운데 프록코트를 입은 히틀러가 회장에 등단해 천장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면서 선언한다. 그의 선동정치가 시작되는 최초의 현장이다.“국민혁명이 시작됐다. 이곳은 600명의 돌격대원이 에워싸고 있다. 누구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야만 정부는 해체됐고 루덴도르프가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우익단체연합회가 추대한 루덴도르프(1865~1937)는 제1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을 이끌었던 장군으로 민족사회주의자 자유운동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폭동은 실패로 끝나고 히틀러는 6개월간 투옥됐다. 뛰어난 웅변술과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였던 히틀러는 당의 재건에 나섰다.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경제와 정치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1933년 1월 30일에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1934년 8월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한 퓌러 즉 총통이 됐다.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선전 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단 음식 좋아하고 늦게까지 잠자대중을 선동해 증오심을 불러일으켜 유대인을 비롯해 무고한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 히틀러는 아이러니하게도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히틀러가 좋아한 음식은 맑은 국물과 삶아서 으깬 감자 그리고 케이크라고 한다. 독재자치고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채식주의자가 되기 전까지 히틀러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간, 혀, 피스타치오로 속을 채운 비둘기 통구이였다. 또한 히틀러의 식탁에는 아스파라거스와 버터, 달걀노른자, 식초로 만든 네덜란드 소스, 야채 스프와 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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