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음식과 권력

병자호란 전까지 조선은 청나라를 야만 오랑캐의 나라로 치부하고 얕잡아봤다. 중국의 명나라 역시 그랬다. 그래서 한족은 만주족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족과 만주족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른 북방 민족과는 달리 전투에 능하면서도 문화적 소화력이 높았던 만주족은 소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268년이란 긴 세월을 대륙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들은 중화 문명을 최대한 수용하고 피지배자인 다수의 한족을 활용해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한족을 색목인(色目人)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한 몽고와는 달리 과거(科擧)를 통해 한족을 채용하는 등의 유화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변발을 강요하고 선비들의 집단행동을 엄벌하는 고압적인 정책을 병용했다. 과거 중국의 권력자 중 최고 미식가는 누구일까? 공자도 미식가 반열에 자주 오르지만 권력자는 아니다. 서태후(1835~1908)는 황실 역사상 가장 까다로운 미식가였다. 중국식 만두 샤오룽바오(小籠包) 하나를 먹더라도 아주 얇은 만두피에 모양이 완벽하지 않으면 호통을 치며 나무랐다고 한다. 이 만두의 특징은 만두소로 잘 다진 돼지고기와 육수가 함께 들어간다는 점이다. 육수를 피안에 넣는 방법은 육수를 식혀서 젤라틴 형태로 굳힌 다음 만두피로 싸서 찐다. 만두피는 아주 얇게 만든다. 만두소는 보통 돼지고기를 다진 것을 사용하지만 간혹 새우 간 것을 쓰기도 한다. 샤오룽바오를 제대로 맛있게 먹는 방법은 숟가락에 만두를 올린 후 젓가락으로 만두피를 찢어서 육수를 빨아먹은 후 나머지를 먹는 것이다. 660년 넘게 재위, 건륭제의 특별함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 통칭 서태후는 청나라 황제 함풍제의 후궁으로 청나라 말기 아들인 동치제와 광서제의 섭정을 지낸 인물이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근대적 개혁을 꿈꾼 여성 리더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치와 향락을 즐긴 ‘중국 3대 악녀’로 꼽힌다. 정찬 한 끼를 위해 그녀의 식탁에는 128가지의 음식이 차려졌다. 서태후의 한 끼 식사비용은 당시 농민 한 명의 1년 치 밥값이었다.청나라 황실요리는 6천여 가지에 이른다. 여기에 쓰인 식재료 종류만 1만 가지 이상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황실에 의무적으로 바친 연간 식재료의 양은 노루 혀와 꼬리 각 2천개, 노루 780마리, 사슴 270마리에 달한다. 생선은 각기 다른 어종으로 4천여 종을 바쳤고 고급 식재료인 곰이나 호랑이는 잡히는 대로 황실로 보냈다.중국사 연구자 대부분이 최고의 식도락가로 꼽는 인물은 청나라 건륭제(1711~1799년, 재위 1735~1796)다. 그는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에 의해 황위에 오른 첫 번째 황제다. 태자밀건법은 황제가 선정한 후계자의 이름이 적힌 친서를 자금성 건청궁에 걸린 청나라 시조황제 순치제의 대정광명(正大光明) 편액 뒤에 숨겨두고 밀지는 내무부에 간직했다가 황제 사후에 개봉해 밀지와 친서를 서로 맞춰 후계자를 확정하는 방법이다. 혈족 간의 지나친 황위계승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이다.최근에 사망한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만큼이나 오래 권좌에 머물렀던, 그래서 가장 행복했던 황제라 불리는 건륭제는 열 번 싸워 열 번 다 이겼다는 뜻에서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정복전쟁으로 중국의 영토가 오늘날의 광대한 지역을 아우를 수 있게 됐다. 건륭제는 선친 옹정제에 의해 황적을 박탈당한 만주귀족 상당수를 복권시켰다.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의 갈등을 조정해 파당을 없앴다. 내치를 다진 후 대규모 정복 사업과 문화 사업을 펼쳤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아 시와 서화를 즐겼으며 시인과 화가들을 독려했다. 특히 10년의 세월을 들여 고금의 도서를 수집해 정통왕조사인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했다. 이는 중국 역사상 최대의 편찬 사업으로 총 3억6천만 자가 기록돼 있다. 그는 중국의 역대 황제 중 가장 장수한 황제이며 중국 최후의 태평성세인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마지막을 장식한 황제다.지방 순행에 요리사 수백 명 대동건륭제가 강남 지방을 순행할 때면 자신의 일상식과 연회를 담당하는 요리사 수백 명을 대동했다. 1천700마리가 넘는 양과 젖소도 함께 데려갔다고 한다. 황실 법도대로 하루 정찬 두 번, 간식에 해당하는 소흘(小吃) 두 차례, 도합 4끼를 먹은 건륭제는 오리와 새끼 양, 제비집과 죽순 등 진귀한 음식을 맘껏 즐겼지만, 그가 가장 좋아한 건 술지게미 음식이었다. 황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