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화에서 신화로

루마니아에는「Soarele Si luna: 해와 달의 유래」라고 하는 특별한 서사 발라드(Epic Ballad)가 전승된다.


 

돌아다녔다, 오빠인, 자랑스런 태양이 / 돌아다녔다, 오빠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홉 해 동안 / 아홉 마리의 말을 타고
밤에는 천국에서 풀을 뜯어 먹이며, / 하늘과 땅을 돌아다녔다
화살처럼, 바람처럼, / 하지만 모든 말들은 지쳐갔고
마음에 드는 여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누이 일레아나처럼, / 일레아나 코슨제아나,
태양조차 없는 한 겨울에 핀 / 꽃처럼 아름다운.
- 나의 누이, 일레아나, / 일레아나 코슨제아나야!
우리 둘이 약혼을 하자, / 우리 둘이 가장 잘 어울리지,
머리타래도, 얼굴도,  /매혹스런 아름다움조차도.
나는 빛나는 머리타래를 가지고 있고, / 너는 금빛 머리타래를 가지고 있다;
나의 얼굴은 달아올라 있고, / 너, 너의 얼굴은 위안이 되지.
- 아! 원죄 없는 순수한 몸, / 눈부신 나의 오빠,
남매끼리 결혼하는 일은 /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아.
너는 너의 하늘에서 너의 일을 / 나는 나의 땅에서,
태양은 의기소침해졌고, / 위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갔다,
하느님께 성호를 그린 후 /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성스러운 하느님 / 아버지 !/ 나에게는 시간이 되었어요, / 결혼할 때가,
일레아나 코슨제아나 ,/ 나의 누이 일레아나처럼 /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성스러운 하나님은 그의 말을 들었다 / 그리고 손으로 그를 잡아
지옥을 보여 주었다, / 단지 겁을 주기 위해서;
이번에는 천국을 보여 주었다 / 단지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그런 후 하느님은 / 엄숙한 목소리로 이르셨다.
하느님이 말하는 동안 / 세상은 이치를 깨달았고 / 다정하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은 청명해지고, / 밝은 구름이 나타났다:
- 태양아, 빛나는 태양아, / 원죄 없는 순수한 몸아, / 너는 천국을 보았고
또 지옥을 보았는데 / 너의 생각은 너에게 뭐라고 말하느냐?
- 나의 영혼이 말합니다, / 혼자만이 아니라면 / 일레아나 코슨제아나, / 일레아나와 함께라면
영원한 지옥을 선택하겠노라고! / 태양은 하강하기 시작해
그의 누이한테서 멈추었다, /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였고, / 일레아나를 치장했다,
신부의 꽃잎으로, / 값비싼 보석을 / 촘촘히 박은 드레스로.
그런 후 자랑스럽게도, 그와 그녀는 /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 결혼식을 올리려는 순간, / 불쌍한 태양 그리고 가엾은 그녀!
죽음과도 같은 한기가 그들을 엄습해왔다,
한 거대한 손이 그녀에게로 뻗쳐 / 그녀를 위로 번쩍 들더니 / 저 바다 속으로 내쳤다!
물결이 크게 일어, / 물결이 그녀를 덮치자, / 그녀는 잉어로 변했다.
태양은 높이 솟았고 / 서쪽으로 계속해서 기울어 / 바다 속으로 몸을 담갔다,
그의 누이 일레아나에게로, / 일레아나 코슨제아나에게로.
그러자 성스러운 하느님, / 전능하신 하느님이
물결 사이로 손을 넣어 / 손으로 잉어를 잡으신 다음, / 하늘로 내던졌다,
보름달로 변하도록. / 그런 후 하느님은 / 엄숙한 목소리로 이르셨다.
하느님이 말하는 동안  /세상은 겁을 먹었고, / 바다는 웅크렸으며,
산은 떨었고, / 하늘은 캄캄해졌다.
- 너, 일레아나 코슨제아나야, / 흠 하나 없이 순수한 영혼아,
그리고 너, 빛나는 태양아, / 원죄 없는 순수한 몸아!
두 눈으로 보아라, / 너희들이 항상 떨어져 있는 것을.
밤에는 한없는 그리움으로 / 꺼지지 않는 열정에 휩싸인 채, / 영원히 서로를 뒤쫓는다,
하늘을 끝없이 순환하며, / 이 세상에 빛을 비추면서!

 


해와 달의 생성에 관한 노래들
‘하느님’의 존재와 남매혼의 금기 그리고 ‘지옥(연옥)’의 설정은 이 노래가 후대에 변천을 거듭한 결과임을 말해준다. 이 노래에서 하느님을 지칭하는 용어는 ‘Dumnezeu’로 나타나거니와 이 용어는 ‘dumnezeu’ 곧 소문자로 시작하는 또 다른 신을 지칭하는 용어와 변별적인 의미를 갖는다. 전자는 일종의 유일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루마니아 정교의 유일신에 상응하며 단수형만 가능한 것이고, 후자는 민간신앙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여러 신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복수형이 가능하다. 결국 「Soarele Si luna」에서의 하느님은 루마니아 정교의 유일신으로 이른바 중세 보편종교의 영향을 받은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와 달의 생성에 관한 내력은 새로운 창조를 노래하는 것이어서 징치(懲治)와 새로운 창조 사이에 개재해 있는 의미의 두 층위를 짚어볼 수 있게 한다. 우선 누이가 바닷속에 유폐되고 잉어가 되었다고 하는 설정에서 그 하나를 살필 단서가 마련된다. ‘바닷속에 유폐돼 잉어가 됐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금기 위반의 결과로 감당해야 할 응보이니 곧, 육체의 유폐에 해당한다. 응보(징치)의 결과가 지속돼야 신의 위엄이 유지될 수 있으나, 오빠인 태양이 누이를 찾아 바닷속으로 다가서니 보다 근본적인 징치의 방식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달로 만들어 영원히 태양과 함께 있지 못하도록 하는 영원한 격리가 징치의 결과를 지속시키는 최종적 수단이 된 셈이다.
그런데 징치의 결과를 영속시키는 방식이 인간 세상의 질서를 확정하는 긍정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서사 전개의 논리에서 상치하는 점이 확인된다. 인간 세상의 여인이 바닷속의 잉어가 됐다가 하늘의 달이 됐다고 하는 징치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 노래의 이면에 깊숙이 잠재된 신화적 의미, 곧 ‘육체의 유폐와 영혼의 귀환’이라는 하나의 상징 체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기에 금기를 위반한 죄에서 속죄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죄의 노예’에서 ‘유일신의 종’으로 거듭나는 양상을 이 노래에서 간취할 수 있다. 이른바 ‘거듭남의 체험’ 정도가 될 것이다. 징치의 대상에서 신의 섭리를 인간 세상에 구현하는 존재로의 전환은 인간 세상에 해와 달이 온전하게 갖춰져 해와 달이 순환하는 질서가 생겨난 내력을 설명하는 곳으로 나아간다.
한편으로 남매혼 금기의 위반과 징치의 결과가 일월의 생성이라고 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는 설정에서 우리는 근친혼으로 덧씌워진 오누이의 희생적 성격에도 시선을 멈출 수 있다. 인간 세상에 해와 달이 생겨나게 하고 주야로 교체 순환하는 질서를 온전하게 확정한 오누이에게 어쩌면 남매혼이라는 윤리적 금기를 덧씌워 가한 집단의 폭력, 그 혐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누이 징치가 일월 생성의 내력이 된 이면에도 희생양에 대한 폭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 세상에 해와 달이 있어야 하고, 연속적으로 순환해야 한다는 질서에 대한 욕망이 특별한 의례를 통해 희생양에게 폭력을 가한 흔적일 것이다.
해와 달의 부조화나 순환에서의 일탈은 고대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임이 틀림없다. 고대인의 관념에서 생각한다면, 두려운 상황에 직면하기 이전에 이를 예방하고 안정된 질서가 영속되기를 소망하는 특별한 의례에는 희생양이 필요했을텐데, 이 노래에서 오누이가 바로 그 희생양의 표지를 간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 점에 착목하면 「Soarele Si luna」에 오누이의 희생을 통한 일월의 생성과 순환의 영속성을 기원하는 특별한 제의적 관념이 내재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집단의 공리와 번영을 위해 희생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게는 그 집단이 부여하는 “흠 하나 없이 순수한 영혼”과 같은 찬사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오누이에게 덧붙여진 찬사의 표현을 이렇게 음미할 수 있겠다.
이 노래는 남매혼에 집착한 오빠와 그에 이끌려 아내가 돼야 할 누이를 통해 철저히 개인적 차원의 금기 위반을 문제 삼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는 후대적 변천을 경험한 결과라고 앞서 지적했다. 금기 위반 따위의 흠이나 죄는 애초에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이다. 금기 위반이 오누이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시도됐지만, 금기 위반의 최종적 결과가 해와 달의 생성으로 나타나기에 어디까지나 공동체적인 차원의 것일 수밖에 없다. 남매혼에 연루돼 징치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오누이를 통해 집단 구성원 모두는 해와 달의 생성과 순조로운 순환을 획득하게 됐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오누이의 남매혼에는 집단적 공범 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사 전승에 내재한 특별한 제의적 관념
여러 민족에게서 전승되는 남매혼 전승의 공통적 양상 중 하나는 인류의 번성과 관련된다는 것인데, 「Soarele Si luna」에는 이런 의미가 제거돼 있다. 특히 태양인 오빠가 인간 세상의 여인들을 찾으러 다닌 행위가 그렇다. 이 점에서 오누이의 결연은 인류의 새로운 시작과 번성이라는 신화적 의미에서 벗어나 있다. 따라서 이들의 결연은 필연적으로 징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설정이 가능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이들 오누이의 남매혼은 부정적 의미로 덧씌워진다. 이런 사정이 다른 민족들의 남매혼 전승과 변별되는 점이라 할 때, 남매혼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이 제거돼 버린 양상은 곧 남매혼 전승의 변천 표지로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Soarele Si luna」에서 남매혼 금기의 위반이 가져온 결과가 일월의 생성에 잇닿아 있다면, 이는 이 전승의 현상과 서사 형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남매혼의 금기 위반과 일차적인 징치는 유일신과 보편종교의 윤리가 연계돼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해와 달의 생성 내력을 남매혼과 연계시켜 인간 세상의 중요한 질서를 마련했다고 하는 것은 이전부터 지속됐던 민간신앙에 기반한 전승이 더불어 작동한 결과, 이 노래의 서사로 형성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남매혼을 윤리적 기제로 금기시해 징치한 결말은 비극적으로 설정됐지만, 곧 해와 달의 순환이라는 자연 현상의 기원으로 전환함으로써 남매혼의 성립을 부정하는 징치의 결과는 영속성을 갖게 됐다. 남매의 영원한 분리라는 비극성을 전제로 일월의 순환이라는 자연 현상을 대비하면서 남매혼에 대한 후대의 지속적인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구비문학회 연구이사 등을 지냈으며,『창조신화의 세계』『한국-동유럽 구비문학 비교연구』『신화의 세계』등을 썼다. 비교신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식이 어느 한쪽에 경도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심지어 남매혼 금기의 위반자인 오누이를 징치하는 신조차도 그들을 가리켜 ‘원죄도 없고 순수한 몸과 영혼을 지닌 존재’로 찬사를 보냈다.
보편윤리를 위반한 오누이에게 찬사를 덧붙여 주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이 노래를 전승해오던 루마니아 민족들이 아니겠는가. 성스러운 태양 의례와 성별(聖別)됐던 여성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여전하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