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에서 새로운 지식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방송대는 평생교육의 최상위 버전이다.
졸업한 학생이 다시 입학하는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공직 생활 마감을 앞두고 있다. 뒤돌아보니 크게 출세를 하지는 못했지만 전체 공무원의 평균보다는 약간 높은 직위로 퇴임을 하는 것 같다. 잘 나가는 동료보다는 늦었지만 낙오하지 않고 그럭저럭 잘 버텨낸 것 같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있다. 나름대로 박식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동료들 사이에서 박사라는 소리도 들었다. 지난 학기에는 진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 박사’라는 동료의 말을 들은 다른 부처 직원에게서 무슨 박사냐는 질문을 받고는 박사도 아니면서 박사 소리를 듣는 게 민망해져서 공부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쉽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 수료한 지 15년이 넘어서야 논문이 통과됐다. 자꾸만 미루면서 많이 늦어졌다. 학위를 받아서 뭣하나 싶어 포기를 했다가 초·중·고 선배님인 지도교수의 설득으로 다시 시작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에 동료 학생들이 나를 보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박사학위는 만학도의 상징이 됐다.
당시 다시 논문을 쓰기 시작한 것은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연구를 즐기기로 했다. 고생이 됐지만 논문에 필요한 방법론과 이론을 알아가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 직접 필요한 지식뿐만 아니라 주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고 이 과정이 즐거웠다.
이번에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에 입학했다. 문외한인 영상의 무궁무진한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다. 기초를 다진 후 영상 분야에서 데뷔도 하고 싶었다. 또한 논문 통과 후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의 허무함도 작용했다. 책을 계속 읽고 싶었다.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배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었다. 이를 위해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입학을 결심한 것이다.
주위에서 언제까지 배우기만 할 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박사가 학부 과정의 방송대에 입학해서 무엇 하느냐는 질문도 한다. 그러나 어차피 박사학위도 만학도다. 만학의 짜릿한 감정을 겪었기에 이번에는 진짜 만학도가 되어 보고자 한 것이다. 진짜 학문 연구는 기초부터 다져야만 가능하다.
방송대에 입학해 보니 새로운 학문의 바다에 진입하는 항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공부를 시작하는 만학도에게 망설임이라는 진입장벽을 뛰어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항로를 인도하는 등대와 같은 장치도 많이 있다. 등 떠밀려서 혹은 남들이 다 가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일반 대학과 비교해서 훨씬 주도적인 교육을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제2의 모교로서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등록을 하고 주문한 교재를 받아 보니 박사 논문을 쓰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익혔던 이론이 몇 가지 나온다. 논문의 주된 내용은 아니었지만 언급된 이론들을 정말 제대로 꿰뚫고 있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어설프게 알았던 부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다시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날이 변해가는 지식의 최선봉에 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요즘 지식의 유효수명 기간이 짧아진다고 한다. 예전에 못했던 공부를 이제 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배웠던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배워야 한다.
공부는 마라톤이다. 그러나 실전의 마라톤과는 달리 완주가 없는 것 같다. 배움의 바다는 너무 넓어서 끝이 없기 때문이다. 넓은 바다에서 새로운 지식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방송대는 평생교육의 최상위 버전이다. 졸업한 학생이 다시 입학하는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