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저자 인터뷰

방송대출판문화원(원장 박지호)이 지난 8월 15일 출간한 『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 대한독립에 헌신한 외국인 15인의 용기와 연대에 관한 기록』(남기현·김영진·이혜린 지음)은 구한말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종료까지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던 외국 인사들을 조명한다. 낯선 땅의 민중을 돕기 위해 민족과 언어의 경계를 초월했던 그들의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대표 저자인 남기현 교수(문화교양학과)를 만나 책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책을 출간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출판문화원의 장빛나 편집자가 먼저 기획을 해서 제 전임자이신 송찬섭 교수께 제안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송 교수님은 독립기념관에 근무한 적이 있는 저에게 집필을 권유하셨죠. 출판문화원에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디오게네스의 ‘세계시민성’ 관점에서 독립에 기여한 외국인들을 조명하겠다는 의도였는데, 저도 유사한 취지의 학술대회에 참여했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세 분의 공저자께서 집필 분담은 어떻게 하셨나요
공저자인 김영진 선생과 이혜린 선생은 대학원 과정부터 함께 연구해온 학문적 동지들입니다. 공저자들의 연구 주제를 고려해서, 제가 한국병합 이전부터 활동한 인물들과 3.1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한 인물까지 총 5명에 대해 서술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중국을 무대로 활동한 5명은 이혜린 선생이, 1920년대를 중심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활동했던 5명은 김영진 선생이 담당했습니다.


출간 후의 소회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방송대출판문화원과 함께한 출간 과정은 어떠셨나요

제가 대표 저자로 이름을 올린 첫 번째 공저서이자 방송대출판문화원에서 펴낸 첫 책이어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고 감개무량했습니다. 장빛나 편집자는 책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먼저 제안했고 본문의 교정과 교열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구성과 제목,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로 생각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아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책에 소개된 15인의 인물 중 서구권 출신의 선교사가 많기 때문에 기독교 선교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됐다는 역사적 평가라든가, 다양한 창작 작품 속의 문명화된 백인이 그렇지 않은 소수민족을 계몽하는 ‘백인 구원자’ 클리셰가 연상돼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 전체를 읽어본 후엔 등장인물들이 때로는 본국 정부나 소속 교단과 마찰을 빚고 일제의 위협을 감내하면서까지 조선 민중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생각이 바뀌었지만요. 이 인물들이 조선을 위해 헌신하게 된 내적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서구의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만, 이 책에 소개된 서구권 인물들의 경우, 본국의 식민 통치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영국, 프랑스, 캐나다, 미국 출신인데 이 나라들은 조선을 지배하려 들지도 않았고, 각각의 인물들은 조선에 대한 사전지식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회고록이나 서신을 보면 처음엔 생소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와 그 민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마침내 공감과 애정으로 변모한 과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자유와 평등, 박애에 관한 그들의 종교적·정치적 신념이 조선 민중에 어떻게 투영됐는지도요.


서구권 인물의 경우 대체로 제국주의 열강 국가 출신이었고, 그들의 본국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조약을 일본과 체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본국인 영국이나 프랑스 등이 조약을 위반해서 한반도를 지배하려 들었다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본국의 정책을 거부하며 계속 조선을 도왔을까요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하고 타인의 내면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켰으리라고 봅니다. 인간의 보편적 권리, 자유와 평등이 가치관에 내재된 인물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국주의 열강이 전쟁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고 해도 그 구성원인 민중의 삶은 비참했을 겁니다. 식민지 국민과 별다를 바 없었겠죠. 전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가니까요.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도 전쟁의 본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남긴 회고록이나 서신을 보면

처음엔 생소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와

그 민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마침내 공감과 애정으로

변모한 과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자유와 평등, 박애에 관한
그들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이
조선 민중에 어떻게 투영됐는지도요.”

 

 

저자로서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은 누구였나요

첫 번째로, 호머 B. 헐버트는 우리 근대사의 역동적인 상황을 모두 겪었던 사람입니다. 고종 황제의 신뢰를 받았던 그는 육영공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한글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고, 3.1운동의 본질을 대외적으로 알리려 백방으로 노력했죠. ‘푸른 눈의 한국인’, ‘3.1운동의 34번째 민족 대표’라고도 불리는 헐버트는 한국을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프랭크 W. 스코필드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의 가장 큰 업적은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제암리 학살 사건의 진상을 사진을 통해 해외에 알린 것입니다. 제국주의 후발주자인 일본은 식민 통치의 종주국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서구 열강으로부터 공인받고자 했습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표방하면서 문명 제국의 면모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죠. 하지만 스코필드에 의해서 일제의 잔혹한 탄압이 알려지면서 조선에 대한 통치 정책을 일정 부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부에서 통계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셨더군요. 역사학 연구에서 통계는 대단히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특히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인류사를 다루는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 중에서도 ‘빅 히스토리’ 관점과 유사한 것이 간혹 보입니다. 인류 사회도 다른 생물 군집처럼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적 집단이며, 조선이 식민 지배를 겪지 않고는 자력으로 근대화나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죠.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물론 뉴라이트 관점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빅 히스토리’에 대해서는 제 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요. 그러한 견해에도 취할 점은 있습니다. 조선의 국권 상실과 해방 모두 국제적 역학관계와 분리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죠. 인간 집단 사이의 크고 작은 분쟁이 장기적으로는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최근에 독립기념관장이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가 준 선물”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떠오르네요. 단적으로, 해당 발언이 포함된 연설문에는 세부적인 오류가 꽤 많았습니다. 역사학 연구자로서 동의할 수 없는 발언이고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 벌인 수많은 의거와 투쟁이 없었다면, 연합국이 승리했어도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겁니다. 어느 강대국의 속령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네요. 피와 땀을 흘려가며 “우리는 독자적인 역사를 가진 하나의 민족이므로 부당하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겠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했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독립 후 경제적·정치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 국민들이 현재의 국제 정세하에서 이 책의 인물들처럼 '세계시민'으로서 담당할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세계시민'의 출발은 내 주변,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라고 봅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이들과 협력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세계시민', '세계시민성'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각 지역은 너무나 중요한 교육 공간이면서 삶의 터전이 된다고 믿고 있고요. 각 지역에서 방송대의 이념, 평생교육의 실현을 체험하는 학우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태도가 확장되면 한국 전체, 아시아, 세계의 모습을 고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요즘 일부 지역의 교육청에서 '세계시민성'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4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1
댓글쓰기
0/300
  • nixz***
    존경합니다 교수님!!!
    2025-09-01 13:12:59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