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은 모기다. 모기로 인해 해마다 약 72만~100만 명이 목숨을 잃는데, 그 수는 인간에 의해 살해되는 인원(연간 약 40만~50만 명)보다도 훨씬 많다. 상황이 이렇다면, ‘모기 보고 칼 빼기’라는 속담의 용법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변 어디에나 있는 모기가 특급 ‘살인범’이라니? 사실 모기는 부지불식간에 이용당하는 매개체일 뿐,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뎅기바이러스(뎅기열 발병), 웨스트나일바이러스(웨스트나일열 발병), 지카바이러스(지카바이러스감염증 발병) 등 주로 바이러스가 배후로 지목되지만, 한 해에 약 2억5천만 명을 감염시켜 약 6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말라리아원충(말라리아 발병)이 ‘보스 격’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말라리아를 결핵, 에이즈와 더불어 ‘세계 3대 감염병’으로 지칭한 바 있다.
하지만 모든 모기가 말라리아원충을 옮기는 것은 아니다. 말라리아원충에 감염된 얼룩날개모기속(Anopheles)의 암컷 모기에 한하며, 이 모기가 인간을 물면 모기의 타액과 함께 대량의 원충이 스포로조이트(sporozoite)라는 포자 상태로 인체의 혈액 속에 침입해 약 45분 후 간세포에 도달한다. 그 안에서 1~4주 동안 여러 단계를 거치며 성숙하고 증식해 메로조이트(merozoite)라는 분열소체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수천 개 만들어지면 간세포를 파괴하고 적혈구에 침입한다. 헤모글로빈을 영양분으로 삼아 증식한 분열소체는 다시 적혈구를 깨고 나와 다른 적혈구로 옮겨가고, 이런 사이클이 반복된다. 감염된 인간에게는 고열,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의식장애나 신부전 등이 일어나 사망한다. 온대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삼일열(三日熱) 말라리아보다 열대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열대열(熱帶熱) 말라리아가 더 높은 치명률을 보인다.

한국은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한 말라리아 유행지로 남아있고,
북한과의 방역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말라리아 박멸은 요원하다.
전쟁과 말라리아의 끈질긴 악연을
우리는 아직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원충이 계시니
말라리아가 인류를 괴롭힌 역사는 매우 길다. 약 50만 년 전부터라는 설도 있는데, 현생 인류뿐만 아니라 그 조상도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되니 ‘학을 뗄’ 만도 하다. 과거 한반도에서는 말라리아(주로 삼일열 말라리아)를 ‘학()’ 또는 ‘학질(疾)’이라 불렀다. ‘말라리아(malaria)’의 어원은 ‘나쁜 공기’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mala aria’다. 이는 나쁜 공기가 유행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세계에서 말라리아가 유행병의 ‘대표 격’이었음을 방증한다.
짐작할 수 있듯이, 말라리아는 역사 시대 내내 인류를 괴롭히고 간섭해왔다. 로마제국에서는 여러 황제가 말라리아로 죽었고, 말라리아로 많은 병사를 잃어 주변 지역 정복 시도가 좌절되기도 했다. 제1차 십자군 원정 때(1096~1099) 콘스탄티노폴리스(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말라리아가 유행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13세기 중반에 몽골군이 유럽 침공을 단념한 것도 말라리아와 관련이 있다. ‘콜럼버스의 교환’ 이후 아프리카인 노예를 통해 신세계로 유입된 말라리아는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 전쟁사 속의 말라리아
말라리아가 전쟁의 판도를 뒤흔든 것은 먼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중일전쟁 중에 일본군은 다양한 감염병에 시달렸는데, 전선이 화중(華中)에서 화난(華南)으로 확대됨에 따라 특히 말라리아가 골칫거리로 부상했다. 일본군은 대만에서 축적한 말라리아원충 대책을 전개하며 방역에 힘썼지만, 전황이 악화하고 수송이 끊기면서 많은 병사의 희생을 치러야 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에 돌입해 열대 기후의 ‘남방(南方)’으로 전선이 더욱 확대되자 말라리아의 위협은 더욱더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대본영 육군부는 남방작전 개시에 앞서 장병에게 책자를 배포해 “탄환에 죽을지언정 질병에는 죽지 말라―눈에 안 보이는 각종 악병(惡病)과 말라리아 모기라는 대적(大敵)이 잠복하고 있다”라고 경고하고 말라리아 담당 군의(軍醫)를 사전에 파견해 특설 치료반을 운영시켰다. 1942년 3월 네덜란드령 자바를 점령한 일본군이 석유와 더불어 신속하게 확보한 것은 키니네(퀴닌)와 기나나무 껍질이었다. 무력으로 탈취해야 할 만큼 중요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기나나무 껍질에서 얻는 퀴닌은 17세기부터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인 것으로, 일본군은 남방작전에서 1920년대 이후 합성된 아테브린(퀴나크린)과 플라스모힌(파마퀸), 그리고 퀴닌을 말라리아 대책으로 병용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Midway) 해전 패배 이후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에 걸친 솔로몬제도 과달카날(Guadalcanal) 전투에서도 미군에 패하게 된다. 여기에 참전한 어느 일본군 군의는 당시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행군에 든다. 몸에 지닐 수 있는 것만 지니고 출발, 거센 강을 따라, 강가의 모래밭에는 일본 병사가 말라리아 말기 특유의 표정, 숨이 막 끊어지려는 상태로 쓰러져 있다 (……) 그 인체에 (붙어) 태양광선을 받아 파리떼의 날개가 일곱 가지 빛깔로 반사하는 광경은 뭔가 지옥이라 해야 할지.” “직접적인 적은 미군 그 자체가 아니라, 정체를 드러내자면 기아와 말라리아 두 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뉴기니, 중앙 태평양, 버마(미얀마), 필리핀 등지에서 내리 패한 일본군은 200만 명 이상의 인명 손실을 겪었다. 그 가운데 60만 명 이상이 넓은 의미의 아사자(餓死者)였다는 추산도 있다. 말라리아 등의 질병을 앓아도 치료는커녕 기본적인 영양조차 공급받지 못한 것이다. 남방작전 초기에는 전사자와 병사자의 비가 약 5:1이었지만, 과달카날 전투 당시 약 1:3으로 역전돼 이후 약 1:15에 달하기도 했다.
1943년, 당시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가 “말라리아는 남방에서 전력 소모의 최대 원인”이라 발언할 정도로 전장에는 말라리아가 만연했다. 남방 전선 일본군 최대의 군사 거점인 라바울(Rabaul)의 제8방면군은 병력의 23%가 질병을 앓았는데, 그중 말라리아가 약 60%를 점했다고 여겨진다. 미군이 일명 ‘개구리 뜀뛰기(Leapfrogging)’ 작전으로 라바울의 보급로를 차단해 말라리아 치료제가 동이 나자 일본군 환자와 사망자는 자연히 급증했다. 물론 일본군만이 말라리아의 공격에 노출된 것은 아니었다. 1942~1943년, 뉴기니 전선에서 미군의 말라리아 감염률은 약 97%, 과달카날에서는 재발을 포함해 무려 약 178%였다. 말라리아 환자가 전상자(戰傷者)의 10배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말라리아 문제는 당시 서남 태평양 방면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의 근심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기 퇴치를 위해 습지와 물웅덩이의 매립에 힘쓴 일본군과 달리 미군은 비행기를 동원해 DDT를 공중 살포했고, 1943년 여름 이후 미군의 감염률은 급하강했다.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일본의 통계자료는 대부분 소각 또는 파기돼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패전 후 일본 본토로 귀환한 병사 중 말라리아 병력을 가진 자는 약 100만 명에 이른다.
일본의 악몽은 남방 전선에 그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오키나와(沖)를 둘러싼 전황이 악화하자 이시가키지마(石垣島),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를 비롯한 야에야마(八重山) 지역의 많은 주민이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열대열 말라리아 발생 지역 산속으로 강제 소개(疏開)됐다. 말라리아가 만연하는 환경에 식량과 의약품까지 부족해 남방 전선의 일본군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인구 약 3만1천700명의 절반 이상인 1만6천884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돼 그중 3천647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연출됐다. 참고로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오키나와 주민은 약 9만4천명으로, 일본군 희생자 9만4천136명(이 가운데 오키나와 출신은 2만8천228명)과 맞먹는다. 오키나와 전투의 조선인 희생자도 ‘수천 명’ 이상에 달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인 희생자에 비해 숫자가 터무니없이 부정확한 것은, ‘황국신민’이라며 강제 동원해놓고 책임은커녕 실태 조사조차 방기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기인한다.
남북 방역 협력의 필요성
오늘날 세계 말라리아 유행 지도에서 한국의 위상은 특별하다.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유행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9일, 질병관리청은 전국에 말라리아 경보를 발령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에서 채집된 얼룩날개모기류에서 삼일열 말라리아원충 감염이 확인된 것이다. 인천, 경기 북부, 강원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최근에는 매년 700명대의 감염자가 발생하며 말라리아 경보는 연례행사다. 1970년대 이후 한때 자취를 감췄던 말라리아가 1993년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재출현하고 나서 ‘토착화’된 배경에는 정전(停戰) 중인 북한과의 정치적·군사적 긴장이 자리한다. 북한의 말라리아 방역 역량이 상대적으로 낮고 한국 모기의 살충제 저항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남북의 방역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말라리아 박멸은 요원하다. 게다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모기의 서식지 확대로 인해 말라리아를 비롯한 모기 매개 감염병의 위협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전쟁과 말라리아의 끈질긴 악연을 우리는 아직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