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학생이 내게 물었다. “공부를 왜 하려고 하십니까?”
“젊어서 못했으니 지금 하려고 하지”라고 대답했고
그 학생도 더는 묻지 않았다.
방송대 경제학과 4학년인 필자의 학력은 5년 전까지만 해도 국졸이었다. 학구열은 있었지만 가정 형편상 진학이 어려워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 소규모 공장들의 근로 환경은 열악했지만, 힘든 세월 속에서 요령과 경험이 쌓이면서 또래 신참이나, 기능이 부족했던 연장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게 됐다.
1970년대에 한국 중공업이 크게 도약하자 기능공을 모집하는 대기업 공고가 일간신문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소기업에 비해 근로조건이 좋았고, 같이 일하던 친구도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그 당시 대기업의 기능공 채용 기준은 중졸 이상이었기 때문에 필자는 지원할 수 없었다. 왜 학력이 우선시되는가 하는 원망이 드는 한편 스스로가 기준에 미달하는 것 같아 서글펐다.
기업의 인력채용 방식에 불만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경제학 공부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 3학년 때 노동시장의 공급에 대한 강의에서 듣게 된, ‘학력이 신호 역할을 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이 가슴에 와닿았다. 개개인의 능력과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정보 비대칭 속에서 학력을 선별의 일차기준으로 정한 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현실에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필자는 검정고시에 대해 알게 됐지만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육십이 넘어 자식 둘이 같은 해에 결혼해 분가하면서 마음이 공허하던 차에 읽은 책 한 권이 학구열을 깨웠다. 현실에서의 소용 유무를 떠나서 정규학교 공부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중학교 검정고시 교재를 구입해 공부에 집중하게 됐다.
공부를 시작하니 상식과 학문적 지식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책은 많이 읽었지만 체계적인 학문과 거리가 멀었던 필자가 생소한 용어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특히 기초 수학공식을 접하지 못한 채 미지수를 독학으로 이해하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 중졸 과정 응시원서를 교육청에 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선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 그렇게 중졸 과정을 통과하고 4개월 후엔 고졸 과정도 넘었는데 일반 학생들과의 차이를 느끼고 싶어 그해 수능에 도전했다.
시험일 하루 전 예비소집 때 앞에 서있던 앳된 학생이 내게 물었다. “공부를 왜 하려고 하십니까?”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진 상태인데도 상대의 나이를 짐작한 듯하다. “젊어서 못했으니 지금 하려고 하지”라고 대답했고 그 학생도 더는 묻지 않았다.
결국 방송대 경제학과 2022학번으로 입학했지만,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컴맹이었던지라 온라인 학습이 무척 낯설었다.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지만 중간과제물 작성에서 행간 조정과 외부자료 삽입 등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자식들을 불러 물어봤지만 그때뿐, 한 학기 지나고 나면 또 아리송했다. 모르는 건 노트에 따로 적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엔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듭되는 질문에 지친 자식들의 ‘아직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에 마음이 상해 혼자 하다가 완성 직전의 자료가 사라져버린 적도 있었다. 학교 측에선 스터디 가입을 권했지만 여건이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자식들에게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고, 이번 학기를 마치면 졸업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는 한편으로 4년 동안 공부하면서도 같은 학과 학우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