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의 스핀오프작 「사마귀」(연출 이태성)에 대한 전 세계 시청자의 관심이 뜨겁다. 이태성 감독은 「길복순」에서 휴가를 떠난 킬러 ‘사마귀’를 언급한 차민규 MK대표(설경구)와 차민희(이솜)의 대사 “사마귀도 돌아오면 세대교체 해야지”에 주목해, 이름 외에는 모든 것이 백지상태였던 사마귀 캐릭터에 살을 붙여나가며 전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전작에서는 변성현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보는 맛이 있었다면, 이태성 감독은 「사마귀」의 인물들에게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성을 메인 테마로 부여했다. “젊고 실력으로 인정받은 인물이 잘 다니던 회사가 기울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한때 살인청부업계를 이끌었던 길복순(전도연)과 차민규의 다음 세대인 MZ 세대 킬러들이 그 나이대에 누구나 겪을 어리숙함과 섣부른 선택, 가까운 주변인들과의 갈등, 재능을 가진 사람을 향한 열등감 등의 감정을 액션씬에 섬세하게 담았다. 2006년 「사생결단」 촬영부로 영화판에 발을 들이고, 근 20년 만에 장편 데뷔하는 이태성 감독을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장편 데뷔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영광이죠. 제가 너무 좋아하는 「길복순」이라는 영화의 스핀오프 작품을 연출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첫 장편 영화라고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 줘서 힘들었지만 너무 즐거웠어요.
2006년 「사생결단」 촬영부로 영화판에 발을 들이셨던데요. 20년 만에 감독으로 데뷔하신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했는데, 하겠다는 엄두를 못 냈죠. 영화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난 못해’ 하는 마음이었달까요? 건축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갔는데, 친구들이 단편 찍을 때 도와달라고 해서 현장을 가 봤어요. 촬영하는 걸 보니 ‘어,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 하는 거만한 마음이 들더라고요(웃음). 어떻게든 현장에 가고 싶어서 일단 촬영팀부터 시작했고요. 다음 영화부터 연출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같이 영화 시작했던 친구 중에 영화 하는 사람은 저만 남았네요(웃음).

전작 「길복순」에서 조감독으로 참여했고, 스핀오프작 「사마귀」의 연출을 맡게 됐죠.
「길복순」은 시나리오부터 너무 신선했어요. 의구심을 가질 만한 씬 하나 없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였죠. 사실 계속 다른 영화들 연출 제안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변성현 감독님부터 제작사 대표님 등등 여러 분들이 「사마귀」 연출을 맡아보라고 동시다발적으로 제안을 주셨어요.
변성현 감독, 이진성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셨잖아요. 전작에 출연도 하지 않는 데다 사마귀라는 대사로만 언급되는 게 다였는데, 어떻게 살을 붙여나가셨나요?
굉장히 재밌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대표님이 시나리오를 쓰라고 공덕 쪽에 작업실을 내주셔서 먼저 시작했어요. 변 감독님은 「길복순」 이후 엄청나게 바빠지셔서 4~5개월 정도 후에 합류했죠. 사실 공동시나리오 작업은 서로 해본 적이 없었어요. ‘내 생각이 맞네’, ‘네 생각이 맞네’ 같은 상황은 아니었고요. 각자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떤 씬은 제가 먼저 쓰고 다음 씬을 변 감독님이 이어서 쓰기도 했고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화이트보드에 구성을 다시 잡아보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썼습니다. 이진성 작가도 아이디어를 내고, 레퍼런스도 찾아주면서 많이 도와줬어요.

그러면 시나리오의 몇 할 정도는 본인 몫이라고 생각하세요?
음, 비밀로 가져가겠습니다(웃음).
「사마귀」는 「길복순」과 세계관을 공유합니다만, 감독으로서 어떤 차별점을 두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길복순」의 세계관이 생각보다 굉장히 방대해요. 그 모든 걸 다 녹일 수 없으니 초반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죠. 세계관을 영화 군데군데 배치한다기보다, 초반에 확 보여주고 본격적으로 우리 영화로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사마귀」의 킬러들은 세대가 달라요. 「길복순」 킬러들이 선배들이라면, 그 다음이나 다다음 세대쯤 되겠죠. 이들의 치기 어린 젊음을 잘 활용하면 좀 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작에 비해 액션씬 분량이 줄어든 건 아닌데, 결이 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오히려 액션 분량은 더 많아요. 「길복순」 액션은 변성현 감독님만의 스타일리쉬함이 묻어나죠. 「사마귀」의 길은 같을 수 없었습니다. 캐릭터들의 사건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감정을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였기 때문이죠. 액션씬도 마찬가지예요. 왜 그런 액션이 벌어지는지, 캐릭터는 어떤 감정으로 그런 액션을 벌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변 감독님에게도 액션에 감정이 묻어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함께 고민해 주셨어요.
그러니까요. 액션 영화인 건 분명한데, 감정선에 신경 쓴 멜로 영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변 감독님과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작업할 때 공통적으로 합의한 지점이 있어요. 여느 킬러 영화처럼 소중한 누군가를 빼앗겨서 복수한다는, 그런 키워드를 빼자는 거였죠. 또 하나는 이야기의 흐름이 예상되는 수순을 밟고 싶지 않다는 거였고요.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제가 넣고 싶었던 감정은 열등의식이었습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가 처음 설정한 모델이자 키워드였어요. 최고의 킬러라는 데서 오는 교만함과 거기에 치기까지 겸한 사마귀가 있고, 그런 사마귀를 동경하면서도 넘어서고 싶은 재이가 있는 거죠. 물론 사마귀는 로맨스를 하지만, 재이는 로맨스가 목적이 아니라 사마귀의 재능에까지 닿는 것이 목적이고요. A급이지만 실력적으로 동등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런 그룹들은 어떤 심리일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 보니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마귀는 로맨스를 하지만 재이에게는 열등감이었군요.
전통적이니 로맨스 서사는 아닌 거죠. 20대에 연애하다 보면 굉장히 사사로운 일로 싸우고 헤어지잖아요? 그런 치기 어림이나 젊음의 욕망, 본인이 가진 목적 같은 사소한 것들로 다투고 이별하는 그런 로맨스였으면 했습니다.
사마귀는 MZ세대 최고의 킬러인데, 사람을 살리기도 하죠. 좀 이율배반적인 캐릭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사마귀라는 이름밖에 없어서 막막했거든요. 그래도 입체적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얘는 뭐하는 애지?’로 시작했는데, 껍질을 깔수록 본인만의 뭔가가 있는 캐릭터가 되도록요. 그렇게 다채로워지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마귀, 재이, 독고의 액션 스타일이 다 다릅니다.
사마귀에게 낫을 부여한 건, 천재성을 가진 킬러라면 날카롭고 예리한 무기를 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제 머릿속에 처음 생각한 사마귀에 대한 그림이 하나 있었어요. 스크린에서 한울이 화면 밖으로 날아가는데 그림자 자체가 하나의 사마귀 형상이었던. 그렇게 생각하니 낫을 들면 딱이겠더라고요. 날카롭고 예리하니까 관객도 사마귀가 사람을 베면 흠칫 놀랄 거도 같았고요.

재이와 독고의 무기에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독고와 재이 모두 열등의식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독고는 차민규에게, 재이는 사마귀에게요. MZ 세대 킬러인 재이의 경우 숨기고 싶은 실력이 있다고 치면, 만약 그런 성격이라면 무기 자체가 과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장검을 부여했습니다. 독고는 저무는 세대죠. 사실 MK를 지키러 온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단단하고 힘있는, 어떤 무기와 맞부딪혀도 이길 수 있는 무기여야 한다는 생각에 톤파로 설정했습니다.

오프닝씬에 등장하는 양동근 배우는 촬영 후 공개까지 극비 사항이었다죠.
「블랙가스펠」 조연출 때 양동근 배우를 처음 만났어요. 제 첫 조감독 작품인데, 뉴욕 올 로케 영화였습니다. 촬영하고 숙소 와서 같이 밥 해 먹고 동고동락하는 시간을 보냈죠. 한국 들어와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언젠가 영화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양동근 배우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캐스팅 제안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기꺼이 하겠다고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양동근 배우가 나오는 연무 씬은 「전,란」의 윤형철 무술감독님이 작업했는데, 김상만 감독님이 “「전,란」 연무씬보다 업그레이드 됐는데?”라고 칭찬해주셨어요(웃음).
의상으로도 캐릭터들을 잘 표현하셨어요.
조상경 의상감독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의상만 보는 게 아니라 영화 전체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을 한눈에 꿰차고 있고 또 그걸 영화에 개입시키는 분이에요.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정말 캐릭터별로 성격을 다 파악해서 의상디자인을 하더라고요. 조 의상감독님이 색감을 잡으면 다음에 CG팀, 미술팀, 소품팀이 거기에 따라서 디자인 하는 거죠.

사마귀 의상도 마찬가지에요. MK 소속 킬러일 때랑 대표가 될 때 의상이 달라지죠.
‘젊꼰’(젊은 꼰대)이라고 하죠? 허세 있고요. 방공호 총회 씬에서 갑자기 과장된 옷, 혼자만 언발란스한 옷을 입습니다. 속은 깊은데, 자기가 대표가 됐으니 화려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그런데 재이한테만은 그러지 않아요. 조 의상감독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잡은 컨셉이죠.
액션씬이 많은데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예측 가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본 컨셉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늘 선택이 문제였습니다. 액션씬들도 다 느닷없이 벌어져요. 물론 액션씬이라 볼거리가 있지만, 감정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했잖아요. 그 감정이 가장 강하게 있는 캐릭터가 바로 독고와 재이죠. 독고는 본인이 가진 걸 놓치지 않으려는 인물이고, 재이는 본인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인물입니다. 사마귀는 그 둘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지키려는 인물이고요. 그 세 개의 감정들이 모이는 엔딩씬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배우들이 다치지 않게 2회차 촬영을 하면 꼭 하루 이틀은 휴식 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피디에게도 부탁했고요. 일주일 넘게 촬영했던 거로 기억해요.

사마귀 역의 임시완 배우는 ‘원픽’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재이의 박규영 배우, 독고의 조우진 배우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박규영 배우는 대표님이 추천했어요. 예전 작품들을 다 찾아봤는데, 감정이 너무 좋은 배우더라고요. 적격이라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전달했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좋았습니다. 독고가 사실 제일 어려웠어요. 분량이 많지 않지만,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하는 캐릭터라서요. 캐스팅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변 감독님이 추천했어요. 이야기 듣자마자 ‘와, 독고다!’ 하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더라고요. 예전에도 조우진 배우와 작품을 해봐서 너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연락했더니 조우진 배우도 절 좋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첫 미팅에 밥 먹고 악수하면서 “사실 승낙하러 왔어”라고 하시길래 쾌재를 불렀죠(웃음).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배우들이 촬영 자체에 대해서는 준비를 워낙 꼼꼼하게 해오셨어요. 분위기는 너무 좋았고요. 무술 분량이 너무 많거나 하면 피곤해서, 쉬는 날 쉴 법도 한데, 다 같이 모여서 축구나, 풋살 경기를 하더라고요. 배우들이 상금도 걸면서요. 너무 좋아 보여서 한 번은 촬영이 없는 날 저도 끼어 보려고 운동화 신고 갔는데, 아무도 저를 부르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배우들이 아이디어 덩어리에요. 임시완, 조우진 배우는 전날 리허설까지 해서 장면을 짜와요. 저는 선택만 하면 되는 행복한 감독이었죠.

러닝 타임이 2시간이 넘는데, 혹시 덜어낸 부분이 있을까요?
편집은 숙명 같은 거라서요(웃음). 변성현 감독님 스타일이 좀 그런데요. 불필요한 씬은 아예 찍지도 않아요. 여러 씬을 찍고 편집실에서 선택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관객의 몰입도를 생각해서 대사나 인물 동선 이런 부분에서 조금 덜어낸 부분은 있어도 씬을 통째로 들어낸 건 없습니다. 아, 독고가 MK로 복귀하는 장면을 찍었었는데 그건 덜어냈네요.
첫 작품인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영화적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작품이 이제 내 손을 떠나면, 작가는 보내줘야 하는 거잖아요. 작품과 작가의 숙명 같은 거죠. 더 옆에 두고 싶은데 두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0여 년간 많은 작품에서 조감독을 경험하고 데뷔하셨는데,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한 감독님과 두 번 작업해 본 적이 없어요. 최대한 많이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죠. 사실 안 좋은 것도 배우게 되고요. 제일 되고 싶은 감독은 ‘모르는데 아는 척하지 않는 감독’이요. 모르면 스스로 알아내는 감독!
이런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스핀오프작의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출한 감독이라면 사마귀의 스핀오프 혹시 계획하고 있지 않으신가 궁금해요.
오락영화로서 프랜차이즈를 겨냥 안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제가 처음 「길복순」을 만들었다면, 저 역시 변 감독님과 같은 장치를 넣는 선택을 했을 거 같고요. 시청자들이 많이 사랑해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