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응모 편수는 적었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수준은 향상됐음을 확인했다. 예년에 비해 주제가 없이 SF적 서사만 나열하거나 개인의 일기에 그치는 가족사를 쓴 소설은 거의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본격적으로 ‘단편소설’이 지향하는 방향을 고심하며 작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조심스레 2025년은 방송대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의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봤다.
소설은 인물을 흔들어놓은 현재 사건을 중심으로 그의 지층을 들춰가는 여정에서 현재와 과거의 에피소드를 교차시켜 원형구도로 구축해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삶을 나태하게 늘어놓거나, 소재는 특별하되 인물의 삶과 밀착되지 않아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이 걸러졌다. 본심에 올린「거품 목욕」(홍가람),「운수 좋은 날」(신양섭),「부유인」(서정기) 세 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거품 목욕」은 어린 남자와 나이 많은 여자가 어쩌다 만나 사랑하고 각자의 과거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에 좌초돼 한 사람은 감옥으로 한 사람은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헤어지게 되는 내용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행위였던 거품 목욕으로 표현하면서, 두 사람이 꿈꾸는 삶 자체가 거품이 아닐까, 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잘 드러냈다. 도입부와 결말부를 일관된 형식으로 구축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으나 그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단편소설로서는 너무 많고, 인물도 너무 많이 나오는 탓에 중심 사건으로 모여들지 못하고 한없이 뻗어나가고 말았다.
「부유인」은 현재 회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불법적 요소를 섞은 M&A를 시도하려는 인물이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수사당국에 끌려가 동료를 고발해야 하는 고문을 당하던 사건들을 불러오는 내용을 통해 과거 어느 때를 기점으로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마치 경계에서 조망하듯 쓴 소설이다. 이런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지만 현재와 과거가 동떨어져 있고, 인물의 과거 역시 상세히 나열돼 있기는 하지만 어떤 갈등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인지 모여들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점이 안타까웠다. 상황을 장면으로 명확히 보여주는 훈련, 모든 문장을 명료하고 간결하게 쓰는 훈련을 하면 좋아질 것이다.
「운수 좋은 날」은 신춘문예와 단편영화 공모에 사활을 건 대학원생 둘의 공모제 당선 사투기라고 해야 할 소설이다. 낙방을 거듭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하나의 꾀를 내게 됐으니 서로의 영역을 뒤바꾸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 과정에서 소설의 시각을 영화를 보는 눈으로 바꿔 세상을 바라보고, 영화의 구도만 생각하던 프레임을 바꿔 소설에 등장할 사람의 시각으로 소재를 찾고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름을 뒤바꿔 응모한 끝에 당선이 되고 만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린 결론은 들키지 않기 위한 요령일 뿐이었다.
「운수 좋은 날」이 안타까운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전복을 이루려 했다면 그 무게를 짊어지고 성찰로 나아갔어야 했다. 소설은 인물들이 사건을 경험하며 해석을 새롭게 하여 어딘가에 이르렀을 때 저 앞의 전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선작으로 하기에는 ‘사건’ 즉 ‘레벤느망’이 아니라 ‘해프닝’에서 끝낸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시종 역설적 시선을 유지하며 마지막에도 역설적 결말을 내려 했다는 점, 전복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는 점을 높이 여겨 이 소설을 가작으로 결정했다.
방현희 소설가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단편「새홀리기」로 2001년〈동서문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로 제1회 문학/판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소설집『바빌론 특급우편』,『로스트 인 서울』등과 장편소설『불운과 친해지는 법』(2016 부산 국제영화제 북투필름 작 선정) 등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