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더 ‘깊이 있는 지식’ 원한다면 도전해 보자!
방송대 대학원·경영대학원은 1년에 봄, 가을학기 2회 신입생을 모집한다. 봄학기와 달리 가을학기에서는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 학과도 있다. 가을학기 대학원·경영대학원 신입생 모집 특징과 함께, 방송대 대학원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실제 학위 과정 중에 있는 원우들의 생각 등을 살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가을학기 모집 특징 방송대가 2024학년도 가을학기 대학원(대학원장 박영숙)·경영대학원(원장 이우백) 신입생을 모집한다. 모집 기간은 5월 16(목)일부터 5월 27일(월)까지다. 대학원·경영대학원 모두 일반전형으로만 신입생을 모집한다. 가을학기에는 특별전형(정원 외 선발) 모집이 없다. 모집 학과 및 인원은 대학원의 경우, 문예창작콘텐츠학과(10), 실용영어학과(21), 실용중국어학과(18), 아프리카·불어권언어문화학과(11), 일본언어문화학과(5), 행정학과(20), 영상문화콘텐츠학과(1), 정보과학과(18), 에듀테크학과(29), 환경보건시스템학과(11), 유아교육학과(4)이며, 경영대학원(56)이다. 법학과, 사회복지학과, 농업생명과학과, 생활과학과, 통계·데이터과학과, 간호학과, 평생교육학과, 청소년교육학과는 가을학기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일반전형 지원 자격은 △국내외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자(2024년 8월까지 취득예정자 포함) △법령에 의해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면 된다. 단, 유아교육학과는 ‘유치원교사 자격증’ 소지(예정)자에 한한다. 전형 일정은 아래 ‘표’를 참고하면 된다. 제출서류는 모든 지원자가 입학지원서와 자기기술서를 인터넷으로 제출한면 된다. 기본서류(필수)는 우편제출로 하면 되며, △대학 졸업(예정) 증명서 원본 1부 △대학 전학년 성적증명서 원본 1부 등을 제출해야 한다. 국가보훈대상자,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의 경우라면 추가서류를 우편으로 제출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대학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형료는 2단계 전형료 1만 원을 포함한 4만 원이며, 1차 서류전형, 2차 면접전형으로 진행된다.1차 서류전형 요소는 학부성적과 자기기술서 점수로 구성되며, 2차 면접전형 대상자는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다. 학기당 등록금은 대학원의 경우 1백48만원(입학금 17만7천원, 수업료 1백30만3천원)이며, 경영대학원은 2백7만7천원(입학금 15만9천원, 수업료 1백91만8천원)이다. 졸업(학위취득)예정자로서 합격한 자가 2024년 8월 말까지 대학교를 졸업(학위취득)하지 못한 경우 입학허가를 취소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입학 관련 문의처(행정실: 02-3668-4343, 4347~9 / 경영대학원 조교실: 02-3668-4772) 대학원 왜 진학할까? 일반적으로 학부와 달리 대학원은 좀더 ‘연구’에 무게를 싣는다. 흔히 말하는 ‘학문후속세대’를 육성하는 일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원격교육기관인 방송대 대학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일반대학의 대학원과 달리 ‘원격교육기관’ 방송대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대학원 시스템이라 눈여겨 볼만하다. 실제 방송대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우리나라의 평생교육과 원격교육을 선도하는 국립 특수대학원(사이버 대학원) △첨단원격강의로 재택 학습이 가능한 대학원(여유시간 활용) △기존 원격교육시스템 활용으로 교육비용을 최소화한 대학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학비까지 저렴하다. 지난해 7월 방송대 미래원격교육연구원이 내놓은 「2023년 방송대 대학원 재학생 실태조사」(과제책임자 이은경)에 나타난 대학원 진학 이유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실태조사에 응했던 대학원 원우들의 대학원 진학 이유로 ‘전공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30.5%로 가장 많았다. ‘직업관련 경력관리를 위해서’라는 대답도 28.7%로 높은 수준이었다. 방송대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는 ‘직업과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1.7%로 가장 많았다.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평생교육학과에 진학했던 최수정 동문(숙명여대 평생교육 박사과정)은 ‘평생교육학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연구’를 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케이스다. 그는 대학원 진학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학부를 졸업한 후 1년간의 휴식 기간을 가진 저는 지역사회와 교육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평생교육학의 심도 있는 학습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지역사회에 더욱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에 진심이신 교수님들로부터 더 깊이 배우고 싶었던 것도 진학 이유였어요.” 최 동문이 말하는 방송대 대학원의 매력은 학부 공부와의 연속성이다. 교육학 공부에 이어 평생교육학에 좀더 매진하고 싶었던 그는, 마침 방송대 대학원 평생교육학과가 학부와의 연속성을 바탕으로 보다 심도깊은 배움의 길로 안내한다는 걸 알게 됐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소영 원우는 일반대학에서 학부를 마쳤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가족 특성상 지역 이동이 잦고, 지방 거주에, 아이도 어렸다. 그러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방송대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몇 년째 대학원 진학을 놓고 고민하느니 그냥 방송대 대학원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었죠. 원래 문학 분야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책을 많이 읽다 보니 관심사가 문학비평 등으로 좁혀지더라고요. 마침 참전용사 구술 생애 인터뷰 작업을 하게 됐는데, 모든 관심사와 맞물렸죠. 지금은 그때 고민하지 않고 도전할 걸 잘했다고 생각해요.” 경영대학원에서OBHR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Resources, 조직행동인적자원)을 전공하고 있는 김경익 원우는 “저는 학부도 방송대 경영학과를 마쳤는데, 후배들이 경영대학원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설명해도 학사 과정만 한 사람은 모르는 게 있다’였어요. 농담이지만 대학원 과정은 정말 학부 때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이 있는 과정입니다. 결과적으로는 한 줄 스펙이 되기도 하고 석사학위가 필요한 다음 진로들의 도움닫기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학부만 했을 때는 학부의 선후배 동기만 있지만 대학원 석사과정을 하게 되면, 이 과정의 선후배 및 동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 면에서 방송대 경영대학원은 전국의 훌륭한 원우들이 진학하는 곳이기 때문에 학위 과정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함께 배우고 교류할 분들을 찾기에 최적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추천했다. 대학원 공부, 빡세지만 더 재미있어 이소영 원우가 꼽는 방송대 대학원의 매력은 ‘시공간 제약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적 욕구를 채우고, 관심사가 확장되는 건 덤이다. 원격교육의 매력은 학부에만 있지 않고, 대학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방송대 대학원 공부는 학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빡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우들 스스로가 각종 ‘세미나’를 조직해 연구에 맞먹는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원 학과 교수들의 조언과 길 안내가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한 출판인은 “사실 공부가 좀 빡세다는 건 눈치챘어요. 그런데 정말 장난 아니게 읽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매주 읽어야 할 책도 쌓여 가고요. 처음엔 겁도 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붙고 오히려 더 세미나 시간이 기다려지던걸요”라고 말했다. 이소영 원우는 폰 달력 등을 활용해 과제물 일정 마감 등을 적어두고 스케쥴을 관리하고 있다. 따라가기 바쁘지만, 도서관에서 강의와 관련된 서적을 찾아보는 정도로도 힘에 부치지 않다고 말했다. 최 동문은 ‘대학원 공부는 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선택한 과목에서 학습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교수님께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학습하는 걸 추천합니다. 또한 대학원 동기들과 서로의 학습 능력을 나누려고 하는 것도 좋더라고요. 나눌수록 더욱 돌아오니까요”라고 말했다. 이런 내공이 쌓여 국제컨퍼런스에서 수상하거나 연구재단 연구비를 받는 대학원 동문들도 있다. KCI급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등 전문 연구자의 길을 가는 이들도 생겨났다. 향후 방송대 대학원에 박사학위 과정이 개설된다면, 방송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전문 연구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물론 직업 관련 경력관리를 위한 ‘업스킬링(upskilling)’도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210호 최익현 2024-05-11 10:35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좋은 사진이죠”
"내 이름 걸고 쓰는 코너인데 대충 일하기 싫다. 즐기면서 일하자. 업무와 노는 것의 경계 언저리에서 일하는 걸 좋아한다" 오종찬 기자는 18년차로, 2006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뒤 6년째 ‘오종찬의 Oh! 컷’ 이라는 칼럼을 쓰고 있는 조선미디어그룹을 대표하는 사진 기자다. 오 기자는 ‘많이 버리는’ 기자다. 10번을 취재 나가면 4번은 단 한 컷도 건지지 못하고 허탕을 친다. 사진 기자가 수백 장을 찍고 단 한 장을 건지는 구조인 것을 볼 때, 더구나 시간에 쫓기는 언론사에서 버리기란 쉽지 않다. 버린 만큼 더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에 만족스럽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다 버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다. 선한 인상에 배려가 몸에 익은 사람이지만 튀르키예 지진현장 등 재난현장 마다 출동하는 ‘내유외강형’기자이기도 하다.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다. 튀르키예 재난현장을 취재해 사회면에 원고지 20매 분량의 기사를 쓰기도 하고, 주 2회 TV조선의 아침 뉴스에 ‘아침에 한 장’이라는 코너로 방송 출연을 하는 등 신문과 방송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다. 사진기자 협회에서 수상하는 ‘김용택 기자상’, ‘이달의 기자상’ 등 상도 많이 받았다. 오 기자에게 사진 기자의 삶에 대해 물었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사진 한 컷을 위해 모든 걸 던진다는 것이 힘들거나 허무하지는 않나 '즐기면서 일하자'가 모토다. 업무와 노는 것의 경계 언저리에서 일하는 걸 좋아한다. 내 이름 걸고 신문에 쓰는 코너인데 대충 일하기 싫다. 아이템을 찾아 새벽에 전라남도 해남까지 출장을 다녀와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신문에 내지 않는다. 6년간 300회 칼럼을 연재했는데 500번 이상 현장에 나갔다. 절반 가량 허탕을 친 셈이다.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하는 동력이 없어질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좋은 보도 사진의 기준은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생 고 이한열의 사진이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팔짱을 낀 채 조사받는 사진 같이 역사적으로 기억되는 순간을 남긴 사진이 좋은 보도사진으로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인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더 높게 평가받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진이 좋은 보도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을 주는 사진을 전하고 싶다. 최근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 가수 김장훈이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콘서트를 했다. 현장에서 홍보가 아니라, 진짜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고 느꼈다. 내가 취재에서 받은 감동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사진 기자 뿐 아니라 신문 기사쓰고, 방송 출연까지 도전하고 계신다. 도전의 원동력은 일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면 힘들지 않다.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늘 많이 노력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회사에서 고정 칼럼을 제안했고, 방송, 유튜브 등도 권유했다. ‘주어진 일은 기대보다 잘해야 한다’는 걸 늘 염두 하며 일하고 있다. 사진 기자가 된 계기는 대학교 때 사진동아리를 하면서 사진의 매력을 알게 됐고, 국문학과 전공자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에 자신이 있어서 사진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사진 기자는 신문사마다 5년에 한 명 뽑을까 말까 할 정도로 바늘 구멍이다. 그래서 취재 기자 시험을 준비하며 언론사마다 시험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조선일보에서 6년 만에 사진 기자를 뽑아 운이 좋게 입사를 하게 됐다. 사진 기자가 되는 방법은 언론사마다 있는 공채 시험을 응시하면 된다. 신문사의 경우 공채로는 잘 뽑지 않고 경력 채용을 하는데, 5년에 한 번 소수 인원을 뽑는다. 사진 기자 인원이 많은 연합뉴스 등의 통신사는 2년에 한 번 꼴로 신문사보다는 많은 인원을 공채를 통해 선발한다. 통신사에서 사진 기자로 일하다가 신문사마다 몇 년에 한 번 경력으로 뽑을 때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통신사 사진기자와 신문사 사진 기자는 어떻게 다른가 통신사 사진 기자는 사건 사고나 현장을 담은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기사에 비유하면 스트레이트성 사진들인 셈이다. 순발력이 좋고 속도감을 즐기면 통신사 사진 기자를 추천한다. 반면 신문사 사진 기자는 호흡이 더 길게, 아이템을 기획해서 사진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 사진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과거에는 순간 포착이나 민첩성이 중요했다. 사진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는 ‘보여줄 수 있냐’보다 ‘어떻게 보여주냐’가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특정 장면을 찍고 안 찍고에 따라 특종이 갈렸지만 지금은 전 국민이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을 같은 장소에서 찍더라도 100명이 찍는 사진이 다 다르다. 그 순간을 누가 가장 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뉴스 중에 사진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고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보여줘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가 중요한 셈이다. 사진을 통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진 기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직업상의 장·단점은 취재 기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대통령부터 노숙인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사진 기자는 특히 부서 경계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국회나 청와대도 출입하고, 배우나 가수 인터뷰,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다 경험할 수 있다. 단점은 최근 언론사 경향이 그러하듯 연봉이 크게 늘지 않고, 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게 가장 큰 단점이다. 가장 보람되거나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2018년 8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취재진으로 북한에 갔던 순간이다. 92세의 이금섬 할머니가 6.25 피난길에서 6살 꼬마일 때 헤어진 이후 65년 만에 71세가 된 아들과 만나 포옹하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찍은 사진은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1면에 실리기도 했다. 돌아와서 이금섬 할머니 집에 찾아가서 아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사진들을 직접 선물해드렸다. 감사하다며 손을 잡아주시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성공의 원동력이 뭐라고 보나 후배들에게 늘 ‘기회가 찾아오면 고민하지 말고 잡으라’고 조언한다. 그 기회를 통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남들보다 정말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불평하지 말고 즐기며 일하는 게 원동력인 것 같다.
210호 고서정 2024-05-09 13:54
인디언 서머, 인생의 새로운 상승국면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과 존중의 원천이 되는 일이 없어지면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제3기 인생, 결코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다. 중년과 노년 사이의 새로운 생애 단계. 물러나 쉬어야 할까, 여전히 일하면서 의미 있게 보내야 할까?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미국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인디언들이 좋은 날씨를 활용해 겨울철 식량을 더 많이 비축할 수 있었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기간의 건조하고 온화한 날씨를 가리키며, 주로 첫서리가 내린 다음에 나타난다. 유럽에서는 이런 기후 현상을 ‘물총새의 날’ 또는 ‘노부인의 여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디언들이 신의 선물로 감사히 여기는 늦가을 초입의 사냥하기 좋은 따듯한 날씨처럼, 인생에서도 늦은 시기에 새로운 상승국면을 맞게 되는 때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홀은 노년기에 선행하는 이 시기를 ‘인디언 서머’라고 하면서,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이런 깨우침대로 살아가는 행동력을 겸비한 시기라고 했다. 인구학자이면서 역사학자인 피터 래슬릿은 이 새로운 생애단계를 ‘제3기 인생’이라고 부르면서, 높은 생산성과 꾸준한 학습이 가능한 시기이자 미래 세대에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는 시기라고 했다. 물론 개인의 직업이나 활동영역에 따라 현역과 은퇴로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생애주기라는 것이 사회구조가 투사된 것이지 꼭 그렇게 구분해야 할 실익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정년과 은퇴기를 경험한다. 스탠리 홀이나 피터 래슬릿은 모두 이 시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으며, 결코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뒤로 물러나서 쉬는 단순한 은퇴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제3기 인생'의 상반된 이미지 사실 ‘제3기 인생’이라 불리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생애단계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고, 정년과 연금이 사회제도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새로 생겨난 것이다. 수명이 짧았던 예전에는 농사를 짓거나 노동현장에서 작업화를 신은 채 바로 죽었기 때문에 ‘제3기 인생’으로 별도로 구분할 기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년 등으로 생의 주된 직업에서 물러난 이후 무려 30~40년이나 되는 기나긴 은퇴기가 생겼고,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개인적으로나 국가·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년과 노년 사이의 중간 단계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상반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에서 물러나 여유롭게 지내는 시기로,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생산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시기로 상반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아직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나 공통된 인식은 없다. 장수 시대에 노년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어느 쪽이 더 현명할까? 이 시대의 많은 풋내기 노년들은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한다. 개발 시대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에 일이 몸에 배어 일에서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들을 공부시키다 보니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후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경우에도 놀기보다는 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는 들었지만 일할 의지와 능력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사회구조와 인습이 강제로 일에서 은퇴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은퇴시키고 연금 주는 것이 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하는 고령사회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형편이 된다면 여유로운 은퇴기를 보낼 수도 있다. 일에서 손을 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제3기 인생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단순한 은퇴기로 보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은퇴 후 아무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기면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몇 년이다. 온전한 휴식과 진정한 자유가 길어지면 거짓말처럼 또 다른 허전함이 찾아온다. 그러니 은퇴 후 얼마간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좋다.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인형과 같다. 은퇴 후 일의 의미 미국의 노인학 권위자인 헤롤드 코닉 박사는 『아름다운 은퇴』에서 “은퇴는 여가의 시작이 아니다.”라고 했다. 가치 있는 목적을 가진 삶의 중요성과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 법에 대해 조언하며, 다양한 활동을 통한 가치 실현, 건강 유지법을 소개한 이 책에서 그는 안락한 여가생활을 위해 직장을 떠나는 것을 결코 아메리칸 드림처럼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미국의 여가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애리조나에서 선 시티(Sun City)라는 은퇴자 커뮤니티가 출범하면서부터다. 선 시티는 노인들의 여가와 개인적 삶을 위해 설계됐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비슷한 은퇴자 커뮤니티가 수없이 건설됐고, 이런 공동체에서 여가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공적인 노년기의 상징처럼 됐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들 공동체는 급격히 쇠퇴한다. 즐겁기만 하고 의미 없는 인생을 보내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가생활만으로 은퇴 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다. ‘하루는 저녁이, 1년은 겨울이,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 는 말이 있다. 마지막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일로부터 해방되는 삶의 자유, 즐거움, 휴식 등을 누리는 여가가 노년의 일상생활 자체가 돼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다. 일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과 존중의 원천이 되는 일이 없어지면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제3기 인생, 결코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다.
209호 최재식 2024-05-05 21:11
전문가 칼럼, 월 1회 연재
방송대학보 KNOU 위클리는 학우들의 진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전문가들의 칼럼을 월 1회 연재한다.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과 김지영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가 학우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두 전문가는 본인들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취업이나 진로에 도움이 되는 정보, 인생 2막 설계 방법 등을 제안하고 직접 취득한 노하우와 정보를 전해줄 예정이다. 올해 67세인 최재식 동문은 꾸준한 저술, 신문 칼럼 연재와 강의 활동 등을 통해 활발하게 중장년층의 인생 2막 조언을 하고 있다. 방송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은 최 동문은 1977년 총무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1982년 공무원연금공단 창단 당시 공단에 입사해 2014년 2월 상임이사로 퇴임했다. 그리고 2014년 9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제15대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 40여 년간 현장에서 공무원연금을 다뤄온 연금 전문가다. 대표 저서로는 현직에서 물러나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인『은퇴 후에도 나는 더 일하고 싶다』,『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연금은 생각보다 쓸모 있다』,『제3기 인생혁명』등이 있다. 6월부터 칼럼을 연재하는 김지영 서강대 교수는 교육학 전공자로 2012년부터 서강대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인 전인교육원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공존의 시대와 세계 시민교육’ 등을 주제로 교양 과목을 가르치며 학생들의 진로상담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담 전문가다. 서강대의 진로상담교육을 초기부터 설계한 김 교수는 한국상담학회 진로상담 수련 감독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1년간 한국상담학회 산하 진로상담학회의 회장을 맡았다. 특히 김 교수의 경우, 타 대학에서 진로교육 과정을 벤치마킹해 실행하는 등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4년간 포항공대 리더십센터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포항공대 리더십 교양교과목을 운영하는 등의 경력을 쌓았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209호 고서정 2024-05-05 21:27
손해사정사가 방송대 보건환경학과에 진학한 까닭은?
“손해사정사라는 자격은 건물로 비유하자면 기틀을 다진 것이고, 그 바탕에 빌딩을 지을지 공터로 남을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손해사정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이다. 피해자들은 때로 손해사정사가 보험사의 입장에서 보험금을 적게 주지는 않을지 의심하고 항의하기도 한다. 참고할 전례가 없는 '최초' 사건이면 민감성은 더욱 커진다. 수천 건의 보험사고를 처리해온 24년 경력의 '환경 보건 전문 손해사정사' 김현우 세종손해사정 상무이사(50세)를 만났다. 그는 ‘2012년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최초 담당’, ‘국내 최초 아쿠아리움 상어 사망 사건 담당’ 등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민감한 사건을 많이 맡았다. 김 동문은 본인이 맡은 사건 처리와 별도로 100여 명의 직원들을 관리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멘토 역할도 맡고 있다. 그의 집무실 벽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글로 유명한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이라는 휘호가 걸려 있다.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만변에 기꺼이 응할 수 있다는 군자의 자세를 일컫는 말인데, 일에 임하는 그의 마음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김 동문은 2000년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2017년 보건환경학과에 진학해 2년 만에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가 왜 뒤늦게 ‘보건환경학과’에 도전한 것일까? ‘전문성’을 확장해 가는 그를 만나 전문직 경력 관리의 의미를 들었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왜 환경 공부를 시작하셨나요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우리 회사에서 맡으면서 관심이 커졌습니다. 최초 사례라 법률 자문도 구하고, 살균제의 독성 등에 관해서도 연구하며 환경 관련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경쟁 입찰 당시, 환경에 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 최종업체 선정에서 탈락하고 말았죠. 2년 후에 재입찰의 기회를 준비하며 방송대 보건환경학과에 입학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갔고, 대기환경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재입찰 성공과 함께 2022년에 회사가 환경책임보험전담 조사회사로 등록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맡으신 역할은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제조회사 중 한 군데의 보험금 산정 업무를 맡아 국내 보험사 및 외국계 재보험사를 상대로 피해자들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업무를 해왔습니다. 손해배상 기준에 대한 법리적인 개념 해석을 두고 2~3년 동안 해외 재보험사와 소통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습니다. 결국 제조사의 과실이 인정됐고 국가 차원에서도 손해배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제조사에 별도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 그 보상 금액을 평가하는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사건입니다. 역량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2000년에 1종 손해사정사를 취득해 신체와 재물 손해사정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손해사정사가 된 뒤에도 부동산 PF 관련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환경 관련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대기환경기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대외적 지위 상승, 조직 내 자존감 상승, 금전적 보상, 퇴직의 연장 등의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손해사정사로서 성공하려면 어떤 것이 중요할까요 자신의 전문분야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환경 분야 중에서도 대기 분야가 유망하고,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판단해 대기 환경 기사 자격증을 딴 것처럼 말이죠. 손해사정사라는 자격은 건물로 비유하자면 기틀을 다진 것이고, 그 바탕에 빌딩을 지을지, 주택을 지을지, 그 공간을 공터로 남길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손해사정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손해사정사가 맡은 분야별로도 업무 특성이 카멜레온처럼 다릅니다. 재물 손해사정사들은 심도 있게 조사하고 꼼꼼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법적 기준에 따라 보험료를 객관적으로 산정, 분석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화재 현장을 예로 들면, 현장에 가서 불에 타고 남은 잔재나 건물의 도면을 보고 손해액을 평가하는 등의 엔지니어적인 자질이 있어야 해요. 신체 손해사정 분야는 의학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치료 정도를 파악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설득하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차량 손해사정사의 경우 수리 내용이 적절한 수준인지 판단하고 시시각각 발생하는 자동차 사고를 빠르게 처리하는 순발력과 동시에 여러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개인의 성격과 능력에 따라 어떤 분야의 손해사정사가 될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맡은 일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드는 집념과 끈기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손해사정사를 하다 보면 직업상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해사정사는 의심하고 증명하고 충분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보험금을 산정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해사정서라는 객관적인 문서를 교부하고, 증빙자료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이가 선정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고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기억에 남는 환경 사건이 있으신가요 비가 많이 와서 폐유를 저장하는 시설의 폐유가 유출된 적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두통을 호소하고 구역질을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죠. 하지만 폐유의 휘발성 물질이 사라진 후 독성 물질이 없는 것으로 나왔고, 피해자들 또한 피해를 입증하지 못해 보상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피해의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더라도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유해물질 노출로 질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노출 정도 및 시간 등을 고려한 일정한 보상기준을 마련해 배상금을 정액으로 지급하는 식으로 보험금 산정 법규정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해사정사의 미래 전망은 어떤가요 ‘인공지능이 과연 손해사정 업무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선행돼야 한 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이 손해사정사 의 업무를 대체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피해가 발생한 현장조사나 관계자들과 의 대면 면담, 산정 결과에 대한 피해자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 등을 고려한다면, 손해사정사라는 직업의 미래 전망은 낙관적이라고 봅니다.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손해사정사는 돈과 관련된 업무니까 그 결과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항상 있거든요. ‘보상이 적다, 왜 보상을 제대로 안하냐’ 하는 항의 전화를 받을 때도 있죠.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손해사정 업무에 관심이 있고, 자격증을 소지한 후배님들은 우리 회사에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영합니다. (Tips for you) 손해사정사는 보험사고 발생 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손해액과 보험금을 산정하는 전문직이다. 피해자와 보험 회사 간에 체결된 보험 계약 약관을 분석하고, 보험 처리 관례나 판례 조사, 보험가입자의 보상 청구의 타당성과 절차상의 문제점을 확인하는 역할도 한다. 손해사정사는 금융감독원에서 실시하는 국가공인자격증으로, 보험개발원이 위탁받아 시행한다. 손해사정사가 되려면 손해사정사 시험에 합격한 후 6개월의 수습과정을 거친 후 금융감독원에 등록해야 한다. 업무 형태에 따라 보험사에 소속된 손해사정사와 손해사정 법인이나 사무소를 개업한 독립손해사정사로 분류한다. 업무영역에 따라서는 재물손해사정사, 차량손해사정사, 신체손해사정사로 구분하며, 관련 자격증 전부를 취득할 경우 종합손해사정사로 근무할 수 있다. 4~5년 실무경험을 쌓은 손해사정사는 평균 5천만 원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능력에 따라 억대 연봉을 받기도 한다. 정년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의 보험시장 규모는 꾸준히 커지고 있는 데다 보험 관련 분쟁이 많아 미래 전망도 밝고 수요도 높다.
208호 고서정 2024-04-27 15:36
“속기사를 최고로 대우해 주는 법인 만들었어요”
‘ 속기사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으면 내가 속기법인을 만들어 속기사를 최고로 대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연예인을 닮은 화려한 외모에 활짝 웃는 얼굴,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38세의 방지원 대표. 겉으로 보기엔 귀하게 자라 고생도 안 했을 것 같지만, 15세 때부터 혼자의 힘으로 용돈을 벌면서 삶의 무수한 질곡을 겪어낸 내공의 소유자다. 아침 6시면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는 성실함을 갖춘 그녀는 중3 딸을 둔 워킹맘인 동시에 월 매출 3천만 원을 달성한 속기법인 대표다. 법조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5년 홀로 속기 사무실을 차렸을 때는 1평 크기였지만 지금은 서초동 한복판 35평으로 넓어졌다. 관리하는 고객만 500명에 달한다. 소송 등을 위해 녹음한 파일의 스크립트가 필요한 변호사들이 주요 고객이다. 2013년 속기사가 된 뒤 속기협회에서 일하다 2015년 속기법인을 만든 뒤 8년 만인 지난해 월매출 3천만 원을 달성했다. 월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서초동에 사무실을 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또 이뤄낸 그녀를 만나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 방송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아직 졸업하지는 못했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속기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15세 때부터 족발집 등에서 일하며 용돈을 벌었고, 마트 캐셔, 내레이터 모델, 백화점 판매원 등 서비스 업종에서 주로 일했어요. 그래선지 따뜻한 곳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21세에 결혼했는데, 임신한 뒤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공무원이 너무 하고 싶었죠. 속기사는 필기시험을 거치지 않고 실기 위주로 딸 수 있는 데다가 법원, 국회 등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해서 속기사에 도전하게 됐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속기사 공부를 시작했을 때 딸이 세 살이었어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오후 3시부터 시간이 나서 그때부터 공부할 수 있었죠. 속기협회를 찾아가 상담도 하고 키보드를 구입해 하루 1시간 이상 온라인으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험장에 가면 긴장해서 손이 떨려서 점수가 낮게 나와 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죠. 사무실을 직접 개원한 뒤로는 야근을 많이 해서 딸이 초등학생일 때 학원을 많이 보낼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영업왕이신데 거래처를 뚫어내는 비법이 있나요 딱히 비결은 없고요. 제 이름이 방지원이라서 이름을 알릴 겸 제 이름에 있는 ‘방’과 닮은 빵을 돌려보라고 어떤 변호사님이 말씀해주셨어요. 거기서 착안해 빵을 돌리면서 고객을 유치했죠. 보통 저는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한 사무실을 최소 세 번은 방문하는데요, 보통 기존 거래처가 있기에 처음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했어요. 처음 가서 빵을 돌리면 잡상인 취급을 하기도 하고, 두 번째 가면 조금 좋아하시고, 세 번째 가면 미안해하시면서 일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단팥빵을 하루에 5만 원어치씩 사서 여러 건물을 돌며 고객을 유치하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마이너스 통장에, 알바비를 주고 나면 남는 돈이 없던 때였죠. 속기법인을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인가요 원래는 속기사 자격증 공부를 한 뒤 합격과 동시에 취업이 됐는데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속기사에 대한 복지나 처우가 좋지도 않았고요. 그때 ‘속기사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으면 내가 속기법인을 만들어서 속기사를 최고로 대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당신들이 나를 대우하지 않으면, 내가 만들어서 대우를 해주겠다는 생각이었죠. 혼자 사업하는 게 두렵지 않으셨나요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서 두렵지 않았어요. 딸을 잘 키우고 싶었고, 내 힘으로 돈을 많이 벌고, 일어서고 싶었거든요. 아르바이트 직원 월급을 줘야 하기도 했고요. 딸이 너무 소중하고, 귀했기 때문에 도전했습니다. 물론 두려움이 항상 있긴 했어요. 하지만 모아둔 돈을 모두 다 까먹으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할 시간에 나가서 빵을 더 돌렸던 거죠.(웃음) 성공의 비결이 있을까요 저는 꾸준함, 그냥 하나만 계속 꾸준히 합니다. 실패하든 뭐가 되든 계속해요. 특히 저는 말한 건 계속 지킵니다. 작은 사무실에서 큰 사무실로 넓혀가자고 직원들에게 얘길 했고, 지켰고, 또 직원들 급여를 높여주겠다 약속했고, 지켰어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저는 주변에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하는 편이고, 또 그렇게 말한 걸 이뤄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직원들을 최고로 대우하겠다는 약속은 지키고 있나요 네. 1명이 나가면 2명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우했기 때문에 처음 창립 때 빵을 같이 돌리던 맴버들과 계속 같이 일하고 있어요. 5인 미만이지만 직원들을 위해 육아휴직을 시행하고 있고, 유연근무제에다 야근은 하지 않는 근무 환경을 유지하고 있죠. 냉장고에 먹을 것도 항상 가득 채워둡니다. 영업을 제가 맡고 직원들이 내근하면서 업무를 맡아 보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어요. 힘드셨을 때는 없었나요 2021년부터 딸이 사춘기로 힘들어해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매일 매일 엉엉 울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신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간에 쉬면서 운동도 하고 딸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어요. 속기 업무는 많이 들어야 하는 일입니다. 녹음 음질이 좋지 않아서 오랫동안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때면 정말 귀가 많이 아팠죠. 어린 딸애가 조잘조잘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할 때 제가 많이 들어줬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어요. 딸애가 말을 건네면 “미안해, 귀가 너무 아파서 지금 들어줄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그게 참 가슴이 아팠어요. 경력단절 등으로 인생 2막을 도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할 수 있어요! 엄마는 누구보다 강하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속기법인을 프랜차이즈화하고 싶어요. 부산, 대전, 대구, 수원 등 전국에 지점을 내고 싶고, 유튜브를 통해 속기사 창업 등에 대한 노하우를 담은 강의 콘텐츠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를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면서 ‘방지원’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거죠. (Tips for you) 속기사란, 각 기관의「기록물관리법」 규정에서 정한 속기로 기록유지가 필요한 국회, 지방의회, 법원, 행정부, 방송, 일반기업 등의 각종 회의, 토론회 등의 발언 내용을 신속 정확하게 기록하는 직업이다. 속기사가 되는 데는 필기시험은 따로 없다. 실기시험은 급수에 따라 다른데 1급 기준으로 연설체 1천650자, 논설체 1천500자를 5분 안에 쳐야 한다. 정확도가 90% 이상이라야 합격이다. 한글 속기 자격증은 실기로만 이뤄져 있는 데다 빠르게 법원, 국회 등에서 일할 수 있으며, 프리랜서로도 활동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실기시험만으로 공무원이 되고 싶거나 ‘N잡’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특히 주부들도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다. 타자를 빨리 치는 능력이 중요하고, 나이 제한이 없어 인기가 많다. 속기용 키보드는 따로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인 카스와 소리자바다. 속기사가 되려면 자신에게 맞는 키보드부터 골라야 한다. 한글속기 1·2·3급 등의 자격증이 있으며,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급한다.
206호 고서정 2024-04-05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