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학과에 27년 재직한 이영 교수(일본학과)의 정년퇴임 기념식이 지난 8월 29일 방송대 본관 3층 소강당에서 가족과 동료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은 △약력 소개(최윤경 교무처장) △총장 인사 △재직 기념패 전달 및 꽃다발 수여·명예교수 추대 △감사 인사(사공환 교수) △고별 강연 △ 동료 교수들의 감사패 전달 △기념촬영 △다과 순으로 진행됐다.


고성환 총장은 인사말에서 “이영 교수는 연구실을 지키면서 연구와 대학원생·학부생 교육에 전념하셨고, 훌륭한 연구 업적도 많이 남기셨다. 무엇보다 일본학과 창설 멤버로 학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퇴직 이후에도 영원한 방송대인으로 아름답게 지내시길 기원한다”라고 격려와 감사를 전했다.


사공환 교수는 이영 교수와 함께 한 20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이 교수님께서는 1997년 7월에 일본학과가 만들어지면서부터 함께 하면서. 지역학과 어문학과로서 일본학과가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하셨다. 늘 연구실을 지키셨고, 학문적·인격적으로도 성숙한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셨다. 퇴임 이후에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길 기원한다”라고 일본학과 교수들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공환 교수의 감사 인사에 화답하듯 고별 강연에 나선 이영 교수는 방송대 부임 시절부터 문제의식을 지녔던 고려말 왜구의 실체에 관한 연구를 소개했다. 고별 강연의 주제는 「왜구의 소년 대장 아지발도(阿只拔都)의 정체(正體)」였다.


이영 교수는 “2005~6년, 연구년으로 1년 동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 체재할 때, 사료 하나를 발견했다. 왜구의 실체를 새롭게 규명할 수 있는 자료였다. 이후 2024년 정년까지 「경신년 왜구=다카기 아마쿠사의 남조계 수군」과 「왜구의 사령관 아지발도=이쿠라노미야(伊倉宮)」를 논증하겠다고 결심했다”라면서 왜 고별 강연의 주제를 왜구로 잡았는지를 설명했다.


고려말 왜구들은 내륙 일대까지 빈번히 침략해 노략질을 일삼았는데, 일본 학계는 이들 왜구가 ‘고려인’ 등으로 구성됐다고 주장해 왔다. 이 교수가 주목한 것은 『고려사』에 왜국의 실체를 ‘규슈의 반란 세력’이었다고 서술한 대목이다.


일본에서는 이들 규슈의 반란 세력을 남북조 내란기 당시 남조의 천황에 대해 충성을 바친 무사(정서부)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남북조 내란의 일방이었던 남조를 정통성이 있는 조정으로 내세웠으며, 남조의 무사를 충신으로 받들어왔다. 그런데 『고려사』의 기술에 따르면, 이들 충성스러운 무사들이 바로 ‘왜구’의 실체가 된다.


이영 교수는 “조선의 젊은이들을 대륙 침략의 첨병으로 동원하려고 했던 일제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왜구=남조의 무사’라고 하는 등식의 성립은 막아야 했다”라고 지적하면서, 소년 아지발도가 단순한 왜구가 아니라 일본 황족이자 병법에 능통하고 전쟁에 능한 자로서, 군부대를 통솔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일본 남조의 정규 군사집단이 왜구의 실체라는 분석이다.


정년퇴임 기념식에서 ‘감사하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에 이영 교수가 붙들고 늘어진 것은 단순한 왜구의 정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온몸으로 일본제국주의가 남긴 한국사 왜곡과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는 사료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고자 했다. 이날 정년퇴임 기념식이 눈길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