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 ‘워라밸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 잡을까?” 근로시간 적절히 단축하면 지식 노동의 생산성 증가 장기간 노동은 뇌 영역 손상 야기, 최적의 업무 효율성 위해 휴식 늘려야 주 4일제는 일종의 인센티브이자 출산율 저하와 기후 변화의 대응책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주 4.5일제는 주 4일제로의 이행을 고려한 과도기적 제도로서, 많은 국가가 근로시간 단축을 검토하거나 법제화하고 있는 전 세계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계의 요구는 수용한 반면 재계의 이익에는 반하는 급진적 정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국제적 규모의 주 4일제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끈 조 오코너(Joe O’Connor)의 견해는 다르다. 주 4일제는 노동자의 워라밸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과 증진에도 유익한 제도임이 입증됐으므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워크 타임 레볼루션의 CEO 조 오코너가 저널리스트인 재러드 린드존(Jared Lindzon)과 함께 쓴 『주 4일제가 온다: 왜 이제 더 짧게 일해야 하는가』(구세희 옮김, 지식의날개, 2026)에서 제시한 ‘더 짧게 일하고 더 큰 성과를 얻는 길’에 대해 살펴본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실험으로 증명한 주 4일제의 필요성 이 책의 대표 저자 조 오코너는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2020년대의 국내외 언론 보도에 빠짐없이 언급돼온 인물이다. 아일랜드 최대의 노동조합인 포르사의 연구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그는 스웨덴,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등이 2010년대 중후반에 주 4일제를 적용해 긍정적 성과를 거둔 점에 착안해 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을 기획한다. 2021~2022년에 영국의 61개, 북미의 41개 기업과 함께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뤄진 몇몇 기업을 살펴보면, 먼저 세계적인 소비재 생산 기업 유니레버의 뉴질랜드 지사는 ‘급여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행해 매출 성장과 사업 목표 달성을 이뤘다. 캐나다 밴쿠버의 법무법인 와이로는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변호사들의 잦은 퇴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 4일, 하루 9시간의 36시간 근무제를 시행해 퇴사율을 극적으로 낮추고 유능한 변호사들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람보르기니의 생산 부서는 2023년부터 주 4일제를 전면 시행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재팬은 2019년 주 4일제를 도입한 후 오히려 생산성이 40퍼센트 향상됐다. 세계 최대의 크라우드 펀딩 기업인 킥스타터, 다국적 회계법인 그랜트 손튼 역시 근무일을 줄여 긍정적 성과를 얻었다. 이러한 기업 대부분은 근로시간 단축 후에도 생산성이 향상되거나 유지됐다. 오코너는 OECD 회원국들의 연평균 근로시간과 1인당 GDP가 반비례하는 경향도 주 4일제의 정당성을 방증한다고 본다. 일부 예외에 해당하는 미국, 한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도 근로시간 단축이 상대적으로 늦어진 것일 뿐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노동은 더 짧아져야 저자는 기업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고 학계의 다양한 연구 결과와 통계 조사를 인용해 설득력을 더한다. 모든 주장의 근본적 전제는 영국의 해군역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이 제안한 ‘파킨슨의 법칙’으로, 업무 수행 속도는 주어진 시간에 비례한다는 게 골자다. 다시 말해, 사람은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업무도 정해진 퇴근 시간까지 질질 끈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등 여러 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노동자는 불필요한 회의, 일과 관련된 잡담, 온라인 쇼핑과 SNS, 일하는 척하기 등 이른바 ‘가짜 노동’으로 총 근로시간의 약 40~60퍼센트를 허비한다. 저자는 이러한 비효율의 근본적 원인을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서 찾았다. 인류 역사 전체의 95퍼센트에 달하는 수렵채집 시대의 근로시간은 주당 15시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허용하는 근로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던 셈이다. 농업 발명과 문명 탄생 이후 조금씩 늘어가던 근로시간은 증기기관과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제1~2차 산업혁명기에 주당 100시간까지 폭증했고, 소수 계층의 독점적 이익으로 환원될 잉여 생산을 위해 대다수가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기계가 돼버렸다. 정보화 기술 발달로 지식 노동의 비중이 커지고 휴무 제도가 정립되면서 주 5일제가 보편화됐지만, 오코너는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것조차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생성형 AI 등의 발달로 한 사람의 노동자가 처리하는 업무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뇌과학이나 긍정심리학 등의 연구 결과도 동원한다. ‘주 52시간 이상의 노동은 감정 조절과 실행 기능을 관장하는 뇌 영역의 손상을 야기’하고, ‘뇌가 최상의 집중력과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더 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생산성 향상이라는 성과를 얻은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뇌는 생각보다 게으르고 지구력이 약한 것 같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병가, 결근, 건강보험, 육아 등의 비용이 크게 감소하는 반면, 남성의 가사 참여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외에도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여러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은 출산율 저하 극복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 4일제는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 변화의 대응책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미국, 스웨덴, 스페인 등의 연구에선 근로시간 단축 시 에너지 소모량과 이산화탄소 및 아산화질소 배출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4일제 실현 가이드 오코너는 독자들에게 주 4일제 도입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그러한 혁신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낼 것을 주문하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설득의 3요소로 알려진 에토스(신뢰성), 페이소스(감정), 로고스(논리와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 ‘주 4일제 도입으로 직원들의 워라밸과 기후 변화 대응을 중시하는 진취적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다’(페이소스), ‘실질임금 정체 국면에서 근로시간 단축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인센티브다’(로고스), ‘주 4일제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수많은 사례와 연구 결과가 여기 있으니 살펴보라’(에토스) 같은 식으로 상사나 동료를 하나둘 포섭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코너 등은 일부 기업의 실패 사례까지 분석한 뒤 주 4일제 성공을 위한 요건을 정리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합의,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상호 신뢰, 무의미한 회의 등 불필요한 업무 폐지, AI 등 생산성 향상 수단의 수용,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 중심의 평가 등이 그것이다. 개개인의 업무 효율성을 재검토하고 관료제의 구태를 척결하는 등 노사 양측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비판의 여지는 없는가 관련 제도의 변천사를 고찰해 기존의 주 5일제 역시 일종의 관습에 불과함을 밝히고, 근로시간 단축의 수많은 성공 사례를 제시하며 다양한 학문 영역의 연구 결과까지 소개한 오코너의 논리가 워낙 전방위적이고 촘촘해 회의적인 독자들도 반론을 제시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일요일만 쉬던 20세기 초 미국에서 주 5일제의 법제화를 이끈 주역 중 하나가 헨리 포드였고, 그 이유는 휴일을 늘려 대중의 자동차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노예제 폐지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산업 구조의 변화였던 것처럼, ‘더 인간적인 노동’을 가능케 하는 진정한 원동력은 이념과 인도주의가 아니라 기술 발달과 경제적 이익일지 모른다. 근무시간을 20퍼센트 줄인다는 발상에 본능적으로 반발하는 측에서도, 그러한 변화로 기업과 국가의 생산성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입장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오코너가 AI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를 취한다는 점엔 의구심이 든다. 이 책에도 소개된 버니 샌더스 미 연방상원의원은 오코너처럼 주 4일제 옹호자이지만 잘 알려진 AI 반대론자이기도 하다. 반대의 이유 중 하나는 ‘AI 도입으로 늘어난 이익은 거대 자본이 독점할 것이므로 빈부 격차는 더 커지고 실업률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샌더스 외에도 수많은 석학과 기업인들이 AI에 대한 의존이 인류에게 파국을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고, 그 경고의 내용도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챗GPT에게 오코너와 샌더스의 상반된 견해 중 무엇이 옳은지 물었고, AI는 이렇게 대답했다. “AI로 생산성을 크게 높인 후의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야. ‘근로시간을 줄인다.’ ‘근로시간은 그대로 두고 임금을 올린다.’ ‘근로시간과 임금은 그대로 둔 채 늘어난 이익의 대부분을 자본이 가져간다.’ 그 셋 중 어떤 길을 선택할지, 그리고 AI가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기술 발달이 아니라 인간 사회와 정치, 시민의 결정에 달려있어.”
커버스토리
“‘귀신 잡는 해병’, 방송대라는 ‘인생 출발역’을 만나다” 이재돈 동문은 30년 동안 조국을 위해 헌신해 온 정통 군인이다. 해군사관학교 18기로 임관해 1993년 대한민국 해병대 제1사단장을 끝으로 전역한 그는 군의 요직과 최전방을 두루 거치며 국가 안보의 최일선에서 청춘을 바쳤다. 흥미롭게도 그가 군 생활의 막바지와 전역 이후에 이르기까지 가장 치열하게 몰두했던 화두는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기자가 이 동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해군학사장교중앙회(OCS)’ 명예회장인 김종진 경영학과 명예교수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김 명예교수는 방송대학보 〈KNOU위클리〉를 통해 학우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동문이 있다고 말하면서, 2025년 출간한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전 5권)라는 그의 저서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 명예교수의 해군장교 교육생 시절 훈육관(중대장)이었다. 자신의 ‘중대장님’이 방송대를 졸업했다는 소식을 훗날에서야 알게 된 김 명예교수는 “신국판 3천500쪽 분량의 방대한 중국 연구서를 내놓은 ‘중대장님’의 한결같은 열정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방송대 공부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길을 열어간 이재돈 장군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무더위가 시작된 6월 29일, 이재돈 동문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30여 년 만에 방송대 대학본부를 찾았다. 열린관 1층 카페에서 80대 중반의 ‘노병(老兵)’이자 ‘중국 연구자’인 그를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저는 방송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 즉 ‘학자이자 전략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대는 제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가장 화려한 출발역이었습니다. 방송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제 인생에서 해병대 사단장을 지낸 일 못지않게 커다란 자부심을 줍니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이재돈 동문은 유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겪었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월남전에 두 번이나 참전했다. 일제 강점기 끝자락에서 귀동냥했던 중국은 ‘대국’이었고, 전쟁 통에는 ‘무찌르자 오랑캐’가 됐다. 소년 시절의 이 ‘중국 인식’은 그의 뇌리 한편에 깊이 새겨졌고, 늘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남게 됐다. 이 동문은 군 생활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치를 끊임없이 복기하며, 주변 강대국들의 거대한 흐름을 읽지 못하면 진정한 국가 안보를 실현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30년 동안 군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해병대 사단장의 중책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군의 최고위 지휘관으로 올라갈수록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는 단순히 우리 내부의 국방력 강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특히 우리와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대륙, 중국은 우리 안보의 핵심 변수이자 거대한 산이었습니다.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들의 군사 전략과 대륙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 역시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군 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학문적으로 철저히 해부해 보겠다고 다짐한 강력한 동기이자 배경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문헌으로만 중국을 이해하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1993년 전역 후 군의 배려와 스스로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중국 현지로 직접 건너가 온몸으로 대륙의 공기를 호흡하며 연구할 기회를 거머쥐게 됐다. 1992년 8월 24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중국과 국교가 수립된 뒤 1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의 고위급 장교 출신으로서 ‘공산주의의 때가 가시지 않은’ 중국 땅을 밟은 최초의 사례였다. 상하이 푸단대에서 방송대 중어중문학과로 이재돈 동문이 중국을 공부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중국 상하이에 있는 명문 사학, 푸단대학이었다. 아내와 함께 떠난 중국 유학길이었다. 이 유학 기간은 그가 단순한 야전 군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국제 정치와 대륙 전략을 아우르는 전략가로서 안목을 넓히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푸단대학 국제학원에서 중국어 과정을 수료하며 지독하게 학업에 매달린 시간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줬다. 언어 장벽과 늦은 나이의 학업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그는 군인 특유의 악바리 정신으로 버텼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상하이 푸단대학에 발을 디뎠을 때, 솔직히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30년 동안 총을 잡고 군대를 지휘하던 손으로 다시 펜을 쥐고 낯선 중국어 성조를 따라 부르려니 눈앞이 아찔하더군요. 하지만 ‘내가 여기서 중국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안보 전략 한 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버텼죠. 푸단대에서 보낸 시간은 제게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과정을 넘어섰습니다. 중국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중화(中華)의 시각, 그들의 역사적 자부심,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경제적·군사적 역동성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대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먼저 품어야 한다는 값진 진리를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푸단대학에서의 공부는 계획했던 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령 제한 문제로 그의 공부는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푸단대학에서의 치열했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배움에 대한 그의 갈증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현지에서 익힌 중국어와 지식은 단편적이고 경험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경계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그의 뇌리에 ‘방송대’가 스쳤다. 이 동문은 더욱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학문적 뼈대를 세우기 위해 중어중문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도 아내인 장옥규 동문과 함께였다. 주변에서는 이미 군에서 장성까지 지내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그가 왜 다시 원격 대학인 방송대에 입학해 고된 학업을 이어가려 하는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문에게 방송대는 자신의 지식을 완성할 최고의 학문적 도장이었다. “중국 현지 유학을 다녀왔고 군에서도 최고위직을 지냈지만, 제 안의 학문적 갈증은 쉬 채워지지 않더군요. 현지에서 배운 지식들이 구슬이라면, 이를 보배로 만들기 위해 실처럼 단단하게 꿰어줄 체계적인 이론과 커리큘럼이 절실했어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방송대였어요. 방송대 교과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방대했습니다. 기초 어학부터 시작해 중국의 고전문학, 현대문학, 그리고 그들의 깊은 사상과 문화까지 총망라돼 있었죠.” 해병대 장군 출신인 이 동문에게도 매 학기 쏟아지는 교재와 방송 강의를 따라가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밤새 돋보기를 쓰고 교재를 읽으며 과제물을 준비할 때는 해병대 훈련 못지않은 고통과 희열이 교차했다. 이런 고통과 희열을 교차한 덕에 그는 “방송대에서의 혹독한 학업이 있었기에, 비로소 제가 가졌던 중국에 대한 단편적 지식들이 하나의 거대한 학문적 체계로 완성될 수 있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대륙전략연구소 설립과 저술 활동 방송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며 학문적 토대를 완벽하게 구축한 이재돈 동문은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사단법인 대륙전략연구소를 창설하고 초대 소장으로 취임해 평생 축적한 군사 안보 역량과 중국학 지식을 융합하기 시작했다. 연구소 설립 이후 그는 놀라울 정도로 방대하고 깊이 있는 저술 활동에도 뛰어들었다. 2001년 『지앙수와이(將帥)』를 시작으로, 2025년에는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전 5권)를 선보였는데, 이 책은 대륙을 뒤흔든 역사적 인물 100인을 분석하고 동북아 정세를 진단하는 총서로 손색이 없다. 30년 군 생활과 방송대에서 다진 학문적 저력이 폭발적인 집필 에너지로 승화된 결과였다. “제가 대륙전략연구소를 만들고 펜이 닳도록 책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 후배들과 대한민국에 ‘중국을 보는 올바른 나침반’을 쥐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방송대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학, 인간을 심도 있게 공부했기에 중국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내면과 사상적 배경을 깊이 파헤칠 수 있었어요.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 등의 저술 작업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죠. 수많은 사료를 고증하고 분석하는 지루한 싸움이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저를 지탱해 준 것은 방송대 시절 혼자 외롭게 책상 앞을 지키며 길렀던 학업적 끈기와 해병대의 정신력이었습니다. 제가 남긴 기록들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대륙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귀중한 전략적 자산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는 이 동문의 경륜과 식견이 녹아든 결과물이지만,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아내인 장옥규 동문의 역할도 컸다. 원고 타이핑에서부터 초고를 읽고 논평을 덧붙여주는 일까지가 온갖 일을 도맡았다. 3천500쪽 분량 전체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여담이지만, 장 동문은 “방대한 저술 작업에 도움을 줬지만, 중어중문학과 재학 시절 학과 공부나 시험과 관련해서는 남편으로부터 손톱만큼도 도움을 받지 않았어요. 둘 다 자신의 공부를 완주했을 뿐이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방송대’, 학위 그 이상의 의미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재돈 동문은 자신에게 방송대가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감회와 애정을 쏟아냈다. 그에게 방송대는 단순히 졸업장 하나를 더해준 학교가 아니라, “인생 2막의 위대한 시작점이자 인생의 외연을 무한히 넓혀준 지혜의 요람”이었다. 그는 방송대를 통해 배움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도, 나이의 많고 적음도 없다는 평생학습의 참된 가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은 흔히 군 장성 출신이라고 하면 퇴임 후에 안락한 노후를 보내거나 과거의 명예에 기대어 살아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방송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 즉 ‘학자이자 전략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대는 제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가장 화려한 출발역이었습니다. 30년 군 생활이 제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다면, 방송대에서의 시간은 제 영혼과 지성을 풍요롭게 채워준 시간이었습니다. 방송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제 인생에서 해병대 사단장을 지낸 것 못지않게 커다란 자부심을 줍니다. 한국 최고의 전략 연구소로 자리잡은 대륙전략연구소를 설립,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지앙수아』에 이어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를 출판할 수 있었던 데도 방송대에서 익히고 배운 경험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배움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그만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배움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청춘입니다.” 월남전에 두 번이나 참전해서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기에, 다시는 이 나라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품고 국민에게 전쟁의 비극과 참담함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80대 중반의 이재돈 동문. 그의 신념과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동문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마오쩌둥 시기까지 중국의 역대 전쟁시를 모아 곧 책으로 출판하겠다고 귀띔했다.
사람과 삶
“‘Nice’가 ‘Nice’ 했다, 비움과 채움의 역설” 유연성에서 출발한 ‘nice’의 여정이 세상의 온갖 분별과 까다로움을 흡수해 가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개척해 갈지 궁금해지는 시절이다. 오늘날 긍정적인 의미나 칭찬을 전달할 때 아주 흔하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영어 단어인 ‘nice’는 가장 극적으로 이미지를 ‘세탁(!)’하고 화려하게 변신한 단어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13세기 후반, ‘ne’(not)와 ‘scire’(to know: 이 어근은 science[앎, 과학]와 통한다)가 결합된 라틴어 ‘nescius’에 뿌리를 두고 출발한 ‘nice’는 ‘무지한’, ‘어리석은’, ‘생각 없는’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nice’는, 비록 무지했지만 설치지는 않고 조신했기 때문인지, 14~15세기에는 ‘게으르면서’ ‘소심한’ 모습을 띠는 한편, 남에게 무슨 설득이 되기에는 머리 자체가 모자라지만 저 나름의 고집이 없지는 않았던지 제법 ‘까다롭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쉽게 ‘Yes!’하지 않는 까다로움이 꽤 길이 들고 단련되면서 16~17세기에는 이제 듣기 싫은 힐난이 아니라 다소 중립적으로 ‘정밀하다’, ‘세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꽤나 흥미로운 반전을 이룩했다. 그래 이대로 더 가보는 거야. 맞아, 괜히 먼저 가볍게 나서지만 않으면 중간 이상은 가는 법! 18~19세기 ‘nice’에게도 신분 상승의 새 세상이 열려, ‘고상하다’, ‘예의 바르다’, ‘품격 있다’는 말까지 듣게 됐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월이 끝난 것인가. 오늘날 ‘좋은’, ‘친절한’, ‘멋진’…. ‘nice’의 대중적이고 긍정적인 인기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심지어, 오늘도 땀 흘리는 구장, 혹은 저기 푸른 들판, 시원스레 쭉 뻗어가는 공을 보면서도, ‘나이스 샷!’ 이제는 너무 두루 나이스여서 ‘더 나이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책상은 책상이고, 산은 산이지, 당황스럽게 갑자기 걸상이 되고 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단어들이 이렇게 천지개벽하(려들)면 그것이야말로 혼돈일 것이다. ‘nice’의 중심에 놓인 추상적 가치판단이라는 유연성이, 시대의 사회적 환경과 언어사용자 집단이 연루된 ‘구조적 우연’과 조우해 찬란한 변화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것이리라. 혹시, ‘nice’는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그냥 멈춰있었을 뿐인데, 이 모든 과정이 어쩌다 하루에 오직 두 번 정확하게 맞춘 의외의 경이로움에 기댄 허장성세였을까. 바보는 귀신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그래도, 언제나 정확할 수는 없어도 매 순간 그 비슷한 언저리를 가리키기 위해 손발 땀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변화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nice’는 추세적으로 살기보다 언제나 어떤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바보처럼 우직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기본을 지켜왔을 뿐, 변화해 온 것은 세상이었을까? ‘nice’는 억견과 계략, 파당적이고 주관적인 분별심, 온갖 그럴듯한 얄팍한 알음알이가 횡행하는 시절들을 관통하며, 아무것도 몰라 귀신도 어쩌지 못할 까다롭기 그지없는 바보가 되어, 재주부리는 기교와 계략에 흔들림 없이 세상의 찌든 알음알이를 물리치며 ‘몰라’, ‘모를 뿐’, ‘이뭣고’의 태도로 우직하게 걸어왔기에 오늘의 찬란함을 맞이한 것일까? 모르지, 오래전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던 단어가 지금 이렇게 두루 좋게 들리기만 하면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앞둔 것일지도…. 자신의 무지(無知)를 인정하며 텅 빈 유연성에서 출발한 ‘nice’의 여정이 세상의 온갖 분별과 까다로움을 흡수해 가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개척해 갈지 궁금해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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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전국연합네트워크, 600여 명 참석해 성황리 종료” 사회복지학과 연합학생회(회장 오은지)가 지난 7월 4일부터 5일까지 경기 화성 라비돌리조트에서 전국연합네트워크 행사를 개최했다. ‘사회적 위험에 함께 맞서라: 상상마실과 권리형 실천’을 주제로 총 6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행사는 경기, 서울, 인천의 지역대학 학생회가 주관했다. 박미진 학과장과 유범상·이현숙·김영애·인지훈·박정민·서정원 교수, 유선영·조현주 조교, 윤향숙 제8대 연합회장 등 전임 회장단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고, 각 지역대학과 학습관에서 먼 길을 달려온 총 600여 명의 학우들이 함께했다. 관점과 철학의 공유, 함께하는 실천 오후 2시경 오은지 연합회장의 개회 선언으로 1부 행사가 시작됐으며, 지역대학별 기수 입장과 제9대 연합회장단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고 향하는 곳이 새로운 길이 되도록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를 그린 학과 노래 「호모 폴리티쿠스」를 제창했다. 박미진 학과장은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학우들을 보니 사회복지학과의 위상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참석한 모든 분들이 하나 되는 뜻깊은 행사가 되길 기원한다”라는 격려사를 남겼고, 유범상 교수는 “사회복지학과는 질문을 통해 기존의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고 동료 학우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고민함으로써 실천에 이르러야 한다. 1박 2일 동안 그 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영애 교수는 “즐거운 시간인 동시에 공통의 지향점과 철학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기원했고, 등장과 함께 학우들의 환호성 세례를 받은 인지훈 교수는 “이렇게 반가워해주시니 한편으론 제가 학우 여러분에게 낯선 사람인 것 같다. 학우들과 자주 만나 매일 보는 배우자처럼 더 친숙해져서 더 이상 환호성이 안 나오도록 하겠다”라는 위트 넘치는 인사를 건넸다. 13개 지역대학 참석자들은 교수진과 함께한 단체 사진 촬영을 마치고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행사 취지 반영한 연극과 토론 2부는 오후 4시경 김영애 교수의 ‘방학동네’ 소개로 시작했다. 방학동네의 2대 소장인 김 교수는 “사회복지학과에서의 배움이 이론적 학습으로 끝나지 않고, 졸업 후에도 각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함께 실천하고 봉사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방송대의 학습하는 동료들의 네트워크(방학동네)’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유희정 사무처장은 “학과의 모토인 ‘상상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상상에서 더 나아가 실천에 이르러야 한다. 방학동네라는 실천 네트워크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 바란다”라며 회원 가입과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했다. 다음 순서는 서울·경기·인천 학우들이 함께 공연한 연극 「상상마실: 하나의 그림자」였다. 이은주 서울학생회장이 연출한 이 연극은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동물들이 차별과 편견에 맞서고, 복지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주장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우화다. 이번 행사엔 조별 토론이 진행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은지 연합회장은 “올해 처음 시도한 토론 시간엔 ‘사회적 위험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의 과제로 전환하는 힘은 연대’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행사의 주체로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발언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오 회장의 언급처럼, 총 45개조의 토론 팀엔 각 지역대학의 학우들이 고르게 분산돼 비교적 낯선 지역 학우들과 친목을 다지는 동시에 지역별 복지 현안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는 장이 됐다. 교수진과 학우들이 하나 된 레크리에이션 3부는 레크리에이션 및 지역별 장기자랑으로 진행됐다. 이은주 회장 등 10여 명이 함께한 서울지역대학 팀은 악동뮤지션의 「소문의 낙원」을 권리형 복지의 이상을 담아 개사한 「시민의 낙원」을 율동과 함께 선보였다. 경남 팀은 전원이 교복을 입은 채 박상철의 「무조건」에 맞춰 파격적인 군무를 자랑했고, 광주·전남 팀은 검정색 티셔츠를 착장하고 태극기를 두른 채 자두의 「아리랑 댄스」 무대로 호응과 폭소를 자아냈다. 대전·충남의 이혜민 학우는 「나는 반딧불」과 「You raise me up」을 플롯으로 연주했고, 강원지역 참가자들은 김혜연의 「토요일 밤에」를, 충북 팀은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익살스러운 복장과 안무를 곁들여 열창했다. 경기지역 학우들은 노인 소외 문제와 사회적 연대를 주제로 「얼어붙은 길 그리고 따뜻한 안전망」 퍼포먼스를 공연해, 행사의 취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줬다. 인지훈·이현숙·김영애·박정민 교수는 각각 「옥경이」, 「보랏빛 향기」, 「널 그리며」, 「내 생에 봄날은」을 불러 학우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기도 했다. 밤 9시경부터는 행사 장소와 객실에서 참석 교수들과 학우들이 화합의 시간을 가졌고, 이튿날 숙소 정리 및 소감 공유 후 해산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된 소통의 장 강원지역 학습국장인 오명선 학우는 “1박 2일 동안 수많은 학우들, 교수님들과 소통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은지 연합회장을 비롯한 주최측이 각 지역 학우들을 세심하게 관리해주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1부 사회를 맡기도 한 이진숙 경기학생회장은 “전국연합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가 경기 화성에서 열린 만큼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노력했다. 뜻깊은 주제에 부합하는 식순으로 진행된 것 같아 보람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오은지 연합회장은 “학우들의 호응이 감사하다. 이전의 전국네트워크가 대체로 듣는 시간이었다면, 올해엔 학우들 모두가 토론 등 각종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서 말하고 행하고 즐기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아 뿌듯하다”라고 밝혔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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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디지털 문해교육 기반 확대”” 방송대(총장 김종오)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원장 김월용, 국평원)과 3일 ‘AI·디지털 문해교육 활성화를 위한 상호 협력 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생성형 AI의 등장과 급격한 디지털 전환 속에서 모든 국민의 AI·디지털 기초 역량을 높이고, 디지털 취약계층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양 기관은 △AI·디지털 문해교육 콘텐츠 공동 개발 및 보급 △소외계층 및 성인 학습자 대상 AI·디지털 교육 기회 확대 △지역 기반 AI·디지털 문해교육 거버넌스 구축 △데이터 기반 문해능력 조사 및 연구 협력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방송대의 전문적인 교육 역량과 전국 13개 지역대학 및 2개의 학습센터, 22개의 시·군 학습관 등 전국 단위 교육 인프라를 활용해 시·도 문해교육센터와 연계한 지역 밀착형 AI·디지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양 기관은 저학력·비문해 고령 성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AI·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하고, 국민의 문해력 향상을 위한 ‘자가 진단 서비스’를 공동 활용하는 등 실질적인 평생교육 복지 실현에 협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문해교사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콘텐츠 개발과 보급에도 힘을 모을 예정이다. 김종오 방송대 총장은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에는 정보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라며 “방송대는 국민 누구나 나이와 지역, 학력과 관계없이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전국적인 교육 인프라와 축적된 원격교육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지털 소외 없는 사회를 위한 평생 디지털 학습 안전망을 구축하고, 국민의 미래 역량 강화에 앞장서겠다”라고 강조했다. 김월용 원장은 “AI와 디지털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일상과 삶의 필수 역량이 되었다”라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AI·디지털 문해교육 기반을 확대하고, 국민 누구나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 학습환경을 조성해 디지털 시민 역량 제고에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협약식에는 김종오 총장, 주경필 기획처장, 김월용 원장, 박종오 고등평생교육본부장, 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 이은주 대외홍보실장 등이 참석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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