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 사랑하기 그리고 ‘그릿’” 성공을 위한 요소인 ‘그릿’(GRIT)은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줄임말로, 장기적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로 풀이된다.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성공이라는 닿기 어렵고 추상적인 목표보다는 소확행,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이들이 더 많아진 것이 현실이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수필집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 소확행을 추구하고,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저축을 통해 40대에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도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성공’의 의미 또한 시대 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방송대 학우들에게 성공은 어떤 것일까?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또 나의 일이 사회에도 보탬이 된다면 이미 성공한 삶 아닐까.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서는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룬 성공한 이들의 비결’을 짚는다. ‘성공’이란 무엇이며,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계획해야 하는지 방송대 학우들과 고민하기 위해서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베스트셀러『그릿(GRIT)』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의 컨설턴트 출신으로 백악관, 세계은행, 포춘 500대 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고액 연봉의 선망받는 직업인 컨설턴트보다는 교사가 천직임을 깨닫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성공에 있어서 재능이나 성적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리학을 공부했고, ‘그릿’을 연구했다. 성공을 위한 요소인 ‘그릿’은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줄임말로, 장기적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로 풀이된다. 책에는 그릿을 키워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그릿은 안에서 밖으로, 즉 개인이 키워갈 수 있으며, 부모, 교사, 멘토 등에 의해서 즉, 밖에서 안으로도 키워나갈 수 있다. 저자는 그릿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설명하면서도, 그릿이 성공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탁월함과 선량함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선량함’을 우선으로 꼽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타인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조사한 연구에서도 어떤 특성들보다 ‘도덕성’이 우선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을 덧붙인다.   당신의 일을 사랑하나요?   성공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오랜 고민 끝에 제 열정을 좇아 불안한 길을 택했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열정이 없다면 그 일을 고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기고가로 2011년부터 매주 성공한 이들 200명을 인터뷰한 헤스터 레이시는 “인터뷰마다 반복해서 성공한 이들이 말했던 한 가지는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는 이야기였어요. ‘나는 정말 행운아죠. 새로운 프로젝트를 얼른 시작하고 싶어요’라고 표현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또는 수입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조사에서 개인적 관심과 일치하는 일을 할 때 직업적 만족감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릿을 키우기 위해서는 첫째, 열정의 대상을 찾고, 둘째, 인내심을 갖고 관심사를 파헤치라고 말한다. 그리고 셋째로, 의식적인 연습을 하라고 말한다. 의식적인 연습을 하다 보면 의식적 노력이 필요 없는 몰입의 순간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의식적인 반복 연습을 할 것을 추천한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말콤 글래드웰 전〈워싱턴포스트〉기자의 ‘1만 시간의 법칙’ 등도 유명하지만, 전문가들이 단순히 양적으로 남들보다 많이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약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며, 도달하지 못한 고난도의 과제에 도전한다는 게 더크워스의 분석이다.   위인과 일반인을 구분 짓는 4가지 특징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들과 일반인을 구별하는 특징이 있을까? 위인전이나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을 보면 범상치 않은 면들이 있다. 미화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면모가 있기도 하지만, 막상 성공의 비결을 정리해 보면 처음 보는 특별한 것은 없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캐서린 콕스는 위인과 일반인을 구분 짓는 4가지 특징을 설명했는데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의지력과 끈기’로 설명할 수 있다. 세세하게 보면 첫째, 멀리 확고한 목표를 두고 일하고, 이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둘째, 단순한 변덕으로 과제를 포기하지 않고, 새로움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며, 셋째, 의지력과 인내심이 강하며 한 번 결정한 사항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결단력이 있고, 넷째, 장애물 앞에서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집요함이다. 그릿과 겹쳐지는 부분들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릿을 갖고 있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타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둔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에 언제나 ‘타인’을 언급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자녀, 고객, 학생이라는 구체적인 대상부터 스포츠, 과학, 사회처럼 추상적인 대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릿을 가진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타인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고와 희생, 실망과 좌절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 외의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그릿의 기초가 되는 강력한 동기가 ‘이타성’이라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의미 있고 타인 중심적 삶을 추구하는 동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대단히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의 목적이 자신보다는 더 큰 세계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자세   방송대 학우들도 새해를 맞으며 모두 멋진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 4월이라니! 계획을 잔뜩 세워뒀지만 달성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다시금 계획을 세우고 집중하면 된다. 실제로 다양한 학생실태조사 데이터를 보면 이맘때쯤이면 세웠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아 우울해지고, 학업도 두려워져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빠진다고 보고됐다. 먼저 졸업한 선배들이나 학과 교수님들은 “한두 달 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처음 가졌던 마음의 결심을 아깝게 만든다. 한 학기, 두 학기 공부하다 보면, 탄력이 붙고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방송대 공부와 생활을 ‘마라톤’,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릿』뿐 아니라 성공의 비결을 다룬 많은 책들은 성공에는 IQ나 능력보다는 꾸준함과 인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고,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나라고 말한다. 흥미롭고 목적이 뚜렷한 목표를 굳건히 지키면서 매일, 몇 주, 몇 해 계속해서 연습하라고 말한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과 7전 8기의 자세는 많은 성공한 이들이 중요한 자질로 꼽는 요소들이다.   오타니의 ‘만다라트’ 계획표   학우들은 어떤 삶의 계획표를 가지고 있을까? 기자 또한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게 훨씬 많다. 많은 이들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계획표 가운데 ‘만다라트’ 계획표라는 게 있다. 만다라트 계획표는 실력과 인성 면에서 균형 잡힌 야구선수 오타니의 계획표로 알려져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다양한 목표들을 위한 세부 계획을 세우는데, 오타니의 만다라트 계획표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오타니는 천문학적인 거액 연봉을 받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이면서도 계획표에 쓰레기 줍기, 물건을 소중히 쓰기 등 사소하지만 바른 생활 습관까지 체크하면서 실천하고 있다. 그는 “운동장에서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누군가가 버린 행운을 줍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커버스토리
“방송대에서 기른 뚝심 … “화순을 제2의 국가정원으로 만들겠다”” 양복을 입었지만,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어림짐작으로도 키는 180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것 같았다. 회의실에는 잘 키운 한국 춘란을 비롯해 다양한 난초가 놓여 있었다. 광주에 있는 숭의실업고등학교 3학년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그길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9세에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54세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천직으로 생각한 농사를 짓다가 전남 도의원을 거쳐 화순군수가 됐다. 1983년 방송대 농학과 전문과정에 학사 1기로 입학해 6년 만에 졸업한 구복규 동문이다. ‘아동·여성·고령 3대 친화도시’를 만들어 가는 구복규 동문을 4월 2일 오후 2시 화순군청에서 만났다. “아동·여성·고령 3대 친화도시는 군민과 함께하는 보편복지의 시작입니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과연 화순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화순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순으로 봄소풍 가자 2024 화순 고인돌 봄꽃축제(4.18~4.29)’라고 적힌 플래카드였다. 활짝 핀 벚꽃 아래 ‘화순 고인돌 봄꽃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마치 꽃잎처럼 반짝거렸다. 구복규 동문이 방송대를 만난 때는 1983년이다. 당시 화순군청 직원 11명과 함께 방송대에 지원해 공부를 시작했다. 화순에서 광주 전남대를 오가면서 출석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구 동문만이 끝까지 완주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중간에 포기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분들은 방송대를 선택한 이상, 처음의 그 결심 그대로 포기하지 말고 완주해 주셨으면 해요. 방송대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신하시면 좋겠어요. ‘농학과 학사 1기 졸업생’이란 자긍심 “사실 공부가 많이 어려웠어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공부 제대로 안 하면 학점을 받을 수가 없었거든요. 5년 과정을 6년 걸려 졸업한 건, 3학점짜리 한 과목 때문인데요. 그거 때문에 방송대 생활을 더 한 거죠.” 구 동문은 최근 화순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대학 농학과 기원제 및 MT에도 초대돼 자신이 농학과 학사 1기 졸업생임을 강조하면서 후배들에게 ‘방송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공부해달라’는 덕담도 건넸다. 그는 ‘방송대 농학과 학사 1기’라는 걸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긍심도 가득 엿보였다, 어디를 가도 자신이 방송대 농학과 학사 1기라는 걸 강조하고, 그 시절 많이 배웠노라고 말한다고 했다. 당시 최종학력이 ‘고졸’이었기에 대학교를 꼭 졸업하고 싶었다. 고교 때도 농업에 관심이 많았고, 농업 기반인 화순군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방송대 농학과 진학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1980년대 중반 방송대에서 공부한다는 건 ‘고난의 순례길’을 가는 행위였다. 그와 함께 입학했던 동료들이 모두 포기한 것을 봐도 그렇다. 그 역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죠. 아무래도 일하면서 하다 보니 공부를 많이 못 하니까 학점을 잘 받을 수 없었어요. 겨우 C, B 학점 정도였죠. 5년제 과정인데 1~2년 차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죠. 그런데 3년째 다니다 보니, 그동안 했던 공부가 아까운 거예요. 겨우 1~2년 고생했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졸업해야지 하는 오기도 생기고, 수업 내용도 쏙쏙 들어오고, 좀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죠. 물론 학점도 A가 늘었어요.(웃음) 그때 계속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뚝심도 기르고 공부한 게 제 삶을 바꾼 동력이 된 거죠.” ‘화순을 새롭게, 군민을 행복하게’ 구복규 동문은 2022년 7월 민선 8기로 제48대 화순군수에 취임했다. ‘화순을 새롭게, 군민을 행복하게’라는 슬로건도 직접 만들었다. 1974년 5월 화순군 지방공무원 공채에 합격한 뒤로 줄곧 화순을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누구보다 화순 발전을 이끌 자신이 있어서 선택한 길이었다. “지방자치 역사가 30년이 다 돼가도록 우리 군은 특유의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지역발전에 있어서 답보상태를 거듭해 왔어요. 화순의 특성을 반영한 변화와 혁신으로 문화, 관광, 농업, 백신산업 등의 지역경쟁력을 키우면 화순도 얼마든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봐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모두 이런 인식과 판단 위에서 정립됐죠.” 구 동문이 가장 역점을 두고 펼치는 사업은 ‘관광객 500만 시대를 여는 매력 넘치는 관광도시 조성’이다. 15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광주광역시가 근처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관광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수익 확대를 꾀한다는 것이다. 실제 요즘은 ‘담양’보다는 ‘화순’으로 광주시민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화순을 화순읍 권역, 동부 권역, 서부 권역으로 나눠 각각이 지닌 역사문화·지리적 특성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화순천 꽃강길 조성, 개미산 전망대 조성, 화순 적벽 국가명소화, 사평역 등 임대정 주변 관광지 조성, 고인돌 축제 개최, 능주 역사문화도시 조성, 조광조 유배지 확대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 화순은 정말 다양한 역사문화적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화순 고인돌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제가 담당 과장으로 유네스코에 가서 작업했거든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화순군 문화광관재단을 본격적으로 가동해 화순만의 차별화된 관광정책을 개발해 관업산업 활성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화순 홍수조절지의 87홀 파크골프장과 아름다운 수변공간은 전국의 파크골프 인구를 끌어들이는 효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구 동문의 화순 발전 계획에는 ‘부자 농촌 만들기’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인데, 그의 계획이 흥미롭게 들렸다. △능주면 남정리에 농산물 수출단지와 농산물산지유통센터를 조성해 농산물 수출과 유통의 거점 단지로 육성 △5대 지역 특화작목과 신소득 작목(한국 춘란)을 육성하고, 청년과 은퇴자가 안정적으로 영농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책 확대 △2023년 매출 16억 원을 올린 화순군 농특산물 온라인 쇼핑몰 ‘화순팜’의 운영체계를 군 직영으로 변경, 품목을 확대해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 구축 등이 솔깃했다. 특히 ‘난 산업’은 40년 동안 난을 키워온 구 동문의 경험치가 투영된 사업으로 역발상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축하 인사 등에 보통 ‘서양란’을 선물하고 있는데, 이 난초 시장 규모가 거의 1조 원대에 달한다. 문제는 사용되고 있는 난이 대부분 ‘서양란’이라는 것. 구 동문이 ‘한국 춘란’에 주목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춘란은 추운 북쪽에서는 나지 않아요. 화순도 합천 못지않게 춘란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죠. 실제 벼농사 등 다른 농업보다 단위면적 당 소득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는 수익성 높은 작물이 바로 춘란입니다. 투입 대비 산출이 높고, 고령인 분들도, 농사에 서툰 분들도 접근하기 수월하거든요.” 그의 부자 화순 만들기는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직결된다. 2023년, 118년 역사의 화순탄광이 문을 닫았는데, ‘폐광지역 경제진흥개발사업’을 반드시 통과시켜 광부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난 산업’ 육성으로 신성장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바이오산업 인력 양성 교육을 곧 시범 운영할 예정이며, 지난 2월에는 전라남도와 함께 ‘국가 첨단 전략산업 바이오 특화단지’ 유치 신청에 나섰다. 눈길 끄는 만원 임대주택과 천원 보육 화순군에서 진행한 정책 가운데는 다른 곳에서도 벤치마킹을 해간 사례들이 있다. 전국 최초로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만원 임대주택 지원사업을 추진해 호평을 받고 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매년 100호씩, 총 400호 공급할 예정이다. 작년에 100호 물량을 상반기 50호, 하반기 50호 나눠서 공급했는데, 올해는 100호 물량을 상반기 중에 전부 공급하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오니까 울음소리가 나고,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다. ‘전국 최초’는 또 하나 있다. ‘다문화 가족 자국민 전담팀’을 신설해, 다문화 시대를 대비한 인구정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베트남, 필리핀 등 현지에서 화순에 정착한 다문화 가족 주부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발탁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들이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통역도 해주고, 아이들 교육도 도와주고 은행 업무나 민원까지 해결해 주고 하다 보니 가정도 화목해지고 안정되고 있다. 또한 전남 최초로 ‘화순형 24시 어린이집’ 두 곳을 지정해 보육환경 개선에도 선도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 시간에 1천 원을 내고 보육 돌봄을 받는 ‘천원의 보육’인데, ‘만원 임대주택 보급’과 함께 젊은 군민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방송대 완주하길” 화순을 제2의 국가 정원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구 동문은 ‘재임 기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군수로 화순의 안정된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남은 열정을 쏟겠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대가 좀더 다양한 융합전공들을 만들어 변화를 선도해 줬으면 한다. “요즘 정보 해킹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디지털 보안 관련 분야를 만들거나, 제가 나온 농학과의 경우, 대단위 영농과 관련된 교과목을 제공해 주면 좋겠어요. 농학과를 지원한 분들이 농업 현장에서 새로운 혁신을 꾀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지금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분들은 방송대를 선택한 이상, 처음의 그 결심 그대로 포기하지 말고 완주해 주셨으면 해요. 방송대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신하시면 좋겠습니다.” 사람과 삶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노동법은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를 위한 법이다. 그러므로 노동법학은 노동이 지금보다는 더 ‘할 만한’ 것일 수 있도록 돕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년 전 여행을 하다 우연히 중동지역 파견근무를 하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휴가를 맞아 한국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잠시 들른 도시에서 짧은 여행을 하던 분이었는데, 직업병이 도져 이것저것 물어보다 파견근무 중이라는 말을 듣고 “아, 노동자셨군요”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더니 그는 “노동자 아니고, 엔지니어입니다”라며 내 눈을 마주 보았다. 신학기를 맞아 새 학생들을 만날 때면 종종 이 일이 기억난다. 내가 사용한 ‘노동자’라는 단어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는 ‘노동자’라는 단어에서 블루칼라 생산직 노동자를 떠올렸을 수 있고, 그래서 기술 전문직인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폄하하는 단어로 노동자의 의미를 규정했을 듯하다. 혹은 ‘근로자’도 아닌 ‘노동자’라는 단어에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무언가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우님들은 어떨까. 우리는 일하며 살아간다.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현실이다. 그리고 일한다는 것이 곧 노동(勞動=labor) 이다. 노동이 충분히 만족스럽고 나에게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노동자라고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labor)이라는 단어에 출산(labor)의 고통이 담겨 있듯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고역인 노동을 그나마 인간답게, 안전하게, 자유롭게, 그래서 ‘할 만한(decent)’ 노동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노동법이다. 우리나라에는 노동법이라는 명칭의 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헌법」 제32조 제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는 선언에 따라「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산업안전보건법」등을 제정해 두고 있다. 이것이 노동법의 한 축이다. 다른 한편, 노동자는 결코 혼자 충분히 ‘할 만한’ 노동을 만들어 갈 수 없다. 노동을 요구하는 자본하에서의 노동은 자본과 대립하는 관계일 수밖에 없는데, 이 양자는 결코 대등한 위치에 놓일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는 단결해 노동조합이라는 사회적 반대세력을 만들고, 그 힘을 배경으로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이뤄나가야 한다. 과격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헌법재판소의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나라 헌법 제33조 제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는 것의 원리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인정하고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방법을 정하면서 노동자가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조합법」이 마련돼 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통해 노동을 보다 더 ‘할 만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 노동법의 다른 한 축이다. 결국 노동법은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를 위한 법이다. 그러므로 노동법학은 노동이 지금보다는 더 ‘할 만한’ 것일 수 있도록 돕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노동법을 좋아하고, 노동법학자임이 자랑스럽다.   2024년 1학기부터 재직하게 된 방송대에서 담당하게 될 강의는 노동법의 양 축을 구성하는 법 과목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고자 하는 사회보험법 제 과목이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연구하며 강의하는 노동법을 이제 방송대 학우님들과 함께하고 싶다. KNOU광장
“수준별 중국어 수업에 다양한 특강도” 중어중문학과(학과장 원혜련)가 5월 11일 대전·충남지역대학에서 중국언어문화캠프를 실시한다. 재학생 1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접수 마감은 4월 12일 오후 3시다.   중국언어문화캠프는 중국어·경제·문화·예술·고전문학 등 중국 관련 다양한 지식을 탐색하고 즐겁게 경험하는 학습의 장이다. 오전에는 중어중문학과 교수진이 원어민 교수와 함께 학생들을 4개 반으로 나눠 단계별 집중 어학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먼저 발음반은 발음에 자신이 없거나 자신의 발음을 교정하고 싶은 학생이 신청하면 된다. 중국어 수준과는 관계없다. 초급반은 중국어 입문자 또는 이번 학기 「중국어 1」 수강학생이면 신청할 수 있다. 중급반은 중국어로 짧은 회화가 가능한 학생들을 위한 반이다. 「중국어 3」이나 「중국어구어실습」 과목 이상 수강자면 신청 가능하다. 마지막 고급반은 일정한 문장 구조나 어휘 능력을 갖췄으며, 논리에 맞게 중국어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학생이면 신청할 수 있다. 「중국어 7」 과목 수준이면 가능하다.   오후에는 △중국경제 △문화예술 △한시음송반으로 나눠 강의한다. 반에 따라 실습을 통해 학습 지평을 넓히는 강의도 있다. ‘중국경제’에서는 ‘QR의 나라 중국 알아보기’를 강의한다. 중국의 디지털 경제 상황을 이해하며, QR 결제 등 관련 상황에 대한 중국어 표현을 학습하고, 상황별 실전 연습도 병행한다.   ‘문화예술’에서는 ‘중국어로 연극하기: 피영희(皮影?, 중국 전통 그림자인형극) 실습’을 진행한다. 중국의 무형문화유산인 피영희에 대해 배우고, 준비된 교구로 그림자 인형을 만들어 공연한다. 마지막으로 ‘한시음송반’에서는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등관작루(登?雀樓)」 시를 음송 방식으로 익히는 훈련을 한다. 오후 마지막 프로그램으로는 오문의 교수가 「한자를 통해 본 중국 술 이야기」를 주제로 전체 강의를 한다.   이번 캠프는 2024학년도 1학기 중어중문학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공간 문제로 사전 신청하지 않은 학생은 당일 참여가 불가하다. 4월 8일 오전 11시부터 4월 12일 오후 3시까지 선착순으로 접수받는다. 반드시 네이버 ID를 만들어둬야 한다. 정원 180명 마감 시 자동으로 접수가 종료된다.   참가비는 2만원(중식 포함, 입금 후 환불 불가, ‘문화예술’ 참가자는 별도 재료비 5천원 추가)이다. 신청 링크는 4월 8일 오전 11시 중어중문학과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재한다. 확정된 신청자에게는 4월 17일 오후 5시에 개별 SMS로 알린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중어중문학과 사무실(02-3668-4570) 및 각 지역 학생회로 문의하면 된다.   원혜련 중어중문학과 학과장은 “올해 중국언어문화캠프는 기존 어학캠프를 확장해 수준별 중국어 학습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중국 경제와 문화 예술, 한시음송, 전체 특강 등 다양한 분야별 활동을 함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중국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뉴스
“수동적 감상에 머물던 관람객, 작품과 긴밀한 소통 시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가 가져온 기술의 발전은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지면서 의료, 관광, 서비스, 교육, 비즈니스 등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비대면 의료가 보편화되고, ChatGPT를 활용해 최신 정보를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손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됐으며, 사람이 담당하던 서비스를 챗봇(chatbot, 음성 또는 문자로 인간과 대화를 통해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제작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체했다. 그렇다면 이런 빠르고 광범위한 기술 발전이 예술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예술과 기술의 어원, 테크네(techne)   기술 발전을 최근 대두된 이슈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술에서 기술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밀접하게 연관된 영역이자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온 개념이다. 그 증거로 흔히 언급되는 것의 하나가 예술과 기술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로 같다. 테크네는 인간이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스어 테크네는 고대 로마인들이 라틴어 아르스(ars)로 옮겼고, 아르스는 영어 아트(art)로 번역되어 현재 아트(art)는 여러 예술 장르를 폭넓게 포괄하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예술과 기술의 어원이 동일하고 두 개념 모두 인간의 기술적 행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같다면, 왜 예술과 기술을 분리해서 사용하게 됐을까? 예술과 기술의 어원을 따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의 개념이 정립돼 온 역사를 따라가 보게 된다. 현재와 같은 예술의 개념, 즉 미(美)를 추구하는 예술의 개념이 정립된 건 르네상스 이후 18세기 중엽의 일이다. 그 이전 시기 회화, 조각, 건축 등은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로 간주돼 예술이 아니라 기술의 한 종류로 취급됐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조각품을 만드는 조각가, 또는 건물을 설계하고 만드는 건축가가 요즘과 같이 추상적이고 창조적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 인정받았던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그림 그리는 기술, 조각하는 기술 그리고 건물을 설계하는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였으며 이들의 결과물은 예술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물건의 하나로 기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기술은 서로 분리되거나 차별되는 개념이 아니었으며 어원 테크네를 공유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예술적 성장의 주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18~19세기를 거치며 예술과 기술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추상적이고 고상한 영역으로 신성시됐고, 기술은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더불어 음악가, 화가, 무용수 등은 기술자라는 호칭을 떼고 예술가로 명명됐다. 여기서 예술가란 단순히 기술을 숙련하는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창조성을 기반으로 자기 삶의 전부를 작품에 쏟아붓는 천재로 상징화된 예술가의 초상은 기술이란 두 글자를 예술의 그림자에서 지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은 ‘일방향적’이다. 예술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상호작용이나 상호교류가 일어나기 어렵다. 관람객은 예술작품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감상한다. 전시장에 전시돼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의 특성상 관람객이 여기에 개입하거나 참여할 여지가 없다. 기술의 발전은 이런 한계를 흥미롭게 뛰어넘는다.   사진 기술의 발전과 예술의 확장 이 맥락에서 논의해 볼 중요한 기술의 발전은 ‘사진’이다. 오늘날 사진은 예술의 한 영역으로 간주돼 사진전이 열리기도 하고 사진을 재료로 한 팝아트(pop art)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사랑받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 사진의 등장은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8세기까지 고전미술의 미덕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과 인물을 최대한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사실성’을 중시했다. 사진의 등장은 화가들의 지난하고 고된 노력이 아니더라도 풍경과 사물을 그대로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더 나아가 ‘복제’를 통해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찍어낼 수 있게 되어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의 개념을 뜻하는 ‘원형’의 벽을 허물게 된다. 20세기 초반 활동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이란 저서에서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예술작품이 원래 내포하고 있던 ‘아우라’를 상실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렇다면 벤야민은 아우라가 상실된 예술의 변화를 한탄한 것일까? 흥미롭게도 그렇지 않다. 벤야민은 우리가 가졌던 엄숙하고 기득권적인 소수의 종교적 가치나 제의 가치가 사진 기술의 발달을 통해 전시적 가치로 변화해 예술의 대중성을 이끌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예술의 민주주의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사실주의 미술이 인기를 잃게 되면서 19세기 프랑스의 인상파 미술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화가들의 상상력이 꽃피기 시작했다. 또한 사진이 가능하게 한 ‘복제’를 적극적으로 작업에 담아내는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도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이다. 그의 1962년 작품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찍어 같은 이미지를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상품화된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했다. ‘사진을 복제한다’는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사진을 복제할지, 복제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 과정에서 어떻게 색채, 구도, 이미지를 표현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 복제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을 가능하게 했다. 예술과 기술 읽기: 상호작용성 예술과 기술이 접목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동시대 예술의 상당수가 기술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 연극, 시각예술, 무용 등 여러 장르에서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을 지면에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개념으로 사례의 공통점을 추출한다면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을 이야기할 수 있다. 상호작용성은 주로 인터넷 등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디지털 매체와 사용자 간에, 또는 디지털 매체로 연결된 사용자 간에, 아니면 매체와 매체 간에 여러 가지 형태와 차원의 상호교류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상호작용성이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은 ‘일방향적’이다.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 또는 예술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상호작용이나 상호교류가 일어나기 어려우며 예술가의 의도가 담긴 예술작품을 관람객은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감상한다. 이런 일방향적인 감상에 대해 예술가의 위계적이거나 권력적인 태도라고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설령 예술가가 관람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시각예술 작품처럼 전시장에 전시돼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의 특성상 관람객이 여기에 개입하거나 참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이런 한계를 흥미롭게 뛰어넘는다. 독일의 칼스루에 미디어아트센터 소장이었던 제프리 쇼(Jeffrey Shaw)는 미디어아트 초기작으로 유명한 「읽을 수 있는 도시(Legible City)」(1989)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 작품을 만들었다. 위의 사진에 있는 사람은 배우나 작가가 아니라 일반 관객이다. 관객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대형 스크린과 마주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여기 스크린은 문자만으로 이뤄진 도시를 가상으로 체험하게 한다. 관람객은 자전거를 스스로 밟고 조정해 가면서 도시를 주체적으로 탐방하고 읽어 나가게 되는데, 미디어와 관람객이 상호작용해 작품을 변형시킨다는 의미를 지녔다. 고도의 기술을 통해 예술을 게임으로 승화한 사례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무용 안무가인 안은미는 2022년 교육형 온라인PC 댄스 게임 「언틸다이 땡쓰땐쓰」를 공개했다. 이 게임은 디지털망 기술과 모션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등포아트홀의 무대를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이다. 사용자는 먼저 게임에 입장해 일반적인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 수 있고, 안은미컴퍼니의 대표작인「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북한춤」등 7개의 레퍼토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작품을 고른 다음에는 의상, 음악 등을 선택한 후에 무대에서 아바타가 단원들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모니터의 카메라를 활용해 실제 게임을 하는 사용자의 몸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컴퓨터 앞에서 함께 춤을 추면 이 동작을 인식해 게임 속 아바타에 그대로 반영해 가상현실 속에서 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교양
“4월, 동서양 고전의 이해를 돕는 세 번의 길잡이” 와 문화교양학과 교수진이 공동 기획해 ‘교양과목 톺아보기’ 연재를 시작한다. 전공 차이로 교양과목 이해와 접근이 어려운 학생에게 분명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2024학년도 1학기에는 3과목을 과목당 3회에 걸쳐 싣는다.(4월 진보성 교수「동서양 고전의 이해」, 5월 김재형 교수「세계의 정치와 경제」, 6월 남기현 교수「한국사의 이해」) 진보성 교수는 “교재를 1~5장, 6~10장, 11~15장으로 나눠 고전의 저자를 소개하고 핵심 내용을 전달한다. 사실 고전은 어렵다. 소개하는 책도 어려울 수 있다. 두툼한 고전을 얇게 저몄으니 고전을 미리 맛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제1장 원효 『대승기신론 소·별기』 『대승기신론 소·별기』는 삼국시대 신라의 고승인 원효(元曉, 617~686)가 2세기경 인도의 마명이 지은『대승기신론』에 자신의 견해(주석)를 붙인 책으로, 원효의 저작을 거론하기 전에 마명의『대승기신론』을 소개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승(大乘)’은 ‘큰 수레’라는 뜻으로 큰 수레에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듯이 여러 중생을 구원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 ‘대승기신’이란 중생이 자기 내면에 부처가 될 수 있는 바탕이 있음을 알아차려 믿음을 일으켜 수행함을 말합니다.『대승기신론』은 불교 여러 경전의 사상을 포괄하고 종합한 대승불교의 핵심을 담은 근본서로 원효의『대승기신론 소·별기』 역시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두 책의 공통 주제는 ‘인연분’·‘입의분’·‘해석분’·‘수행신심분’·‘권수이익분’입니다. 번뇌와 욕망에 속박된 세간(속세)의 세계를 뛰어넘어 누구나 부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설득하면서 오롯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원효가 일심(一心, 한마음)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참된 진리의 모습과 미혹된 모습[이문(二門)]이 동시에 존재하는바 우리 내면 참된 진리의 면모를 가리는 무명(無明)을 걷어내고 부처의 마음을 드러내어 자비심을 발현하는 위대함[삼대(三大)]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네 가지 바른 믿음[사신(四信)]과 다섯 가지 도덕적 각성과 윤리적 행위[오행(五行)]를 통해 누구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길에 따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마음 수행을 통해 모든 중생이 열반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생로병사의 인간사를 두고 무명의 바람에 의해 고요한 참된 마음이 흔들려 마치 파도치는 바다와 같다고 말한 원효는 고요한 진리의 마음으로 귀환할 가능성과 잠재력의 씨앗을 누구나 지니고 있다고 설파합니다. 이 가르침은『대승기신론 소·별기』의 핵심입니다.   제2장 박지원 『연암집』 조선 후기의 인물인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실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에 뛰어난 문장가로 유명합니다. 고전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박지원이 44세에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에 합류하여 중국 북경에서 열하까지 여행한 기록을 담은『열하일기』를 잘 아실 겁니다. 이 책에서 박지원은 중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적으며 조선을 또 다른 눈으로 살핍니다. 박지원을 비롯한 당시 18세기 일군의 지식인들은 청으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문물과 사조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계기로 그들은 조선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사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박지원이 꽤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선 사회를 바라본 연유에는 당시 시대적 상황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박지원은 조선 후기 권력의 핵심에 있던 노론 명문가의 자제였으나 세상을 보는 눈과 행보는 남달랐습니다. 그는 서얼 출신들과도 거리를 두지 않고 마음으로 교유하였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의 말이라도 허투루 듣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글을 모은『연암집』에는 박지원의 자유로운 정신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박지원의 글에는 풍자와 비유가 넘치며 간혹 무리수를 두지 않은 유머가 존재합니다.『연암집』에 코 고는 사람을 묘사한 대목을 읽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사람 코 고는 소리를 두고는 토하는 소리, 휘파람 부는 소리, 솥 안에 물이 끓는 소리, 빈 수레가 덜컹거리는 소리, 또는 새끼 돼지가 씩씩대는 소리에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의 백미는 자던 사람을 깨우자 이 사람이 자신은 코를 골지 않았다고 벌컥 화를 내는 대목입니다. 하찮은 것도 세심히 바라보며 자기 글 안으로 가져와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박지원은 고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정통파 문인이었지만, 시선은 먼 곳에 고정되지 않았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사회의 최상위 주류였으나 자유로운 정신이 담긴 빛나는 문장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가 다른 데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3장 최한기 『기측체의』 박지원보다 조금 뒤의 인물인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기’철학자라고도 불리는 인물로 기학(氣學)이라는 독창적인 학문체계를 수립한 인물입니다. 조선 시대 전반을 아우르던 성리학의 이기론은 우주·자연의 원리이자 본질적인 이(理)와 현세의 물질적 속성인 기(氣)를 통해 세계의 구성과 존재 및 운동을 설명하는 이론체계입니다. 유학자라면 누구나 성리학 이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서구의 학문이 전해지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를 수용하여 자신의 학문에 접합하기도 했습니다. 최한기는 유학을 계승하는 한편 기존 학문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서구의 자연과학을 폭넓게 수용한 학자입니다. 밖으로는 서구의 충격이 거셌고 안으로 민란의 시대였던 혼란기 근대의 길목에서 최한기는 ‘기’를 강조합니다.   『기측체의』에서 최한기는 “기가 있으면 반드시 이가 있고 기가 없으면 반드시 이도 없다”고 말하는데, ‘몸이 있어야 정신이 있고 몸이 없으면 정신도 없다’란 말과도 같습니다. 정신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르죠.『기측체의』는『신기통』과『추측록』을 합본한 책으로 ‘신기’란 형체를 이루는 근본이면서 지각과 인식 활동의 주체를 말합니다. 또 ‘추측’은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으로서의 사고 활동을 말합니다. 최한기는 우리가 사는 우주는 모두 기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운동성으로 순화하고 변화한다고 주장합니다. 최한기의 이런 주장은 전통적인 학문의 개념에 서구의 자연과학 지식을 융합한 결과입니다.   19세기 저작『기측체의』는 기존의 것과 외부의 새것 사이의 조화를 추구한 결과물로 새로운 학문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도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최남선은 최한기를 두고 조선 역사상 가장 책을 많이 쓴 사람으로 평했다고 하는데 저작 수가 1천여 권에 이른다 했으나 지금은 다 전하지 못하는 점이 지금 입장에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4장 신채호 『조선상고사』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 언론인 등 신채호(申采浩, 1880~1936)를 서술하는 말은 많습니다. 그중 역사학자라는 지칭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 같습니다. 신채호의 가장 대표적인 저술이『조선상고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신채호에게는 한 권의 역사 저술이면서 동시에 학술로서 독립운동과 다름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채호는 엄혹한 시대에 나고 자랐습니다. 19세기 후반 외세의 침탈이 가시화되던 시기에 태어난 신채호는 불합리하게 다가온 근대의 소용돌이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균관에 입교하면서 자강운동에 투신했던 신채호는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조선상고사』에는 당시 세상을 보는 신채호의 시각이 명확하게 담겨 있습니다. 역사를 두고 신채호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언급한 것은 극단적인 표현이 아니라, 극심했던 제국주의의 침탈과 생존이 미덕이 되었던 세계질서를 가감 없이 날카롭게 진단한 것입니다.   신채호는 우리가 고대부터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경쟁’한 역사를 지녔다는 주장을 통해 사대주의를 극복하며 자주적인 주체의식을 강조했습니다. 근대적 개념의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 인식을 위해 단군신화를 우리 역사의 실체로 자리매김하였고, 기존의 소극적 역사관을 우리 민족 중심 사관으로 수정하여 고대 사상사를 주체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신채호의 이러한 노력은 다름 아니라 우리도 근대의 열강들처럼 독자적이고 오랜 역사를 지닌 근대적 민족국가의 영토를 확립할 수 있다는 역사적 지평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노력이었습니다.『조선상고사』는 분명 사료로서 한계가 있으나 우리 상고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기념비적 역사서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제5장 맹자 『맹자』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 공자의『논어』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 바로 맹자(맹자, 기원전 372~기원전 289)의『맹자』입니다. 공자와 맹자가 구사하는 언어를 이른바 정언(正言)이라고 합니다. 정언은 예를 들면『장자』 우언(寓言)과 달라서 필요한 곳과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말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또 동시에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바른말을 하는 사람 스스로가 바로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말입니다.『맹자』의 첫 편에 맹자가 자신을 맞이하는 양혜왕에게 “하필왈리(何必曰利)”라고 힐책한 것이 곧 정언입니다.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는 전국에서 국지전이 끊임없이 벌어지던 때였습니다. 각 나라의 왕들이 서로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백성을 위한 정치는 외면하고 자기의 욕망과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던 시대였습니다. 맹자가『맹자』 첫 편에서부터 독한 말을 내뱉은 것은 전쟁에 혈안이 된 군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최선책이었습니다. 맹자는 이런 왕들에게 왕도(王道)정치를 주문합니다. 게다가 왕도정치는 다 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하지 않는 것일 뿐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콕 집어 말합니다. 맹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공자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을 주장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맹자』는 왕 노릇 할 만한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왕도정치’와 왕 노릇 못하는 왕은 끌어내려야 한다는 ‘혁명론’,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이 한 권의 텍스트 안에서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책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전제가 왕도정치를 가능하게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 혁명을 정당화합니다. 정치를 자기 이익으로 하는 사람에게『맹자』는 위험한 책입니다. 만약 그런 정치가 만연한 시대에 산다면『맹자』는 필독서가 됩니다. 진보성 방송대 교수.문화교양학과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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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한마디

kid*** 올해는 모두가 행복하게! 서울지역대학 화이팅입니다!
j69*** 박노식 회장님을 필두로 전북지역대의 무궁한 발전을 응원합니다.
kid*** 박노식 총학생회장님 귀엽습니다!
een*** 저는 타 학과이지만 이런 글을 보면 많이 반성 하게 됩니다. 열정적이신 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ㅜㅜ 아..... 과제가 첩첩산중이네요 ~~ㅎㅎㅎㅎ 모두를 응원하겠습니다.!!
535*** 학교 시설의 노후화는 학업 효율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시급한 개선이 필요해 보이네요
kid*** 비가 세는 학생회실이라니?! 학교 측에 빠른 조치를 기대합니다.
kid*** 기사 잘읽었습니다. 대전충남지역대학 응원합니다!
020*** 교수님!~ 문화교양학과 3학년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과제의 분량은 A4용지 2장에서 3장으로 과제물 지시사항의 내용으로 알고 있었어요!?.
25q*** *용비봉무* 용이 힘차게 날아 오르고, 봉황이 춤을 추는 용궐산 하늘길처럼.. 선배 돔문님들의 훌륭한 전통을 이어받아 더욱 성장하며 아름답게 빛나는 광주ㆍ전남총문회 화이팅! 입니다~~
nie*** 저를 비롯한 우리 교우들의 수준에 비해 선정된 책이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예를 들면, 우리 교우들중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읽은 분이 몇 명이나 될까요? 혹은 읽을 수 있을까요?). 다른 대학에서 선정했기 때문에 우리도 선정하기 보다는 좀 더 알기 쉬운 대중적인 책으로 선정하여 실제적으로 우리 교우님들도 참고해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