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를 위한 변명

지금 당장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현명한 소비를 하는 작은 행동으로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보내는 경고에 반응하자! 올 여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향하는 이슬람 성지순례(하지, Haji) 기간에 극심한 무더위로 1천 명 이상이 숨졌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외에서 폭염으로 인한 심혈관질환, 열사병 등으로 숨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구 온도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높아진다면 조만간 산업화 이전보다 1.5℃를 초과하여 무수한 생명체 멸종, 식량 위기, 물 부족 등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약 2억 명이 사는 육지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섭씨 1도가 지구 문명의 생존을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 온도를 높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체는 이산화탄소로 기여율이 대략 76%로 절대적이고, 다음은 메탄으로 기여율은 약 16%이다. 우리 모두 이들의 존재를 ‘탄소 발자국’으로 말하면서 지금의 기후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와 메탄도 나름 할 말이 있으니,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 본다. 일상생활에서 이산화탄소가 안전과 건강에 끼치는 특별한 위험은 없다. 심지어 농도가 대기보다 4~5배 이상(2,000ppm) 높아도 약간 졸리는 위험(?)만 있을 뿐이다. 이산화탄소는 자연 물질(자원)을 태우고 가공해서 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경제활동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탄소 흔적이다. 모든 경제와 소비활동에서 물질을 사용하면서 생긴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나무 등 식물이 생존을 위해 다시 흡수한다. 이산화탄소는 열을 오랜 시간 보존한다. 태양에너지 일부를 지구 대기 내에 가둠으로써 지구 생태계가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지는 온실효과를 유지해, 수억 년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그만큼 지구 생태계 생존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인체의 필수 원소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18세기부터 폭발적으로 발전한 과학 지식을 활용한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불과 300~400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무려 2배가 넘게 높아졌다. 온실효과가 가속돼 지구는 지금처럼 지나치게 더워졌다. 인간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면서도 이산화탄소 탓을 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는 억울하다. 메탄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메탄은 지하에 매장된 유기물질이 분해되어 축적된 천연 에너지자원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쉽게 분해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열을 붙잡는 능력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하다. 초식동물, 매립 등 자연에서 발생하면서 지구 온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에너지자원으로도 유용하다. 그런데 인간의 육류 소비가 늘어나면서 메탄 발생량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지구 총 메탄 발생량의 20~25% 정도가 인간의 육류 소비로 인한 것이다. 인간의 육류 소비량을 맞추기 위해 매년 4백만㎢(대략 스위스 면적)의 울창한 산림이 초원으로 바뀐다. 이는 메탄 발생량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 제거율 감소의 요인이 된다. 이렇게 탐욕에 가까운 인간의 경제활동과 소비가 유례없이 높은 농도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만들었다. 현재의 온실가스 농도는 지구 생태계의 한계와 무질서를 나타내는 경고 지표다.미래 세대와 나눠 써야 하는 자연 자원을 과다하게 착취하고 있다는 경고다. 미래 세대와 나눠 써야 하는 자연 자원을 과다하게 착취하고 있다는 경고의미이며, 자연이 매우 힘들다고 인간에게 보낸 위험 신호다.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석유, 석탄, 가스 등 탄소에 기반한 자연 자원의 사용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끊임없는 경제성장과 소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시대에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 간 자연 자원의 착취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2015년, 196개 UN 가입국은 파리에서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낮추기 위해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목표로 ‘탄소 중립’ 협약을 채택했다. 그러나 멈출 줄 모르는 경제성장, 소비심리 과열, 국가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때문에 획기적인 돌파구는 아직 없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를 인식하는 데 있어 우리의 상상력과 감수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개개인의 생활공간을 넘어선 곳에서는 자신의 결정과 행위가 미래세대에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상관하지 않거나 내다보지 못하기 쉽다. 하지만 매일 ‘공유지의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은 현재, 이곳에서뿐이다. 지금 당장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현명한 소비를 하는 작은 행동으로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보내는 경고에 반응하자!

216호 2024-07-05 11:31

핫 뉴스라인

  • 최씨고집으로 공부하는 뚱딴지래요!

    나는 지금 ‘자아통합감’을 갖는 노년기 한복판에 서 있다. 절망감에 빠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나를 만드는 교육을 그려보았다.   나는 팔십 중반을 넘어선 몽당연필이다. 지난 2월 24일 전북지역대학에서 386명에게 학위증을 수여하는 졸업식이 있었다. 나는 공부노익장이라고 ‘평생학습상’을 받았다. 그 대표로 단상에 올라 수상 소감으로 짧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여덟 번째로 졸업장을 받았고, 백세시대를 살아가면서 아홉 번째로 건강관리를 잘해보자고 생활체육지도과에 또 입학하게 됐습니다. 늙는 것도 모르고 바쁘게 사는 공부도둑이지요.” 졸업식장 천장 마룻대가 들썩이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언젠가 「교육철학」 강의에서였다. 교육학 교수님은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교육이란 무엇인가?’ 자기다운 답을 한 줄로 써 보란다. 골똘한 생각 끝에 ‘공부는 동그라미 그리기다’하고 스치듯 썼다. 돌멩이가 모가 나면 구르는 데 저항을 받듯, 인간도 모난 부문을 절차탁마하면 몽돌처럼 좋은 삶이 되지 않겠나 해서다. 『맹자』에 ‘구기방심(求基放心)’이란 글이 나온다. 공부란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잠재적인 자아실현이다. 내 공부방에는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란 글 한 편이 걸려 있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시구다. 천리까지 보고 싶어 누각을 높이 오른다는 의미다. 중어중문학과 김성곤 교수님께서, 우연한 기회에 내게 써 준 소중한 휘호다. 방송대의 여러 학과를 섭렵한 것도 어찌 보면 이 시의 깊은 의미를 좇아, 까치발을 세워 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서였고,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일이었다. 가방끈이 짧아 5년을 다닌 초등교육학과를 비롯해 중어중문학과, 국어국문학과, 문화교양학과, 교육학과, 청소년교육학과, 농학과, 사회복지학과를 차례로 졸업했고, 지금은 생활체육지도과에서 수학하고 있다. 말하자면 21년 공부도둑인 셈이다. 교직을 은퇴하고 배낭여행을 하고 싶어 중어중문학과를 다녔다. 중국어를 익혀 아내와 둘이서 때로는 친구들을 꼬드겨 황산도 오르고, 타이완 아리산도 올랐다. 한 달간 실크로드를, 달포 간 티베트 여행도 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떠올리면 티베트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목의 베이스캠프에서, 눈부신 에베레스트산을 올려본 희열감이다. 몽당연필을 발로 밀어 산꼭대기에 올려놓은 기분이라 할까,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상상이었다. 글쓰기 공부로 국어국문학과도 다녔다. 피천득 선생의 글 「인연」처럼 좋은 수필 한 편을 쓰고 싶었다. 유지경성이란 말이 있듯이 월간 〈공무원연금〉지 수필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방송대평생학습에세이상’ 공모에서도 거짓말처럼 최우수상을 받았다. 난 기뻐서 대학로에 있는 꽃집으로 달려갔다. 내 나이만큼 붉은 장미 팔십 송이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 졸랐다. 겨울철이라 장미 한 송이에 오천 원을 불렀다. 아내가 질겁하며 구원투수처럼, 상징적으로 장미 여덟 송이로 만들자고 했다. 꽃 파는 여인이 붉은 장미 여덟 송이를 하얀 안개꽃으로 받쳐 만들어 주었다. 단상에 올라 꽃다발을 총장님에게 드리면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읊었다. 관중들 속에서 박수 소리가 크고 청아하게 났다. 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채소 한 포기 심을 한 뼘의 땅도 없지만, 농사짓기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어 농학과를 다녔다. 심고 거두는 벼의 한살이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식물작물학Ⅰ」 교과서가 있었다. 내용이 미세하고 난해했지만 파고드니 점입가경이었다. 나는 배가 고픈 일제강점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벼에 대한 기억들이 생생하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벼 도정공장이 있었다. 쌀가마니를 실은 소달구지가 신작로로 지나가면 살금살금 달구지에 달라붙어, 쌀가마에 짧은 대나무 대롱을 꽂아 쌀을 빼냈다. 생쌀을 한 움큼씩 입에 물고 배고픔을 달랬던 기억도 있다. 유통이 거의 없는 오십 원짜리 동전에 벼의 문양이 그려 있다. 통일벼 이삭 그림이다. 이 품종은 소출은 많았으나 기능성에서 밥맛이 떨어진다고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논에서 벼 포기를 뽑아 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벼의 얼개와 비교하면서, 벼의 세밀화를 수십 장 그려가면서 공부에 몰입했다. 공부는 정직했다. 농학과를 졸업할 때 성적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면서 소정의 160시간 실습 과정을 밟았다. 당당하게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실습을 받을 때 일화다. 노인복지기관에 모인 몸이 불편한 노인들 앞에서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세요?”라고 물었더니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으로 보이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의 수발을 받아야 할 상노인이 사회복지사로 나섰으니 어불성설이라는 말로 들렸다. 나는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면서 ‘선배시민’ 담론에 적극적인 동참 의지를 가지게 됐다. 노인은 ‘No人’이 아니고 ‘Know人’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로, 사회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봉사관이라 할까. 미시적으로는 오랫동안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건강관리에 도움을 주고 싶었고, 거시적으로는 내가 받은 만큼 혜택을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생활체육지도과에 다니면서 학우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지난 6월 1일 ‘제10회 I LOVE 방송대 마라톤 축제’가 있었다. 맑은 초여름 날씨였다. 상암월드컵공원에 3천여 명의 건각들이 운집했다. 이 마라톤 축제에 나는 미운 아홉 살 손주와 같이, 건강달리기 5km 코스를 달렸다. 앞가슴에 붙은 내 번호는 3152이고, 손주는 9019이다. 아마도 나는 최고령자로 손주는 최연소자로 추측된다.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스마트워치를 찬 손목을, 날 보란 듯 존재감 있게 흔들었다. 사자성어 ‘부추작약(鳧趨雀躍)’이란 꼴처럼, 나는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달렸고 손주는 참새처럼 뛰었다. 뒤지고 앞지르는 발걸음들이 쓱~ 쓱~ 풀 베는 소리로 들렸다. 길섶에는 망초꽃들이 하얗게 살랑였다. 가볍게 두 발을 올렸다 내렸다 착지하지만, 숨이 차고 버거웠다. 완주의 동그란 기념 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주와 같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사진도 찍었다. 손주에게 “우리는 친구로서 달리는 거야, 마라톤은 힘들어도 포기치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야”라고 말해 주었다. 마라톤은 끈기다. ‘손주와 할아버지가 함께 달린 마라톤’은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나는 현장에서 마라톤 완주의 기념으로, 그동안 장학금을 받아 모은 쌈짓돈, 일백만 원을 ‘빈자의 등불’이라며 학교발전기금으로 기탁도 했다. 이도 하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란 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욕구들, 여행을, 독서를, 글쓰기를 농사짓기를, 운동을, 자격증을, 모두를 방송대 공부에서 찾았고 충족시켰다. 생각해 보면 ‘좋은 교수’에, ‘좋은 책’에, ‘좋은 시스템’을 지닌 방송대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교육자산이라고 자부한다. 이를 민들레꽃씨처럼 널리 퍼뜨리고 싶다. 언젠가 ‘역사기록관’ 영상자료 인터뷰에서 “방송대는 평생교육의 매혹적인 통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들은 나이 들어 공부에 집착하는 나를 보고 ‘최씨고집으로 공부하는 뚱딴지’라고 놀린다. 얼른, 친구가 고집을 열정으로 바로 잡아주었지만 맞는 말이다. 『중용』에도 ‘택선고집(擇善固執)’이란 말이 나온다. 좋은 것을 붙잡았으면 고집스럽게 매달리라는 함축이다. 나는 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한 성격 발달의 마지막 단계인, ‘자아통합감’을 갖는 노년기 한복판에 서 있다. 절망감에 빠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나를 만드는 교육을 그려보았다. 구름이 두둥실 비껴가는 푸른 하늘을 올려보며 흰 머리칼을 긁는다. 뚱딴지는 죽어야 연필을 놓는다.

    215호2024-06-28 11:36

  • 인간이 설 자리는?

    대항해시대의 신대륙 발견은 육체의 근대화를 이뤘고, 르네상스는 정신의 근대화를, 종교개혁은 영혼의 근대화를 이뤘다고 한다. 근대화 이후 근대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근대문명에 길들어 느림을 견디지 못한다. 빠른 직선의 삶을 선호한다. 본래 자연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자연의 시간을 용납하지 못하는 근대인들은 구부러진 것을 참지 못해 기어이 이를 직선으로 펴고 만다. 지역대학에 강의하러 갈 때 타는 KTX 창밖 곡선의 도로를 볼 때마다 저쪽 땅을 사면 훗날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지인의 말이 생각나곤 했다. 지인은 ‘곡선의 도로에 인접한 땅을 사두면 언젠가는 직선으로 도로가 날 것이기 때문에 땅값이 오른다’라고 했다. 전형적인 근대인 발상이다. 직선은 우회하는 삶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함이다. 인간의 삶이 어디 직선으로만 달릴 수 있나? 인생의 길은 나선형 코르크스크루(corkscrew)처럼 곡선의 모습을 한 게 틀림없다. 직선은 생명의 원천에서 차단됐다는 의미다. 생명의 원천에서 차단된 사람은 오직 가속과 직진의 욕망 엔진을 달고 있을 뿐이다. 알고리즘과 속도성을 제일의 목표로 삼는 정보경제사회는 근대적 발상의 종착점인 듯하다. 게다가 가속성은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이 가치를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를 두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능력을 속도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물동량이 폭증하면서 도로를 확충하거나 신설하는 등의 방식처럼 데이터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빠른 처리를 위한 반도체 성능 향상을 꾀하는 게 당연시된다. 챗GPT를 써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에 내놓지 못하고 타자 치듯 한 단어씩 띄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시간의 지체가 그래픽처리장치(GPU, 또는 tensor core)와 메모리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지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인기다. 데이터 처리 성능을 높이기 위해, 비유컨대 일종의 차선을 확장하고 2~3층 버스를 달리게 하는 등의 온갖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상황이다. 칸트는 근대인의 질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그가 던진 질문은 중세인이었다면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오백여 년 전 이미 육체, 정신, 영혼의 근대화를 이뤘다는 우리가 이런 질문에 진지한 답을 내려야 할 시점에 당도했다.   이에 발맞춰 오픈 AI가 2024년 5월 13일 최신 거대언어모델(LLM)인 GPT-4o(‘o’는 Omni-의 머리글자)를 공개했다. GPT-4o의 평균 응답시간은 0.232초. 이는 평균 0.32초로 대답하는 인간의 응답시간을 감안할 때, AI와 진정한 의미의 ‘실시간 대화’를 물 흐르듯 이어가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마디로 사람과 견줄 만한 속도로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AI가 나온 셈이다. 구글도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를 공개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전도 여행 목적지로 로마를 정하고 해상으로 이동하다가 풍랑을 만나 지금의 몰타(Malta)에 도착해 석 달을 머물렀다는 기록이 신약성경 「사도행전」 28장에 나온다. 바울이 몰타를 떠날 때 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든 배의 이물(bow)에는 수호신인 제미나이(헬라어로는 ‘디오스쿠로이’)가 조각돼 있었다. 제미나이는 레다와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그래서 제미나이는 이미지, 글, 음성, 비디오를 쌍둥이처럼 동시에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진 것. 제미나이는 수학·물리학·법률·의학 등 57가지 주제를 복합적으로 활용해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테스트에서 90%의 점수를 얻었다. 인간 전문가(89.8%)와 대등한 수준의 AI 모델이다. 제미나이를 이용한 검색 혁명이 예고된 상태다. 단체 해외여행을 가면 일행 중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꼭 생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모바일에서 주변을 비추면 거리를 인식해 이곳이 어디라고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찾는 물건도 금세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사물의 지능화’가 구현되는 셈이다. AI를 통해 이제 사물이 지능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서 I. 밀러(런던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수)는 창의성이 인간만의 속성이라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면서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 또한 기계라고 말한다. 즉 “인간은 어떤 수준에서는 생물학적 기계이고, 더 깊은 수준에서는 화학적 기계이며, 가장 심오한 수준에서는 양성자, 중성자, 글루온, 쿼크 등의 복합체”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사람이 서야 할 자리가 달라지려는 순간에 봉착했다. 미셸 푸코는 근대를 가리켜 ‘계몽’을 문제 삼는 시기라고 말했다. 중세를 지나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을 맞이한 근대인들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묻고 결정해야 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근대인의 질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이것은 중세인이었다면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오백여 년 전 이미 육체, 정신, 영혼의 근대화를 이뤘다는 우리가 이런 질문에 진지한 답을 내려야 할 시점에 당도했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214호2024-06-21 11:02

  • 13개 지역총동문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2008년 방송대에 편입하기 전, 필자는 지방의 한 국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상태였다. 뭔가 더 현실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방송대를 만났다.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곧장 청소년교육과, 보건환경학과, 농학과를 마쳤다. 농학과에 적을 두고 법학과를 복수전공했으니 모두 다섯 학과를 마친 셈이다.  올해 6년째 경남총동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방송대 동문이란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필자는 지역 단위 동문회의 역할에 대해 늘 고민해 왔다. 고민의 결실은 2023년 2월 구체적인 모습으로 가시화했다. 2023년 2월 6일 방송대와 경상남도가 평생교육 관련 상호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방송대가 광역지방자치단체와 평생교육 부문에서 상호업무협약을 체결한 첫 사례다. 그 결과 2023년 프라임칼리지 비학위과정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지원과 경상남도 18개 시·군에 대한 평생교육 모니터링 사업을 위탁받았고, 올해도 계속해서 예산을 받아 시행하고 있다. 프라임칼리지 비학위과정 프로그램 예산지원 덕분에 경남지역대학 소속 재학생들이 관련 수강 신청을 하면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경상남도 시·군에 대한 평생교육 모니터링 사업은 경상남도인재평생교육진흥원 위탁사업으로 경남지역대학이 수행하고, 인력구성은 경남지역총동문회 산하 경남평생교육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다. 당시 평생교육 관련 상호업무협약 체결은 경남지역총동문회가 중심이 되어 방송대(대학본부), 방송대 경남지역대학, 경상남도, 경상남도인재평생교육진흥원의 상호 역할과 협력을 유연하게 이끌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남지역총동문회는 동문회 활성화와 경남지역대학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협력과 발전을 위해 평생교육 사업을 지난 201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왔다. 2023년 2월에 체결한 본교와 경상남도의 평생교육 MOU 체결 후 창원특례시, 고성군, 창녕군 등 지방자치단체와의 평생교육에 대한 협력 관계를 꾸준하게 추진하여 내년(2025년) 예산확보에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경남지역총동문회 산하 경남평생교육위원회는 재학생과 동문들이 함께 참여하는 평생교육 관련 학습동아리를 조직화하고 있다. 또한 동문들이 활동하는 비영리사단법인 및 비영리민간단체들과의 협력 관계도 구축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남지역총동문회의 노력과 성과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고자 지난 5월 18일 진해에서 열린 ‘KNOU 동문통신원 연수회’와 ‘전국총동문회 회장단 회의’에서 평생교육 사례로 발표하기도 했다. 자화자찬을 하려는 게 아니다. 동문들이 동문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성이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다. 동문들 간 네트워킹뿐 아니라 재학생들과의 네트워킹 교류를 촉진시켜 서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해 상호 학습과 성장을 도모하는 것, 이것이 지역 동문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평생교육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과 행정적인 조직화가 이뤄질 때, 방송대 13개 지역대학은 교육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시·도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평생교육 관련 예산을 유치할 수 있다.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위해 전국총동문회 및 13개 지역총동문회의 생산적인 역할이 필요하며 관심과 노력은 필수적이다.

    214호2024-06-21 11:10

  • 인생은 어쩌면…

    인생은 어쩌면…   서울시 강북구에 있는 우이천은 북한산에서 내린 물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지천이다. 이곳에는 왜가리, 쇠백로, 원앙들과 다양한 물고기들이 어울려 한 시절을 보낸다. 물이 맑다 보니 피라미, 모래무지, 버들치가 가득하다. 산책하는 사람들 멀리서 사냥에 집중하던 왜가리 한 마리가 한 번 사냥에 피라미 두 마리를 물었다! 녀석은 이 성공에 앞서 여러 차례 아쉬운 실패를 계속 맛봐야 했다. 행운처럼 보여도 그것은 처절한 실패 뒤에 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사진=최익현

    214호최익현2024-06-21 11:13

  • 살 만한 세상, 풍성한 소풍길 함께 만들길

    좋은 공동체를 꿈꾸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느 한 지역이나 일부 조직의 몸부림만으로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나아갈 때 더욱 풍성한 소풍길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렘을 안겨 줍니다. 처음 대학생이 됐을 때, 처음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 부푼 기대감을 안고 새내기 MT에 갈 때의 떨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방송대에서의 처음 한 달은 저에게 설렘과 두근거림의 연속이었습니다. 평생 받을 관심과 환대를 매우 압축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총장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자마자 제일 처음으로 수행한 공식 업무는 학과장님과 함께 캠퍼스에 계신 교수님들을 일일이 방문해 인사 및 자기소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실 문이 열리기 전,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에 계신 교수님은 어떤 분이실까? 방송대에서 어떤 강의와 연구를 해오셨을까? 등등 찰나의 스쳐가는 생각들이 저에게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습니다(저를 소개해 주시느라 100여 개의 철문을 똑똑똑 두드리신 학과장님의 손가락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았습니다). 이러한 방송대 특유의 환영 문화는 비단 입사 1일 차에 국한되는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2일 차부터 석 달여가 지난 현재 시점까지도 저는 여전히 다차원적인 환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일단 교무처, 전임교수협의회 등 학내의 주요 활동 조직에서 저희 입사 동기 8명을 반겨주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거기에 더해 합창단, 교수친목회 등 학교에 있는 다양한 동아리에서도 저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또한 학과 차원에서 저희 동기들에게 맛있는 밥을 사주기도 하고, 저희보다 6년 먼저 입사하신 선배님들께서 격하게 환영해 주시며 다양한 경험과 꿀팁들을 공유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개인적인 모임들과 심지어 같은 해에 태어난 띠모임까지 생겨나는 등 마치 20대 초반의 신입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쏟아지는 관심과 무조건적인 호의가 너무도 생경하고 어색했으나, 점차 익숙해지는 동시에 방송대에서의 삶의 경로를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모든 개개인이 굶지 않고,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리는,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사회복지를 전공했습니다. 세부 전공으로 사회복지 정책을 전공했고, 그중에서도 가족 정책과 돌봄 및 노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서로 돌보고, 필요할 때 누구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돌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에 학문적, 실천적 목표를 두고 달려왔습니다. 방송대에서 첫 학기를 보내고 난 뒤 이러한 저의 직업적 소명과 삶의 목표에 생각보다 일찍 도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방송대 구성원 특유의 화합 문화에 더해, 전국 단위로 함께 고민을 나누고 해소할 수 있는 학우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공동체를 꿈꾸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느 한 지역이나 일부 조직의 몸부림만으로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방송대에서라면 학우분들과 교직원 및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할 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복지국가를 꿈꿔 온 한 사람으로 방송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고민해 온 문제들과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현재의 이슈들을 앞으로 방송대 구성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나아갈 때 더욱 풍성한 소풍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213호2024-06-10 00:35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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