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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의 교육 플랫폼은 ‘대안’이 아닌

도래할 미래 교육의 형태 그 자체였다.
이러한 교육 환경은

미래의 문학교육을 도모하는 데에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방송대는 일반 학생부터 평생학습자까지 다양한 교육 수요자들을 아우르는 공신력 있는 교육 기관이다. 영향력, 접근성, 확장성 면에서 보자면 다매체 시대의 문학교육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현대문학 전공자로서 이곳에서 교수자의 역할을 새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행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설렘보다는 주어진 역할과 책임감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임용된 한 달 사이 전북과 강원의 출석수업에서 만난 국문학과 학생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내가 체감해 오던 한국문학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동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내가 한국문학을 전공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문학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매년 거르지 않고 유행하는 계절병처럼 돌고 돌았다. 실제로 입학 자원이 날로 급감하고 있는 전국 대학에서 문학 전공은 통폐합을 거듭하며 그 위세가 상당히 위축되고 있으며,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독서율 감소나 출판 시장의 위축 등을 포함한 전반적 상황 역시 문학의 위기 담론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진단은 문학 그 자체를 너무 정태적(靜態的)으로만 파악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학은 이미 오래전 활자나 인쇄매체를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물론 OTT 드라마나 웹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최근의 K-콘텐츠마저도 결국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날 한국문학의 유산과 분리될 수 없다. ‘문학의 위기’란 실상 인쇄매체 안에 존재하던 문학의 위기일 뿐, 문학은 여전히 매체를 가로질러 확장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학의 만능성을 주장하거나, 과거의 특별했던 문학의 지위를 회고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00년대 초 가라타니 고진이 한국문학의 상황을 예로 들며,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했듯, 문학은 더 이상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문학예술의 현재 위치와는 별개로, 삶이 있는 한 이야기는 미래의 매체들을 가로지르며 계속해서 생산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창작하는 주체와 수용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을 오랜 시간 탐구해 온 학문으로서의 문학이 앞으로도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학을 통하지 않고서 이야기의 안과 밖에 내재한 무수한 의미들을 어떻게 질서화하고 정밀하게 읽어 나갈 수 있을까? 문학이 아니라면 또 어떤 대안과 전략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출석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을 생각하며 문학의 미래와 내가 할 일을 한참 동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문학의 전통적·학문적 지식을 오늘날의 매체 환경의 변화와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방송대의 교육적 특수성은 매체적 관점에서 문학을 새롭게 사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에 확인했듯, 방송대의 교육 플랫폼은 ‘대안’이 아닌 도래할 미래 교육의 형태 그 자체였다.

 

이러한 방송대의 교육 환경은 미래의 문학교육을 도모하는 데에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적합한 교수법을 개발해 가르치고, 관련 연구를 통해 문학교육을 확장하는 것이 방송대에서의 첫 과제이자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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