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하나씩의 별들’을 호명할 수 있다면 …
지난 10월 29일, 또 하나의 가슴아픈 소식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태원 ‘핼러윈(Halloween)’ 축제에서 158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수학여행에 나선 고등학생 등을 태우고 인천항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304명(미수습자 5명 포함)이 사망했던 2014년 4월 16일로부터 8년 하고도 6개월여가 지나 빚어진 참극이었다. 재난과 참사에 대한 그토록 많은 ‘대비책’, 사회적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다시 재난 앞에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 그 사이 코로나19로 숨진 사망자들도 3만 명을 넘어섰다. 단순한 질문이지만 다시 생명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무수한 희생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짚고, 2면에서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탐색한 한 사회학자의 강연을 소개한다. 3면에서는 생명 문제를 다룬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면서, 생명 이해의 확장을 제안한다. "생명에 대한 인식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변화한 것이 거의 없다는 참담한 사실에 맞닥뜨렸다는 게 더욱더 절망적이다." 시인 최승호는 시 「고슴도치의 마을」(『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사, 1985)에서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 오는가”라고 묻는다. 산사태나 곰, 산불은 모두 한밤중에 사람들과 마을, 생명과 삶의 터전을 위협한다. 그래서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온몸에 가시 바늘을 키워야 하며, 돌담을 높이 쌓거나, 문을 걸고 한숨을 쉬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잠 속에서도 곰에게 쫓긴다. 37년 전의 이 시적 성찰은 낱낱의 생명이 무너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상징이 될 만하다(기사 제목의 ‘하나씩의 별들’은 박두진 시인의 시「하나씩의 별」에서 가져왔다). 안전, 우리 시대의 공적 가치 시계를 2014년 4월 이후로 돌려보자. 세월호 사고는 생명과 안전 문제를 본격적인 사회적 의제로 떠올린 사건이었다. 종합일간지 사설 249건을 분석한 한 기자의 분석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부터 5월 31일까지 약 2달 동안 신문사들의 논조는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침몰 직후인 4월 17일 사설을 보면 모든 신문사가 세월호의 침몰을 ‘애도’하며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했고 이를 계기로 제도와 문화 속에 ‘안전 의식’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국민들은 무엇보다 이번 참사를 통해 대한민국은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기분을 뼛속 깊숙이 느끼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고, <국민일보>도 “정부가 안전에 관한 총체적인 점검을 통해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시기 언론사에서 많이 쓰인 단어는 ‘사고’ ‘안전’ ‘정부’ ‘침몰’ ‘실종자’ 등이었다. 특히 ‘안전’은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많이 쓰인 핵심 단어였는데, <조선일보>(59회), <세계일보>(36회), <경향신문>(30회), <동아일보>(22회), <중앙일보>(16회) 등에서 많이 쓰였다(강아영 기자, <기자협회보>, 한국기자협회, 2016.4.13. http://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8931). 이 분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사회학자 김홍중 서울대 교수의 말처럼, 분명히 이 시기 우리 사회에 떠오른 ‘안전’에 관한 목소리들은 “공적이고, 정치적이고, 집합적인 가치가 되어 ‘나’의 안전을 넘어서는 ‘우리’의 안전, 그리고 좁은 의미의 ‘우리’를 넘어서는 안전으로 진화할 수 가능성”의 것이었다. 또다시 찾아온 비극적인 사건 그런데 8년 6개월이 지나 또다시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방송대 동문인 방현희 소설가는 “이번 비극에 대해 우리가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은 불과 얼마 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으며 그로부터 사회 안전 대책이 강화됐으리라는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생명에 대한 인식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변화한 것이 거의 없다는 참담한 사실에 맞닥뜨렸다는 것이 더욱더 절망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생사가 갈리는 순간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했던 이혜림 학우(사회복지학과 3)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생명을 이해하는 우리들의 관점에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는 “생명과 안전이 제도와 문화, 삶 속에 자리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의 ‘사태’를 놓고 사고, 사건, 참사 등으로 각자 다르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더 극명하게 갈라졌다는 뜻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라는 비극적 사건을 겪으면서도 생명을 바라보는 데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10·29 참사 1개월 뒤에 나온 <동아일보> 사설(2022.11.29.)을 보자. “참사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 이유는 재난의 참혹함 때문만은 아니다. 재난이 발생한 후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실패하고 있다는 무력감 탓이 크다. (중략) 이번 참사와 같은 후진적 인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매번 책임자 처벌로 끝날 뿐 재난에서 배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처 과정에서도 실패’, ‘재난에서 배우는 데 실패’ 등은 안전의 제도화와 의식의 내면화가 미흡했다는 지적일 테지만, 이 사설 어디에도 낱낱의 생명에 대한 치열한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8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국가주의적, 발전주의적 ‘생명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방증으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논리를 따르면, 여기에는 ‘생명 권력’ 문제가 작동한다.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성찰 푸코의 주장을 빌리면, 생명 권력은 살아 있는 존재인 인간을 법적 주체이기보다는 인적 자본(경제적 주체)으로 환원함으로써 생명 그 자체가 자본과 소득의 흐름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이 되도록 만들고자 한다. 그의 생명 권력 분석은 살아있는 존재가 인구의 한 요소로서, 또한 구체적으로 계산된 인적 자본으로서 관리되고 조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이후 국가가 보여준 대응 방식은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조선대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이 주최한 제3회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재난의 충격,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환기해볼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 인권과 생명 권력」을 발표한 철학자 조난주는 “우리가 생명 권력의 작동 방식과 그 효과를 분석할 수 있을 때, 그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내부에서도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과도한 통치에 저항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실존적 삶을 지켜낼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생명의 원리』(1963)에서 생명을 “자신의 생존을 보존하려는 목적에서 죽음과 대결하고 있는 적극적인 존재”로 정의했다. 이를 재해석한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약학과)는 자신의 책 『생명을 묻다』(2022)에서 “역학법칙에 따라 규칙적인 운동만 하는 자연 세계에 예측 불가능한 운동을 일으키는 존재, 어디로 튈지 모르며 어떤 뜻밖의 결과를 유발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존재, 그것이 바로 생명”이라고 말하면서, “생명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살필 줄 아는 것”을 강조했다. 10·29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생명’의 의미 성찰과 ‘생명을 존중하고 살피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사람과 삶

40년 공직생활의 지혜 활용 ‘10만 자족도시’ 만들겠다
조선시대에는 ‘홍주(洪州)’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4월 1일 홍주군과 결성군을 통합해 개편된 곳, 바로 충남 홍성군이다. 이곳은 예부터 ‘홍주의병’으로 불리는 의병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서해안 시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홍성은 새로운 도약을 다지고 있다. 이용록 동문은 민선 8기 홍성군수로 ‘행복한 홍성’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이동 군수실’을 내걸고 주민 속으로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11일 오전 9시 이 동문을 만나, 방송대와의 인연과 홍성 혁신에 관한 구상을 들었다.   ‘늦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걸 두려워하라’라는 격언처럼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학업에 노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지식은 물론 무엇보다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방송대는 2002년 인연 맺어 10월 27일, 홍성군수인 이용록 동문은 홍성군 갈산면에서 ‘행복을 싣고 찾아가는 이동복지관’ 행사를 열었다. 주민들의 다양한 민원과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이동 군수실’이었다.  이동 군수실은 읍면에서 개최되는 주요 행사 시에 별도의 상담 부스를 마련해 주민과 자유로운 대화와 생활 불편, 주민 간 갈등 민원 등을 중점 상담해 민원 해결과 주민과의 격의 없는 소통을 꾀하는 창구다. 매년 추진되는 주기적인 읍·면 방문과 별개로 수시로 이동 군수실을 운용해 군민과 동행하며, 현장·소통 중심의 행정을 실현해 가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행복한 홍성’을 만들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1961년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 동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고향 홍동면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 두고 다시 대학을 준비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다. 공직생활 중 1987년 혜전대를 졸업하고 2002년 방송대 행정학과에 입학해 2004년에 졸업했다. 1991년에는 충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겨 안면도국제꽃박람회 기획총괄담당과 감사위원회 감사관, 충남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경제정책과장을 거치며 충남도청 근무를 마감했다. 이후 2018년 홍성부군수로 부임해 2020년 6월 30일까지 2년 6개월 동안 일했다. 40년의 공직생활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2년 6개월 동안 부군수로 보내면서 더 많은 성장의 기회 앞에서 멈춰선 홍성의 모습에 아쉬움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미래 홍성의 청사진을 그리며 나름대로 희망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이제 제가 꿈꿔온 홍성의 미래를 군민들과 함께 이루고자 정치에 입문해 민선 8기 홍성군정을 이끌게 됐으니, 어깨가 무겁기만 합니다.” ‘주어진 업무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업무 능력’이 장점인 이 동문에게 민선 8기 홍성군수 직은 새로운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그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방송대를 널리 빛내고 있는 동문의 도움과 응원을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도 홍성군수로서 안으로 성실과 청렴, 밖으로는 신뢰와 친절을 강조하며 변치 않는 마음으로 5개 분야 100개 공약 완성을 위해 발로 뛰며, 군민과 따뜻한 동행으로 변화하는 군정을 이끌고 군민이 행복한 홍성을 만들고자 앞장서겠습니다. 방송대 동문 여러분들께서도 민선 8기 홍성군정에 많은 관심과 고견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절호의 성장 기회 살리겠다” 사실 홍성군은 지금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충남도청의 이전, 혁신도시 지정이라는 절호의 성장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민선 8기 홍성군정은 홍성의 10년 뒤 20년 뒤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 군수는 △활력 있는 지역경제 △살기 좋은 농어촌 육성 △찾아오는 문화관광 도시 △건강하고 행복한 복지 △공감하는 참여 군정이라는 5개 목표를 중심으로 실천 계획을 다져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충남혁신도시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10만 자족도시 완성은 물론,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원도심 활성화로 체계적인 지역 균형발전을 꾀하고 있다. 젊은 층의 유입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산업단지와 민간 산업단지 유치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또한, 친환경 유기농업 경쟁력 확대로 전국 최초 유기농업 특구 위상에 걸맞은 특화 정책을 발굴하고, 친환경 유기농 시장의 성장과 발전을 선도해 가겠다는 계획도 뚜렷하다. 특히 홍성군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활동 참여 강화다. 장애인 사회생활 지원 증대,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여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홍성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상만 있는 게 아니다. 취임 후 그는 매일매일 발로 뛰어다니며 대통령실, 국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를 직접 방문한 결과, 남당리 주민의 8년 숙원사업이었던 ▲남당항 내항 준설사업을 위한 60억 원 ▲홍주읍성 복원·정비 32억 원 ▲군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한 재해예방사업 235억 원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축산악취개선사업 30억 원 등의 국비를 확보하기도 했다.   현재 홍성군청 바로 옆에는 과거 홍주목의 동헌이었던 ‘안회당(安懷堂)’이 자리잡고 있다. 뒤편에는 홍주목사가 휴식을 취했던 ‘여하정’이 있다. 전통 문화재를 현 위치에 두고 홍성군청은 새 군청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군청 이전과 함께 홍주읍성을 복원하고 홍주의병을 기리는 의병기념관 건립도 구상하고 있지만, 민간시설인 KT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학업 포기 생각 들었지만 완주” 시험을 통해 사무관 승진을 했지만 그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직장 생활과 방송대 공부를 병행했기에 시험 때는 중압감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낮에는 공직생활에 집중하고, 주로 밤 시간을 활용해 공부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내용을 숙지했다. 정독 3회는 기본이었다. 일에 쫓길 때는 ‘상사들 눈치 보면서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만 둘까? 꼭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완주해야 할 필요성과 의지가 있었기에, 장애물을 훌쩍 건너뛸 수 있었다. 그렇다면 40대 초반에 방송대를 만난 이 동문에게 방송대는 어떤 의미일까? 그에게 방송대는 한마디로 ‘현실에 부딪쳐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충족시켜준 평생교육기관’이다. 그는 “원격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고등교육을 구현하고 각자 다른 학생들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방송대는 교육의 기회를 확대·제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방송대가 “지능형 학습(AI) 플랫폼, 메타버스 등 변화하는 에듀테크의 시대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남다른 도전정신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생 2막을 위해 방송대를 찾는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40대 초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방송대를 선택했던 그의 경험이 묻어나는 조언이었다. “바쁜 생업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방송대에 진학한 후배님들이 많으시리라 봅니다. 방송대는 일반대와 마찬가지로 교육커리큘럼을 운영하고 학점 취득도 동일하게 어렵지만, ‘늦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걸 두려워하라’라는 격언처럼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학업에 노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지식은 물론 무엇보다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KNOU광장

누가 각자도생을 하고 있나?
요즘 뉴스 기사나 개인 블로그 글을 읽다 보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을 자주 본다.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대에 ‘각자 살기를 도모하다’라는 뜻의 이 용어는 팍팍한 현실에 남보다 먼저 안정된 사회 주도층의 대열에 합류하겠다거나, 자칫 사회의 변방에서 처량하게 서식할 자신의 처지를 경계하는 지금 사람들의 군상과 사회의 분위기를 너무나 잘 반영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인지 각자도생을 현대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실은 출전이 있는 꽤 오래된 말이다. 각자도생은 조선 시대에 국가적이고 공적인 위기 상황에서 종종 사용되곤 했다. 이 용어는 당시 국정의 책임자들 사이에서 발화됐다. 『조선왕조실록』의『선조실록』55권(선조 27년 9월 6일의 5번째 기사)에는 임진왜란 시기 평양 전투에서 패한 왜적이 퇴각하며 도성의 백성을 모두 죽인 일을 예로 들면서 ‘타지의 백성도 이를 미리 알게 하여 각자 살길을 도모할 것’이라는 내용의 문장이 보인다. 국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각자 목숨을 보전해야 했던 일차 대상은 일반 백성들이었다. 백성들의 각자도생을 일컬은 말은 국가 내부의 위기사태에도 등장한다. 『순조실록』 12권(순조 9년 12월 4일의 1번째 기사)에서는 광주 목사 송지겸이 흉년의 실상을 상소하면서 “(백성들이) 지금 살던 마을을 떠나 각자 살기를 도모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폐허가 된 민중들 삶의 처참함을 묘사한다. 한편 각자도생은 ‘各自圖生’과 함께 ‘各自逃生’ 즉 ‘각자 달아나 살길을 찾는다’라는 용어와 혼용됐다. 역시 임진왜란 시기의 기록인 『선조실록』 32권(선조 25년 11월 17일의 2번째 기사)에는 국경 변방의 일을 담당하는 행정관청인 비변사가 “경기의 동쪽과 강원도 북쪽에는 통솔할 만한 장수가 없어 그곳 백성들이 각기 살길을 찾아 (난민이 되어) 산골짜기에 모여 있는데 남의 나라 땅 일과 같이 되어서 매우 미안하다”라고 고했다는 글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각자 목숨을 보전하려 살기를 도모하는 것으로 묘사된 대상이 힘없는 백성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후금이 조선을 침략했던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족들도 그러했다. 『인조실록』 17권(인조 5년 10월 4일의 4번째 기사)에는 “종실(宗室)은 모두 나라와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인데 난리를 당하자 임금(인조)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한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라며 위기 앞에서 무력했던 왕실 인사들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도 존재한다. 그런데 인조는 결국 임금을 호위하지 않았던 왕족들의 가볍지 않은 죄를 모두 사해주고 다시 국가의 녹봉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사례를 살핀 것은 아니나 각자도생의 기록을 살짝 들춰본 뒷맛은 씁쓸함을 넘어 분노스럽다. 과거 백성들의 고단한 삶에 측은한 감정을 느꼈거나 역사적 사건의 실상에 각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19 시국 동안 각자 거리 두기로 각자도생하던 사람들이 해방구로 몰려들었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의 경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신이 살기 위해, 희생자가 희생자를 살리기 위해 다시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던 현실과 유가족들의 각자도생은 방관하며 자기 책임은 회피하려 들었던 국정 책임자들의 각자도생이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개개인의 삶의 양태가 각자도생으로 나가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긴 한데, 사람들이 각자도생을 안 하면 안 되게끔 만드는 국정 책임자들의 각자도생은 어떻게(어찌) 두고 볼 수 있을까. 조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문제다.  

뉴스

방송대-컬링연맹, 생활체육 활성화 MOU
  방송대(총장 고성환)가 대한컬링연맹(회장 김용빈)과 컬링의 대중화 및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지난 22일 서울 혜화동 대학본부 본관 중회의실에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 측은 이번 MOU로 △컬링 전문 인적자원의 상호 교류 및 협력 △시설물(방송시설, 체육시설 등)의 상호 이용 및 협력 △컬링 콘텐츠 공동제작 △컬링 및 양 기관에 관한 홍보 분야의 협력 등을 약속했다. 대한체육협회 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김용빈 회장은 이날 협약식에서 차후 대한체육협회와도 긴밀히 공조하자고 방송대에 제안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실업계 스포츠팀을 선택한 운동선수들이 차후 선수 생활을 그만 둘 경우 진로와 교육에 공백이 생겨 곤란을 겪는데, 이 문제를 방송대와 함께 해결해보자는 구상이다. 고성환 방송대 총장은 “컬링이 지난 동계올림픽을 거치면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졌다. 이번 대한컬링연맹과 협약으로 평소에 접하기 쉽지 않은 종목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 기대된다”라며 “컬링을 비롯해 체육계 전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방송대와 좋은 협력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용빈 회장은 “컬링뿐 아니라 모든 운동 종목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선수들은 모두 실업계로 간다. 국가대표를 그만둔 후 생활의 대안이 방송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라며 “이번 방송대와의 협력을 기점으로 방송대가 여러 체육인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 체육계와 함께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춘천시청 여자컬링팀은 2019년 처음 세계선수권대회 컬링 종목에 출전해 단번에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 다음으로 큰 스포츠 행사다. 해당 팀원들은 모두 방송대 영어영문학과 등에 재학 중이다.

진로ㆍ취업

아이디어 있는데 자금과 노하우 부족하다면?
지난 11월 26일(토) 혜화동 방송대 대학본부 3층 소강당에서 ‘2022학년도 가을학기 KNOU MBA 창업 워크숍’(이하 창업 워크숍)이 열렸다. 방송대 경영대학원(원장 이우백)이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마련한 자리로, 스타트업 창업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솔깃해할 ‘정부창업지원사업 구조 및 활용방안’과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 등을 소개했다. 이날 창업 워크숍에는 김종오 부총장, 라선아 프라임칼리지학장, 최세라 교수, 최세연 교수 등이 함께 참여해 경청했다. MBA과정에 있는 원우들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경청했다. 스타트업(startup)은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뜻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용어로서,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 기업이다. 자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작은 그룹이나 프로젝트성 회사을 가리킨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스타트업 테이프를 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곧 누구나 스타트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역시 진입 장벽이 존재하며, 사업으로 키워가는 데 난관이 따른다. 가장 큰 애로점은 ‘창업 자금’과 ‘창업 노하우’다. 이날 ‘창업 워크숍’이 무게를 실은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창업지원’ 창구가 존재한다. 이우백 경영대학원장도 “설명을 듣고 보니 우리 주변에 정부지원사업 창구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자주 활용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전해준 ‘정보와 경험담’은 제대로 된 정보의 가치 그리고 실제 스타트업 창업자의 고민과 창업을 통한 의미의 발견 등에 초점을 맞춰, MBA 과정의 원우들뿐만 아니라 창업에 관심을 둔 학우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워크숍의 주요 내용을 ‘경험담’과 ‘창업지원금’ 순으로 소개한다. 싸이월드 창업자가 말하는 스타트업 ‘사이좋은 세상’을 표방하면서 1999년 첫 선을 보인 ‘cyworld’는 200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를 이끈 SNS이며, 역대 어떤 플랫폼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높은 대중적 이용도를 자랑했던 SNS였다.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긴 했지만, 이 시기 ‘cyworld’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우상으로 남아 있다. 이날 창업 워크숍에 참가한 원우들의 관심을 끈 이는 바로 이 ‘cyworld’ 창업자 이동형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이었다. 이 센터장은 대학원 시절 ‘인사이트(insight)’를 얻었다. 그는 “창업예비자들이 시장에 진일할 때는 ‘카피캣’도 괜찮다”라고 운을 뗐다. 그 자신도 미국의 ‘식스 디그리즈(Six Degrees)’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 이런 ‘인사이트’와 함께 중요한 것은,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다. 근래 20대, 30대 젊은 층에서 ‘창업’ 열풍이 부는 것도 ‘다른 삶을 향한 욕망’이 강렬해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 창업에 이른다 해도 ‘전체’를 보는 통찰력을 갖추고 있느냐다. 이 센터장은 처음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것저것 실제 행동에 옮기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고의 성숙이 필요했다. 이 4년의 시간을 그는 ‘연애의 감정’에 빗댄다. 사업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50대 후반인 지금,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함께하는 사람들’이 옆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4개월 만에 ‘cyworld’ 최초 버전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잘 될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나의 제품을 완성해서 시장에 내놓고, ‘고객 설득’을 통해 목표점에 도달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유저들 대부분이 여성인데, 이를 남성으로 착각한 데서 기인한 좌절이었다. ‘고객 이해’에 실패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창업자에게 던져진 첫 번째 허들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책임감’이었다. 함께 창업에 나선 이들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미안함이다. 좌절의 문턱을 이 책임감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이 센터장은 특히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에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컴퓨터와 디지털 문화가 보여주는 기술의 진화는 ‘신선한 데이터’의 취득과 활용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지하실을 가득 채운 컴퓨터 계산기는 책상 위를 거쳐 손 안으로,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뇌 그 자체를 향해 진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타트업 역시 이러한 기술의 진화 과정과 밀접하게 ‘타이밍’을 요구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정부 창업지원사업 활용 창구는? 그렇다면, 아이디어도 있고 창업 의욕도 앞서는 이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 즉, ‘창업 자금’ 은 어떻게 풀어야할까? 현대그룹에서 일하다 창업에 나서 4개 스타트업을 꾸렸던 최병조 인천대 창업지원단 창업중점교수가 이 문제를 정리했다. 그는 17개 지자체, 2개 자율센터 등 총 19개로 구성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구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전국에 위치한 이들 센터들은 각각 전담대기업을 두고 있어서 잘 이용하면 ‘협력관계망’을 만들 수 있고, 실제 창업에도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창조혁신센터 등을 통해 ‘창업지원교육’을 받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5년 후 생존율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환기했다. 창업지원교육을 받은 기업은 80%의 생존율을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30%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창업에서 가장 큰 애로점은 첫 번째가 ‘자금’, 두 번째는 ‘아이디어의 사업화 방법’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창업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자금조달 방법은 첫 번째가 ‘셀프 본달(본인 자금)’이다. 이는 남성, 여성 모두 해당한다. 그러나 두 번째 방법은 남녀에 따라 조금 다르다. 남성 창업자의 경우 ‘기보, 신보’가, 여성 창업자의 경우 ‘엔젤투자자 및 엑셀러레이터’ ‘중앙정부 및 정부부처’였다. 남성 창업자의 경우 ‘중앙정부 및 정부부처’는 세 번째, ‘엔젤투자자 및 엑셀러레이터’는 네 번째였다. 이를 일반화하면, 셀프 조달, 가족 및 지인 조달이 우세하다. 중앙정부 및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충분히 눈 돌릴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창업과 관련해 자금조달 로드맵도 알아두는 게 좋다. 최 교수에 따르면, 기업 성장 단계별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아이디어-R&D-시제품 출시까지는 창업자자금, 창업경진대회, 가족이나 지인, 기술보증기금, 정부 R&D 사업참여, 정부지원을 적극 활용하는 게 좋다.  

특집

방송대가 신·편입생 ‘영끌’ 위해 세운 계획
대학 전체적으로 보면 학생 수 감소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방송대가 포함된 평생교육 시장은 조금 다르다. 학생 지원자가 수능을 치른 젊은 층이 아닌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구 고령화에 따른 평생학습의 중요성과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원격교육의 가치는 나날이 커져 오히려 그 수요를 기대해볼 수 있는 시장이다. 방송대가 이번에 입학 홍보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이충기 학생처장(경제학과 교수)에게 2023학년도 1학기 신·편입생 모집의 핵심포인트를 들어봤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방송대 학생처가 내년도 1학기 신·편입생 모집을 위한 광폭 홍보에 나섰다. 방송대 등록생 수(1학기 기준)가 올해 처음 10만 명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그동안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주춤했던 신·편입생 모집 홍보에 다시 고삐를 쥐었다. 올해 1학기 등록생 수는 9만5천620명이다. 10년 전인 2013년 1학기 등록생 수 15만여 명에서, 2014년 14만여 명, 2015년 13만여 명 등으로 매년 약 1만 명씩 뚝뚝 감소하다, 2018년부터는 10만 명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는데 올해 결국 꺾이고 말았다. 올해 1학기 등록생 수는 전년 대비 -7.4% 떨어졌다. 이에 학생처는 특단의 조치를 세웠다. 먼저 이번 신·편입생 모집 시즌에 줌(zoom)을 통한 온라인 입학설명회뿐 아니라 학생부처장까지 총출동하는 고등학교 방문 입학설명회도 부활시켰다. 장기적으로 각 지역의 학생 서포터즈를 선발해 풀뿌리 홍보 라인을 구축하고자 한다. 지난 학기부터는 온라인으로 입학 서류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해 편의성을 높였고, 챗봇을 통한 입학 및 학사상담을 향후 수년에 걸쳐 강화해 홍보 효율성도 높이겠단 방침이다. 해외 입학 자원도 유치할 계획이다. 온라인 부속서류 제출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방송대는 온라인으로 원서접수를 한 후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 학력증빙 서류와 유치원교사 자격증, 간호사 면허증 등 추가 자격을 증빙하는 서류, 사회복지사 자격증, 영양사 면허증 등 특별전형을 위한 서류를 별도 제출해야 한다. 이에 2022학년도 2학기 모집 때 ‘정부24 제3자 제출’ 기능을 이용해 고등학교 졸업증명서 온라인 제출을 먼저 도입했다. 이번 2023학년도 1학기 모집 때는 유치원 교사 자격증, 간호사 면허증, 사회복지사 자격증, 영양사 면허증 등 4종을 온라인으로 제출하도록 개선했다. 장기적으로는 부속서류 제출을 100% 온라인으로 가능하도록 개선하고자 한다. 지원자들이 왜 입학을 포기하는지 살펴보니, 합격해 놓고도 서류 제출 때문에 번거로워서 미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증명서를 우편으로 내거나 직접 방송대에 방문해 제출해야 하니 번거로웠을 것이다. 온라인 부속서류 제출로 이런 불편을 해결할 수 있다. 온라인 제출이 오히려 더 어려운 고령 학우들은 그대로 우편 서류 제출이 가능하도록 창구를 열어뒀다. 온라인 부속서류 제출 시스템 도입 후 성과는 2022학년도 2학기부터 고등학교 졸업 증빙서류를 정부24를 통해 온라인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때 658명이 이 시스템을 통해 서류를 냈다. 1학년 지원자 3천141명 중 21%에 해당한다. 올해 2학기 첫 도입 후 내년도 1학기 모집에서는 모집요강에 서류 제출 온라인화를 명시하는 등 계속해서 홍보하고 있어 향후 온라인 서류 제출률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24를 통한 졸업증빙 서류 제출은 1학년 신입학 학우들만 대상으로 운영했다. 편입생은 고등학교 졸업 증빙서류 제출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주요 보직 교수님들이 직접 입학설명회를 뛴다고 한다 방송대는 앞서 2016, 2017학년도에 입학설명회를 일시적으로 실시했고, 일부 지역대학에서는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2018년부터는 입학설명회를 따로 개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2023학년도 1학기 신·편입생 모집에서 부활시켰다. 방송대는 지원자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측면에서 여느 일반대학의 입학생 구성과는 다르다. 입학설명회를 진행해도 그 효과가 어느 정도 될지 사실 미지수다. 그러나 손 놓고 있기보다는 학생들의 요청이 있어 이번에 입학설명회를 재개하게 됐다. 줌을 이용해 온·오프라인 병행 입학설명회와 직접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오프라인 입학설명회를 모두 진행한다. 온·오프라인 입학설명회는 12월 14일 오후 2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참석 대상 인원은 온라인 1천 명, 오프라인 50명으로 11월 30일까지 참석자 신청을 받았다. 오프라인 현장은 서울 혜화동 방송대 디지털미디어센터(DMC) 4층 스튜디오로, 이곳 입학설명회 현장을 줌으로 중계하는 형식이다. 11월 23일 기준 신청 인원은 436명, 그중 오프라인 신청자 수는 73명으로 반응이 뜨겁다. 오프라인 입학설명회에는 오프라인 입학처 부처장이, 온·오프라인 입학설명회는 처장이 나설 예정이다. 방송대 오프라인 입학설명회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어떤가 3개 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오프라인 입학설명회를 진행 중이다. 방송통신고를 중심으로 입학설명회를 여는데,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고 질문도 많이 하는 등 반응이 좋았다. 방송통신고 입학설명회에 가보면 보통 50~60대 학생들이 많다. 해당 연령대를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통신고 재학생들의 연령대 범위가 그렇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20대 학생은 반에 1~2명 정도였다. 다음 학기에는 지역대학과 연계해 좀더 체계적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경동고 방송통신고, 남인천고 방송통신고, 경기여고 방송통신고 등에서 오프라인 입학설명회를 실시했다. 경동고 방송통신고, 남인천고 방송통신고에서의 참석 인원은 각각 80, 120명이었다. 방송대 홍보대사도 지역별로 선발한다고 들었는데 이전까지 지역대학 입시설명회는 학생처 주관이 아닌 지역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사항이다. 방송통신고 출신 방송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교에 가 홍보하고 있었다. 향후엔 학생과 지역대학이 알음알음하기보다는 대학본부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신·편입생 모집을 위한 학교 홍보를 진행하려고 한다. 대학본부가 먼저 지침을 마련하고, 그 교육 내용을 지역대학에 전달해 지역대학 단위의 홍보 서포터즈를 구성하려고 한다. 11월 중순 지역대학 학생모집 담당자들과 기초 회의를 진행했고, 이후 진행된 회의에서는 지역대학 행정실장들까지 참석하도록 해 학생모집과 관련한 개선 방안을 좀더 활발하게 논의했다. 지역대학 학생 서포터즈 제도는 내년쯤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올초 밝히신 ‘해외 입학생’ 계획은 지난 5월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해외 학생 유치를 통해 다시 한번 학생 수가 증가하는 전환점을 만들고자 한다. 2024학년도 모집이 목표다. 처음부터 해외 외국인 학생들을 모집하기는 어렵고, 일단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유치 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커버스토리

  •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은 2022년 11월 30일 기준 3만506명이다. 그렇다면 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어떤 인식의 확장을 경험했을까? 혹은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점에서 “재난이 일어나면 우리는 사유를 강제 당한다. 우리는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밀린다. 이 과정에서 재난은 그 이전에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특정 존재의 역량을 집합적으로 식별하는 계기를 준다”라고 말하는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과)의 설명이 흥미롭다. 그는 지난 11월 12일 네이버 ‘열린연단’ 시즌9 「자유와 이성」 강연에서 미증유의 감염병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점검한 「팬데믹 시대의 개인과 사회」를 발제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글 가운데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결론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전문은 네이버 ‘열린연단’ 홈페이지(openlectures.naver.com)에서 볼 수 있다. 정리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코로나19를 맞이해 한국 사회는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는 코로나19를 비교적 큰 파국 없이 대처해나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한국 사회는, 확진자의 동선 공개나 마스크 착용, 혹은 백신 의무 접종이나 개인적 자유의 부분적 제한 등에 대해,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겪지 않았다. 서구의 경우, 새로운 감시 사회의 등장에 대한 우려,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가치를 방역 정책이 침해하는 상황에 대한 저항, 혹은 근대적 생명 정치의 작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지만, 한국은 이에 비하면 별다른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위기 상황에서 소수의 목소리나 이견을 청취하지 못하는 경직되고 반민주적인 사회라는 사실의 방증인가? 혹은 한국 사회에 자유의 관념, 자유의 경험과 가치의 절실함이 부재해 생명 정치적 ‘위급 상황’에서 자유보다는 생존을 추구하기 때문일까?   한국 사회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보여준 것은 안전이 어떻게 공적이고, 정치적이고, 집합적인 가치가 되어 ‘나’의 안전을 넘어서는 ‘우리’의 안전, 그리고 좁은 의미의 ‘우리’를 넘어서는 안전으로 진화할 수 가능성이었던 것이 아닐까?     이를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최근 10여 년간 한국 사회가 겪은 진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일 수 있다. 즉, 코로나19를 2000년대 후반부터 지속된 일련의 재난들의 연쇄 속에 위치시키고 살펴보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주목을 요하는 사건이 바로 2008년 쇠고기 촛불 집회다. 이 운동은 생명과 안전이 정치적 다이너마이트로 폭발한 최초 사건이라는 중요성을 갖는다. 이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해 사건, 미투 운동, 페미니즘 리부트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들며 변형시킨 정치적 정동은 ‘안전’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1990년대의 여러 재난에 이어 IMF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고통을 겪으며 21세기를 통과하면서 ‘안전한 사회’에 대한 집합적 열망을 정치화한 것이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prion), 아이들 방에 뿜어지는 가습기의 화학 물질,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의 관리 상태,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 일상적 폭력, 이 위해의 시스템을 차단, 관리, 조절하는 것, 즉 안전(security)에 대한 꿈이 한국 사회를 끌고 간 핵심 정동 중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안전이라는 가치가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보편적 근대성의 가치들과 연결돼 창조적 변형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생성돼, 파급력을 갖고 운동하고 있다. 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쉽게 살해되고, 맞고, 위협에 떨어야 하는가? 왜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가난한 청년이 유력한 부모의 자식들보다 더 많은 사고를 겪어야 하는가? (한국 사회는 평등을 ‘안전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유란 자신의 신체가 몰래 촬영돼 불법 사이트에 공개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자유,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는 자유, 혹은 라돈(radon)에 의한 저선량 피폭을 걱정하지 않고 침대에 누울 수 있는 자유가 아닌가? (한국 사회는 ‘안전으로서의 자유’ 혹은 ‘자유로서의 안전이라는 매우 독특한 관념에 도달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대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안전하지 못한 삶에 내던져진 희생자, 빈민, 장애인, 동물들과의 연대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한국사회는 안전이 결핍된 존재자들의 새로운 연대, ‘피해자에 대한 박애’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근대성의 중심 가치를 재조립하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 안전에 대한 욕망이라는 사실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 사회학자가 울리히 벡(Ulrich Beck)이다. 2008년 봄, 쇠고기 촛불 집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그가 한국을 방문해 3월 31일 서울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 시민사회의 거주자들에게 인류학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더이상 베케트의 형이상학적인 집 없는 상태, 자리를 비운 고도(Godot)도 아니고, 푸코의 악몽적 전망도 아니며, 막스 베버를 겁에 질리게 한 합리성의 소리 없는 독재도 아니다. (…) 오늘날 사람들의 우려는 근대성에 대한 인류학적 확신이, 흐르는 모래 위에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감으로부터 온다. 사스와 광우병은 단지 시작일 뿐이고 기후 파국은 곧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리고 그것은 물질적 의존과 도덕적 책임의 구조가 부서지고, 세계 위험 사회의 민감한 기능 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공황에 빠진 공포가 될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모든 것은 물구나무선다. 베버, 아도르노, 푸코에게 섬뜩한 전망이었던 것(관리되는 세계의 완벽한 감시의 합리성)이 현재 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약속이 된다.”(울리히 벡,『위험에 처한 세계와 가족의 미래』, 한상진·심영희 편저, 새물결, 2010) 벡에 의하면, 위험 사회의 시민들은 베버가 예견한 자본주의적 ‘철창(iron cage)’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도르노가 비판한 ‘도구적 합리성’을 폄하하지 않으며, 푸코가 분석한 ‘파놉티콘’과 규율 권력에 공포심을 갖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관리되는 세계의 완벽한 합리성’을 기대한다. 비판 지성이 오랫동안 디스토피아로 형상화한 바로 그 세계가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의 상징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험 사회의 시민들은 타자에 대한 과민한 공포를 품고 에고에 대한 위험을 신경증적으로 회피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나르시시즘적 주체’로 폄하될 수 없다(지젝). 왜냐하면, 안전에 대한 욕망은 위험에 관한 지식에 기초해, 다수의 재난을 겪어내면서 대중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사회적 에너지, 집단 지성이 생산한 사회적 공통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신분석학이 비판하고자 하는 환상이나 현실에 대한 단순한 오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 아감벤의 정치철학 역시, 우리 시대 안전에의 욕망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얼마나 탄력적인 변이와 차이를 생산하면서 전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가령, 생명정치가 작동하는 모든 곳이 곧바로 절멸 수용소가 되는 것이 아니며,  생명정치에 포섭된 대상들이 곧바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으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다. 글로벌 위험 사회의 시민들은 생명권력과 안전에의 욕망 사이에 넓은 교섭 공간을 갖고 있으며 거기서 탄력적이고 창조적인 협상을 수행해간다. 예컨대, 더 많은 CCTV를 설치하여 일상적 범죄를 예방해 주기를 청원하되, 동시에 데이터를 불법으로 사용하거나 전유하려는 국가나 자본에 저항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아감벤이 비판하는 근대 생명정치의 가치인 ‘벌거벗은 삶(bare life)’은 저급한 형태의 생명이 결코 아니다. 어떤 생명도 그저 단순하고, 벌거벗은 생명일 수 없다. 생명과 안전을 향한 욕망은 각자도생이나 이기적 안녕에 대한 열망으로 비판될 수 없다. 생존은 21세기적 생태 위기, 즉 제6의 멸종이라는 위협 앞에 있는 세계에서 다른 어떤 정치적 가치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로 재구성되고 있다. 민중의 생존권은 단순한 경제적 권리 요구가 아니라, 총체적 존재의 권리와 무관하지 않으며, 타자를 감염시키지 않아야 하는 의무도 고전적 의미의 자유 개념을 넘어서는 위험 사회의 새로운 시민 윤리로 읽혀야 한다. 한국 사회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보여준 것은 안전이 어떻게 공적이고, 정치적이고, 집합적인 가치가 되어 ‘나’의 안전을 넘어서는 ‘우리’의 안전, 그리고 좁은 의미의 ‘우리’를 넘어서는 안전으로 진화할 수 가능성이었던 것이 아닐까? 즉, 인간-너머의 존재들로 확장되는 어떤 ‘함께-살아남기’의 사상, 그 씨앗이 우리에게 뿌려진 것일 수도 있다. 아직 한국 사회는 생태 감수성도 낮고, 기왕의 발전주의의 힘이 너무 강력하여 세계를 여전히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경제적 영토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지금 지배적인 것이 영원히 지배적인 것으로 남을 까닭은 없다. 빠르게 변화하고,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우리 사회의 역량이 우리를 발전주의를  넘어 새로운 생태주의적 감수성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희망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가능성이다.

    0 1

  • 생명의 기원에서 생명 정치까지
  • 공부하다 지루할 때 읽는 기말시험 ‘알쓸신잡’
  • “지금은 차곡차곡 쌓은 지식 거둬들이는 시간”
  • 시험은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다!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