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방송대를 진짜로 바꾸기 시작한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김종오 제9대 총장이 지난 4월 28일 취임식을 가졌다. ‘학위 그 이상의 가치, 방송대 5.0’을 기치로, ‘AI 시대를 선도하는 열린 교육,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슬로건으로 제시한 김종오 총장을 취임식 하루 전인 4월 27일 ‘위클리’ 기자들이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총장은 “방송대가 개교 54주년을 넘어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점에,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개인적 영광이기 이전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라고 말하면서, “지난 24년간 교수로, 학생처장으로, 부총장으로 이 학교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방송대 구성원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4년을 만들어가겠다”라고 포부를 다졌다. 최익현 선임기자·윤상민 기자·이현구 기자·김영민 편집기자 재학생, 동문, 가족, 교직원 모두를 하나의 가치 공동체로 묶는 것, 그것이 방송대 5.0의 출발점 청년은 경험을 얻고, 중장년은 디지털 감각을 얻는, 세대 간 학습 시너지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 그것이 방송대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     총장님 재임 기간의 대학 운영 철학을 압축한다면, ‘학위 그 이상의 가치, 방송대 5.0’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동안 방송대가 한국 사회에서 수행해왔던 역할들, 그리고 다양한 기여들을 본다면, 이 ‘학위 그 이상의 가치, 방송대 5.0’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방송대 재학생, 동문, 재학생·동문 가족, 교직원 전체를 묶어, 새로운 방송대 시대로 이월하는 가치 정책의 발굴로 이해됩니다. 이 선언의 지향점을 듣고 싶습니다 ‘방송대 5.0’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방송대를 AI 기반 평생교육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입니다. 방송대는 라디오, 카세트테이프(1.0) → TV(2.0) → 인터넷(3.0) →모바일(4.0)을 거쳐왔습니다. 이제 5.0은 단순한 기술 전환이 아닙니다. AI를 기반으로 하되, 그 중심에 ‘사람’을 놓는 인간 중심 평생학습 생태계입니다. ‘학위 그 이상의 가치’란, 우리 학생들이 졸업장 한 장을 받는 것을 넘어 삶이 바뀌고, 커리어가 열리고, 지역사회가 달라지는 경험을 방송대를 통해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재학생, 동문, 가족, 교직원 모두를 하나의 가치 공동체로 묶는 것, 그것이 방송대 5.0의 출발점입니다. 이제부터는 좀더 구체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먼저, 전 국민의 교육복지를 담당하는 것이 방송대의 큰 역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지난해 후보자토론회에서 “안에서는 혁신을 만들고, 밖에서는 기회를 가져오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기회와 혁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밖에서 가져올 기회’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재명 정부의 지방균형발전 정책과 연계해 국가 평생교육 거점으로서 방송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설계하겠습니다. 둘째, 기업·지자체와의 재교육 협약 확대로 외부 수강 수요를 체계적으로 흡수하겠습니다. 셋째, 해외 한인 동포 및 개도국 원격교육 수요를 연결하는 글로벌 채널을 열겠습니다. ‘안에서의 혁신’은 AI 스마트캠퍼스 구축, 학습 관리 고도화, 튜터 시스템 개편을 통해 학습 완결률과 만족도를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임기 4년을 1년 단위 로드맵으로 운영하고, 매년 구성원에게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재정 문제도 매우 중요한데요. 이재명 정부는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세밀하게 다듬어 전국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5극 3특 권역별 성장’을 선언했습니다. 2030년까지 4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구조적 적자 위기에 내몰린 방송대 재정을 합리화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총장님께서는 후보 시절 현재 35%인 국고 지원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방송대가 ‘왜 지원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책적 논리를 우리가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5극 3특 권역별 성장’ 정책은 오히려 방송대에는 기회입니다. 방송대는 전국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유일한 국립대학입니다. 이 가치를 정량적 데이터로 입증하고, 교육부·기획예산처와의 협의를 임기 초부터 전략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먼저, AI 기반 교육, 디지털 전환, 평생교육 관련 정부 사업에 적극 참여해 수십 억~수백 억 규모의 프로젝트를 확보하겠습니다. 이미 정보화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실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둘째, 학습 수요 확대를 통한 수입 기반 강화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수요를 바탕으로 한 학과 신설을 포함해, 직장인 대상 단기 교육과정, AI·디지털 기초 과정, 자격 연계 프로그램 등의 프라임칼리지 비학위과정을 강화해 신규 학습자를 유입시키고 등록 기반을 넓히겠습니다. 또한 중도탈락률을 낮춰 안정적인 등록금 수입을 유지하겠습니다. 셋째, 수익 구조 다변화입니다. 학교기업 미디어랩을 통해 콘텐츠 판매, 강의 위탁 제작, 유튜브 운영강화로 수익을 대폭 확대하고, 출판문화원의 수익사업도 강화하며, 발전기금 모금 방식의 대대적 개편을 통해 등록금 외 수입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이겠습니다. 결국 등록금, 국고지원, 자체수입이 균형을 이루는 지속 가능한 3축 재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죠. 지난 4년간 통폐합되거나 광역화되는 학습관이 많아졌습니다. 학우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재임 기간 학습관과 지역대학을 어떤 관점으로 운영할 것인지요 지역대학은 방송대의 단순한 분산 조직이 아니라, 전국 단위 평생학습 체계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운영 방향은 비용 효율화가 아니라 기능과 역할의 재정립에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라 ‘지역과 대학, 그리고 학습자가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첫째, 지역 기반 평생학습 거점으로의 전환입니다. 지역대학을 단순한 학사 지원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학생이 함께 이용하는 학습 거점으로 발전시키겠습니다. 둘째, 지역 맞춤형 교육 운영입니다. 각 지역의 산업 구조와 인구 특성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겠습니다. 셋째, 온·오프라인 연계 학습 환경 구축입니다. 지역대학을 온라인 교육의 보완 공간으로 활용해 학생들이 언제든 방문해 학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학습 라운지, 스터디 공간, 온라인 강의 수강 환경 등을 개선하고, AI 학습 지원 시스템과 연계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된 학습 경험을 제공하겠습니다. 앞의 질문과 관련해서, 총장님의 4대 핵심공약 중 특히 ‘모두를 위한 공공대학 실현’의 세부 내용 중 ‘지역대학의 복합 플랫폼화’라는 제안이 흥미로운데, 좀더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복합 플랫폼화는 지역대학이 학사 행정을 지원하는 일차적인 기능과 역할을 넘어, 방송대와 지역사회가 만나는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째, 평생교육 기능 강화입니다. 예컨대, 지역대학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AI 기초, 디지털 활용, 재취업 교육과 같은 단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를 방송대 학위 과정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 → 학습자 → 정규학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고자 합니다. 둘째, 지역 맞춤형 교육 서비스 제공입니다. 지역 산업이나 인구 구조에 맞는 교육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산업단지가 있는 지역에서는 직무 재교육 프로그램을,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디지털 기초 교육이나 건강·인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대학이 단순한 교육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결된 교육 플랫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본부와 각 지역대학이 긴밀히 협력하는 유기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여 지역 맞춤형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협력 사업을 공동 개발·운영하고자 합니다. 결국 지역대학 복합 플랫폼화의 목표는 ‘학생뿐 아니라 지역 주민까지 함께 이용하는 열린 학습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AI)가 급속하게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대학들도 연구 및 학습에서의 AI 활용 범위에 관한 합의 부재로 다소 혼란을 겪고 있는데요, 우리 대학 역시 정책적으로 AI 융합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 학생들의 학습이나 과제물 제출 등에서는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해 혼선이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교육적 측면에서 AI 활용 범위의 기준을 모색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AI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을 지원하는 도구로 활용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AI는 이미 교육 현장에 깊이 들어와 있으며, 이제는 활용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 대학 현장에서는 AI 활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방향으로 정비하겠습니다. 첫째, 교육 목적에 맞는 AI 활용 가이드라인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과제 작성에서 AI를 참고자료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범위와, 평가에서 허용되지 않는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겠습니다. 학생과 교수 모두 혼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겠습니다. 둘째, AI 기반 학습 지원 시스템 구축입니다. AI 튜터를 도입해 학생들이 24시간 질문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또한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취약 부분을 보완해주는 맞춤형 학습 지원도 추진하겠습니다. 셋째, 평가 방식의 변화입니다. 단순 지식 재현형 평가에서 벗어나 AI를 활용하더라도 학생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형 과제나 사례 분석 중심 평가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학생 유치 전략과 관련해서 여쭙습니다. 편입생들이 느는 추세에서 젊은 층에 어필하는 접근과 함께 중장년층을 함께 끌어들일 장기 계획도 구상하고 계신지요 편입생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신호입니다. 방송대가 ‘중년의 대학’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생애 전 주기를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청년층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접근하겠습니다. 지금 20~30대가 방송대를 선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죠. 직장을 다니면서 학위가 필요해서, 경제적 부담 없이 전공을 바꾸고 싶어서죠. 이 수요를 제대로 잡으려면 콘텐츠가 달라져야 합니다. AI·데이터·디지털 분야의 실무 연계 교육과정을 강화하고, 취업·자격증·포트폴리오로 직결되는 학습 경로를 설계하려고 합니다. 또한 청년들이 실제로 정보를 얻는 채널(유튜브, 인스타그램, 커뮤니티)에 맞는 홍보 방식으로 완전히 전환하겠습니다. 중장년층의 경우, 베이비부머 은퇴 물결은 기회입니다. 다만 이들에게는 ‘학위’ 자체보다 ‘내 인생의 다음 장’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2의 직업, 사회공헌, 자기실현, 이 세 가지 방향으로 특화된 교육과정과 상담 체계를 갖추겠습니다. 그리고 이 두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배우는 것 자체가 방송대만의 강점입니다. 청년은 경험을 얻고, 중장년은 디지털 감각을 얻는, 세대 간 학습 시너지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 그것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입니다. 방송대는 개교 50주년을 넘어 새로운 100주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 다수의 국민들에게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충실하게 해온 방송대의 역사에, 4년 임기를 마치고 어떤 총장으로 기록되고 싶은지 여쭙고 싶습니다 ‘방송대를 진짜로 바꾸기 시작한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100주년을 향한 첫 디딤돌을 놓은 사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화려한 청사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그때 그 4년이 실제로 달랐다”라고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퇴임할 때, 제 후임 총장이 더 좋은 방송대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진짜 목표입니다.

사람과 삶

야학 제자들 방송대로 이끌어 … 학위 그 너머의 가치를 찾다
우리 주변에는 화려한 이력보다 보이지 않는 삶의 궤적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들이 있다. 김민제 동문(60세)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공부한 방향과는 다른 삶을 살다가 50대의 나이에 방송대 교육학과에 편입해 대학원 평생교육학과까지 마치면서 인생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현재 18년 차 화재보험 설계사이자 양평의 1년 차 귀농인으로 살아가면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그의 삶에서 변곡점은 교육학과의 만남이다. ‘배워서 남 주자’는 학과의 철학에 감동한 그는 야학에 뛰어들었다. 야학을 통해 어르신들을 지도하며 ‘자서전 쓰기’ 활동을 전개했고, 자연스레 제자들의 방송대 입학을 안내하게 됐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울지역대학 동아리 ‘어우러짐 글쓰기 연구회’를 창립해, 야학을 거쳐 입학한 이들이 무사히 졸업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배움을 통해 타인의 삶을 어루만지고 자신의 인생을 통합해가는 김 동문을 지난 4월 20일 서울지역대학에서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대학 졸업장을 목표로 하는 분도 있겠지만, 졸업장 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내가 이 나이에 왜 대학에 가는지,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얻어야 합니다. 방송대는 그런 의미에서 학위 그 이상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하는 곳이죠.”   “배웠으면 남 줘라”는 한마디에 김민제 동문이 2017년 방송대 교육학과 문을 두드린 것은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과 개인적인 학습 습관을 유지하고 싶다는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전공 공부 중 가슴에 박힌 학과 교수님들의 한마디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교육학과 재학 중 교수님들께서 늘 하시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배웠으면 남에게 줘야 한다’는 그 한마디에 꽂혀서 용기를 냈죠. 2018년 9월부터 동대문구에 있는 상록야학에서 국어 교사로 봉사를 시작했죠. 사실 처음에는 대학을 보내려고 한 것도 아니었어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학습경험뿐이니, 좋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뿐이었죠.” 낮에는 보험 설계사로 치열하게 일하고, 밤에는 6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어르신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도우며 그는 지식 전달 이상의 무엇이 필요함을 느꼈다. “야학에서 어르신들을 뵈니 이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강했지만, ‘내가 과연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 부족이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학위 취득이 아니었어요. 평생 배움이 없어 억눌리고 주눅 들어 있던 내면의 상처, 즉 ‘한’을 치유하고 자신의 인생을 긍정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봤어요.” 김 동문은 어르신들이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뜻을 같이하는 교육학과 후배 박종미 학우와 함께 ‘그룹 자서전 쓰기’를 기획했다. 이를 위해 2020년 가을, 교육학과 졸업을 1년 늦추고 학과 후배 5명과 함께 ‘총장배 평생교육프로그램개발 경진대회’에 참가해 「사랑해요, 내 인생의 자서전 쓰기 소그룹 활동」을 발표해 최우수상(2등)을 수상했다. 억눌린 인생 보듬는 자서전 쓰기 “자서전을 쓰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자신이 별거 아닌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글을 쓰며 ‘내가 이렇게 잘 살았네’, ‘내가 이렇게 성장했구나’를 스스로 발견하는 마법 같은 과정이거든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서로 경청하면서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라는 위안을 얻는 그룹 자서전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어요.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자기 통합’의 시간이었으니까요.” 여기서 그가 말하는 ‘통합’은 시간적이면서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발견과 완성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실제 야학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자서전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상처를 보듬으며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동문과 동료 자서전 교사들의 지도로, 그룹 자서전 쓰기는 ‘상록 시니어 자서전’ 1~3기 과정을 통해 좀더 구체적인 결실을 거뒀다. 「상록 시니어 자서전」 합본도 출간해 서로를 격려했다. 수십 명의 어르신이 용기를 얻었고, 그중 20여 명은 방송대 진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김 동문의 배려는 입학 권유에서 멈추지 않았다. 늦깎이 학우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학문적 글쓰기’를 돕기 위해 2022년 7월 서울지역대학 안에 동아리 ‘어우러짐 글쓰기 연구회’를 창립했다. 그는 이미 교육학과 석사학위(「그룹 자서전 쓰기에 참여한 중·노년기 성인 학습자의 성장에 관한 연구」, 지도교수 권영민, 2024)를 받았음에도, 동아리 회장으로서 늦깎이 학우들의 학습과 공부를 돕기 위해 2023년 국어국문학과에 다시 편입하는 선택을 했다. “이분들은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 입학이라는 큰 용기를 냈지만, 막상 학술적 글쓰기라는 벽에 부딪히면 많이 좌절하십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관련 지식을 제대로 배워서 나누고 싶었죠. 그게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한 이유죠. 물론 동아리에서는 지식만 나누진 않아요. 지금 저희 동아리는 1년에 한 번 회원들의 고향 생가를 방문하는 여행도 합니다. 4년 동안 스터디만 하면 졸업 후 관계가 끝나지만, 서로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경험은 인생의 만족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방송대 5.0’과 만나는 지점 최근 임기를 시작한 김종오 제9대 총장은 ‘학위 그 이상의 가치, 방송대 5.0’을 선포하며 대학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김민제 동문의 행보는 이러한 대학의 지향점과 놀랍게도 맞닿아 있었다. “방송대는 저에게 제 본모습을 깨닫게 해준 곳이죠. 다양한 인생 경험을 가진 학우들과 소통하며 제 생각의 편협함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 제 인생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데 50%,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데 50%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총장님께서 ‘학위 그 이상의 가치’로 방송대의 존재 의미를 설명해주셨다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장을 목표로 하는 분도 있겠지만, 졸업장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내가 이 나이에 왜 대학에 가는지,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얻어야 합니다. 방송대는 그런 의미에서 학위 그 이상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하는 곳이죠.” 그는 특히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려는 학우들에게 ‘기러기 떼’의 지혜를 빌려 격려를 전했다. “기러기 한 마리가 태평양을 건너기는 어렵지만, 수많은 기러기 떼가 함께 날면 힘 안 들이고 그 넓은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해요. 혼자 하지 마세요. 스터디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함께 가면 힘도 덜 들고 재미도 배가 됩니다. 한 학기 한 학기 마치다 보면 어느새 영광스러운 졸업의 날이 눈앞에 와 있을 겁니다.” 귀농, 양평 농원에서 그리는 미래 현재 양평에서 농부로서의 삶을 일궈가고 있는 그는, 조만간 자신의 농원을 학우들의 힐링 공간이자 글쓰기 발표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흩어져 있는 인연들이 자연 속에서 머리를 식히고, 직접 기른 채소를 따서 밥도 먹으며 자서전을 낭독하는 공간을 창조하고 싶어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언제나 주려고 하면 제가 복을 받더라고요. 어르신들의 인생에서 제가 배우는 내공과 지혜가 훨씬 많습니다. 머지않은 시간에 어디서든 문해 학습을 돕는 자리에 다시 설 것입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가르침을 실천하며, 타인의 삶에 빛을 비추고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통합해가는 김민제 동문. 그의 ‘밤에도 피는 열정’은 방송대가 제공하는 학위 그 너머에 있는 진정한 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KNOU광장

기분 좋은 예감
평생교육 실현이라는 방송대의 설립 취지와 평생 즐거운 스포츠 참여라는 생활체육의 정신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위클리로부터 원고 제안을 받았을 때와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감정의 차이는 많은 교수님께서 느껴보셨을 것 같다.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할지,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해야 할지…. 몇 번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다가, 생각을 정리할 때마다 즐겨 찾는 산책길을 걸었다. 걸으며 내가 왜 이 분야를 공부하게 됐는지 기억을 되살려봤다.   내 교육과 연구는 거창한 꿈이 아닌 ‘공감’과 ‘위로’에서 시작됐다. 이 글을 읽으실 교수님과 학우님들께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담백하게 나의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누구나 삶에서 기억에 남는 인생 몇 컷이 있다. 첫 번째 기억의 조각은 부모님의 어깨다. 또래들보다 부모님 연세가 많았고, 퇴근 후 늘 고단해하시는 부모님께 어린 시절 할 수 있는 효도는 피로로 딱딱해진 근육을 풀어드리는 것이었다. 안마를 해드릴 때마다 시원해하시는 모습에 나는 자연스레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다.   두 번째 조각은 고등학교 시절, 의사 가운을 입고 인체 모형 앞에서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하시던 한 교수님의 모습이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그 분야는 참 신선하고 흥미롭게 느껴져 주저 없이 ‘운동처방’이라는 전공을 선택하게 됐다. 대학 시절, 운동이 건강에 미치는 다양한 기전을 배우는 과정이 참 좋았다. 공부하면 할수록 ‘체육’이라는 학문이 참 이로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분야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깊어졌다.   세 번째 조각은 어린이집 선생님 품에 맡겨지던 딸의 모습이다. 박사과정 동안 나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 엄마였다. 태어난 지 60일밖에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연구실로 향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선후배들이 밤새 연구실 불을 밝히고 있을 때 저녁 6시만 되면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봤다. 포기를 고민할 만큼 어렵고 외로웠지만, 돌이켜 보면 그 경험이 공부와 일상을 함께 꾸려가는 방송대 학우들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 것 같다.   네 번째 조각은 2021년 방송대 생활체육지도과 학우들을 처음 만났을 때다. 수업을 하면서 이렇게 반짝이는 눈빛을 본 적이 드물었다. 다양한 경험과 연령대의 학우분들이었지만, 운동과 건강 그리고 공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분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교육자로서 더없는 행복이었다. 인상적인 분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해 두곤 했는데, 그 대화들은 연구와 교육에 대한 다양한 영감을 줬다. 언젠가는 학우들과의 추억이 담긴 책을 출판할 날을 꿈꿔 본다.   마지막 한 컷은 2026년 3월 3일, 교수님들께 처음 인사드리던 날이다. 그날 많은 교수님께서 공통으로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 학교 참 좋은 학교예요.” 그 이후로 그 말씀이 종종 떠오른다. 누구에게 좋은 학교일까? 생각해 보니 우리 학교는 학우들뿐만 아니라 교수님들에게도 좋은 학교인 것 같다.   평생교육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는 우리 학교가 참 멋지다. 생활체육의 철학인 ‘Sports for All’은 스포츠를 전문 선수를 넘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누려야 할 기본 권리로 여긴다. 또한 성과 중심이 아닌 건강 증진과 삶의 즐거운 화합을 목표로 하며, 참여와 과정 그 자체를 가치로 삼는다. 평생교육 실현이라는 방송대의 설립 취지와 평생 즐거운 스포츠 참여라는 생활체육의 정신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방송대에 오면서 큰 꿈이 하나 생겼다. 학우분들을 보면 또래에 비해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다수의 연구에서 증명해온 교육의 건강학적 효과를 실제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미국의「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가 삶의 궤적을 추적해 건강한 노화의 열쇠를 찾아냈듯, 먼 훗날 우리 방송대 학우들이 배움과 운동을 병행하며 얻은 삶의 활력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강 리더임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선배 교수님들이 방송대를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일궈온 터전 위에, 나도 그 일원이 되고 싶다. 방송대가 내 인생의 ‘sweet spot’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윤은선 방송대 교수·생활체육지도과

교양

역사적 재구성의 대상이 된 자유주의와 반자유주의의 대립
자유주의의 ‘위기’와 ‘승리’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모든 불확실성, 불안, 혼란의 책임이 자유주의에 있다는 묘사는 자유주의가 현재 그만큼 지배적이고 완전히 승리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기’ 개념과 개념의 위기 개념사(Begriffsgeschichite) 연구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위기(Krise)’ 개념의 본질은 단순히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혼란상태를 의미하는 데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어 어원 ‘크리시스(κρίσις)’가 원래 생사가 결정되는 양자택일의 국면을 의미했으며, 서양의 위기 개념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크리시스’의 어근인 동사 ‘크리노(κρίνω)’는 ‘분리하다’, ‘선택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 ‘다투다’, ‘싸우다’ 등을 의미했다. 당시 의학에서 ‘크리시스’는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고비(국면)이자 그에 대한 진단 모두를 지칭했다. 이 말은 의학뿐만 아니라 법과 신학에서도 사용됐는데, 정의냐 불의냐가 결정되는 ‘판결’, 혹은 구원을 받느냐 천벌을 받느냐가 결정되는 ‘심판’을 의미했다. 이로부터 탄생한 ‘위기’ 개념은 근대에 정치적이고 역사철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정치적으로 삶과 죽음, 정의와 불의, 구원과 천벌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 요구되는 국면 혹은 상황을 의미하게 됐고, 동시에 역사적으로 그 의미와 중요성이 극대화되는 결단의 국면을 지칭하게 됐다. 근대의 정치적이고 역사철학적인 용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위기’ 개념은 중대한 변화를 겪는데, 정치적이고 정파적인 투쟁개념(Kampfbegriff) 혹은 투쟁구호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제 ‘위기’란 투쟁의 양쪽 편에서 모두 상대편에 맞서 사용하는 개념 혹은 수사가 됐다. ‘위기’란 ‘우리’와 ‘그들’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이때의 선택은 곧 삶과 죽음, 옳고 그름, 그리고 구원과 천벌 사이에서의 결단과 같은 실존적 무게를 부여받는다. 코젤렉은 프랑스 혁명기 페인(Thomas Paine)과 버크(Edmund Burke)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들은 각각 정치적으로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에서 당시의 동일한 국면을 구체제의 몰락과 자유의 승리(페인), 혹은 유럽 문명 전체의 붕괴(버크)가 걸린 ‘위기’라고 진단하면서 독자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결국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위기’는 사태에 대한 객관적 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로 인해 다양한 대안을 고려할 수 없게 되고 오직 양자택일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완전히 타협이 불가능한 두 대안 중 오직 한쪽만이 삶, 정의, 구원임을 설득 혹은 강요하기 위한 철학적이자 수사적인 개념이 됐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개념은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어떤 상황에서나 그 중대성을 과장할 필요가 있을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부정확하고 모호한 의미의 유행어가 돼버렸다고 코젤렉은 한탄한다. 개념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위기’ 개념 자체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위기’의 역사와 자유주의의 역사 이러한 코젤렉의 묘사와 진단은 자유주의의 역사, 특히 자유주의 ‘위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틀을 제공한다. ‘자유주의의 위기’는 ‘자유주의의 승리’ 선언만큼이나 그 자체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선언이었고,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위기’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대로 자유주의가 ‘여전히’ 건재하며 그 미래도 불투명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투쟁 개념으로서의 ‘위기’의 지평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가 지금 위기인가 아닌가 하는 진단 여부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현재의 불확실성과 혼란, 불안의 책임이 모두 자유주의에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자유주의에 대한 완전한 청산과 극복을 위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반자유주의적 결단에 있다는 것이다. 혹은 반대로 이 모든 혼란은 반자유주의 탓이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자유주의만이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이 제시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위기’와 ‘승리’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든 불확실성, 불안, 혼란의 책임이 자유주의에 있다는 묘사는 자유주의가 현재 그만큼 지배적이고 완전히 승리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승리주의(triumphalism) 혹은 승리의식이 전제된 극단적 과장이 자유주의가 위기라는 진단에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이러한 과장의 수사가 매우 효과적이고 유용하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현 상황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을 공유하는 독자와 청중에게는 자신들과 공감할 수 없는 ‘상대방’의 승리의식이란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전혀 타협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과의 역사적 대결을 통해서만 현재의 불행하고 불안한 국면을 돌파할 수 있다는 확신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쉽다. 자유주의가 정말로 위기에 처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그래서 실제로는 대체로 승리의식 혹은 그에 대응하고 맞서기 위한 반-승리의식(counter-triumphalism) 간의 경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은 바로 역사서술과 역사적 서사의 재구성이다. 위기의 의미와 향방을 둘러싼 경쟁의 양측은 바로 이 점에서 이해가 일치한다. 현재 위기의 원인이 구조적이며 심층적인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단절과 결단을 촉구하려는 측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원인의 ‘뿌리 깊음’ 혹은 ‘유서 깊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이 원인이 ‘우리’에게 익숙한 가까운 과거가 아닌 먼 과거에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수록, 그리고 그 원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의 탄생에서부터 ‘우리’를 위협해왔다는 점을 입증할수록 지금의 위기와 결단이 피할 수 있는 숙명이라는 확신이 마찬가지로 단단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이 강하게 평가될수록 이를 물리칠 운명에 있는 전사의 명예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쟁의 반대편에게도 이러한 역사서술과 서사의 재구성은 그 자체로만 보면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가치 판단만 뒤집을 수 있다면 이러한 역사는 바로 자신들의 대의의 유서 깊음과 전통으로서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기’ 논쟁의 양측이 겉으로는 마치 실존적 투쟁에 직면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비밀리에 협조하고 있다거나 ‘공범’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단순화는 사태에 대한 비현실적인 인식만을 강화할 뿐이다. 현실에서 역사서술과 역사적 서사의 재구성에 관한 ‘친구’와 ‘적’ 사이에서의 이해관계의 수렴은 훨씬 더 복잡하고 장기적인 지적·정치적 영향관계 및 비판·반박·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자유주의 ‘위기’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슈미트의 역사서술과 그 이후 ‘자유주의 위기’ 담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독일 보수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일 것이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보여준 자유주의에 대한 매우 날카로운 비판과 이후 나치 정권에 협력한 행적으로 인해 더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인물이다. 그는 정치의 본질을 비상사태에서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급박한 위기 혹은 비상사태 상황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은 의회에서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토론을 하면 가장 이성적인 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 믿음에 빠져 결국에는 아무런 결정도 못내리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것이 그의 ‘판결’이다. 반면에 불확실성에 직면해 곧바로 삶과 죽음, 옳고 그름, 구원과 천벌,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권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헌법적 권한과 지위만이 ‘주권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 특히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을 통한 통치체제를 옹호했다(이런 점에서 코젤렉과 슈미트 사이의 지적·개인적 친분관계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그의 비판이 단지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의 당시 상황에 대한 진단과 분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반자유주의적·반의회주의적 비판을 뒷받침하기 위해 19세기 자유주의의 주요 경쟁 이념인 사회주의와 보수주의를 끌어들인다. 당연히 자유주의와 이들 이념 간에 존재했던 타협·중첩·공존의 역사는 자유주의에 물들었거나 전염된 결과로 매도된다. 그가 재구성한 역사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무산계급의 참정권 문제를 두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적대관계로 환원된다. 그리고 가톨릭 평신도 법학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그는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증폭된 자유주의와 가톨릭교회 사이의 관계 또한 완전한 적대관계로 대체한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결단이 바로 권위와 질서를 위협하는 무신론자들에 대한 심판이며, 특히 프랑스혁명 이후 계속돼온 신을 부정하는 세속주의자(자유주의자와 공산주의자)와 반혁명 가톨릭 보수주의자 사이의 실존적 투쟁을 종결시킬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슈미트의 자유주의 역사서술은 이후 자유주의와 반자유주의의 역사에 관한 표준적 서사로 자리 잡는다. 사회주의·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적대관계를 중심으로 재구성된 역사서술은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와 파시즘 모두에 맞선 반전체주의적 자유주의의 역사적 투쟁을 입증하는 서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학습

방송대라는 이름의 첫사랑, 40년 만에 만나 장기 연애 중
늘 새로운 관점과 기술을 접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   첫 학과인 문화교양학과 수업이 새로운 행복을 찾은 계기   창착 의욕은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이들에게 AI는 하나의 대안 지난달 초, 어느 학우가 인공지능(AI)과 협업해 썼다는 단편소설을 로 보내왔다. 방송대 문학상 응모 기간은 아직 멀었고, AI로 쓴 작품은 응모 대상도 아닌데 왜 보낸 것일까? 의아함은 그 학우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호기심으로 변해갔다. 2011년 문화교양학과 입학 후 다섯 번째 학과인 경제학과 졸업을 눈앞에 둔 김광성 학우. 입학 후 전국을 도보로 일주하고, 재학 기간 중엔 대학 측에 거액을 기부했으며, 방송대 홍보 모델로도 활동한 그의 이야기는 3년 전 중앙일간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왜 학업을 멈추지 않는 걸까? 방송대와 함께한 15년은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줬을까? 4월의 어느 봄날 대학본부 캠퍼스에서 김 학우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방송대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방송대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2011년에 문화교양학과에 처음 입학했는데 그게 처음은 아니었어요. 1971년 한양공고 졸업 직후에도 2년제 초급대학이었던 ‘방송통신대’에 지원했지만 경쟁률이 높아 낙방했죠.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1979년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공채에 합격해 58세로 퇴직한 2010년까지 주로 공장 설비 감정 업무를 했습니다. 먹고살기 바빠 대학은 단지 꿈이었죠. 40년 만에 방송대를 다시 찾은 건, 퇴직이 다가오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어떤 면에선 방송대라는 첫사랑과 재회하신 셈이군요 청년기에 동경했던 대상을 잊고 살다가 수십 년 만에 만났으니 첫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제 경우엔 달라요. 방송대가 40년 동안 몰라볼 만큼 발전하고 아름다워졌으니까요. 추억 속에 묻어두지 않고 끄집어내길 잘한 거죠. 입학한 해에 전국 도보 대장정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젊은 시절에 포기한 공부를 뒤늦게 시작하려니 너무 두려웠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팔도강산을 걷게 됐습니다. 5년 동안 틈 나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 총 1,600km를 걸으면서 막연한 두려움도, 입학에 대한 회의도 모두 비워내고 그 자리를 학업에 대한 의지로 채웠죠. 그때의 경험과 감상은 문화교양학과 졸업 논문에도 담겨 있는데, 그 논문으로 상도 받았습니다. 첫사랑과 재회하려니 가슴이 떨리고 용기가 나지 않아 고행하듯 걸었는지도 모르겠군요(웃음). 학과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문화교양학과부터 시작해 국어국문학과, 미디어영상학과, 법학과를 거쳐 지금 4학년에 재학 중인 경제학과까지 ‘내가 지금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가 우선이었습니다. 부차적인 이유로 학과를 선택하면 완주하기 힘든 것 같아요. 결과적으론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화교양학과에선 대학 수업에 필요한 배경 지식이 한층 풍부해졌고, 그다음인 국어국문학과에선 교재와 강의 내용 이해, 과제물 작성과 직결되는 ‘문해력’을 길렀으니까요. '디지털 문해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최근엔 'AI 문해력'까지 요구되고 있죠. 그런데 그 이전에 글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문해력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봐요.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면, AI를 비롯한 디지털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겠죠.   공부를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결실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이전엔 몰랐던 새로운 행복을 찾았습니다. 문화교양학과 수업은 가부장제와 고정적인 성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여학우들과 소통하면서 아내와 여성의 관점에 서보게 됐죠. 지난 30년 동안 내조해준 아내를 다가올 30년 동안 내가 보살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때부터 요리,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은 제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집안일과 친해지니 가족들과도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일 겁니다. 가장의 권위 뒤에 숨어 외로움을 곱씹게 되니까요. 공부하면서 젊은 학우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첨단 IT 기기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어요. 늘 새로운 관점과 기술을 접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합니다. AI 협업 소설도 IT에 대한 관심의 일환인가요 예,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다가 제 삶을 바탕으로 픽션을 창작해보게 됐어요. 저와 주변 사람들을 모티브 삼아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미지, 소설의 장르와 플롯을 AI에게 제시했습니다. 처음엔 AI가 노년기 만학도인 주인공 이야기를 너무 거창하게 풀어내길래 여러 차례 피드백을 주면서 수정했습니다. 보내주신 단편소설들을 AI는 ‘사람이 쓴 글’로 판정했습니다 제가 글을 먼저 쓰고 AI에겐 교정과 교열만 맡긴 건지, 아니면 등장인물이나 플롯 정도를 제시하고 AI가 쓰게 한 건지 궁금해서 테스트를 해보셨군요. 대체로 후자에 가까운데, 복수의 AI를 사용해 여러 번 수정해서인지 ‘인간적인’ 문체로 바뀐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챗GPT가 처음 만든 소설이 너무 작위적이면, 클로드에게 평론가 역할을 부여하고 그 소설을 평가하게 했어요. 클로드가 지적한 문제점과 제 생각을 취합해서 초고를 개작하는 과정은 편집자 역할을 맡은 제미나이에게 부탁하는 식이었죠.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갈수록 사람이 쓴 글과 비슷해지더군요. 인공물에 복잡성을 더할수록 자연물과 비슷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아요. 각각의 AI 서비스에는 사람의 인격과도 비슷한 고유한 특성들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런 점에 착안해서 위와 같은 과정을 시도해보게 됐습니다. AI를 활용한 소설 창작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문학성을 평가받거나 등단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한 편의 소설을 직접 쓸 수 없기 때문에 AI라는 도구를 사용한 거고요. 다만, 저처럼 창작 욕구는 있지만 벽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AI를 활용한 창작도 새로운 분야로 인정하면 어떨까요? 작품 전체를 만들어내기 힘든 사람이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어 한다면 그런 요구도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AI를 활용해 만든 이야기는 자전적 소설이지만 제 삶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 픽션입니다. 어떤 면에선 '또 다른 나'의 대안적인 삶을 창조해낸 경험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대다수의 바둑 기사들은 AI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AI의 기보를 모방합니다. 역사적으로 예술계의 많은 거장들이 다수의 문하생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고요. 학우님의 AI 협업 소설이 그와 비슷한 사례라고 보시는지요 예, 잘 짚으셨네요. 현세대의 바둑 기사들이 AI를 훈련 과정에 적극 활용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젠 인간 바둑 기사가 AI를 모방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죠. 전 유명 드라마 작가가 다수의 보조 작가를 활용해 대본을 쓰는 것도 ‘AI 협업 창작’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활용 대상이 인간에서 기계로 바뀐 것뿐이죠. 바둑 기사가 AI를 활용하는 건 훈련 과정에 국한됩니다. 예술가의 개별 작품에 해당하는 실전 대국에서 AI를 활용하는 건 부정행위로 간주되죠. 또 다른 인간을 조수(혹은 도구)로 활용하는 예술가는 해당 분야의 대가로 공인된 사람들이며, 자신의 창작 스타일을 조수들이 모방하도록 관리감독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이 점에서 창작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대화창에 지시문을 입력해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예, 제 견해가 단 하나의 정답이라고 보는 건 아닙니다. 기자님의 견해에서도 일정 부분 수긍하는 점이 있고요.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고 그로 인한 엄청난 편익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 전체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리고 개개인이 AI 시대에 어떤 길로 향해야 할지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주제일 겁니다. 우리 두 사람만의 대화에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대화와 논의가 방송대와 사회 저변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AI를 바람직하게 활용하는 방안도 찾을 수 있겠죠. 중앙일간지 인터뷰와 방송대 홍보 모델 활동의 계기는요 그 신문사 홈페이지의 독자 게시판에 사회의 저명 인사만 다루는 경향에 대해 지적했었습니다. 언론 매체가 무대 뒤에서 묵묵히 제몫을 하는 사람들을 망각하고 주인공만 부각시킨다는 내용이었죠. 신문사 측에서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와서 인터뷰를 하고 기사까지 실리게 됐어요. 방송대 홍보 모델이 된 건 저 같은 고령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소에도 지인들에게 방송대 입학을 권유하고 있고, 제 말을 듣고 방송대 가족이 된 분도 많습니다. 방송대가 제공하는 양질의 교육을 접해보면 세금 낸 보람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 저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요. 학업 외에도 동문회와 동아리 활동, 다문화 학우를 돕기 위한 활동을 통해 배움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우에게 전할 조언과 향후 계획이 있다면 노년기엔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찰 수밖에 없습니다. 전 이해가 안 되면 몇 번이고 복습하고 있어요. 반복 학습이라는 원격교육의 장점을 활용한 거죠. 또 과목 중복을 고려해 두 번째 학과부터는 2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3학년 편입을 선택하면 기간을 더 단축할 수 있지만 공부가 좀 부족해질 것 같았죠. 또 방송대에 처음 입학하는 학우라면 AI를 과제물에 활용하는 건 조금 나중으로 미뤄두는 편이 나을 듯해요. 처음부터 AI에 의존하는 건 장기적으론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앞에서 말한 '기본적인 문해력'을 기르는 과정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전 경제학과 졸업 후 여섯 번째 학과인 교육학과에 편입할 예정입니다. 그 학과에 저의 최근 관심사인 노화에 수반되는 자존감 저하와 극복 방안에 관련된 교과목이 포함돼있어서요. 연배를 가늠하기 힘든 맑은 눈빛과 열정을 지닌 김 학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꺼냈던 15인치는 됨 직한 커다란 태블릿PC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사랑도 행복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 것 같다. 기자님도 더 많이 사랑하고 행복하길 빈다”라는 인사를 건네며 지하철 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집

“‘우공이산(愚公移山)’ 마음으로, 4년 뒤 방송대가 단단하게 도약했고, 더 따뜻해졌다는 평가 받도록 혼신의 힘 다하겠다!”
김종오 제9대 방송대 총장 취임식이 4월 28일 오후 3시 DMC 4층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보직 교수진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학우, 동문들이 참석했고, 행사는 ‘방송대 정보 플러스’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했다.   주경필 기획처장의 사회로 진행한 취임식 행사 1부는 △국민의례 △내빈 소개 △신임 총장 약력 소개 △교기 전달 △구성원 대표 축하 영상 시청 △취임사 △꽃다발 전달 △축사 △교가 제창 △슬로건 제창, 2부는 연회 순으로 진행했다.   내·외빈으로는 제22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제22대 고동진 국민의힘 국회의원, 제15대 국회의원이자 발전후원회 창립회장 황학수, 제16대 국회의원이자 발전후원회 부회장 강숙자, 제17~19대 국회의원이자 리더스클럽·고등평생교육발전위원회 위원 김춘진, 이상진 아시아발전재단 이사장 겸 고등평생교육발전위원회 위원, 이정헌 삼성SDS 부사장, 정태주 국가중심대총장협의회장(경국대 총장), 이경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이용무 서울대치과병원장, 김영철 한성대 특임교수 겸 고등평생교육발전위원회 위원, 최기재 제29대 전국총동문회장, 장재진 오리엔트바이오 대표 겸 발전후원회장, 박준희 아이넷방송 회장 겸 리더스클럽회장, 곽덕훈 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EBS사장 겸 방송대 명예교수, 윤경림 A2D2 이사회 의장 겸 고등평생교육발전위원회 위원, 조남철 제6대 총장, 류수노 제7대 총장, 고성환 제8대 총장, 최혁 서울대 명예교수(김종오 총장 은사), 최위집 국민은행 강북영업추진그룹 부행장, 박창홍 삼성SDS 상무 등이 참석해 김종오 신임 총장의 취임을 축하했다. 박종성 부총장을 비롯한 보직 교수진도 인사했다.   이어 정영일 교무처장이 김종오 신임 총장의 약력을 소개했다. 정 교무처장은 “김종오 박사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1995년 출석수업 강사로 방송대와 인연을 맺은 후, 현장에서 확인한 뜨거운 학구열을 교육자로서의 평생 사명이자 이정표로 삼았다. 학자로서도 재무 논문 분야에서 우수학술상을 수상했다. 학생부처장, 경영학과장, 학생처장, 부총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풍부한 경험과 행정력을 바탕으로 방송대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박종성 부총장이 김종오 신임 총장에게 교기를 전달했고, 김종오 신임 총장이 힘차게 교기를 흔들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어 5명의 구성원 대표가 신임 총장을 축하하고 바라는 점을 담은 영상 ‘총장에게 바란다!’를 시청했다. 우경봉 전임교수협의회장은 교수 사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열린 채널을 유지할 것을, 박원민 조교협의회장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강경원 공무원직장협의회장은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현장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조직 운영을, 이근우 노동조합지부장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방송대의 큰 도약을 이끌어주기를, 임용주 제44대 전국총학생회장은 전국 학우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기를 신임 총장에게 요청했다.   박수와 함께 단상에 오른 김종오 제9대 방송대 총장은 취임사에서 30년 전 뚝섬 서울지역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만났던 열정의 눈빛들이 깨우쳐 준 ‘교육의 본질’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위기는 방향을 잃은 조직에게는 위협과 절망이지만, 방향을 아는 조직에게는 도약과 희망의 기회다. 반세기 이전에 디지털 유목민의 삶의 방식을 교육에 도입한 방송대가 첫째로 ‘디지털 포용’을 실천하는 따뜻한 미래 대학, 둘째로 ‘공공적 가치’를 굳건히 지키는 국립대학, 셋째로 ‘소통과 존중’이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낮은 자세로 듣고 약속한 바를 묵묵히 실천해, 4년 뒤 ‘방송대가 더 단단하게 도약했고, 더 따뜻해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구성원 대표들은 무대로 나와 김종오 신임 총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내외빈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동기였던 인연으로 주말 출석수업에서 「회계원리」 강의를 했고, 최근 인천총학생회가 주최한 일일호프에 다녀왔다며 방송대와의 공통항을 소개한 박찬대 국회의원은 축사에서 “인생의 한 시점에서 잠깐 공부했던 걸로 평생을 살아가기는 어렵다. 유튜브, 사이버대학이 있지만, 방송대의 전문적인 교육이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이끌 수 있다. 김종오 신임 총장의 방송대에 대한 사랑, 평생학습에 대한 열정이 앞으로 방송대의 더 큰 도약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20여 년 전 영국에서 친구의 동생으로 처음 김 신임 총장을 만났다는 고동진 국회의원은 축사에서 “옛말에 ‘형 만한 아우 없다’고 했는데, 김종오 총장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학문적으로는 재무·금융에 전문성이 있고, 여러 보직을 거치며 행정 경험도 풍부하다. 오늘 삼성SDS 부사장도 취임을 축하하러 온 걸 보니, 실천력까지 겸비한 학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 총장들이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김 신임 총장의 4년 임기 동안 방송대가 한층 더 레벨업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방송대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정태주 국가중심대회장교 경국대 총장은 축사에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라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며 “온라인 교육에 대해 이렇게 중요시하는 때가 없었으니 천시가 맞고, 서울 한 복판에 캠퍼스가 있으면서 전국에 지역대학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니 지리적 여건도 충분하다. ‘소통과 존중이 살아 숨 쉬도록 조력자가 되겠다’는 취임사를 들어 보니 인화 역시 김 신임 총장이 잘 이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보직진과 함께 방송대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경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축사에서 “대학 운영 전반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경험 가진 김 신임 총장이 이끄는 방송대 도약이 기대된다. 방송대는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누구나 학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온 대한민국의 대표 원격고등교육기관이다. 급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도 방송대가 온 국민의 평생학습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고성환 제8대 총장은 축사에서 “경사스러운 날인 만큼 크게 축하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직전 총장직을 수행한 경험을 비춰 보면, 어렵고 힘든 여정을 막 시작하는 김 신임 총장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오랫동안 준비를 잘해온 만큼 재임하는 4년 동안 방송대가 발전을 넘어 크게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거대한 조직 방송대를 총장 혼자의 노력으로만 끌고갈 수는 없으니, 여기 계신 모든 구성원들이 김 신임 총장의 등등한 우군이자 지원군이 되주길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최기재 제29대 전국총동문회장은 축사에서 “오늘 취임을 축하하러 상경한 지역 동문회장들을 대표해 김종오 신임 총장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83만 동문 구성원들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학교 측과 긴밀히 협업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방송대가 AI 활성화에 매진하겠다고 했는데, 총동문회도 발전할 수 있도록 학교와의 협력을 기대한다. 학생들의 공간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해 많은 배려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낙심했던 20대 시절에 방송대에서 풍찬노숙하며 새로운 꿈을 꿨다고 자신을 소개한 장재진 발전후원회장은 축사에서 “방송대에서 공부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수의학을 전공한 후 백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오늘날의 오리엔트그룹을 만들었다. 방송대는 내 인생의 대학이자 터닝포인트다. 그때 마음을 기억하면서 올해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했다. 평생교육의 선도대학인 방송대에서 김종오 신임 총장이 국민과 학생을 위한 좋은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저 역시 방송대 발전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겠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김영호 제22대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곽상언 제22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정문헌 종로구청장, 최재원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장(부산대 총장), 나석권 SK그룹 사회적가치연구원장, 김연경 전 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와 중국·인도네시아·일본·태국 개방대 총장 등이 영상 축전을 통해 김종오 제9대 총장의 앞길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교가 제창, 슬로건 ‘AI 시대를 선도하는 열린 교육,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창, 사진 촬영 순으로 취임식 1부 행사는 막을 내렸고, 이어 1층 로비에서 2부 연회를 이어갔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김종오 총장 취임사]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족 여러분, 그리고 바쁘신 가운데 이 자리를 빛내주신 내빈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는 우리 대학 54년의 역사가 깃든 이 자리에서 제9대 총장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 서니, 영광스러운 마음보다 앞서는 것은 우리 대학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먼저, 그동안 우리 대학을 정성껏 이끌어주신 전임 총장님들의 헌신과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보여주신 경륜을 깊이 배우고자 합니다. 아울러 부족한 저에게 믿음을 보내주신 교수님, 직원과 조교 선생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진 이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은 단 하나, 우리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더욱 자랑스러운 대학으로 만드는 것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방송대 가족 여러분 저는 30년 전, 뚝섬 서울지역대학의 한 강의실을 잊지 못합니다. 연령도, 직업도 서로 달랐지만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열망 하나로 칠판 앞까지 가득 채워 앉아 있던 그 열정의 눈빛들. 그날의 경험은 제게 참다운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자기 발견의 감동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저는 그 자리에서 배웠고, 이 깨달음을 변함없이 지켜 나가겠습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원격교육의 확산으로 우리의 고유한 영역은 도전을 받고 있으며, 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대학의 역할 자체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위기는 방향을 잃은 조직에게는 위협과 절망이지만, 방향을 아는 조직에게는 도약과 희망의 기회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인식과, 우리 대학의 선명한 정체성을 토대로 부단히 진화하는 우리 대학의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말로 우리 대학을 다시 세울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삶을 디지털 유목민의 라이프 스타일로 명명합니다. 디지털 유목민이란 정보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21세기형 신인류를 뜻하며,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격으로 일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이미 반세기 이전에 디지털 유목민의 삶의 방식을 교육에 도입해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학문적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더불어 우리 대학이 구현한 교육 방식의 혁신은 이미 미래의 삶의 방식을 우리 대학 구성원 모두가 선취한 당연한 일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지나온 노정과 성과를 자랑스러워하고, 다가올 미래완료형 대학의 구체적 그림을 전 국민에게 제시할 것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품에 안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선거 과정 내내 원격교육, 고등교육, 평생교육, 공공대학이라는 우리 대학의 4대 정체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우리 대학의 발전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그 방향 위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자세로 대학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첫째, ‘디지털 포용’을 실천하는 따뜻한 미래 대학을 만들겠습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나 배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에듀테크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교육의 기반이 되는 시대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은 차갑지만, 그 기술을 통해 전달되는 우리의 교육은 더욱 따뜻해져야 합니다. AI 생태계가 작동하는 우리 대학의 새로운 학문과 교육 환경 속에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더욱 살아 숨을 쉬는 ‘사람의 대학’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둘째, 국립대학으로서의 ‘공공적 가치’를 더욱 굳건히 하겠습니다. 방송대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바꾸는 기회의 사다리입니다. 학위의 가치를 높이고 교육의 내실을 다져 졸업생들이 사회 어디서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지역대학의 역할을 강화해 전국 어디서나 배움이 이어지는 진정한 ‘국민의 대학’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셋째, ‘소통과 존중’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겠습니다. 대학의 힘은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모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저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수님의 연구를 뒷받침하고, 직원과 조교 선생님들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살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습니다. 경직된 위계와 편견의 외투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따뜻한 관용과 진심 어린 존중이 숨을 쉬는 방송대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몸은 다소 고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기꺼이 감당하고 즐길 수 있는 대학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사랑하는 방송대 가족 여러분 우리는 이제 우리 대학의 다음 단계를 향한 새로운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이 길은 결코 혼자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 구성원 모두의 헌신이 모일 때 비로소 우리는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엄중하게 약속드립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가짐으로, 변화의 속도를 앞세우기보다 우리 대학 구성원들이 합의한 방향 속에 온전한 결실이 있음을 증명하는 데에 힘쓰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듣고, 약속한 바를 묵묵히 실천하겠습니다. 4년 뒤, 이 자리를 떠나는 날 “방송대가 더 단단하게 도약했고, 더 따뜻해졌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학문의 길로 이끌어주신 스승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묵묵히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귀한 시간,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건승,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28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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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키코모리 청년, 스마트팜 CEO 되다!

    방송대생에게 현실적인 경력 모델을 제공하기 위해 진로심리상담실이 지난해 ‘제1회 방송대 학습으로 연 커리어 성장기’ 공모전을 열었다. 5년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살다가 스마트팜 창업에 성공한 나경수 동문(농학 졸)이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스마트팜 창업에 관심 있는 농학과 재학생, 동문 청년이라면, 나 동문의 창업 로드맵에서 실질적인 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사를 감수한 최은영 교수(농학)는 “정부가 추진하는 무상교육으로 교육을 받은 후 창농해 농업생산뿐 아니라 농업 컨설턴트 등으로도 직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라며 청년창업보육센터 교육생 모집에 지원해 볼 것을 제안했다. 진로심리상담실은 오는 10월 같은 주제로 제2회 공모전을 시행할 계획이니, 자신의 커리어 성장담을 공유하고 싶다면 꼭 도전해 보자(타 수상자는 추후 ‘진로·취업’면 연재). 김제=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도착하셨어요? 밖에 문 밀고 안으로, 아, 보이네요. 오시느라 힘들진 않으셨어요? 농장 안이 많이 덥죠? 저는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헤헤, 마실 거 가져다드릴게요.”   하루에 버스가 서너 번 다니는 외진 곳에서 오이와 방울토마토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나경수 동문이 쉴 새 없이 말을 건넸다. 그의 수기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혹시,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중략) 5년 전만 하더라도 사회와 단절된 채 히키코모리처럼 지내며, 방 안에서 컴퓨터만 붙잡고 살아가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렇게나 수다스러운 청년이 대체 어딜 봐서 히키코모리였단 말이지, 하는 궁금증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흙은 사람을 살린다”는 아버지 말씀 대학 졸업 후 화장품 회사에서 일했던 그는 훌쩍 호주로 떠났다. 워킹 홀리데이로 1년을 보낸 후 귀국했는데, 운동을 하다 십자인대 파열로 바깥 활동이 힘들어졌다.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2015년부터 아파트에 틀어박혀 온종일 게임만 했다. 낮과 밤이 뒤바뀌었고, 현관문 밖에는 배달 음식 용기가 쌓여갔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집 밖으로 그를 끌어낸 건 아버지였다. “흙은 사람을 살린다”라는 말에 그는 아버지의 포도 농장으로 출근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몸을 움직이고 바깥 공기를 쐬는 정도였다. 지대가 높은 포도 농장에서 아래로 펼쳐진 논밭을 보며 잠시 쉬는데, 거대한 유리온실이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 온실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새참을 건네주던 어머니에게 “엄마, 나라고 저런 거 못 할 건 없잖아?”라고 말했는데,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출근길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 공사 현장이었다. 축구장 30개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였다. 당장 컴퓨터를 켜 자료를 찾아봤다.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 청년창업보육센터 교육생이 되다  여기서부터 나 동문의 스마트팜 창업기 팁이 시작된다.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정부가 스마트농업 인력·기술의 확산을 목표로 추진한 거점 시설이다. 청년들이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팜 전문 지식을 배우고 경영 실습을 하는 청년창업 보육센터, 교육을 마친 청년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창업을 준비하는 임대형 스마트팜, 기업과 연구기관이 신기술·기자재를 테스트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R&D 공간인 실증단지로 구성돼 있다.   스마트팜은 다양한 작물을 수경 방식으로 재배하는 스마트 온실인데, 복합환경조절시스템을 사용해 온실 내·외부, 식물체 지상부와 지하부의 환경을 측정하고 제어한다. 현재 경북 상주, 전남 고흥, 경남 밀양 그리고 전북 김제까지 전국에 4개가 운영 중이다. 지역별 지원하는 4개의 교육 품목은 전북 김제의 경우 딸기, 토마토, 오이, 엽채류, 전남 고흥의 경우 딸기, 토마토, 멜론, 아열대 작물(레몬 등), 경북 상주의 경우 딸기, 토마토, 오이, 멜론, 경남 밀양의 경우 딸기, 토마토, 파프리카, 가지이다.   완공을 앞둔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한 나 동문은 부랴부랴 준비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추진하는 청년창업보육센터는 예비 청년 농업인(만 18세~39세, 전공 무관)에게 20개월 동안 스마트팜 관련 교육을 제공한다. 2개월은 이론 교육(150시간), 6개월은 선도농가로 출퇴근하며 실습한다. 마지막 1년은 혁신밸리 내 경영실습농장에서 작물을 키운다. 나 동문은 농업을 하게 된 계기, 혁신밸리에서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싶은지, 추후 창업 계획까지 진솔하게 썼고, 합격했다.   최은영 교수는 “청년창업보육센터 교육생 모집의 경쟁률은 4:1 정도다. 지원 서류 작성 시 지원동기를 매우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하고 창농 계획을 적절히 잘 작성해야 한다. 서류심사에서 최종 합격 인원의 2배수를 선발해 면접 심사를 하므로 면접 심사가 매우 중요하다. 면접에서 스마트 온실의 작물 재배에 대한 열정과 관심, 영농 정착에 대한 진정성, 협업이나 창업 역량(유통과 경영 등) 등에 대해 충분히 준비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혁신밸리는 1년에 한 번 52명씩 전국에서 208명을 뽑는다. 공고는 4~5월에 나오고 8월쯤이면 결과가 나온다. 합격하면 모든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매월 실습비도 지원해 준다. 나 동문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아 전국 4곳의 혁신밸리 중에서 김제 혁신밸리에 가장 사람이 몰린다고 귀띔했다.   2025년 기준으로 경쟁률은 전북 김제의 경우 268명 지원자 중 52명이 합격하였고(5.2:1), 토마토 80명, 딸기 93명, 오이 37명, 엽채류 58명 지원하였다. 전남 고흥은 160명 지원자 중 52명이 합격하였고(3.1:1) , 아열대 작물 38명, 토마토 63명, 딸기 42명, 멜론 17명 지원하였다. 경북 상주는 213명 중 52명이 합격하였고(4.1:1), 토마토 73명, 딸기 84명,  멜론 19명, 오이 37명 지원하였다, 경남 밀양은 195명 지원자 중 52명이 합격하였고(3.8:1), 토마토 76명, 딸기 79명, 가지 21명, 파프리카 19명 지원하였다(스마트팜코리아 제공).   완주의 한 오이 스마트팜 선도농장에서 6개월 실습했던 경험을 살려, 경영실습농장에서도 1년간 오이를 키웠다. 경영실습농장에 들어가는 데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4명이 조를 짰는데, 나 동문의 조가 1등으로 합격해 오이를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스마트팜을 차지할 수 있었다. 김제 혁신밸리 스마트팜 임대비용은 연 300만 원 수준이다(한국농업기술진흥원 홈페이지 www.koat.or.kr 참고).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에 결정한 농학과 입학 임대형 스마트팜에서 농사를 짓고, 창업 준비만 해도 몸이 부족할 지경인데, 그는 하나의 목표를 더 세웠다. 바로 방송대 입학! 농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그래프와 데이터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첨단 분야로 진화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2023년 농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듣는 강의마다 족족 스마트팜 운영에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스마트팜 건축 과정과 작물 정식 후 운영에 꼭 필요한「시설원예학」은 지금도 농장에 두고 읽는다. 자가육묘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면서 생산비를 줄였고,「해충방제학」과「식물의학」을 공부하고 나서는 병해충 피해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1~2주마다 스터디에서 선배들과 공부하며 식물보호기사, 종자기사 자격증은 한 번에 취득했다.   학생회 활동도 병행했다. 그해 11월 금산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제24회 농학과 학술 심포지엄에 참여한 그는 뒷풀이 자리에서 싸이의「예술이야」를 부르며 단번에 학우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학생회 활동 덕에 최근에는 전쟁으로 수급이 막혔던 비료를 학생회장을 통해 구했다.   혁신밸리의 임대형 스마트팜은 3년간 재계약이 가능하지만, 나 동문은 임대형 스마트팜에 들어간 지 2년 차에 창업을 결심했다. 아버지는 조금 더 경험을 쌓으라며 만류했다. 3년을 다 채우고 나가서 그때 스마트팜 짓는다고 3~4개월 시간을 버리느니,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지어둬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부쳤다. 청년창업 스마트팜 패키지 지원사업의 필수 조건, 땅 여기서 나 동문의 스마트팜 창업 로드맵의 가장 큰 팁이 밝혀진다. 전라북도가 시행하는 ‘청년창업 스마트팜 패키지 지원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전북 13개 시·군에서 매년 20명 내외를 선정한다. 스마트팜 창업에 관심 있는 학우라면, 여기서 꼭 체크할 부분이 있다. 이 사업은 스마트팜을 지을 땅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나 동문은 은행 잔고 서류, 땅문서, 혁신밸리 수료증과 스마트팜 운영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실적으로 받은 도지사상까지 가져갔고, 스마트팜 창업의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후 남은 계약기간 동안 임대형 스마트팜에서 온종일 일하면서, 하루에 수십 통 전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스마트팜을 만든 3~4개월은 모든 창업자가 숙명적으로 겪어야 할 고난의 행군이었다.   실습을 끝내고 임대형 스마트팜에 들어가는 것만이 간절한 목표였던 나 동문은 이제 어엿한 스마트팜 CEO가 됐다. 현재 오이 9천700주를 재배하는데, 볕이 좋은 날은 50박스(한 박스에 50개)까지 수확한다. 오는 8월 방울토마토로 작물을 변경할 예정이다. 그의 스마트팜 이름은 ‘애그리야’다. 농업을 뜻하는 영어 Agriculture에서 앞을 땄고,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예술이야」에서 뒤를 따 만들었다.   “히키코모리로 인생 황금기 30대를 게임하면서 날려먹은 게 참 후회됩니다. 교육 동기 중에 20대도 많았고, 요즘 자문을 가도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여요. 스마트팜 창업에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 보세요. 얼마 들었는지부터 물어보지 마시고,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싶은지부터 고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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