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동양철학을 묻다

 

전쟁, 폭력, 빈곤... 오늘날 고조되는 문명의 위기에 동양철학은 어떤 지혜를 제공할 수 있을까? 진보성 교수는 서양철학이 실패했던 문제들에 대해 동양철학이 대안적 사유를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동양철학에서 
‘어질다는 것’과 
‘지혜로운 것’은 동격
지혜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서 벗어나는 것
 
방송대 학우님들 모두 중간과제물을 제출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 위클리는 동양철학의 세계로 학우들을 초대합니다. AI 시대에 공자 말씀, 맹자 말씀이라니 너무 시대와 동떨어진 것처럼 느끼는 학우님들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동양철학은 시대를 초월해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동양철학에서 어떤 지혜를 배워야 할지에 대해 문화교양학과 진보성 교수님을 만나 그 의미를 들어봤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같이 들어보실까요?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과제물에서 주로 공자의 인, 군자에 관한 내용을 강조하셨습니다 
공자는 평생을 인간다움, 인(仁)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힘쓴 사람입니다. 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인간의 알맹이, 씨앗입니다. 군자는 그 가치를 실천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죠. 인간의 본성, 즉 근원을 공자가 말했고 근원을 밝히는 자가 군자이니 둘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의 바람직한 ‘시민’의 상에 ‘군자’의 면모를 투영하고 싶습니다. 시대의 차이는 있으나 삶에서 인간다움을 찾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며,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 냄새나는 삶을 지향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화교양학과 교과목인「고전 함께 읽기」에서『논어』를 읽고,「동양철학산책」에서 두 개의 장에 걸쳐 공자의 철학을 개괄하는 이유는 옛것을 알아서 지금 새롭게 다시 새기자는 의미죠.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뭘까요 
인이라고 하는 게 ‘사람 인[人]’과 ‘둘 이[二]’가 합쳐진 것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말하죠. 인간다움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소통 능력이죠. 남의 고통을 봤을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고 말했잖아요. 공자가 얘기하는 인을 직접 말한 거죠. 
 
인류에게 동양철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라는 과제를 내셨는데요 
철학이 현실 문제에 개입해서 설명하지 못하면 큰 의미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해야 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끌어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전쟁이 터지는 세계사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과제로 제출했죠. 
 
인간성의 상실, 물질 만능주의, 기후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과제들이 많은데요 
철학은 답을 주기는 어렵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핵심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경계하거나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절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대와 인물에 따라 학술적 근거는 다양하지만, 무한한 욕망에서 해방돼야 ‘유한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관점은 일치하거든요. 특히 동양철학에서는 개별 인간의 존재를 얘기하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동양철학은 이른바 관계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서양철학이 계속 실패했던 나와 타인, 나와 세계 간의 화해 방법을 동양철학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이 있죠.
 
동양철학 하면 주역과 연결해 생각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동양의『주역』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하는 동양적 사고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주역』은 읽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주역』은 인간 삶의 굴곡진 여러 경우의 수를 64개의 패턴으로 나눠 펼쳐 놓은 책으로 가장 높은 지점의 괘와 가장 낮은 지점의 괘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가장 높으니 좋은 괘이며 가장 낮으니 나쁜 괘라고 규정할 수는 없죠. 왜냐하면, 가장 높은 경우가 나왔을 때는 ‘앞으로는 계속 나빠질 것’을 암시하며 가장 낮은 경우가 나왔을 때는 ‘앞으로는 계속 좋아질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옛 철인(哲人)들은『주역』을 통해 자기 삶의 굴곡진 편차를 최대한 줄이려는 삶을 지향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리거나 튀는 것을 막는 반성적 사고지요. 철학적 사고는 해석이 중요합니다. 해석은 태도입니다. 
 
동양철학은 수양을 통한 덕을 중시해 지혜로운 자보다 어진 사람을 높이는 걸로 보입니다. 어질게만 살다가는 이용만 당하는 건 아닐까요  
수양은 현실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입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참는 것, 이기적인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것도 수양입니다. 우리는 성인(聖人)을 가장 높은 인간형으로 봅니다. ‘聖’자는 귀가 큰 사람을 형상한 글자입니다. 자기 얘기를 떠들기보다 남의 얘기를 많이 듣는 사람은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현대 정보전쟁에서 지식은 남을 이기는 재능이며 무기입니다. 지혜는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동양철학에서 ‘어질다는 것’과 ‘지혜로운 것’은 동일한 언어입니다. 각자도생의 현실에서 성인의 어진 삶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습니다. 타인을 대할 때도 성인의 태도를 닮아야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타인)과 홀로 싸우는 전사가 아닙니다. 지혜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동양철학은 사람들에게 싸움에서 벗어나라고 권유합니다.
 
 철학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창한 개념들이 아니라, 삶의 작은 문제들, 혹은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마음속에 하나의 화두처럼 지니며 살아가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시인이나 소설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일상에 대한 작은 문제의식이 어느 순간에는 현실의 큰 문제들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풍요로운 철학의 세계가 열리고 다양하고 열린 생각이 시작됩니다. 여러 잡념이 회로 안에서 엉켜 과부하를 일으키는 것과는 다른 경지입니다. 처음부터 큰 것을 보지 않는다면 누구나 가능하고요. 여기에 동서양 철학의 고전을 읽으면 자기 생각이 정립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형성됩니다. 자기 삶에서 철학의 영역이 개척되는 것이죠.
 
어떤 고전을 추천하시나요
『맹자』와『장자』를 추천합니다.『맹자』는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책으로, 왕이라도 올바르지 않으면 물러나야 하는 역성혁명론을 주장했죠. 잘못된 정치가 횡행할 때『맹자』를 읽으면 시대를 바르게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장자』의 핵심은 ‘모든 건 변화한다’라는 것이죠.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사회에서 그런 것들에 의해서 억압되고 종속되는 것, 주종 관계를 거부해요. 예를 들면 비정규직들이 계속 늘어나고 자본에 종속되는 것들에 대해 거부하고 떨쳐내라고 이야기하죠.
 
교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동양철학자와 서양철학자는 누구인가요
가장 관심 있는 철학자는 왕양명입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학습하지 않아도 타고난 앎이 있다고 말했는데요. 삶의 난관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성인이 될 자질은 내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달은 그는 지행합일을 주장합니다. 앎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렵고 모호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왕양명이 추구한 학술의 온전한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동서양 고전의 이해』에 등장하는 철학자 베르그송도 관심이 많은데요. 과학이 대두하던 시기에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지적한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철학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에 서서 인간 생명의 본질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동양철학 연구에도 참고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는 창조적 진화를 말했는데, 인간 생명의 본질이 인간 안에 있다는 점에서 인(仁)과 통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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