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대표 이사로 일하다 퇴직 후 5년 동안 방황
강사로 인생 2막 설계
'라떼는 말이야' 식의꼰대 마인드에서 벗어나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배우고 소통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목표 의식이 강하고,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는 성격이었어요.
40대 초반에 임원으로 승진했는데, 혼자서도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회사를 그만두고 어깨에 힘을 빼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회사를 일찍 나오게 되는 사람들에게 제2의 방향 설정을 위한 나침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하게 됐습니다.”
유명열(65세) 강사는 현재 청소년·어린이들에게 박물관 등에서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체험학습 강사이자, 느린학습자에게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는 디지털 금융교육 강사로 서울시 50플러스 중장년 사업지원단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성균관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롯데그룹 공채로 입사해 롯데백화점에서 마케팅·교육 분야에서 12년간 일하고, 이후 두산그룹의 동대문 쇼핑몰 두타 마케팅본부장으로 스카우트돼 CI를 바꾸는 등 혁신에 앞장선 마케팅 전문가다. 중소업체 대표를 한 뒤 창업을 준비하다 실패하고 5년여의 힘든 시간을 보내다 ‘강사’라는 직업을 찾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어깨에 힘을 빼는 자세’와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롯데와 두산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섬유공학과 출신으로 의류와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롯데백화점 근무 당시, 여성 의류 MD로도 일하며 백화점 자체에서 기획한 프라이빗 브랜드도 만들었죠.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개척하는 것을 좋아했죠. 2000년대 초반 두산그룹 두타의 마케팅 본부장으로 스카우트돼 기획·홍보·판촉 디자인 분야를 담당했어요. 두타의 C.I. 등을 혁신해 역동적이고, 젊음의 감각이 느껴지도록 바꿨습니다. TV 광고도 획기적으로 했고, 주목을 많이 받았죠.
퇴직한 이후 5년 동안 힘든 과정을 보내셨다고요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헤드헌터사에 이력서를 냈는데 연락이 잘 안 왔어요. 당시에는 출세에 대한 열망도 컸고, 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준비하며 젊은 사람들과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등을 배우며 노력했지만, 배신 등 힘든 시절도 겪었고 결국 사업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힘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한동안은 등산만 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당시 딸 둘이 대학을 다닐 때였는데, 마음을 다잡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 그때부터 어떤 일이든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자며 아르바이트, 컨설팅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퇴직 이후에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퇴직한 분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왕년에 내가, 나 때는 말이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본인만 힘들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죠. 권위적인 마인드와 지시하려고만 하는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꼰대’ 소리를 들으면, 제2의 인생 설계를 제대로 하기 힘들어집니다(웃음). 그런 자세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공부하고 소통하며 아낌없이 재능 기부를 하며 더불어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다 보니 좋은 일들이 생기게 되더군요.
어떨 때 보람을 느끼시나요
청소년이나 아이들 대상으로 체험학습 강의를 하다 보면, 10명 가운데 7명 정도는 잘 안 듣더라고요. 그렇지만 집중해서 듣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국립 과천과학관에서 강의가 끝나고 한 초등학생이 손을 내밀면서 악수하자고 했어요. 장난치는 건가 했더니 ‘잘 들었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심쿵했죠.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체험학습 강의를 할 때, 한 초등학생이 캐러멜을 건네줬을 때도 심쿵했어요(웃음).
힘이 들다가도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 봄눈 녹듯이 힘든 게 싹 사라져 버리고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미래의 인재인 아이들에게 저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면서 행복감과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죠.
일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공룡 전시를 보면서 강의할 때였어요. 공룡에 관해 많이 아는 한 학생이 어려운 질문을 던져서 곤란한 경우가 있었죠.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고 해도 질문을 반복해 당황한 경우도 있어요(웃음).
또, 고궁에 가면 역사에 정통한 덕후들의 질문에 대처하느라 어려운 순간도 있었어요. 많이 공부하고 가지만, 완벽하게 대처하기 힘든 경우도 간혹 생깁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도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체험학습 강사로서 어려움은 없나요
체험학습 강사 양성 과정 교육을 같이 듣던 동기 중에 4분의 1만 남았어요. 일이 힘들어서 그만둔 거죠. 이 업종이 여자 강사분들이 많고, 남자 강사 자체가 드물어요. 현장 강의 시연도 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지적받는 등의 좀 엄격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체험학습 강사는 학생들 인솔의 업무, 안전교육과 스케줄 안내 등도 하는데, 간혹 아이들을 통제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일정 변화가 있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어떤 역량을 갖추는 게 중요할까요
가르친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소명 의식과 성취감을 느끼면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적합합니다. 기계적으로 해설하는 건 상대방을 감동시키기 힘들거든요. 음의 고저와 장단, 발음이 정확한 것도 전달력 면에서 중요하고,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무대 체질이어야 하죠.
테마형 교육 여행도 있어 여행을 좋아하는 성향이면 더 좋습니다. 돌발 질문에 대처하는 유연성과 임기응변 능력도 필요합니다.
본인만의 강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또 아이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밤늦게까지 역사책 등을 읽으며 공부하는 편인데요.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장 답사를 자주 가야 한다는 겁니다. 강사들이 해설하는 것을 다각도로 들어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극, 콘서트 등을 보며 필요한 부분을 접목하기도 하죠.
보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일을 많이 할 경우 300~500만 원을 벌기도 합니다. 저는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고, 여러 일을 병행하고 있어서 월 100만 원 수준입니다. 학교 체험학습 강사의 경우, 방학 때는 일이 없어서 사람을 모아 체험학습을 진행하면 강사료를 벌 수 있습니다.
향후 목표가 궁금합니다
체험학습 강사와 여행 안내사 및 디지털 강사를 겸직하며 80세까지 일하고 싶어요. 외국 관광객들 대상으로 고궁에서 영어로 소개하고, 올림픽, 엑스포 등 국제 행사에서 재능 기부로 통역 봉사활동도 하고 싶고요. 현재 국내 여행 안내사, 체험학습 강사, 시니어 영어 강사 자격증이 있어요. 향후 한국어능력시험 1급, 문화재 해설사, 관광통역안내사, AI와 디지털과 관련된 자격증을 딸 예정입니다. 평생교육사 자격증에도 관심이 있어서 방송대도 알아보고 있어요.
재능기부도 많이 하셨더군요
마음이 다스려지고 편해질 것 같아서, 사실 처음 의도는 그거였어요. 하다 보니 보람도 느끼게 되고, 인생의 방향 설정에도 도움이 되더군요.
SK 행복나눔재단의 노노스쿨을 통해 독거노인과 불우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서 배달했습니다. 노노스쿨에서 중장년 20명을 선발해서 한식, 양식 요리와 예술 등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배웠고, 요리를 전혀 못하던 제가 혼자 요리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노숙인들에게 밥을 무료로 나눠주는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 통기타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연주회를 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을 위해 재능 기부와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대 학우들에게 조언 해주신다면요
제2의 인생 설계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나침반을 제대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생 방향을 설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방향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성에 맞고,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방향을 잡고 나면, 자기계발과 학습 활동 및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에도 집에만 계시는 분들은 용감하게 밖으로 뛰쳐나와 관심 가는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항상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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