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현숙 교수의 스웨덴 알메달렌 축제 참가기

시작은 팔메 총리였지만, 이것을 축제로 만들고
지속가능하게 했던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
알메달렌이 정치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학습동아리 민주주의가 스웨덴의 일상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정치에서 축제를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치는 ‘정치꾼들의 이권다툼’으로 치부되고, 비난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치도 축제가 될 수 있을까? 알메달렌은 정치를 축제로 ‘승화’시킨 축제다. 2024년 6월 스웨덴에 있으면서 고틀란드(Gotland) 뷔스비(Visby)에서 알메달렌(Almedalsveckan) 현장을 방문했다.    

1991년부터는 모든 정당이 참여
알메달렌 축제의 시작점은 스웨덴에서 가장 사랑받는 총리였던 울로프 팔메(Sven Olof Joachim Palme)의 연설이었다. 팔메와 가족은 스웨덴의 휴양지로 유명한 고틀란드섬에서 매년 여름을 보냈다. 1968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팔메에게 고틀란드의 사회민주당 의원이  짧은 연설을 요청했다. 팔메는 장을 본 영수증에 메모를 하고 트럭에 올라가 연설했다. 이것이 알메달렌 축제의 기원이다. 팔메는 총리가 된 다음에도 고틀란드에서 매년 연설했고 이후 다른 정당 지도자들에게도 참여를 제안하면서 정치 축제로 자리잡게 된다.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공식적 행사가 된 것은 1991년부터다.
매년 6월 마지막 주에 진행되는 알메달렌은 스웨덴의 정당은 물론, 시민단체, 학계, 기업, 노동조합 등 다양한 조직과 시민 누구나가 참여하는 축제다. 이들은 인권, 아동, 동물권, 장애, 이민자 권익, 건강, 경제, 전쟁, 에너지, 기후 등 시민의 삶을 둘러싼 사회 문제를 주제로 토론한다. 이 자리에서 2천 개 이상의 강연, 세미나, 토론 등의 정치토론의 광장이 펼쳐지는 것도 흥미롭다.
내가 주목한 것은 노인들의 참여였다. 노인복지를 전공하기도 했지만, 보통 노인 하면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토론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메달렌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노인들이었다. 다양한 부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축제의 참여자로 참가하는 모습들이 이색적이었다. 정치의 주체로서 노인의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
PRO는 스웨덴의 가장 큰 연금수급자 협회(Swedish National Pensioners' Organisation)인데, 고틀란드 지부의 회원들이 축제 현장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스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모두 연금수급자로 노인들이었다. 한 관계자는 62세 때부터 고틀란드 연금수급자 협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으며, 매년 고틀란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알메달렌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사 린데스탐 PRO 회장이 배낭을 메고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등장했다. PRO 회장은 스톡홀롬에서 인터뷰로 만났던 적이 있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린데스탐 회장의 사회로 스웨덴 은행장 안나 카린 로렐, 노데아 은행장 페르 롱스베드가 함께하는 ‘노인 대상 사기’를 주제로 한 간담회가 진행됐다. 참여자들 모두 편안한 차림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격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의 취지를 이야기한 후 질문을 받았다. 그곳에는 내가 기대했던 긴 침묵은 없었다.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은행관계자들에게 ‘은행 대면 창구가 없어지고 디지털화되는 것에 대한 불만들’도 쏟아졌다. 연금수급자들에게는 디지털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에 은행 대면 창구가 없는 것은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질문에 대해 은행장들은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PRO는 은행과 협력해 연금자가 이체할 때, 일정한 금액 이상의 경우 이체 내용과 받는 사람을 확인한 후 처리될 수 있도록 이체 지연과 차단 설정을 국가 정책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일상의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하고, 질문한 사람에게는 대답하는 모습이 민주주의 광장 아고라를 연상케 했다.
6월 26일 아침 알메달렌 행사장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스웨덴 총리 울프 크리스테르손(Ulf Hjalmar Kristersson)의 연설이 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는 경호원들이 많지 않았고 행사에 들어가기 위해 어떠한 제재나 제한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한 수어통역사가 옆에서 지속적으로 통역을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총리의 연설이 끝나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가진 분야의 세미나 장소나 카페, 식당으로 흩어져 대화와 토론을 이어갔다.
알메달렌 행사장에서는 모든 정당 대표가 매일 오전과 오후에 연설하면서 시민들과 소통한다. 정당들은 부스에서 자기 정당의 정책을 홍보하고, 시민들은 자유롭게 부스를 방문해 질문하고 대화를 나눈다. 고성이 오가는 싸움터로 변질되는 우리의 정치 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축제의 동력, 학습동아리 민주주의
어떻게 이런 축제가 가능했을까?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시작은 팔메 총리였지만, 이것을 축제로 만들고 지속가능하게 했던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 알메달렌이 정치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학습동아리 민주주의가 스웨덴의 일상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성인 인구의 70% 이상이 학습동아리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톡홀롬 시내 왕의 정원에서 사진 동아리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모여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아리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누가 리더냐고 질문을 했더니 “저예요. 이번 달에는 제가 리더예요. 다음 달에는 다른 사람이 리더가 되죠. 이것이 민주주의죠”라고 말했다. 내 질문에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마디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놀라웠다. 우연히 만난 사진 동아리에서도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공간이라고 자신들을 말하는 스웨덴 사람들은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었다.
정치가 축제가 될 수 있다고? 스웨덴에서 정치 축제는 이상이 아니었다. 알메달렌은 정치가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알메달렌 축제는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민주주의가 일상에서 시민들의 삶으로 실현됐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알메달렌 정치축제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이상이 일상이 되는 축제였다.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생각하고 정치혐오가 만연돼 있는 사회에서 정치가 축제가 되는 그날은 언제 올까. 학습동아리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교과목을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이 졸업 후에는 학습동아리로 시민 토론을 이어간다면, 방송대가 그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학습동아리들이 마로니에공원에 모여 시민들과 함께 마로니에 정치축제를 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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