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무엇을 위하여 종(種)은 어울리나

“하나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무수한 살생을 자행하게 되는 것은 어느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이거니와, 한 마리의 꾀꼬리 새끼를 키우기 위해선 날개가 상한 한 마리의 벌을 위해 슬퍼하던 길상도 매일 살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中


매일 몇 번씩『토지』속 길상이 되어
『토지』속 길상은 쟁기를 끄는 어린 소가 눈에 밟혀, 농부에게 “아직 어리니 너무 일 많이 시키지 마소”라고 부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니, 병든 어린 꾀꼬리를 외면할 수 없었겠죠. ‘나리’라고 이름까지 붙여준 꾀꼬리에게 먹일 여치를 잡는 길상. 그는 사랑하는 생명체 ‘나리’를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체(여치)를 여럿 죽이면서, 죄책감과 딜레마에 빠집니다. “한 생명에 대한 자비와 다른 생명에 대한 잔혹/꾀꼬리 새끼를 위해 여치의 목을 비틀어 죽인 일/이 이율배반의 근원은 어디 있으며/뭐라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

 

길상의 저 독백을 저는 매일 반복합니다. 저는 길상처럼 직접 여치의 목을 비틀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실상 내 반려동물을 위해 다른 동물들의 희생을 묵인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매일 제 반려견 ‘뽀민’에게 주는 음식 속에는 소, 돼지, 닭 등 다른 동물의 죽음이 들어있습니다. 호박, 고구마, 당근, 콩 등 ‘식물’을 최대한 섞어주지만, 뽀민에게 채식이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뽀민은 초식동물 토끼가 아니라 잡식동물 개니까요.

 

저 역시 잡식동물 인간이기는 합니다만, 육식동물인 늑대와 유전자가 99.96% 일치하는 ‘가축화한 늑대’이자 ‘육식성 잡식동물’인 개에게 채식이 과연 적합할까 의문이 듭니다. 건강에 괜찮을지도 걱정이고요. 뽀민의 채식이 저의 채식과는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저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비건 지향 채식’을 선택했지만, 뽀민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점입니다. 뽀민의 채식은 반려인인 저의 신념에 따른 일방적인 강요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021년 1월, 미국의 팝스타 케이티 페리가 ‘자신의 반려견에게 채식을 시킨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명쾌한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뽀민이 개가 아니라 토끼나 염소라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을 텐데!’라며 소용없는 한탄을 할 뿐이죠. 실상 이런 고민은, 오랜 세월 ‘개/고양이 식용금지법’을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왜 개, 고양이만 식용 금지냐”라는 끈질긴 질문에, “나는 그 어떤 동물도 먹지 않는다”라고 당당하게 답변하는 비건들조차 “그러는 너희 개, 고양이에게는 뭘 먹이는데?”라는 질문 앞에서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니까요.

 

1년 내내 ‘콩밥’ 먹은 개들, 건강검진 결과는?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비건’ 또는 ‘비건 지향’ 반려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반려견에게 ‘비건 지향 채식 집밥’을 매일 직접 만들어 줍니다. “개가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건강해지는 비건 사료를 만들겠다”라고 직접 나선 반려인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1.(반려인의 강요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2.(육식 사료 이상으로) 건강해지는 식물성 사료가 있다면 어떨까요? 순식물성 식품, 즉 비건식은 아니더라도 1번 달걀처럼 다른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한 사료라면? 명쾌한 정답은 아니더라도, 상쾌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덜 해롭다면, 즉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더 나은 선택이라면요? 상쾌한 해답을 넘어 통쾌한 명답이 될 수 있겠죠.

 

유쾌하게 답을 찾으러 가기 위해, 질문을 좁혀봅니다. 우선, ‘작은 호랑이’라 불리는 고양이의 채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니 접어둡니다. 그리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종별 특성을 넘어 개별성이 강한 문제니 이것도 접어둘게요. 그러면, 질문은 이렇게 됩니다. “개는 채식을 해도 건강에 지장이 없을까?”

“영양소를 충분히, 고르게 공급하기만 한다면 개의 채식은 건강에 해롭지 않다”라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개의 채식에 대해 긍정적인 연구 결과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윈체스터대 보건학부와 호주 그리피스대 환경과학부 공동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는데요. 연구진은 개 2,500마리의 1년 식단을 조사한 결과, 채식 위주 식단이 개들의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과학공공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4월 13일자에 게재된 이 연구 결과는,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며 ‘비건 지향 반려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최근 소식도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역시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게재된 연구 결과입니다. 미국 웨스턴대 수의학과 연구진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거주하는 건강한 성견 15마리를 대상으로 12개월에 걸쳐 완두콩, 렌즈콩, 퀴노아, 현미 등 식물성 원료로만 구성된 비건 사료를 급여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12개월의 연구 기간 내내 개들은 건강한 영양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일부는 비타민D 수치 개선 등 한층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줬고요. 연구진은 “실험 전, 15마리 중 7마리 개가 25-하이드록시비타민 D가 기준선보다 부족한 상태였다. 비건 사료를 12개월 동안 급여한 결과, 이 7마리 모두 비타민D 수치가 정상화됐다. 이는 보충제 없이 비건 사료만으로 달성한 수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식물성 단백질이 개에게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으며, 비건 사료도 충분히 개의 주식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꾀꼬리 ‘나리’에게 산 열매를 줬더라면?
개의 채식과 건강에 대해서는, 꾸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반려견 채식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반려견의 건강을 위해, 또는 환경 및 동물윤리를 위해 반려견의 채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또 늘고 있다는 이야기죠.

 

콩 등 식물성 원료로 고기의 풍미와 식감을 낸 ‘비건 미트’는 대체육의 일종입니다. 또 다른 형태의 대체육인 동물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배양육(재배육)’이 진화 중입니다. 배양육 사료도 나왔습니다. 지난 7월에는 영국에서 유럽 최초로 배양육 사료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BBC>, <뉴욕타임스>에 이어 국내 언론에도 보도됐습니다. 배양육의 맛은 실제 고기와 흡사하다고 합니다. 건강, 환경, 동물윤리 등을 추구하면서도 고기 맛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인간과 개에게, 이 ‘배양육’이 통쾌한 명답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꾀꼬리 ‘나리’와 길상의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길상이 살생까지 감수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봤음에도 나리는 결국 죽고 맙니다. 그 죽음의 주된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과식’입니다. “새는 원체 많이 먹여야 한다”라는 김 훈장의 말에, 길상이 너무 많이 먹였던 것이 탈이 된 것이죠. 길상은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에 더해, 두 가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하나는 나리를 살리겠다고 수많은 여치를 죽인 죄책감, 또 하나는 자신의 정성이 오히려 나리를 죽였다는 죄책감.

 

참으로 안타까운 이 대목에서, 질문을 또 던지게 됩니다. ‘나리에게, 꼭 여치를 잡아다 줘야 했을까? 산 열매를 따다 줬으면 어땠을까?’ 몸이 약한 어린 꾀꼬리에게는, 동물(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여치)보다 식물(자연스럽게 익은 산 열매)이 낫지 않았을까요? 산 열매를 적당히 줬다면 나리가 과식으로 죽지 않았을지도요. 나리도 살고, 여치들도 살고, 길상이도 편한 해답 또한 ‘반려동물(나리)의 채식’이 아니었을까요? 나리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을지 몰라도, 길상이 여치를 죽이며 느꼈던 죄책감은 덜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소설 속으로 들어가 여치를 죽이기 전의 길상을 만날 수 있다면, 나리에게 먹일 ‘비건 모이’를 한 포 건네며 이 이야기는 꼭 해주고 싶습니다.

김진주 동물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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