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무엇을 위하여 종(種)은 어울리나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인간을 위해 노동하는 동물,
즉 사역동물이라는 주제는
‘동물’에 관한 것일까요,
‘노동’에 관한 것일까요?

 

지난 6월 20일, 119구조견 ‘고고’가 폭염 속에서 실종자 2명을 구했습니다. 소방청은 “119구조견 한 마리가 하루에 2명의 생존자를 구조한 것은 처음”이라며 중앙119구조본부 충청·강원 특수구조대 소속 고고의 활약상을 공개했습니다. 119구조견은 사람의 청각·후각보다 각각 50배, 1만배나 발달한 능력을 활용해,구조대원의 진입이 어려운 지역까지 수색할 수 있습니다. 소방청은 전국에서 총 35마리의 구조견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견들은 지난해 재난 현장에 872회 출동해 44명의 구조대상자를 발견했고, 20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고고처럼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구조견을 비롯해, 인간을 위해 일하는 동물들은 많습니다. 인간을 위해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사역(使役)동물’의 역사는 반려동물보다 깁니다. 사역동물은 농경사회 전인 수렵채집사회부터 존재했으며, 분야 및 종(種)도 다양합니다. 이동 및 운반(소·말·낙타·라마·순록·염소·개·당나귀·코끼리·타조 등), 수렵(개·고양이·페럿·가마우지·매 등), 목양(개), 구조(개·말 등), 전쟁(말·개·코끼리 등), 지뢰 제거(돼지·쥐 등), 안내(개), 경찰(개·말 등), 탐지(개), 전서(비둘기), 식물채집(송로버섯 찾는 돼지 등) 등등.

 

게마인샤프트 vs 게젤샤프트
‘사역동물’은 인간과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합니다.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인간과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공동사회), 사역동물과의 관계는 게젤샤프트(Gesellschaft, 이익사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일례로 인간은 가마우지를 이용해 어류를 잡은 다음, 가마우지에게 노동의 대가로 잡은 물고기의 일부를 지급했죠. 노동의 양과 강도, 시간, 대가가 적정하다면 ‘상부상조’ 관계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착취-피착취’의 관계가 될 텐데요. 그 적정선이 어디일지 의문스럽지만, 인간은 오랜 세월 동물과 이런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프리랜서’인 야생동물에게는 건별로, ‘입주노동자’인 집동물에게는 숙식 제공으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 온 셈입니다.

 

사역동물처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노동을 하는 동물들도 있지만, 인간과 무관하게 일하는 ‘노동동물’들도 많습니다. 동물들은 생존본능에 따라 먹이를 찾고, 옮기고, 보관하며 종족 번식을 위한 일 등을 하지요. 일례로 개미가 먹이를 나르는 일도 노동이지만, 인간에게는 쓸모 있는 일이 아니지요.

 

벌이 꿀을 만드는 일은 어떨까요? 벌이 인간을 위해 꿀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노동의 결과물인 꿀을 취함으로써 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벌의 노동은 ‘인간을 위한 노동’이 됩니다. 벌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착취이고 약탈이지만요. 여하튼 인간은 벌이 꿀을 저장하는 노동을 인간에게 유용한 양봉이라는 산업으로 만듭니다. 이는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기르는 양계,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기르는 목축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렇다면 이 벌, 닭, 소는 사역동물일까요? 인간에게 쓸모를 제공하지만, 이들은 ‘사역동물’이라 부르지 않고 ‘가축’이라 부릅니다. 단, 가축으로서의 닭은 생산능력이 있는 암탉만 해당됩니다. 인간에게 달걀을 제공하지 못하는 수평아리들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도태(도살)되니까요.

 

인간을 구조하는 개 고고와 인간에게 꿀을 제공하는 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통과 훈련입니다. 119구조견이 되려면 인간과 소통하며 훈련을 받고,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하며 인간과 협업해야 합니다. 그러나 벌이 꿀을 만드는 것은 본능에 따른 노동입니다. 사역동물은 ‘전문직’, 가축은 ‘비전문직’이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과의 친밀도 또한 차이가 나고요. 그렇기에 인간에게 쓸모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호칭도 대접도 다른 것이지요.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인간을 위해 노동하는 동물, 즉 사역동물이라는 주제는 ‘동물’에 관한 것일까요, ‘노동’에 관한 것일까요? 인간에게 특별히 기여하는 바가 없는 동물이나, 오히려 피해를 주는 동물에 대한 주제라면 ‘동물’로 분류해야겠지요. 하지만 인간을 위해 노동하는 동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봐도 ‘동물’보다 ‘인간을 위한 노동’이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지역의 안전을 지켜주는 경찰견,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군견, 인간의 목숨을 살리는 구조견 등에 대한 예우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나 동물권에 대한 인식 이전에 기본적인 도리와 보답의 문제가 아닐까요?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는 경찰견, 군견, 안내견 등 ‘공로견’들을 안장하는 동물현충원이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임실군은 국비와 도비 등 50억 원을 투입해 임실군 오수면 1만354㎡ 부지에 화장·추모시설, 수목장지 등의 시설을 갖춘 ‘오수 펫 추모공원’을 2021년 7월 30일 조성했습니다.

 

예우를 갖춰 공로견들을 안장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있을 때 충분한 대우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개를 포함해 말 등 다양한 종, 다양한 분야의 사역동물들이 적정 시기에 은퇴해, 편안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빠르게 또 고르게 실행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인간에게 다양한 쓸모를 제공하는 가축들에 대한 복지도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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