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2024년 가을 극장가는 가히 「베테랑 2」(감독 류승완)의 독주 시대로 보인다. 하지만 극장 한쪽에서 저마다의 고민을 담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웰메이드 독립영화들도 있다. 그중 한 편이 바로「그녀에게」(감독 이상철)이다. 발달장애 아이를 낳은 기자 출신 엄마 류승연 작가의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할 10년 세월을 기록한『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원작이다. 류 작가가 2016~2017년 온라인 매체에 연재한 글들을 새로 정리해 묶었다.

 

원작 에세이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고충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길에서, 지하철에서, 마트에서 마주하는 성인 발달장애인에 쏟아지는 두려움과 혐오의 시선, 발달장애 아이에게 쏟아지는 측은과 동정의 시선을 지적하며, 류 작가는 길에서 발달장애인을 마주쳤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비장애인을 위한 인식과 행동 변화를 덧붙였다. 친구이자 동료, 이웃으로서의 발달장애인을 만나기 위한 치열하고, 절절하며, 친절한 가이드북인 셈이다.

 

발달장애아 출산 후 산산이 깨진 일상
영화「그녀에게」의 주인공 상연(김재화)은 모든 일을 계획대로 이뤄내고야 마는 기자다. 목표도 명확했다. 40대 정치부장, 50대 편집국장. 그런데 오랜 노력 끝에 기적처럼 얻은 쌍둥이 중 아들 지우(빈주원)가 자폐성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뀐다. 우선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치료실과 집을 오가며 빚이 늘었다. 남편과는 ‘지옥의 3년’을 보내야 했으며, 비장애인 아이가 할 법한 행동도 지우가 하면 꽂히는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해야 했다. 엄마의 관심이 한창 필요할 나이인 비장애인 딸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영화 속 엄마 상연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은 죄책감부터,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또 지우에게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저당 잡혔어, 깨어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비통함을 온몸으로 표출한다. 명품 조연배우에서 주연배우로 성장한 김재화 배우가 상연 역을 맡아 놀라운 열연을 펼치며 영화의 감정적 깊이를 더했다.

 

「그녀에게」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충과 희망의 여정을 따라간다. 억지 눈물을 짜내지 않는 담담한 장면들인데도 관객들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린다. 엄청난 어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엄마로 거듭나는 상연의 모습이 사랑과 희생, 인내라는 보편적 감정으로 확장해 관객 한 명 한 명의 마음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영화는 발달장애 아이를 둔 한 엄마의 고군분투를 그리지만, 그 이면의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을 여전히 소수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거의 10년 전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현실에 대해 “사회가 개선됐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일갈하는 류 작가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차별, 혐오의 시선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안들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결국 ‘발달장애인은 나와 다르다’라는 인식이 시작점이라고 지적한다. 그 인식이 덮어 씌워진 특수교육과 통합교육, 그 발로로 시작된 복지정책의 한계점이 명확한 이유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은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인간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은 똑같다. 다르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정책, 교육, 복지가 바뀌게 된다. 영화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은 나와 다른 먼 나라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주변 일이란 걸 자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감독과 류 작가는 “러닝타임 105분만, 인생에 단 한 번만 시간을 내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느껴달라”고 호소한다.

 

류 작가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이 “우리 아이 이번에 특목고 갔어”, “아유, 우리 아들은 맨날 게임만 해”라는 대화가 오가는 중에 “어, 난 우리 아들 특수학교 갔는데?”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힘내라”, “축복받는 일이야” 같은 말을 듣기보다는 “치료비 많이 드니?”, “어머, 우리 애 학원비보다 비싸다” 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축복’과 ‘상처’는 동전의 양면
「그녀에게」라는 제목에도 의미가 있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이상철 감독은 “원작의 마지막 챕터 제목인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그녀에게’에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상연과 같은 처지에 놓인 후배 기자에게 ‘그녀’라는 익명성을 부여하고 언젠가는 세상에 당당히 나오길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여기에 이 감독은 “발달장애 아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고 싶은 마음, ‘그녀에게’ 카네이션을 주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았다”라고 설명해,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뭉클하게 한다.

영어 제목을 「Blesser」로 정한 이유도 의미심장하다. 김수환 추기경 꿈을 꾸고 쌍둥이를 임신한 류승연 작가는 원작 첫 챕터 제목을 ‘모든 아이는 신의 축복이다’라고 썼는데, 그 ‘축복’을 담은 것이다. 이 감독은 여기에 또 다른 의미도 부여했다. 프랑스어로 ‘blesser’는 ‘상처를 입히다’라는 뜻의 동사인데, 두 상반된 뜻의 단어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진정한 축복과 상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것.

 

영화제 관객평이다. “겨우 영화 한 편이다. 겨우 영화 한 편이 뭐 얼마나 대단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에게」를 본 사람들만큼은 변했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변화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이 변할 것이다. 더 나아질 것이다.”「그녀에게」는 발달장애 아이의 치료 이야기를, 비장애인 아이들의 게임, 학원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