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질병과 세계사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2012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에 이어 2019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까지, 21세기 들어 사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잇따라 출현하며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 인류의 예상을 깨고 등장한 것이기에 공포가 배가된 측면도 있었다. 사실 팬데믹이 발생하리라는 예측과 경고는 21세기를 맞이하기 전부터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적’으로 지목된 것은 신종 인플루엔자였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2009년에 실제로 도래해 팬데믹을 일으켰지만, 인적 피해 규모(보고된 사망자 약 1만8천 명, 추정 사망자 약 28만 명)는 매년 유행하는 계절성 인플루엔자 수준(약 29만∼65만)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경각심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 7월 3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초래할 위험이 큰 바이러스 및 박테리아과(科)와 ‘우선순위 병원체’ 목록을 업데이트했다. 목록에 오른 30여 병원체에는 콜레라균, 페스트균, 두창바이러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것도 포함돼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신종 인플루엔자를 일으킬 수 있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 A형으로, 7종(H1∼3, 5∼7, 10)종이나 포진해 있다. 참고로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외피에 있는 두 종류의 단백질, 즉 헤마글루티닌(HA, 18종)과 뉴라미니다아제(NA, 11종)의 유형에 따라 H1N1, H3N2, … 등으로 구분되며, 신종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주로 조류나 돼지의 체내에서 서로 다른 유형의 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간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생성된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 시기는 예측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약 10∼40년의 주기로 출현했다. 2009년 이후 15년이 지났으므로 당장 올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다. ‘신종’이라 인류에게 면역이 부재하고 공기를 매개로 전염되기 때문에 한번 발생해 퍼지기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당시 세계 인구 약 18억 명 가운데 약 5억 명을 감염시키고
그 가운데 약 5천만 명을 희생시킨,

기간 대비 최악의 인류사적 재앙이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팽창과 대립이 빚어낸
이 ‘너무나 20세기적인’ 참상은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달리 일찌감치
‘선택적 망각’의 대상이 됐다.

 

 

‘스페인’이 뒤집어쓴 오명
인플루엔자는 기원전 5세기에도 흔적을 남긴 오래된 감염병이지만, 기록상 최초의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1580년으로 추정되며, 1798∼1799년과 1889∼1890년에도 수많은 인명을 앗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지구를 휩쓸었는데, 1918년에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1918년 인플루엔자’, 일명 ‘스페인독감’)가 특히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낳았다. 1918년 인플루엔자(H1N1)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미국 중부 캔자스주 펀스턴 기지(Camp Funston)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기지에서 1918년 3월 4일에 최초의 환자가 보고된 이래 단 몇 주 만에 미국 전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라 수많은 병력을 유럽에 파견하고 있었기에, 감염의 불똥이 유럽으로 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미군이 전파한 인플루엔자는 4월에는 프랑스에 주둔해 있던 ‘연합국’ 군대를, 5월에는 독일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5월 27일에 프랑스 북부에서 개시된 ‘제3차 엔(Aisne) 전투’에서 독일의 공세를 받은 연합군은 궁지에 몰렸지만, 미군의 원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때 독일군은 후방의 예비군을 투입하려고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6월 초순에 이르러 기세가 꺾이며 서부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당시 독일군의 실질적 최고사령관 에리히 루덴도르프(Erich Friedrich Wilhelm Ludendorff, 1865∼1937)는 “매일 아침 참모가 인플루엔자 환자 수를 보고하고 다시 영국군에게 타격을 입으면 병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불평해” 고역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인플루엔자는 전쟁의 판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에서는 인플루엔자 유행 상황의 보도가 엄격히 통제됐다. 전시하에서 자국에 불리한 정보는 전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질병의 최초 보도는 5월 22일, 중립국 스페인의 마드리드 ABC 신문에서 이뤄졌다. 이후 스페인에서 유행이 확대되고 국왕 알폰소 13세(Alfonso XIII, 1886∼1941)와 대신들까지 감염되자 영국 로이터통신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는데, 이를 계기로 1918년 인플루엔자에는 ‘스페인독감’이라는 떨어지지 않는 꼬리표가 붙었다. 스페인으로서는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쓴 셈이다. 아무튼 인플루엔자 유행은 여름에 접어들며 점차 잦아들었다. 그동안 감염력은 높았지만, 증상은 수일간의 발열 정도로 비교적 가볍고 치명률도 그리 높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변이 동반한 증상 확산
그러나 이는 서곡에 불과했다사진 출처=phil.cdc.gov. 8월이 되자 미국 동부 보스턴(Boston), 프랑스 서부 브레스트(Brest) 등 대서양 연안의 항구 도시에서 인플루엔자 유행이 재연돼 다시 유럽과 미국을 석권하기 시작했는데, 변이가 일어난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제1차 대유행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독성을 획득한 상태였다. 환자의 증상은 고열에 그치지 않고 극심한 관절통과 폐렴을 동반하기도 했다. 파열된 폐에서 새어 나온 공기가 전신 피부밑으로 퍼져 몸을 뒤척일 때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거나 폐에 분비물이 차 물에 빠진 것처럼 질식한 환자도 적지 않았다. 특히 20∼30대 청년층의 치명률이 매우 높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면역 기능을 조절하는 사이토카인(cytokine)의 과다 분비(일명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미국 본토에서는 관과 묘혈을 최대한 준비해 놓지 않으면 시체가 계속 쌓일 것이라는 경고가 나올 정도였지만, 계속해서 매월 수십만의 병력이 배로 유럽에 파견됐다.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사망자는 넘쳐났고,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도 피해를 면할 수는 없었다. 독일에서는 물자 부족으로 피폐해진 데 더해 감염병까지 창궐하자 제국에 염증을 느끼는 분위기가 확산했다. 결국 11월 3일 발트해 연안 킬(Kiel) 군항에서 수병의 반란이 일어났고, 11월 7일에는 독일 11월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무너졌다. 곧이어 11월 11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종결됐다. 1918년 인플루엔자로 미군 약 4만5천 명, 독일군 약 1만4천 명을 포함해 약 10만 명의 병사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미국인 전체 사망자는 약 67만5천 명이라 여겨진다.

인도, 기근까지 겹쳐 최대 피해
1918년 인플루엔자는 미국과 유럽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무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로도 확장됐고, 인력과 물자를 따라 불청객 인플루엔자도 함께 이동했다. 제2차 대유행 시기인 1918년 8월에 영국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Freetown)에서 시작된 인플루엔자는 선박을 통해 아프리카대륙 연안의 항구에서 항구로, 다시 철도와 하천을 따라 내륙부로 퍼지며 서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를 잠식했다. 동아프리카로는 아시아로부터 인도양을 매개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크다. 2년에 걸친 유행 기간에 아프리카대륙에서 약 2천100만 명이 감염돼 약 135만 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지며, 사하라 이남에서만 200만 명 가까이 사망했다는 설도 부상했다. 당시 아프리카 전체 인구 약 1억8천만 명의 1% 정도가 단기간에 희생된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인적 피해는 약 1천85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에 비하면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인도야말로 1918년 인플루엔자의 최대 피해국이었다. 기근이 겹쳐 인플루엔자 저항력이 떨어졌고, 이것이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다시 기근이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식민 본국 영국으로의 곡물 이출, 식량 가격의 급등, 대도시 슬럼의 확대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세계 정세’에 동아시아도 무관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으로 쌀값이 급등하자 민중이 봉기해 1918년 8월 이른바 ‘쌀 소동’이 벌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인플루엔자가 유입돼 유행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제3차 대유행이 발생한 1920∼1921년까지 일본인 약 45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역시 쌀값 폭등을 겪는 가운데 인플루엔자 유행을 맞이했고, 머지않아 3·1운동이 일어났다. 위 기간의 조선인 인플루엔자 사망자는 약 2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제의 폭압에 짓눌린 당시 조선은 인플루엔자에 더해 콜레라까지 크게 유행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어지러운 정세 편승해 지구촌으로 번져
이처럼 1918년 인플루엔자는 어지러운 각국 정세에 편승해 지구촌을 구석구석 누빈 전 세계적 사건이었다. 아울러 서울대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서울의료사』등을 쓰고,『정의의 아이디어』『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등을 옮겼다.당시 세계 인구 약 18억 명 가운데 약 5억 명을 감염시키고 그 가운데 약 5천만 명(추계에 따라 2천만∼1억 명)을 희생시킨, 기간 대비 최악의 인류사적 재앙이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팽창과 대립이 빚어낸 이 ‘너무나 20세기적인’ 참상은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달리 일찌감치 ‘선택적 망각’의 대상이 됐다. 그렇지만 모든 과거의 질병은 여러 측면에서 현재·미래적 의의를 담고 있다. ‘너무나 20세기적인’ 1918년 인플루엔자가 21세기의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다음 편에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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