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과제물 특집 2024학년도 2학기 중간

볼테르가 개입한 장 칼라스 사건과 에밀 졸라가 그 부당성을 고발한 드레퓌스 사건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논하시오.  볼테르가 개입한 칼라스 사건(L’affaire Calas)과 에밀 졸라가 그 부당성을 고발한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은 ‘지식인(les intellectuels)’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지식인이라는 용어는 드레퓌스 사건 때 등장한 새로운 용어로서 원래는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국가 이성(Raison d’tat)에 맞서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전위 집단을 가리켰다.  드레퓌스 사건이란 프랑스 보병 대위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에 대한 소송으로 촉발된 정치적 사건을 말하는데, 이 소송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드레퓌스파와 유죄를 주장하는 반드레퓌스파 사이의 격렬한 대립을 거치며 19세기 말 제3공화국을 뒤흔들어 놓은 정치적 스캔들로 비화한다.  1894년 말 드레퓌스는 독일군에게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반역죄로 종신형을 받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도로 유배된다. 드레퓌스의 혐의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나 범행 동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불전쟁 패배로 인한 반(反)독일 정서와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선동으로 유럽 전역을 휩쓸던 반(反)유대주의 때문에 독일제국에 속했던 알자스의 유대계 출신이었던 드레퓌스는 손쉽게 애국주의의 희생양이 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여론도 드레퓌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후 프랑스 정보부의 고위급 장교였던 조르주 피카르는 1896년 우연히 진범이 에스테라지 소령임을 알게 돼 그 사실을 밝히지만, 참모본부는 도리어 피카르를 오지인 북아프리카로 전출시켰고 1898년 열린 군사 재판은 에스테라지를 무죄로 방면했다.  교재에서 짧게 언급되어 있듯이, 진범인 에스테라지가 조작된 증거와 졸속 재판을 통해 무죄 석방된 것에 격노한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 J’accuse」(<로로르 L’A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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